프리미엄의 맛

21세기 먹거리 시장은 프리미엄의 시대다.
생수는 물론 과자 하나, 커피나 주스 한 잔, 김밥 한 줄조차 프리미엄이 붙어야 장사가 된다.
최근엔 7만원짜리 빙수까지 등장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90년대 먹거리 시장은 천원의 시대였다. 일본의 ‘100엔 숍’을 본뜬 천냥 백화점이 인기를 끌었고 편의점의 등장과 함께 삼각김밥이 탄생했다. 천원짜리 김밥 체인점이 생겨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요즘은 어딜 가나 프리미엄이 붙는다. 생수는 물론 과자 하나, 커피나 주스 한 잔, 김밥 한 줄조차 프리미엄이라는 문구가 있어야 장사가 된다. 값은 당연히 비싸다. 얼마 전엔 한 그릇에 7만원이 넘는 빙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총주방장이 야심 차게 선보인 이 메뉴는 2004년산 돔페리뇽 샴페인 원액으로 만든 셔벗 한 덩어리를 토핑해낸다. 팥 대신 금가루를 뿌린 초콜릿과 과일을 듬뿍 집어 넣은 돔페리뇽 빙수는 웬만한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 가격을 웃돈다. 그런 빙수는 대체 어떤 맛일까?

몇 년 전 조선 호텔도 ‘황제 빙수’라는 걸 선보인 적이 있었다. 자작나무 수액으로 얼음을 만들고 캐비아, 인삼정, 복분자 등을 넣은 이 빙수의 가격은 무려 10만원. 그때만 해도 호텔이라는 호사스러운 세계의 별난 이벤트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지난 7월 26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국내 최초로 입점한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은 오픈 첫날 1시간 만에 낱개 상품이 모두 품절됐다. 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몰려든 사람들은 하나에 4천원씩 하는 마카롱을 구입하고자 1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도지마롤 열풍을 일으킨 신세계백화점의 ‘몽슈슈’ , ‘분메이도’ 카스텔라도 인기다. 갓난아기 팔뚝만 한 롤 한 조각에 1만원이 훌쩍 넘지만 요즘도 지방에서 팝업 스토어가 열릴 때면 수백 명의 인파가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대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토록 빵과 디저트에 열광했던가? 제아무리 맛있다고는 해도 다소 의아한 풍경이다.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 이전엔 독일에서 온 망치로 깨 먹는 과자 슈니발렌이 유행했다. 솔직히 그 맛이란 어린 시절에 먹던 소라 과자랑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혀로 느끼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름부터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그 남다른 과자를 직접 맛본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훨씬 더 크다. 오래전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국내에 상륙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극찬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맛보기 위해 매장 밖에 서 ‘Hot Now’ 네온사인이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마놀로 블라닉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값에 드라마 속 뉴요커의 삶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크루아상을 도넛처럼 튀겨 슈거 파우더를 뿌린 ‘뉴욕 크로넛’이 인기다. 뉴요커가 되고 싶다면? 도넛 하나로 충분하다. 도넛치고 비싸긴 하지만, 고가의 백이나 구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사소한 쇼핑은 사회적 인정으로까지 이어진다. SNS라는 1인 채널이 24시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접시 위의 음식은 사라져도 사진은 남는다. 사진 아래엔 실시간 댓글이 달린다. 어디에 살고 어떤 옷을 입는지만큼이나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해졌다. 미각보다 시각을 더욱 자극하는 값비싼 디저트가 새삼 인기를 끄는 이유다. 한때 벌집을 올린 아이스크림으로 유명세를 탄 소프트리의 인기가 파라핀 논란과 함께 시들해진 이후, 디저트의 메카 가로수길의 새로운 대세는 아사이볼이다. 아사이베리 스무디 위에 과일과 그래놀라를 얹은 아사이볼은 종이컵만 한 사이즈가 5,000원이 넘는다. 맛 자체는 블루베리 요거트와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뚜아사이’ 매장 앞은 늘 북적댄다. 미란다 커의 몸매 비결이라는 입소문과 모델들의 인스타그램 인증샷 덕분이다. 그 건물 2층엔 부산에서 올라온 ‘카페드파리’가 있다. 스무디봉봉 시리즈로 특허까지 낸 이 가게의 체리봉봉은 1만5,000원. 그 옛날 파르페의 업그레이드 판이다. 이웃집엔 500ml 주스 한 잔에 1만원이 훌쩍 넘는 ‘머시 주스’ 바가 있다. 먹구름 모양의 솜사탕을 아이스크림 위에 얹어주는 ‘레미콘’ 역시 주문을 넣으면 15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트렌디한 가게다. 시럽에 적신 타피오카 펄을 비롯해 충남 보령에서 생산된 천연 벌집 등 각종 토핑을 추가하면 밥보다 비싼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불황이 장기화될수록 프리미엄이 붙은 음식이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소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교적 저가에 속하는 화장품 매출이 늘어나는 립스틱 효과와 비슷하다. 최소한의 사치인 셈이다. 일종의 매스티지 상품이다. 최근 백화점들이 명품 패션관 세일 행사보다 식품관 리뉴얼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2년 타워팰리스 지하에 스타슈퍼를 오픈하며 상위 1% 식탁을 슈퍼마켓이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했던 신세계는 청담동 SSG 푸드마켓을 성공시킨 데 이어 백화점 지하 푸드마켓을 새롭게 단장하는 중이다. 브랜드 전략팀의 이민영 과장은 “가격보다는 퀄리티와 안전성, 희소성 같은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은 중요한 카테고리예요. 요즘 소비자들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건강한 음식이라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죠. 백화점이 쇼핑 공간으로만 머물던 시절은 지났어요. 이젠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역할까지 하죠.” 매장 전체가 문을 여는 8월에는 송로버섯과 홍차를 전문으로 하는 최고급 브랜드는 물론, 수제 팝콘으로 유명한 갸렛 팝콘도 들어온다. 진귀한 식품으로 가득 찬 매장을 구경하다 보면 명품 인생까진 못 돼도 ‘프리미엄한’ 생활 정도는 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현상은 불안한 시대의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마틴 린스트롬은 인간의 쇼핑 심리를 파헤친 <쇼핑학>에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인간이든 동물이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스스로 제어 가능한 무언가가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비논리적인 소비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김밥이나 생수, 채소, 과일에까지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다. 지난해 죠스푸드는 프리미엄 김밥 체인점 김선생을 오픈하면서 ‘하이엔드급 프리미엄 김밥’이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사카린과 MSG, 표백제, 빙초산을 넣지 않은 단무지와 남해에서 채취한 김, 무항생제 달걀, 국산 햅쌀 등을 이용한 김밥이란 뜻이다. 하지만 하이엔드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이 재료 중에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기본이 사라진 탓이다. 먹을 것조차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웰빙이라는 미신과 유기농 신화, 브랜드라는 종교에 집착한다. 자꾸 커져만 가는 프리미엄 시장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정성이 깃든 음식이라기보단 작은 허영과 커다란 불안이 빚어낸 유행 상품 같다. 물론 개중엔 진짜 제대로 된 음식도 있을 것이다. 단, 그런 음식은 찍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