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권력자의 음식이 전통이란 이름으로 문서화됐다면, 생활자의 음식은 구전으로 이어졌다. 농부의, 토박이의, 서민의 밥상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절실한 음식 문화이기 때문이다.
동짓날, 팥죽을 먹으러 갔다. 세 종류의 팥죽이 나왔다. 앵두팥과 재팥을 블렌딩해 새알심을 띄운 부산식, 예천 구팥에 멥쌀을 끓인 제주식, “검은 그루팥이 붉은팥보다 맛있다”란 할머니의 말씀 따라 만들고 수수새알심을 넣은 강원도식이었다. 팥빙수로 유명한 이촌동 카페나, 서울서 둘째로 잘한다는 팥죽집만 찾아갈 줄 알았지, 팥 종류와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를 느끼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재래종 팥만 50여 종이다. 고추는 1,500여 종, 콩은 8,000여 종이다. 그날 모임의 주최는 ‘입말한식가’로 활동하는 하미현이었다. 입말한식은 그녀가 만든 단어다. 입말(글에서만 쓰는 말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에서 착안해, 토박이와 농부의 입으로 전해지는 투박한 우리 음식을 뜻한다. 그녀는 전국을 돌면서 식재료와 농부의 음식을 취재하고, 기록해왔다. 그 인연으로 만난 경북 예천의 젊은 농부 이병달도 모임에 함께했다. 그는 아버지와 집안 대대로 내려온 붉은팥, 예팥, 재팥 농사를 짓는다. “우리 가족은 팥을 밥만큼, 팥물을 물만큼 자주 먹었어요. 오늘도 저녁에 팥칼국수를 끓인다고 전화가 왔죠. 팥 종류에 따른 음식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리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사람들은 못 들어본 것은 알려고도 먹으려고도 하지 않거든요.” 재팥은 단맛이 좋아 떡고물로 먹고, 예팥은 물에 넣고 달여서 약처럼 마시던 약팥이며, 팥알이 여물기 전인 여름의 팥잎은 나물로 무친다. 하미현의 책 <입말한식>에는 이병달 가족뿐 아니라 울릉도 한귀숙 님의 감자팥죽, 횡성 강기순 님의 옥수수팥죽 등 팥과 함께 나고 자란 농부의 음식법이 담겨 있다.
사찰음식, 궁중음식은 권력의 음식이다. 그렇기에 ‘전통’이란 이름 아래 소중히 다뤄지고 기록되었다. 하다못해 그 유명한 <음식디미방>도 사대부의 부인이 양반가에서 먹는 음식을 다룬 조리서다. 반면 농부의 밥상은 그것을 차려낸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마을에서 마을로 구전되었다. 권력자의 음식이 아니라 생활자의 음식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미현은 <뿌리깊은 나무>의 故 한창기 선생님의 말을 인용한다. “민중이 기록하지 못했던, 입말로 이어지는 역사, 그것이 뿌리예요.”
지리산 북쪽의 뱀사골 근처에 있는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 우리 장학교 등을 운영하는 고은정 음식문화운동가와도 나눈 얘기다. 어머니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자리였다. “궁중음식은 보존 가치가 있고 음식사에서 중요하지만, 고도의 음식 기술이 필요해 배우기도 어렵고 일상적으로 해먹기 어렵죠. 그곳에 쏟는 열정만큼 매일 먹는 음식을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하찮게 여겨요. 그중 하나가 밥이죠. 그래서 제가 밥 짓는 수업을 진행합니다.” 때론 “다 아는 밥 짓자고 여기까지 온 줄 아냐”는 항의도 받는다. 하지만 제대로 밥을 지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밥 중 몇이나 알까. 고은정 음식문화운동가는 4월에는 봄나물을, 5월에는 죽순을, 6월은 감자와 함께 밥을 안친다. 최근 그녀는 다양한 밥을 책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에 소개했다.
1945년생 전순예 할머님께서 쓰신 <강원도의 맛>이란 책이 있다. 평창읍 어두니골에서 살 때 먹었던 끼니를 푸셨다. 찰기 없는 메밀이 툭 끊어져 콧등을 치는 꼴두국수, 꼬투리를 하나하나 까야 하는 파란콩 순두부, 보솔산 수리취로 만드는 수리취떡 등 음식이 시어 같다. 그중에도 익지 못하고 시퍼런 채로 떨어진 자두를 버글버글 끓인 고얏국은 꼭 한 번 맛보고 싶다. 할머니의 기록이 아니라면 내 평생 자두로 만든 국은 생각도 못했을 거다.
계승에 의미를 두자는 게 아니다. 농부의 밥상이야말로,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에 들어맞는 음식이자, 지향할 미래다. 하미현은 농부의 음식법을 취재할 때면 “별것 아닌 것, 못살 때 먹는 초라한 것”이라며 거부당하곤 했다. 하지만 강원도 화전민의 음식만 봐도, 고기와 생선을 쓰지 않고도 기름과 잡곡, 식물 뿌리, 잎, 꽃, 열매로 맛과 영양을 살린다. “그들의 음식법엔 결핍과 생존이 만들어낸 지혜가 들어 있죠.” 조리법도 간단하다. “옥천의 할머니께서 말아주시는 고추국수를 좋아해요. 향 좋은 고추를 썰고, 옻나무를 넣은 간장 양념을 풀어 국수를 말면 끝이죠. 어르신들은 음식을 뚝딱뚝딱하세요. 그때 나는 재료에 있는 장으로 간을 하면 끝이죠. 영양소는 고르고 보기도 좋으면서 품이 덜 드는 음식이죠.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해요.” 농부의 밥상은 고도의 솜씨, 많은 공과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팜 투 테이블, 비건, 건강 등 지겹게 들리는 지금의 외식, 음식 트렌드와 맞물린다.
전남 구례를 여행하며 만난 음식도 그러했다. 지리산 아래 펜션에서 코소보 피노 누아 와인을 따자 주인장이 돼지감자를 썰어 넣은 루콜라 샐러드를 내고, 겨울 무를 구웠다. 친구는 구례 장터에서 산 곶감을 꺼냈다. 이 곶감의 이름은 ‘오시’다. ‘지리산 자연밥상-38점빵’의 고영문 주인장이 붙인 이름이다. “허균은 ‘팔도 맛집 블로그’ 격인 <도문대작>에서 ‘물감을 지리산의 해발 높은 찬 바람에 말린 곶감’을 최고로 쳤어요. 옛 방법대로 말리고, 선홍빛을 내려고 유황 처리를 하지 않아 곶감이 거무스름한 빛을 띠죠. 그래서 ‘까마귀 오(烏)’ 자를 붙여 오시라 이름 지었어요.” 장터에서 호떡도 사 먹었다. 한국 토종인 앉은뱅이밀에 필리핀산 비정제 설탕인 마스코바도로 부쳐낸 호떡이다. 주인장은 또 다른 식당도 하셨다. 봉평 쓴메밀로 만든 국수, 치자와 비트로 물들인 무를 넣은 김밥 등 비건인 아들에게 해주던 메뉴지만 어느 비건 레스토랑보다 훌륭하다. 오래된 밥상은 우리의 미래다.
충청도의 우리 집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어죽을 쑤었다. 품이 보통 드는 것이 아니라 대여섯은 모여야 솥에 끓였다. 어죽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 집은 밀가루와 고추장을 되게 풀어 되고 얼큰했다. 나는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어죽의 레시피를 물었다. 적어두지 않으면 ‘할머니의 어죽’은 ‘추억’일 뿐 실체는 없어질 것 같았다.
물론 집에서 한 번 만들지 못했다. 고은정은 농부의 밥상이 이어지려면 기록도 좋지만 자꾸 해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종종 마을의 솜씨 좋은 어르신을 모셔다가 이맘때쯤 제철 재료로 어떻게 조리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함께 만들어 먹는다. “우리네 밥상을 이어가려면 밥부터 내가 온전히 해먹어봐야 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엄마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배춧잎을 뽑아 배추전을 부치고, 수제비를 끓이잖아요. 음식의 기운을 먹고 내쉬는 숨으로 힐링하죠. 실제 자신이 밥을 지어 먹어본 초등학생들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매일은 어렵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우리의 밥상을 생각해보고 해먹길 바랍니다.” 농부의 밥상을 따르다 보면 어느 화제의 레스토랑보다 앞선 식탁을 마주할지 모른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프랍 스타일링
-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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