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주 食 야 독

2018.08.26

주 食 야 독

음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회와 가족 단위를 통한 학습이 어려운 1인 가구,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 손을 쓰며 힐링하는 ‘메이커스’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만년필과 지칼은 S.T. 듀퐁(S.T. Dupont). 안경은 스틸러(Stealer). 노트는 몰스킨(Moleskine).

미식 문화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가장 충격적인 단어는 ‘푸드 포르노’였다. 맛집과 먹방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도 어떻게 ‘포르노’라는 단어를 붙일까. 소확행까진 오케이. 야밤에 짜장면 서른 그릇을 먹는 유튜버에게 ‘먹방 규제’가 있을 거란 소식에 ‘차라리 외로움을 규제하라’라는 신문 칼럼이 나왔다. 우리는 씹고 뜯고 맛보기에 빠져 있다. 최근 ‘먹학’이란 단어가 나왔다. 해석하면 먹거리 공부 정도다. 이탈리아 폴렌초의 미식과학대학교 교과과정인 미식학, 미각생리학, 식품미생물학, 미식사까진 들어봤다. 이 학교에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지만 음식의 역사, 문화, 원재료와 가공 기술, 테이스팅 등 오감을 동원해 음식을 배운다. 우리나라의 ‘먹학’은 다른 지점이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주최한 치믈리에 시험을 보자. 치킨 좀 먹는다는 수험생들이 필기와 실기 시험을 치렀다. 시험 문제는 “치킨을 튀기기에 가장 좋은 온도는?”처럼 기본부터 “다음 중 BHC 치킨 메뉴가 아닌 것은?” “다음 중 네네치킨의 스노윙 치킨을 고르시오”처럼 많이 사 먹어본 자가 유리한 문제도 있다. 듣기 평가는 충격적이다. “다음 중 닭 울음소리가 아닌 것은?” 치믈리에들의 노하우를 모아 <미슐랭 가이드>를 패러디한 <치슐랭 가이드>를 펴냈다. 마케팅에 기민한 회사가 만들어낸 이벤트지만 호응은 굉장했다. 사람들은 내가 먹은 닭 다리의 개수만큼 인정받고 싶어 했다.

현세대는 취향과 경험을 추종한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스펙’이다. 취향을 드러내려면 해당 분야의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그러기에 가장 손쉬운 분야가 음식이다. 우리의 경험치는 익선동의 가정집을 카페와 식당으로 바꾸고, 스타 셰프를 배출했으며, 미디어 제작자가 이름만 바꾼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게 했다. 지평이 넓어지면 깊어지고 싶은 법. 전국의 3대 천왕을 찾아다니던 백종원이 인도네시아에 가서 나시고렝의 역사를 읊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로 돌아왔듯, 사람들은 더 깊은 무언가를 원했다. 이전까진 황교익, 백종원 등 전문가에 의지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신현호 음식 평론가는 “남들이 맛있다고 해서 먹었는데, 이젠 왜 맛있을까란 질문에 자기 생각으로 답하고 싶어 하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맥주와 짬뽕, 돈가스와 냉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역사를 파고, 과학적 원리를 찾아보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중앙일보>에 먹학 관련 기사가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이 셰프들의 이론을 키우기 위해 마련한 미식 인문학 수업의 70%가 일반인이고, 미스터리양조장의 100만원이 넘는 장기 코스의 수강생 열 명 중 일곱 명이 취미로 배운다.” 전통의 아카데미 강자는 아무래도 와인, 위스키, 맥주, 치즈 등 일종의 학문적인 진입 장벽이 높은 음식이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는 “발효 등을 통해 작은 것 같지만 두드러지는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서 일정 수준의 학습이 필요한 음식입니다. 관련 아카데미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왔죠”라고 말한다. 신현호도 동의한다. “특히 와인은 산지, 포도 품종, 스타일 등 인덱싱과 아카이빙이 쉽고, 희소성 덕분에 ‘경험’을 수집하는 욕구를 자극했어요. 또 와인 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깊이 파고들기 좋죠. 학구열은 다른 음식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냉면이 대표적이죠. 서울에 평양냉면집이 10여 군데일 때는 이런 식의 접근이 불가능했어요. 이제 30여 군데가 넘어가니 인덱싱이 가능해졌죠. 과거 일본의 라멘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요.” 그는 평양냉면집 서른 곳의 육수, 면발, 고명, 그릇, 염도, 당도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경향신문> 기사를 첨부했다. 맥주도 상업 맥주 vs. 수제 맥주의 대결 구도를 넘어선 지 오래고, 직접 홈 브루어링을 하고, 사워 맥주 전문 바까지 생겼다. 이천 쌀을 선호하던 것에서 특정 품종과 농법의 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연농법과 토종 쌀에 대한 신념도 지키고 현미색이 진녹색을 띠어 아름답고 맛도 구수한 북흑조를 농부와 직거래로 먹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다들 자신의 ‘음식 경험을 확장’하고 싶고 그럴 만한 선택지가 생겼다. 이를 위해선 특정 메뉴, 식재료, 과학적 원리 공부가 필수다.

본래 음식 탐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분야다. 하지만 1인 가구에겐 갈치의 비늘을 호박잎으로 벗겨낼 수 있다고 얘기하거나 보여주는 가족이 없다. 마트는 바로 프라이팬에 올려 구우면 되는 ‘반조리 갈치’로 식재료 학습의 기회를 애초에 차단한다. 사회, 가족 단위가 전수할 문화 중 많은 부분의 맥이 끊겼고 음식과 식재료도 그렇다. 고영 음식문헌학자는 반조리나 정크푸드가 아닌, 식재료 장을 본 지가 언제인지 묻는다. “성인이라면 당연한 ‘음식 생활’을 배우고 시도할 기회가 드물죠. 이제야 돈을 지불해 특정 브랜드, 지자체, 전문가가 주최하는 아카데미, 클래스, 워크숍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놀이터에서 뛰놀지 않은 아이들이 줄넘기 학원에 다니는 것과 비슷해요.”

먹학을 하는 의도에도 점검이 필요하다. 수십,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아카데미 등록을 앞두고 자문을 해보자. 나는 왜 음식을 탐구하는가? 혹시 ‘취향의 스펙’을 위해서인가, 심지어 ‘입털기’를 위해서인가. 고영이 먹학 유행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커피나 와인은 점수 따기 쉽고, 금방 배움의 우열이 드러나는 팔레트 같은 분야죠. 난 팔레트의 1번부터 200번까지 모든 색을 알고 있지, 너는 30번까지만 알지, 하는 식으로 계량화가 쉽죠. 이는 거의 자격증과 연결됩니다. 때론 수강생들이 주최 측의 판촉 대행자로 전락하죠.” 치믈리에라는 정체불명의 자격증, 그를 위해 배달 버튼을 누르는 소비자. 여기까진 재미라고 쳐도 주최 측의 의도나 생산품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수제 맥주 마스터에게 홈 브루어링 위주로 배우면서 그 매력에만 빠져 자연스레 미식이 제한될 수도 있다. 이것이 제대로 된 먹학(學)일까. 나의 음식 자립을 위해, 최소한의 디딤돌로만 관련 수업을 이용해야 한다.

시행착오는 있기 마련이다. 이를 거쳐 진정한 먹학의 시대가 열리리라 믿는다. 지금은 밀레니얼 세대이자 ‘메이커스’의 시대니까. DIY의 일종인 목공, 도예, 바느질 수요만 봐도 그렇다. 사람의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손가락 네 개와 모두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손을 쓰는 생명체지만, 스마트폰 등 기계문명에 기회를 잃었다. 빼앗긴 손을 다시 찾으면서 힐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중 하나도 음식이다. 음식 조리는 먹는 것을 넘어, 직접 장 보고 만지고 설계하며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이를 채 썰지, 어슷하게 썰지 고민하는 작은 설계부터 촘촘히 채워나가며 나만의 것을 내 손으로 만드는 희열을 느낀다. 이 ‘메이킹’을 잘하기 위한 공부는 확장될 것이다. 먹학이란, 내 것을 창조하려는 밀레니얼 세대의 단면이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이신구
    푸드 스타일링
    한송이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