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Magic Power

연예인은 동시대 가장 강력하고 영험한 힘을 지닌 21세기 마법사다. 패션계는 그들의 신묘한 마법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모델이 입은 하운즈투스 체크 패턴의 시퀸 톱과 레깅스, 꽃무늬 드레스는 H&M 디자인 어워드(H&M Design Award_Richard Quinn), 깃털 장식 샌들은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모델이 입은 하운즈투스 체크 패턴의 시퀸 톱과 레깅스, 꽃무늬 드레스는 H&M 디자인 어워드(H&M Design Award_Richard Quinn), 깃털 장식 샌들은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손에 초대장을 쥔 이들은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부분 몰랐거나 알더라도 크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반면 검은 양복 차림의 덩치 큰 안전요원과 가드펜스 너머에서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정신을 잃을 듯 울부짖으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세훈!”

지난 3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마련된 루이 비통 쇼장 앞의 인산인해는 루이 비통 CEO 마이클 버크의 눈을 뜨게 했다. 그날 이후 행사가 있을 때마다 K-팝 스타의 참석 여부는 그의 지대한 관심사가 됐다. 그가 세훈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엑소의 멤버라는 걸 아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세훈이 아니었어도 상관없었다. 밀라노의 구찌 쇼장 앞에서 비슷한 장면을 연출해냈으니 민호였어도 좋았다. “인스타그램 포스팅 하나에 몇십만명이 ‘좋아요’를 누르죠. 당장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쇼장 앞에 몇백 명을 불러 모으는 그들의 영향력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임승은은 <보그 코리아> 패션 에디터 출신으로 현재 SM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SM에서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소속 연예인과 하이패션 브랜드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제가 속한 부서에는 저 외에도 광고 담당자 세 명이 더 있어요. 물론 가장 큰 판단 기준이 돈(모델료)이 될 때도 있지만, 하이패션과의 관계에서는 금전적 대가보다 아티스트의 이미지 메이킹을 먼저 고려합니다. 아티스트 자신 역시 인지도 높은 하우스의 패션쇼에 참석하고 싶어 하죠.”

이런 관계는 이미 익숙하다. 90년대 말 일간지에 스타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패션 브랜드에선 2004년 <풀하우스>, 2007년 <커피프린스 1호점> 때부터 송혜교와 윤은혜, 공유, 채정안에게 서로 옷을 입히려고 난리였다. 공항 패션, 해외 화보, 행사 참석 등 연예인을 통한 브랜드 노출 방식이 다양해졌고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은 연예인 셀링 파워의 정점을 찍었다. 정점인 첫 번째 이유는 해외 브랜드가 한류 스타의 가공할 판매 영향력에 공식적으로 눈을 뜬 계기였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최고점이었다는 거다. “우리나라도 연예인이 입는다고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실상 ‘별 그대’의 전지현이 직접적 수익으로 이어지는 스타 마케팅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고 할 수 있죠.” 구찌 코리아 홍보팀의 김영지는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곧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혹시 방탄소년단이 구찌 옷을 어디서 사는지 아세요? 한국 매장에서는 판매한 적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해외 지사에서 그들의 옷 출처를 묻는 메일이 끊임없이 오는군요.”

그동안 우리나라만의 특수 케이스처럼 여겨졌던 스타 마케팅은 K-팝 붐을 타고 세계적 현상이 됐다. 국내에서는 한풀 꺾인 공항 패션이 해외에서는 요즘 뜨는 콘텐츠라는 것이 그 예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던 브랜드와 연예인의 공생 관계 또한 체계적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패션 홍보 대행사 Apr의 유상희가 업데이트한 최신 경향은 다음과 같다. “드라마 같은 경우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공항 패션, 출근 룩, 시사회 패션까지 패키지로 계약하죠. 예전과 달리 검색 포털에서 브랜드와 매체 이름을 노출하지 않는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톱 연예인의 초상권 침해 문제 이후로 공식 보도 자료 1차 정보만 공개하죠. 브랜드명 같은 2차 정보는 블로거들에게 전달해 전파되도록 합니다.” 효과가 예전만 못할 것 같지만, 사실상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홍보대행사가 보도 자료를 완성하기도 전에 이미 SNS에서 누군가 귀신같이 알아낸 패션 정보가 실시간으로 퍼지는 게 요즘이니까.

하지만 모두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걸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스타 마케팅에 대한 의존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마케팅 홍보 전문가들은 대중을 겨냥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이 패션지를 보고 쇼핑할 확률이 낮다고 지적한다. 반면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건 차치하더라도, 일단 연예인이 입으면 제품 문의가 쇄도하고 파급 효과를 보장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한 번 포스팅이 되면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살아남아 바이어와 소비자들에게 퍼져나간다. 요즘은 패션 하우스조차 최상류층을 위한 하이엔드 마케팅과 별개로 대중을 겨냥한 매스 마케팅을 병행하는 추세다. 내셔널 브랜드의 경우 스타 마케팅과 매거진 노출 비율이 7 대 3이라면, 하이엔드 브랜드는 5 대 5를 유지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건 연예인이 유일해요.” 유상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느 브랜드나 연예인 마케팅으로 대박 났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상 큰 ‘한 방’이 가능한 건 연예인뿐이니까요.”

기약 없는 복권 대박의 꿈처럼 들리지만, 중독성 있는 ‘한 방’의 효과는 패션계 곳곳에서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해왔다. 역사 깊은 하우스,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규모 있는 기업뿐 아니라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소규모 독립 디자이너에게도 연예인의 ‘한 방’은 강렬하다. 프라발 구룽은 첫 컬렉션을 선보인 2009년에 영화 <스타 트렉> 시사회에서 조 샐다나가 자신의 드레스를 입은 것이 이름을 알리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다음 데미 무어가 그의 옷을 입자 트위터의 팔로어 수가 폭발했고, 다이앤 크루거가 입은 후에는 모다 오페란디에서 그의 컬렉션을 주문했다. 마법에 홀린 듯 모두가 그를 알아보고, 신뢰하고, 호의적으로 대했다. “간절히 원하던 미팅까지 성사시켜주죠. 평소 거래하고 싶었던 부티크부터 사업적인 협상까지 말입니다.”

연예인의 영향력이 화려한 패션 하우스에서 영세한 디자이너에까지 두루 미칠 수 있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연예인 중에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를 손에 꼽았다면 요즘에는 유독 옷 입을 줄 모르는 워스트 드레서를 찾기가 더 쉽다. 우리나라 구찌 매장의 남성복 판매가 급증한 배경에는 멋쟁이 남자 아이돌의 재산이 한몫했고, 모 힙합 뮤지션은 너무도 입고 싶은 나머지 출시 전에 루이 비통과 슈프림, 버버리와 고샤 루브친스키 협업 컬렉션을 똑같이 만들어 입은 걸로 구설수에 올랐다. 리한나와 그녀의 스타일리스트이자 <032c> 패션 디렉터인 멜오텐버그는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 지방시나 알라이아뿐 아니라 아담 셀먼, KTZ 같은 젊고 재기 발랄한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시도해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SM의 임승은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 실시간으로 평가받는 게 일상인 그들에게 패션 감각은 당연히 갖춰야 할 하나의 덕목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더군다나 나이 어린 아이돌에게 화려한 패션계는 너무도 매력적으로 비치죠.”

진심으로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패션 사업은 연예인들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면서 자신의 유명세를 금전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이 붙은 거라면 무엇이든 살 헌신적인 팬들의 소비 시장을 잘 알고 있다. 인기가 수그러들자 브랜드도 함께 사라진 제니퍼 로페즈와 패리스 힐튼, 제시카 심슨도 그걸 잘 알았고 인기와 상관없이 브랜드가 승승장구 중인 올슨 자매, 빅토리아 베컴, 기네스 팰트로도 잘 알았다. 그리고 더 이상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없게 된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사에선 성공적 후자의 케이스를 퍼플 오션으로 보고 있다. 대세 아이돌만할 수 있다는 치킨 광고의 모델료는 수십억대에 이르지만, 안정적 궤도에 오른 엔터테인먼트사는 그들의 연예인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치킨 광고지보다 세계적 브랜드의 우아한 빌보드 광고에 등장하길 바란다(물론 광고를 고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인지도가 높고 벌 만큼 벌었다는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당장 눈앞의 돈보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연예인도 ‘하이엔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게 요즘 트렌드. 그렇지만 더 로우와 빅토리아 베컴이 단순히 하이패션이라서 성공한 건 아니다. 인지도와 팬덤의 시너지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자체로 고품질 패션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연예인이 궁극의 ‘하이엔드’ 이미지를 지닐 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너무 고리타분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