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 작품의 과장된 곡선과 비현실적 양감에서 비롯된 버버리의 꾸뛰르 케이프.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은 이 마스터피스를 〈보그〉의 시선으로 해석했다.

“따분해져버린 것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되살리는 능력은 위대한 예술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의 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간과하기 쉬운,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예시는 패션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때때로 예술에서 받은 영감을 에너지 삼아 우리에게 익숙한 핸드백 혹은 코트를 새롭게 변화시키곤 한다.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봄 컬렉션을 준비하던 그는 영국의 전설적 아티스트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본 후 새로운 열정을 불태웠다. 무어의 조각이 지닌 양감과 곡선을 닮은 스웨터와 코트, 구두 등은 몸을 감싸거나 드러내면서 신비로운 실루엣을 완성했다. 조각 속에 숨은 질감 역시 레이스와 니트, 시어링 등으로 표현했다. 덕분에 이번 컬렉션은 지난 몇 년간의 버버리 컬렉션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일리가 받은 영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피날레 무대에 오른 모델 78명에게 모두 제각기 다른 케이프를 입혀 선보인 것이다. 아란 스웨터 소재로 두툼하게 엮어낸 케이프부터 깃털과 구슬로 장식한 케이프, 수천 개의 비즈를 얇은 실크 위에 수놓아 날개처럼 만든 케이프 등등. 이 모든 건 베일리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 “버버리 케이프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부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 케이프였냐’라는 <보그>의 질문에 버버리 CCO 겸 체어맨을 맡고 있는 베일리는 이렇게 답했다. “트렌치 코트와 마찬가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그 이상으로 진화했습니다. 2017년 2월 컬렉션을 위해 저희는 헨리 무어의 조각적인 형태와 어깨를 감싸는 케이프를 연결했습니다.” 덕분에 78개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 탄생했다.

쇼가 끝난 직후, 런던의 메이커스 하우스에서 진열됐던 케이프는 지난 3월 중순 서울로 날아왔다. <The Cape Reimagined>라는 이름 아래 버버리의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전시됐다. 귀족적 밧줄 장식 케이프, 실크 자수 장식의 후드 케이프 등은 모두 버버리가 지닌 뛰어난 장인들의 솜씨와 창의적 발상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이 전시가 보다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모든 작품을 직접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뜨 꾸뛰르를 구입하듯 특별 주문을 통해 자신만의 꾸뛰르 케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다(서울을 비롯해 밀라노, 뉴욕, 상하이, LA, 두바이로 옮겨가며 이번
전시는 계속된다).

“우리 고객들은 무엇이 버버리 컬렉션을 탄생시키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베일리는 케이프를 비롯한 예술적 패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고객들은 단순히 옷과 제품 그 이상을 원합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영혼을 이해하려고 해요.” 고객들이 특별한 케이프를 지켜본 뒤 헨리 무어와 베일리의 만남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저는 이번 컬렉션에 마음을 가득 담았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영혼이 담긴 케이프가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