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의 상관 관계

술은 음악을 부르고 음악은 술을 부른다. 술 마시기 좋은 계절을 맞아 뮤지션들에게 술과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었다.

술은 음악을 부르고 음악은 술을 부른다. 술 마시기 좋은 계절을 맞아 뮤지션들에게 술과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었다.

크라잉넛 한경록

Q 영감을 주는 술
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예쁜 소녀의 입‘술’.

Q 술을 마셨기에 세상에 나온 걸작
2002년에 만든 ‘비둘기’라는 노래가 있다. 밤새 술을 마시고 홍대 공원에서 잠든 적이 있다. 눈을 떠보니 돈도, 친구도 없었는데 숙취 덕분인지 괴롭고 쓸쓸했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바로 달려가서 기타를 잡고 만들었다. ‘이사 가는 날’이라는 곡도 있다. 가을 즈음에 녹음을 했는데, 연주부터 코러스까지 낮술에 취해 만취 상태로 불렀다. 지금도 중간에 내가 부른 부분은 술 내음이 전해져서 추억에 잠기곤 한다.

Q 술이 키운 것
모호한 고정관념에 창을 던지는 돈키호테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처럼 사물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게 한다.

Q 술맛 돋우는 리스트
로큰롤, 달빛, 낭만, 소녀. Q 술과 음악의 상관관계 남녀 관계 같은 것.

Q 더 맛있게 마시는 법
김창완 형님께 배운 노하우가 있다. 낮은 도수에서 높은 도수로 마시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취할 수 있다. 항상 낭만을 안주 삼아 마시려고 한다. 술에 취하면 어디선가 달빛과 황진이가
나타난다.

Q 좋아하는 문장
만취 상태에서 김창완 형님이 100만원 정도 하는 와인을 오픈하려고 하시기에 “형님, 그렇게 비싼 술은 맑은 정신 상태에서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미친놈아, 이렇게 비싼 술을 제정신에 어떻게 까냐?”라고 하셨다.

Q 세상이 초록으로 물드는 초여름 밤
‘럭키 스트라이크’란 작은 칵테일 바 창가에 기대어 올리브를 딱 하나만 넣은 ‘진 마티니’를 마실 것이다.

연남동 덤앤더머 김태진

Q 술을 마셨기에 세상에 나온 걸작
거의 대부분의 곡은 술을 마시고 만든 곡이다. ‘11번째 봄’은 술 마신 다음 날엉엉 울면서 썼고 ‘상실’ ‘나쁜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고 곡 작업을 하면 시작은 쉬운데 가다 말다 하고, 제정신에 작업을 하면 시작은 힘든데 시작되면 쭉쭉 진도가 나간다.

Q 영감을 받은 경험
동네 상인들 입 모양만 따서 ‘연남동으로 놀러 오세요’ 뮤직비디오를 찍자는 아이디어는 술자리에서만 나올 수 있다(결국 찍진 못했다). 술자리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건 멋있어 보이려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Q 연주곡 ‘숙취의 아침’이 상큼한 이유
숙취의 아침이란, 밖에서 술 먹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쾌감이 가장 크다. 그 기분을 표현한 곡이다.

Q 술 마시는 패턴
아침에 삼겹살에 소주로 시작한다. 혼자 먹다가 사람들과 마시다가 다음 날 해장하며 다시 마신다. 이른 아침 기사 식당에서 소주 한 병 시키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동글동글 나에게 박히는 게 느껴진다.

Q ‘연남동 덤앤더머 펍’을 차린 이유
다른 술집에 내는 돈이 너무 많아서. 그런데 차리고 나니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술 마시러 잘 안 가게 됐다. 진짜 아쉬울 때만 셔터 내리고 마신다. 집밥 먹는 기분으로.

이한철

Q ‘맥덕’의 길
3년 전 IPA를 처음 마시고 맥주가 와인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향이 있다는 데 눈을 떴다. 그 다양한 경험을 인스타그램(@volcam)에도 남기고 있다.

Q 가장 맛있는 맥주
아침에 마시는 맥주.

Q 영감을 주는 술
브루도그(Brewdog)에서 나온 펑크 IPA를 마시고 흥이 잔뜩 오르면, 어느새 내 손은 어딘가에 놓아둔 기타를 찾고 있다.

Q 술을 마셨기에 세상에 나온 걸작
다큐멘터리 <막걸리뎐(傳)>에 출연한 적이 있다. 취하고 깨기를 반복하는 막걸리 여행을 하며 흥얼거리다 완성시킨 노래가 ‘막걸리’다. 양희은 선배님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Q 술을 닮은 음악
다양한 술을 접할 때마다 그 맛과 향을 닮은 음악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에 굉장한 사우어 비어를 마시면서 ‘가히미 가리(Kahimi Karie)’의 창법을 떠올린 적 있다.

Q 술자리의 3요소
맛있는 술, 신선한 술, 자극이 되는 술.

Q 최고의 술+안주
페일 에일 생맥주와 간장 소스를 곁들인 배추찜. 즐겨 가는 펍 ‘온탭’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다.

Q 훗날 술집을 차린다면
이태리 골목마다 있는 에스프레소 바처럼 언제든 들러 부담 없이 원샷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비어 바.

로바이페퍼스 김가온

Q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
공연에서 땀 엄청 흘리고 나서 밴드 멤버들과 마시는 맥주.

Q 맥주를 사랑하는 이유
평소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올라가진 않는데 라이브 클럽 데이에 진탕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맥주를 마시고 올라간 적이 있다. 음악, 공연 모두 내면 깊숙이 들어온 날이었다.

Q 기억에 남는 술
네덜란드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이네켄을 한 병 마시고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에 갔던 날. 고흐 그림을 안주 삼아 마셨던 맥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Q 영감을 주는 술
모닥불 피워놓고 밤하늘 아래 술을 마셨던 순간 같은 기억이 모여 음악이 만들어진다.

Q 술 덕분에 세상에 나온 노래
‘Astral Me, Baby’는 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며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쓴 곡이다.

Q 술이 소울에 미치는 영향
말랑말랑하게 한다. 몽롱한 상태가 아니라 편안한 상태다. 의식이 자유로워지고 흐름이 부드러워져서 그 안에서 가끔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Q 좋아하는 문장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삼국지> 관우의 패기가 느껴져서 술 마시다가 화장실 갈 때 자주 하는 말이다.

피아 헐랭

Q 술을 사랑하는 이유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Q 나의 단골 집
후배가 운영하는 스테이크집 상수동 별진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서교동 헐랭이곱창. 일주일에 다섯 번은 헐랭이곱창에 있다.

Q 내가 술을 마셨기에 세상에 나온 것
술을 전혀 못하다 술자리에 꾸준히 참여해 지금은 나와 같은 술꾼이 되어 함께 술을 마시는 건반 치는 심지.

Q 술이 자극하는 감성
로큰롤!

Q 술맛을 돋우는 컬처 리스트
록 페스티벌 아닐까? 특히 피아가 기획하고 연출하는 자선 페스티벌 ‘ABBD(Alpha! Bravo! Beta! Day By Day)’라면!

Q 술과 음악의 상관관계
약간의 취기는 음악에 솔직하게 만든다. 순수하게 음악에 심취하는 순간이 온다.

원 트릭 포니스 이원열

Q 가장 좋아하는 술
압생트, 우조, 그라파를 제외하곤 전부 좋았다.

Q 술이 자극하는 것
많이 취하면 가끔 정말 훌륭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릴 때면 그런 기억은 삭제된다.

Q 술을 마셨기에 세상에 나온 걸작
안타깝게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 덕분에 만든 걸작도 없으니 큰 손해는 아니다.

Q 술맛을 돋우는 컬처 리스트
톰 웨이츠의 70년대 음악 중엔 술꾼을 위한 곡이 많지만, 사실 그때 그는 간과 뇌가 젊은 20대였다. 서른보다 마흔이 가까워진 지금은 톰 웨이츠의 음악을 들으며 “그래, 나도 이때는 음주와 다른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었어…”라고 떠올려 보게 된다.

Q 좋아하는 문장
험프리 보가트가 했던 말. “문제는 세상의 모든 이가 나보다 몇 잔 덜 마셨다는 것이다.”

Q 초여름 밤
창문이 없는 술집에서 늘 마시던 맥주와 버번, 진을 마실 것이다. 술병 안에 계절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