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과 이성경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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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과 이성경의 호흡

2018-06-26T10:07:45+00:00 2018.06.26|

드라마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타임〉에서 이상윤과 이성경이 판타지 로맨스를 만든다. 현실에서 남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가을을, 여자는 엄마 앞에서 펑펑 울던 순간을 멈추고 싶다.

이성경이 입은 화이트 칼라 장식의 미니멀한 블랙 원피스는 앤디앤뎁(Andy&Debb), 블랙 베레모는 캉골(Kangol), 이상윤의 블랙 니트 톱은 벨루티(Berluti), 화이트 베레모는 캉골.

순례자 이후의 이상윤 드라마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타임>(이하 어바웃타임)에 출연을 결정하기 전 이상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지난해 9월 초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머무르는 산티아고행 비행기 표를 무작정 끊었다. 숙소는 첫날 것만 예약했다. 며칠 만에 걸을지, 하루에 얼마만큼 걸을지, 어디서 머무를지 계획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소속사에 부탁해 미리 약속 받아둔 자유 시간이었다. 다들 어떤 해를 맞을지 기대에 차거나 회한에 잠겨 있을 새해 초, 이상윤은 순례를 결심했다. “<공항 가는 길>과 <귓속말>을 하며 고민이 생겼어요. 일하면서 욕심도 생기고, 눈에 보이는 건 많아지는데 능력은 한계가 있었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으니 답답했어요.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이 절실했어요. 그때 박신우 감독님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는 못해도 2~3주라도 걷자고 제안했어요.” 이상윤은 끝까지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799km를 넘어, 추가로 100km를 걸어 바다에 닿았다. 생각보다 빨리 걸어 귀국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즉흥적으로 유럽 곳곳을 돌았다. 프랑스의 와이너리에 가서 3박 4일 머무르고 니스에도 갔다. 스마트폰 앱으로 가격이 싼 숙소를 찾아 예약했다. 마지막 도시인 파리에서 달라진 자신을 확인했다.

블랙 재킷과 팬츠, 로고가 들어간 머플러는 디올 옴므(Dior Homme).

“순례길을 걸으면 사람이 단순해져서 좋아요. 자신을 돌아보자고 떠난 길인데, 걷는 게 고되니 먹고 자는 문제만 생각해요. 한 발 두 발 내딛다 보면 마을에 다다랐고, 배고파서 밥을 먹고, 지쳐서 잠이 들었어요. 함께 걸은 박신우 감독과 얘기도 많이 했어요. 오랜만에 마음이 편했어요.” 박신우 감독은 이상윤과 2014년 드라20마 <엔젤아이즈>로도 호흡을 맞췄고 지금은 고민을 나누는 사이다. <어바웃타임> 제안을 고민하는 이상윤에게 박신우 감독은 “키가 큰 남녀가 커플이니 재미있을 거 같다”고 농담으로 운을 뗐다. 박신우 감독은 발랄한 이성경을 상대역으로 로맨틱 판타지 장르를 한다면 이상윤이 가진 이미지를 환기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거다.

<어바웃타임>은 타인의 수명 시계를 보는 능력을 지닌 최미카엘라(이성경)와 엮이게 된 재벌가의 아들 이도하(이상윤)의 로맨스 드라마다. 수명 시계라는 판타지 장치가 있지만, 이런 드라마가 그러하듯 남녀 주인공의 매력에 8할을 기댄다. 이상윤이 맡은 매력은 지난 이별 때문에 차가워졌지만 결국엔 사랑의 불도저가 되는 것. 로맨스물에서 소비되는 ‘재벌남’의 한계와 식상함이 두렵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인물은 없잖아요. 기존에 있던 캐릭터라고 해도 연기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져요.” 이상윤은 <공항 가는 길>을 하면서 “멜로를 하면 뭔가 개운하지 않은 듯한 기분”이라고 한 적 있다. 결은 다르지만 또 한번 멜로를 시작한 셈이다. “<공항 가는 길>은 불륜으로 치부될 수 있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어려웠어요. 촬영 중간에는 혼란스러웠죠. 소속사 선배님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원래 멜로라는 장르가 하고 나면 개운하기 어렵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만큼 섬세함이 요구되는 연기죠. <어바웃타임〉은 보다 명확할 것 같았어요. <어바웃타임>은 수명이란 요소가 갈등을 일으키지만 단계적으로 사랑을 완성해가죠. 이성경 씨와도 잘 맞아요. 미카엘라처럼 에너지 많고 유쾌한 친구라 연기하기 수월했어요.”

그는 이전보다 연기와 생활에 있어 선택이 수월하고, 임하는 태도가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순례길을 걸으면 단순해진다고 했잖아요. 데뷔할 때도 비슷했어요. 연기가 마냥 좋았고, 주어진 역할만 잘해내려고 애썼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배역이 사회 통념에 위배되지 않는지까지 생각하더라고요. 물론 작품 선택할 때 고민할 부분이지만, 연기할 땐 다 버리고 진심만 꺼내야 하거든요. 근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거죠. 순례길 다녀오고선 순수한 연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이상윤이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예능과는 맞지 않아 프로그램에 피해를 줄까 봐 고사했다. “이젠 ‘예능에서 내가 어떨지 궁금하니까 해보지 뭐’라는 생각이에요. 이것저것 따지다 안전한 선택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요.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이전에 내 연기에 답답한 면이 있었다면 이런 성향 때문이지 않을까. 마음을 연다고 했는데 늘 비슷한 패턴, 사람 속에 나를 가둔 것은 아닐까. 일상에서도 안 해본 시도, 경험을 하려고요.”

이상윤은 최근에 피아노를 샀다. 그는 어릴 적에 피아노를 오래 쳤다. 시키니까 치는 피아노여서 성인이 된 뒤 손을 놓았다. 어머니께서 가장 아쉬워하셨다. “<어바웃타임>에서 이성경 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봤어요. 기분이 흘러가는 대로 연주하는데 부럽더라고요. 마침 <집사부일체> 촬영에서 만난 차인표 선배님께서 ‘마음먹은 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신 때라,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이전이라면 ‘나도 다시 치면 잘할 텐데’라며 아쉬워만 하고 끝냈을 거예요. 제가 달라졌잖아요? 바로 (이)승기의 중고 피아노를 구입했죠. 드라마 끝나면 레슨을 받을 거예요.” 이상윤은 앞으로도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할 거라고 했다. 뉴질랜드 산악 지대 트레킹과, 동명의 에세이이자 영화 <와일드>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4,285km 완주를 꿈꾼다. “<와일드>에 나온 트레킹은 6개월 정도 잡아야 해요. 그만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꼭 처음부터 끝까지 걸을 거예요. 그곳에 다녀온 한국인 저자의 책도 사놨어요.”

그의 이런 동력은 순례길 효과뿐 아니라, ‘실내형 엘리트’ 같은 본인의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는 아닐까. “이전에는 모범생 이미지를 벗으려고 애를 썼어요. 부러 반대되는 역할을 선택했고요. 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남이 장점으로 보는 부분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나. 인정한 상태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라고요. 동의해요. 제 장점을 바탕으로 일을 해나가 신뢰가 쌓인 후에 다음으로 넘어가면 좋을 거 같아요. 그땐 변신도 가능하겠죠.” 어쩌면 이상윤의 히어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영화 욕심이 많아요. 최근에는 <1987> <리틀 포레스트>도 탐이 났고, <어벤져스>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물을 특히 좋아해요.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그 이미지가 고정된다는 고충을 토로하지만, 저는 부러워요. 우리의 유년이 열광하던 인물이 될 수 있잖아요.”

지금 행복하고 싶은, 이성경 이성경이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말은 “잘하고 싶어요”다. 이성경은 모델로 활동하다 2014년 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의 믿고 보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오소녀로 캐스팅됐고, 이제는 주연배우로 올라섰다. 순탄해 보이는 행보지만 이성경은 “부족한 사람이 큰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는 게 습관이다. “많은 분이 고생하며 만든 작품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이라서 힘든 건 괜찮아요. 그냥 작품이 잘됐음 좋겠고,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면 바랄 게 없어요. 그러면 제가 이전보다 좋은 사람이 될 거 같아요.”

이성경은 드라마 <어바웃타임>에서 앙상블 전문 뮤지컬 배우 최미카엘라로 출연한다. 드라마에서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몇 번이고 다시 불렀다. “제가 뮤지컬 덕후로서 기준점이 있고, 훌륭한 배우님들이 부른 모습을 봐왔기에 부담이 컸어요. 잘하는 척이 아니라 실제로 해내고 싶어서 계속 연습했어요.” 뮤지컬이 좋아서 이 역할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만화나 소설처럼 ‘심쿵’ 포인트가 있어 좋았어요. 최미카엘라가 뮤지컬 스타였으면 선택을 고민했을 거예요. 다행히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역할이에요. 저도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꿨기에 저를 보는 듯했죠.”

레이스 장식의 화이트 새틴 드레스는 샤넬(Chanel), 반짝이는 헤드피스는 큐 밀리너리(Q Millinery).

이성경이 처음 본 뮤지컬은 <금발이 너무해>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만 18세에 모델로 데뷔하는 동안 그녀의 인생엔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20대 초반에 처음 뮤지컬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심장이 뛰고 소름이 끼치고, 노래가 계속 맴돌았어요. 매일 3~4시간씩 <금발이 너무해>의 영상을 찾아보고,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동생과 <위키드>의 역할을 바꿔가며 노래를 불렀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피아니스트란 꿈만 꾸고, 다른 것을 접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대학에 와서야 새로운 경험을 하고, 뮤지컬이란 딱 맞는 취향을 발견하고, 새로운 꿈이 생긴 거죠.” 이성경은 매우 좋아하는 분야이기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고사하고 있다. “연기를 시작한 이상 대중에게 신뢰를 드릴 때까지 작품으로 찾아뵙는 게 먼저예요. 뮤지컬은 팬으로만 만족할래요. 제가 뒤늦게 여러 경험을 하게 됐잖아요. 이제는 연기를 위해서 영화도 많이 보고, 이런저런 경험, 풍경을 접하고 싶어요.” 이성경은 <괜찮아, 사랑이야>로 데뷔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연기자인지 고민스럽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처음 드라마를 찍을 때는 멋모르고 했어요. 그때 연기는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날것이죠. 다행히 첫 작품에 좋은 분들을 만났어요. 연기자 이성경은 그분들이 만들어주신 거나 다름없죠. 은인이에요. 얼마 전 제가 출연한 영화 <레슬러>의 시사회 때 그분들을 초대했어요. 저의 첫 영화 데뷔니까, 부족한 모습이더라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성경이 입은 원피스와 스터드 장식 힐은 발렌티노(Valentino), 펠트 모자는 큐 밀리너리(Q Millinery), 진주 귀고리는 젬마 알루스(Gemma Alus). 이상윤이 입은 터틀넥 니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블랙 팬츠는 디올(Dior),  슈즈는 지미 추(Jimmy Choo).

이성경의 인스타그램에는 지인과의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한참 위 언니인 스태프가 많다. “새침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오해를 살까 걱정하고 보호해주려는 분들이에요. 가족 같죠. 쉬는 날이면 집에서 같이 밥해 먹고, 엄마가 김장하면 김치도 보내드려요. 섣불리 행동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들 정도예요.” 이성경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즐겨 찍는다. 피사체는 주로 주변인이다. “자신도 잊고 있던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서 선물하면 다들 행복해해요. 지난번에 하이난으로 촬영하러 갔을 때도 스태프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찍을 수 있지만 필름이 오래 남고 받는 사람에게 특별함을 주죠.” 그녀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순간순간 최대치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거다. 〈어바웃타임>의 최미카엘라처럼 타인의 남은 수명을 볼 수 있는 능력 따윈 전혀 부럽지 않다. “지금 느끼는 행복에 충실하고 싶어요. ‘돈 열심히 벌어 부모님 호강시켜드려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단, 바로 부모님과 통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깨의 리본 장식이 돋보이는 울 소재 블랙 드레스는 펜디(Fendi), 리본 장식의 아이보리색 스웨이드 힐은 발렌티노(Valentino), 종 모양 펠트 모자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이성경은 부모님과 카페에서 대화하길 좋아하고, 비밀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저희 가족이 원래 ‘똥꼬발랄’해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저랑 동생이 서로 안기겠다고 막 뛰어갔어요. 나이 들면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죠. 지금처럼 다시 친해진 계기는 작은 거예요. 모델 일을 잠시 멈추고 첫 드라마에 들어가기 전에 몇 달 쉬면서 엄마와 얘기하고 싶었어요. 집에 있으면 각자 할 일 하고, 얘기를 꺼내도 금방 끝나잖아요. 카페에 가면 다를 거 같았어요. 그동안 부모님께선 커피값 비싸다고 카페에 안 가셔서 저랑 처음 가신 거 있죠. 카페에서 얘기하고, 토론도 하고, 싸우기도 했어요. 좋더라고요. 몇 번 그러다 보니 제가 엄마 앞에서 울고 있었어요. 엄마가 ‘나도 그럴 때 그랬어’라면서 안아주셨죠. 엄마랑 같이 울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지금 이성경의 또 다른 가족은 뽀이와 뚜뚜다. 산책도 나가는 애교 많은 러시안블루 고양이다. 이성경의 주변은 가족, 스태프, 고양이로 북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