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추억의 백팩

90년대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한 백팩이 패션계에서 이토록 환영받은 적이 또 있었나?
20년 만에 화려하고 패셔너블하게 귀환한 백팩의 매력!

‘토토가’ 방영 이후 많은 사람들이 90년대를 추억하는 요즘, 그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일명 ‘떡볶이 코트’라 지칭되던 더플 코트, 바닥을 청소할 듯 끌고 다니던 오버사이즈 힙합 팬츠, 그리고 겹겹이 쌓인 니삭스와 함께 기억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스트랩이 짧은 백팩! 등에 찰싹 붙은 백팩을 보고 어른들은 ‘거북이’ 같다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알록달록한 색감과 패턴의 이스트팩, 잔스포츠, 레스포색 백팩이야말로 교복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알고 보면 백팩은 40년대부터 학생들의 필수품으로 수십 년을 함께했다. 그리고 영화 <클루리스(Clueless)>에 나오는 미니스커트, 니삭스 차림의 여주인공들과 함께 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바로 그 백팩이 20년 만에 돌아왔다.

1년 전, 캔버스 소재에 래커로 색을 입히고 체인 장식을 더한 채 스트리트 감성 충만한 샤넬 백팩을 떠올려보자. 무엇을 시도하든 면죄부를 받는 칼 라거펠트의 일탈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즌 패션 위크에서는 수많은 패션 피플들이 백팩을 메거나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키아라 페라니처럼 잘나가는 최신 아이템이라면 뭐든 직접 도전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패션 블로거는 물론, 카라 델레빈, 샤오웬 주, 켄달 제너 등 잘나가는 톱모델들이 백팩에 몸을 밀착시켰다면, 이것은 대유행의 전조 증상이 확실하지 않나.

그다음 수순이라면 유명 브랜드에서 경쟁적으로 디자인한 백팩을 구경하는 일. 맨 먼저 눈에 띄는 백팩이라면, 지난해 9월 공개된 멀버리와 카라 델레빈의 협업이다. 탈착 가능한 스트랩이 특징으로 토트백과 숄더백, 혹은 백팩으로 3단 변신이 가능하다. “아주 다재다능한 가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옷을 입든, 뭘 하든, 어디를 가든 잘 어울리는가방 말이에요!” 카라는 자신이 아이디어를 낸 가방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늘 함께할 수 있는 맘에 쏙 드는 가방 하나만 있어도 인생이 훨씬 편해지는 기분이니까요. 게다가 101세인 우리 할머니, 다섯 살짜리 사촌 남동생에게도 어울리죠.” 그녀가 야심 차게 준비한 백팩은 4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임에도 벌써 1,000개 이상의 선주문이 들어왔단다(멀버리와 카라의 완벽한 만남은 2015년 봄에도 계속된다).

그 밖에도 음악을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적 예술가 알링턴 드 디오니소(Arrington de Dionyso)과 함께한 생로랑, 마크 뉴슨과 합작으로 컬러풀한 양털 트리밍 모노그램 백팩을 디자인한 루이 비통, 봄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꽃무늬와 특유의 뱀부 핸들을 더 한 구찌, 꼬마 숙녀용인 듯 앙증맞은 발렌티노, 아이코닉한 PS1을 꼭 닮은 백팩 버전의 PS1을 만든 프로엔자 스쿨러 등등. 지난해 연말, 미국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꼽힐 만큼 최근 많은 사랑을 받는 가방 브랜드 만수르 가브리엘의 인기 역시 매끈한 가죽으로 만든 실용적인 백팩 덕분이다.

올봄 디자이너들의 백팩 사랑은 더 확고해졌다. 후드 바이 에어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가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백팩을 디자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MBMJ, 페이, 모스키노, 장 폴 고티에 등도 90년대 학창 시절에 메던 것과 쏙 닮은 잔스포츠 스타일의 백팩을 선보였다(각각 지퍼 장식, 퀼팅 소재, 화려한 로고 패턴, 눈부신 금색을 더하긴 했지만 디자인은 추억의 책가방과 영락없이 닮았다). 또 버버리 프로섬이나 마르니는 백팩을 토트백처럼 손에 들도록 제안했다. 또 우아한 비오네 아가씨들은 동그란 가죽 클러치를 어깨에 멘 듯한 모습. 언뜻 등산 가방처럼 보이지만 사랑스러운 분홍색과 꽃무늬를 더한 프린의 백팩은 또 어떤가! 보시다시피 패션을 완성하는 메인 아이템으로서 백팩의 맹활약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2015년형 백팩은 어떻게 스타일링하는 것이 적절할까? 물론 기본적인 방법은 백팩의 본분에 맞게 양쪽 어깨에 둘러메는 것. 하나둘 소지품을 챙겨 넣다 보면 어느새 천근만근이 되는 무게를 어깨 양쪽에 분산할 수 있기에 실용적이긴 하다.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워 보이려고 무진장 애쓴 듯 보일 수 있다. 차라리, 캥거루처럼 여기저기 패션쇼장을 옮겨 다니는 모델들이 즐기는 방식대로 한쪽 어깨에 숄더백처럼 걸치는 건 어떨까? 늘 심플한 가죽 백팩과 함께 쇼장을 누비는 다프네 그로에네벨드처럼! 노하우는 한쪽스트랩을 있는 힘껏 길게 늘여 백팩이 숄더백이라도 되는 듯 느슨하게 어깨에 걸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백팩을 토트백처럼 들기. 백팩의 새로운 전성기와 함께 시작된 스타일링 방식으로, 백팩을 핸드백처럼 다루는 것이 핵심이다. 하우스 오브 홀랜드 백팩을 양손에 가지런히 들고 쇼장에 나타난 알렉사 청, 혹은 미니 사이즈 발렌티노 백팩을 수줍게 들고 있는 헬레나 보든의 모습은 멋지기 짝이 없다.

이렇듯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백팩이 다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백팩이 새로운 잇 백이 된 걸까? 스트리트 패션을 향한 뜨거운 관심, 스포츠웨어의 인기와 놈코어 트렌드, 90년대를 향한 향수 등등이 버무려진 결과다. 백팩 마니아를 자처하는 카라 델레빈은 이렇게 전한다. “가방을 등에 멘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좋아요. 편안한 건 물론, 가방이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죠. 게다가 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