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누비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여행

‘오프 화이트(Off-White)’를 들어본 적 있나? 시카고에서 뉴욕, 서울, 코펜하겐을 거쳐 다시 시카고까지 전 세계를 누비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여행에 〈보그〉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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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로미 스트라이드와 스트리트 브랜드 ‘빈트릴(Been Trill)’의 디자이너 헤론 프레스톤(Heron Preston)이 오프 화이트 가을 컬렉션 룩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항공 마일리지를 56만 킬로미터 넘게 쌓았다. 그래픽 디자이너, DJ,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그리고 칸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여러 직함을 지닌 그는 무려 200여 번 공항 게이트를 통과했다. 지난 2013년 ‘오프 화이트 c/o 버질 아블로(Off-White c/o Virgil Abloh)’가 첫선을 보였을 때 그는 건축이라는 렌즈를 통해 ‘실용적이고 개념적인’ 여성복에 스트리트 느낌을 도입해 이름을 알렸다. 80년대 팝과 고대 일본 무사를 아우르는 느낌의 빳빳하게 재단된 팬츠와 톱과 판초 등등(운동선수 같은 ‘스웩’이 느껴지는 룩이다).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 독일 출신 미국 화가)나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 핀란드 출신 건축가)이 여성복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시라. 2015년 가을 컬렉션에서 60년대 정치 슬로건을 응용한 그에겐 여행 그 자체가 디자인을 위한 경험이다. “저는 늘 문화 간의 소통이 일어나는 입체적 현실세계에 살고 있어요.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하는 풍경과 소리와 냄새 가운데 사는 거죠.” 지금부터 그와 함께 지구 한 바퀴를 동행해볼까?

자신이 만든 레터링 점퍼와 데님 진을 입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질 아블로.

자신이 만든 레터링 점퍼와 데님 진을 입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질 아블로.

CHICAGO

검정 크롬하츠 후디(“제가 최근 좋아하는 옷이죠!”), 검정 유니클로 티셔츠, 검정 슈프림 팬츠, 새까만 스탠스미스,그리고 챙 넓은 검정 닉 푸케(Nick Fouquet) 모자 차림의 아블로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통화를 하며 팜스프링스행 비행기 20F 좌석을 찾아가고 있었다. 팜스프링스에 도착하면 차를 렌트한 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코첼라로 향할 예정이다.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친구들이 공연할 무대 세트는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찍은 자신의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언제 올릴지 고민하며 그는 ‘단골(Regular)’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저는 이곳의 단골입니다. 이곳 체크인 카운터는 저에게 바(Bar) 같아요. 드라마 <Cheers>에서처럼요. 정신이 몽롱합니다.” 왜 그렇게 가혹할 만큼 바쁜 일정으로 여행할까? “이 모든 게 창작의 원천입니다. 모든 대화, 사람들, 마지막 순간의 저녁 식사, 혹은 아티스트와의 만남 등등. 이런 것들이 제 안에서 뭔가를 촉발시키죠. 그리고 특정 시간, 수많은 여러 거품 가운데 생성되는 무작위성이 없으면 그런 건 촉발되지 않을 겁니다.” 이륙하기 직전 그의 전화기를 얼핏보니 비현실적인 3만7,053통의 이메일과 더 비현실적인 966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NEW YORK

며칠 후, 아블로는 ‘<타임> 100’ 갈라 파티에서 칸예 웨스트의 공연을 연출하고 첼시에서 좋아하는 서점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에 들른 뒤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블로는 자신의 첫 작품을 회상했다. 그건 기본적으로 모델들이 챔피온 스웨트셔츠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비디오에서 비롯된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서서히 그걸 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말했죠. ‘그건 의상 라인이 아니에요.’ 저는 사람들이 어떤 것 위에 그라피티를 그리면 그게 그 사람의 것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머리카락에 병이 생긴 후 그의 최근 여성복 컬렉션의 제목은 ‘스플릿 엔즈(Split Ends, 갈라진 끝)’였다. 말 그대로 의상 끝이 갈라진 것을 의미한다. 성별 구분이 거의 없는 옷에선 도시 카우보이 느낌이 났다. 그래픽이 들어가고 깔끔했지만 꽃이 새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건 보헤미안과 60년대를 제 나름대로 해석한 거였어요. 그러나 60년대를 노골적으로 답습하지 않기 위해 프린지나 벨 보텀은 디자인하지 않으려고 했죠. 모든 그래픽은 혁명적 문구를 저 나름대로 해석한 겁니다. 지금이 순간 다시 사람들의 정신이 깨어 있고, 뭔가에 저항하고, 함께 모이는 문화 가운데 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SEOUL

“아마 4분 정도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뒤 공항 보안대를 통과해야 합니다”라고 아블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말했다. 그는 그곳이 초미래적이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같다고 묘사했다. 그는 도쿄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아블로가 보안대를 통과하는 동안 잠시 대화를 멈췄다. 그는 다시 전화로 돌아와 한국에서 새 컬렉션을 선보인 얘기를 들려줬다. “서울의 분더샵 매장에서 제가 디자인한 캡슐 컬렉션을 론칭했어요. 저는 투명한 플라스틱 패널로 공간을 연출했죠.” 인천국제공항의 에르메스 매장을 지나치며 그는 일리노이 주 록포드에서 성장하고 위스콘신 주 매디슨과 시카고의 대학에서 처음엔 공학, 그다음엔 예술, 또 그 후엔 건축을 공부했다고 덧붙였다. 이곳 매장에서도 그가 수십만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는 동안 계속 찾던 에르메스 벨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우아한 주름 스커트에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은 50대 여성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저런 아이템을 함께 입는 건 흔한 일이 아니죠. 놀라운 스타일링입니다. 굉장히 맘에 들어요.”

COPENHAGEN

“지금 저는 게이트 C28에 있습니다. 여길 보니 60년대 사무실 건물이 떠오르는군요. 돈 드레이퍼(미드 <Mad Men>의 주인공)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진 않아요. 그 시대에 충실한 정도군요.” 아블로는 밀라노에서 출발해 코펜하겐 공항에 잠시 머물고 있다. 밀라노에서 다음 남성복 컬렉션을 피팅하고 아내 섀넌 아블로를 위해 재킷을 하나 고른 후 두 살 난 딸 로우와 함께 시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눴을 때 저는 도쿄에 갔다가 곧바로 밀라노로 날아가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을 잔 뒤 일어나 이곳으로 왔어요. 오늘밤엔 시카고로 돌아갈 겁니다. 기본적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셈이죠. 어제 그걸 깨달았어요.” 그가 깨달은 또 한 가지는 자신에게 허락된 것보다 기내용 캐리어가 하나 더 많다는 사실. 그것 때문에 불안할까? “몹시!” 세계를 여행하는 디자이너·기업가·기획자는 기내에서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비행기에는 어떤 고요함이 있기 마련입니다. 덕분에 수면 시간을 더 보충하거나 엄청난 양의 일을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