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집

2021.05.13

by VOGUE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집

    전설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거의 40년 전 샌타모니카에 집을 지었다.
    그곳은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게리와 그의 아들은 두 번째 인생을 위한 설계를 마무리했다.

    프랭크와 베르타 게리의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집 파사드가 거리 쪽으로 향해 있다.

    리빙 룸에는 물고기 모양 램프와 나무 테이블, 프랭크 게리가 만든 가죽 벤치를 놓았다. 오른쪽에는 켄 프라이스(Ken Price)의 조각품과 피터 볼커스(Peter Voulkos)의 석재 꽃병이 자리한다.

    아들이 설계한 집에서 살게 된 프랭크 게리.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아내 베르타(Berta Gehry)와 함께 살기 위해 1978년 샌타모니카의 번화가에 집을 지었다. 집은 짓자마자 주택 설계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부부는 그 집에서 두 아들을 키웠으며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과 건축 학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갔다. 1990년대 초반에 개조했을 뿐이다.

    게리는 2월이면 어느덧 90대에 들어선다. 부부가 나이 들고 두 아들도 장성하자 자신들과 오랜 시간 함께해준 그 집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실용적인지 고민했다. 물론 그들이 그 집에 계속 산다 해도 만족스럽겠지만 말이다. 오랜 시간 세계적인 건축물을 만들어온 탓에 그가 일반 주택을 설계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직접 클라이언트가 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인생 후반기에 자신과 아내를 위해 다시 한번 작업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베니스 끝자락에 집터를 마련하고 그에 걸맞은 건축설계를 구상했다. 그렇지만 베르타가 동네 자체를 놓고 다소 걱정하는 바람에 그 건축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다음 그는 샌타모니카의 괜찮은 동네에 지어진 낡은 가옥을 우연히 발견했다. 바다 전망을 가진 그 집은 샌타모니카 캐니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그 집에 더 집착한 이유는 그리 아까울 것이 없는 주택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가책도 없이 죄다 허물고, 마음껏 작업할 널찍한 캔버스를 확보했다.

    이번 도전은 원래 집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때보다 게리가 꽤 나이 들기도 했고 생활 편의를 위한 공간과 엘리베이터도 필요했다. 부부가 옛집에서 매우 행복한 삶을 이어갔기에, 새집 건축 아이디어가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정말 이사를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도 이유였다. 살던 집을 떠나는 데 대한 망설임 그리고 다른 집을 짓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방향을 찾아가려고 애쓰던 게리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 당시 부부의 아들이자 건축설계사였던 샘 게리(Sam Gehry)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게리는 아들과 함께 새집을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스펙 하우스(Spec House), 즉 건축가가 자비로 건축한 뒤 판매 여부를 추후에 결정하기로 한 집이었다. 잃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가족의 수고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진행했다.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비롯해 세상의 기준이 되는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전, 가장 먼저 자신의 샌타모니카 집을 지었다. 그 후로 그의 작업은 엄청난 진화를 거듭했다. 그가 지은 자신의 첫 집이 직업 경력의 초창기에 디자인 실험실이 되었던 것처럼, 그는 현재 심취한 점을 반영할 새 실험실을 원했다. 샘 게리는 2008년 런던 하이드 파크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건축설계를 맡은 후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기에 회사에서 진행 중인 모든 작업에 아주 정통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웅장한 빌라가 지니는 화려한 특징과 아버지가 만들어온 작품에 담긴 활기차고 신선한 에너지를 아우르는 디자인을 설계했다. 각이 다양한 박공지붕, 널찍한 유리창, 그리고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비슷한 사선 모양 묵직한 미송으로 만든 내부 프레임의 이 집은 미국의 산장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게리의 이전 집보다 더 넓고 화려하다. 그렇지만 색다르면서 열렬한 분위기는 비슷하다. 예전 집보다 지속 가능성을 조금 더 살리기로 결정한 샘은 난방을 위해 땅 밑의 열을 끌어 올리기 위한 지열정 장치 아홉 개를 설치했다. 건축 구조물로서 그 집은 전통 빌라의 개념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개념을 뒤엎는다. 이 집은 안락함과 도전을 놓고 선택하기를 거부하고, 두 가지를 모두 다 꾀하는 것 같다.

    디자인이 진화됨에 따라 “스펙 하우스 아이디어는 점차 없는 일이 되어갔죠”라고 베르타가 말했다. “침실이 한 개밖에 없었어요. 그것은 그다지 스펙 하우스 같지 않죠. 게다가 아버지가 오더니 개인 취향에 맞춰 ‘이것도 하고, 저런 것도 추가하자!’고 말씀하셨죠.” 샘이 그 당시를 회상했다. 건축설계 파트너인 아버지와 클라이언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방향을 잡아가던 샘은 이 집을 설계하면서 두 가지를 분명히 했다. 첫 번째, 조경이 잘된 정원의 파티오를 둘러싼 앞쪽 윙(건물의 날개 부분)이 거리를 전망할 것. 프랭크가 ‘엔터테인먼트 플라자’라 부르는 이곳은 오션 뷰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앞쪽 윙의 실내에는 높은 층고의 널찍한 거실, 프랭크가 디자인한 물고기 램프가 샹들리에처럼 달린 다이닝 룸이 바깥쪽을 향한다. 이 메인 공간 뒤쪽에 패밀리 룸과 베르타가 특별히 요청한 발랄한 타일의 부엌, 서재가 뒤뜰을 바라보고 있다. 위층에는 제멋대로 뻗어나간 마스터 스위트룸이 자리한다. 그곳의 발코니는 다른 공간과 바다를 내려다보지만 방문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는 그 구조물 뒤쪽에 있는 조금 떨어진 윙이었다. 좁고 긴 형태의 수영장이 놓인 넓은 정원과 게리다운 격자 구조물로 덮인 오솔길을 배치해 앞쪽 윙과 구분했다. 뒤쪽 윙에는 작은 음악 콘서트에 적합한 커다란 뮤직 룸, 짐, 게스트 룸 두 개와 장기 방문객이 사용하는 스위트룸이 있다.

    프랭크와 베르타 두 사람 모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그가 설계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2003년 LA 다운타운에 개관했을 때 두 사람은 LA필하모닉의 정기 연주회를 다녔다. 그리고 게리가 말한 그의 판타지 중 하나는 바로 뮤지션을 초청해 새집에서 연주회를 열고, 그 집에서 묵게 하는 것이었다. 게리는 친구이자 전 월트 디즈니 회장이었던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의 집에 파빌리온을 설계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스너가 이번에 게리에게 새집 뮤직 룸에 놓을 맞춤 제작한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를 선물했다. 밝은 초록색 피아노다. 물론 게리가 직접 고른 색상이다.

    “저는 미쓰코 우치다(Mitsuko Uchida)가 그곳에 사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답니다.” 프랭크가 말하면서 유명한 일본계 영국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가 와서 연주하겠다고 제안했죠.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액스(Emanuel AX)도 마찬가지고요.”

    지금까지 게리는 그 공간에서 콘서트를 몇 번 개최했다. 특히 이스라엘과 아랍 학생들로 구성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를 위한 이벤트를 그곳에서 열었다. “그때 그곳에 50명 정도 참석했어요. 정말 대단했죠.” 그가 말했다. “저는 초대 안 하셨네요.” 샘이 말했다. “당연하지. 너도 네 건축설계사를 초대하지는 않잖니.” 프랭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글쎄, 샘은 이렇게 저를 참고 받아주죠. 그는 정말 뛰어난 파트너예요. 그렇게 저희는 평생 한 번뿐인 특별한 집을 지었죠. 샘이랑 일하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답니다.”

    알플렉스(Arflex)의 시니 보에리(Cini Boeri)가 디자인한 소파가 놓인 거실. 유리 테이블은 게리의 작품이다.

    게리의 친구이자 월트 디즈니 전 회장이었던 마이클 아이스너가 선물한 맞춤 제작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 초록색은 게리가 골랐다.

      Paul Goldberger
      사진
      Jason Schmidt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