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촉발한 페미니즘의 아이콘, 사회문제와 역사를 흡수해 우리가 사는 시대를 엄청난 흡입력을 지닌 활자로 보여주는 소설가. <보그>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를 만났다.
한 개인이 꺼내놓은 생각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짚어냈을 때 세상은 분명히 응답한다. 2012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가 TED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강연을 했을 때 세상은 분명히 움직였다. 이 강연을 두고 편견과 오해 속에 표류하던 페미니즘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타당한 사상으로 받아들인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550만 명이 강연을 지켜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디선가 영상은 재생되고 있다. 비욘세는 ‘***Flawless’에 치마만다의 메시지를 샘플링했고 크리스찬 디올은 ‘WE SHOULD ALL BE FEMINISTS’를 새긴 화이트 티셔츠를 런웨이에 올렸으며 스웨덴 교육청은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에게 강연을 기록한 책을 나눠주었다. 치마만다가 쏘아 올린 메시지는 각자의 가슴속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피워 올렸다. 전 세계에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촉발한 경이로운 성취였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 에세이스트로 유명해졌지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차세대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미국에 유학한 작가는 나이지리아 흑인 여성으로 살아온 정체성을 바탕으로 인종, 이민자, 여성 등 사회문제를 관통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써왔다.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는 나이지리아 지식인 청년들의 삶, 가부장제의 압력과 폭력, 권력이 된 종교, 전쟁이 일상에 남긴 상처까지. 치마만다의 소설은 어떤 역사서나 뉴스보다 나이지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생생한 목소리이자 새로운 장르, 풍성한 서사가 더해진 문화인류학적 기록이다. 문제의식으로 빛나지만 치마만다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그녀의 소설은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설정과 상황 묘사에 능한 작가는 나이지리아를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독자까지도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설득해내고야 만다. 그녀의 손에서 나이지리아와 미국의 문화는 섬세하게 피어난다. 흑인 여성이 머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영어 악센트를 두고 각자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비미국인 흑인과 미국인 흑인의 차이, 백인을 향한 흑인의 열등감 같은 문화적 함의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빠져드는 대상은 사람이다.
작가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위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고 말했는데, 치마만다의 소설은 그런 세상을 향한다. 나이지리아라는 지구 반대편 나라에 사회적 약자로서 투쟁하며 살아온 한국 여성의 삶이 겹쳐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할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길 바라는 단단한 희망의 형태마저 말이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자신을 향하는 여정에 있다.
서울에서 만난 치마만다는 견고한 우아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단어의 쓰임에 민감했고, 같은 고민과 생각을 가진 여성에게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을 때는 의문을 제기했고, 패션의 창의성에 감탄했으며, K-뷰티에 관심을 드러냈다. 짧은 한국 방문 일정 동안 ‘왜 페미니스트는 글을 써야 하는가’를 주제로 ‘세바시’ 무대에 섰고, 이화여대에서는 작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성공한 리더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와 대화를 자청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현장마다 아이돌 그룹 팬미팅 현장 못지않은 환호성이 따라다녔고 작가도 우리도 그 순간을 열렬히 사랑했다. 26세에 처음 집필한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 나이지리아 청춘의 이야기 <아메리카나>, 단편소설집 <숨통>과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에 얽힌 이야기부터 에세이집 <엄마는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에 관한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까지. 치마만다는 어떤 편집 없이 자신의 언어가 고스란히 <보그> 독자에게 전달되길 원했다. 언어가 곧 사상인 사람.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무엇으로도 훼손되지 않을 꼿꼿한 기백과 다정한 온기를 가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진심을 그대로 전한다.
<숨통>, <점핑 멍키 힐>,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메리카나> 등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실화와 허구가 섞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아메리나카>의 이페멜루나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캄빌리는 작가님의 실제 모습과 얼마나 가까운가요.
캄빌리는 전혀 저와 비슷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반대 인물이에요. 캄빌리는 조용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캄빌리는 겁이 많지만 저는 그렇지 않죠. 제 친구가 이페멜루는 저에게서 온기를 뺀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정확하게 “너한테서 따뜻한 면을 모두 제거하고 이페멜루를 만들었어”라고 말했죠. 남자인 점만 제외하면 오빈제가 저랑 아주 많이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전적이다’라는 말은 적절치 않아요. 제 인생에서 뭔가를 가져오지만 있는 그대로 쓰지는 않아요. 그게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작품에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켄 사로위와를 바탕으로 한 느완키티 오게치나 델레 기와를 바탕으로 한 아데 코커처럼 말이죠. 완전히 허구의 인물을 창조하는 대신 역사적 인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그분들을 기리고 싶어서예요. 나이지리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거든요. 델레 기와는 언론인이라서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어요. 켄 사로위와는 사회운동가라서 정부에 살해당했고요. 저에게는 그것이 그분들을 기리는 방식이에요.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나이지리아 사람은 누구나 제 글을 읽으면 그 캐릭터가 누구를 바탕으로 했는지 알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방법이기도 한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서는 안 돼요.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의 많은 이야기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이유이기도 한가요.
네, 맞아요.
나이지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나이지리아 밖의 사람들은 부족하거나 혹은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아니에요. 의무감에서 쓴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세상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아요. 나이지리아인들을 위해서 쓰지도 않고요. 굳이 말하자면,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써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가 낳는, 예상 밖의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세계가 나이지리아 역사의 복잡성을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요.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아니고요.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를 쓸 때는 사실 나이지리아인들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길 바랐어요. 학교에서 비아프라 전쟁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감춰온 역사의 일부죠. 대부분의 나라의 역사에는 국민들이 스스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데 우리한테는 비아프라 전쟁이 그래요. 그래서 책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할 때 정말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제 세대의 많은 사람에게는 그게 문학일 뿐 아니라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었을 때 나이지리아에서 종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나이지리아는 실제로 다른 나라보다 종교색이 더 짙은 나라인가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나이지리아가 굉장히 종교적인 나라이긴 해요. 예를 들어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할 경우,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절대 당선될 수 없어요. 사람들이 그를 악마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하나님 얘기를 꼭 해야 해요. 자신이 신을 믿는다는 얘기를 해야 해요. 나이지리아에서 누가 “잘 지냈어?”라고 물었을 때 적절한 대답은 “하나님의 은총으로”예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종교를 열심히 믿는다기보다 종교를 행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당신의 무언가를 칭찬하면 당신은 “아, 하나님 덕분이지”라고 답해요. 하지만 그건 거짓말인 것이, 나이지리아는 굉장히 부패한 나라거든요. 그리고 많은 면에서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나라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상한 조합인 거죠. 예를 들어 라고스에서 종교는 굉장히 멋있고 세련되고 유행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공연장처럼 큰 교회에 다니죠. 여자들은 세련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풀 메이크업을 하고 교회에 가고요. 가톨릭 말고 오순절교회가 그래요. 복음교회 말고 오순절교회요. 아주 현대적인 교회죠. 나이지리아에서 오순절교회 목사들은 전용기를 갖고 있는데 이게 좋은 일로 여겨져요(웃음). 그리고 많은 가톨릭교도들이 오순절교회 신자로 개종해요, 그게 유행이니까. 오순절교회는 부를 설파하는 종교예요. 부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니까 돈을 원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기도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돈과 직업과 벤츠를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종교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종교는 제가 정말로 존중하는 거예요. 종교는 선을 위한 힘이 될 수도, 악을 위한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것으로 무얼 하느냐에 달렸죠. 그러니까 저는 종교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봤거든요. 심지어 가톨릭도요. 저는 가톨릭교도로 자랐고 어릴 때 미사에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성당을 좋아했죠.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그 의문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종교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존중해요. 하지만 종교가 할 수 있는 나쁜 일도 잘 알고 있어요. 아버지는 아주아주 독실한 로마가톨릭교도세요.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고 다정한 분이시죠. 그래서 때로 저에게 아버지는 가톨릭의 가장 좋은 점을 대표하는 분이세요. 하지만 가톨릭의 가장 나쁜 점도 알고 있어요. 저는 제 딸을 가톨릭교도로 키우고 있어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어서죠.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됐을 때 가톨릭을 믿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요. 아이에게 종교 선택권을 주는 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종교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리고 아이를 성추행하는 성직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제 딸은 절대 교리문답 수업에 보내지 않을 거예요.
<보라색 히비스커스>와 <아메리카나>에서 여성들 간의 우정과 자매애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선대가 후대에게 세상사에 대한 자신들의 지혜와 철학을 전해준다는 점이었죠. 오늘날 세계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의 사랑과 응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제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어요. 제 가족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저에게는 아주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여자 친구들이 있어요.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이 여성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경험한 든든한 자매애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자매애에 대해 얘기할 때 저는 때로 불편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여자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 응원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와 반대되는 생각을 지닌 많은 여성을 지지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체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남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남자도 좋아해요. 저는 남자들과 잘 지냅니다. 남자를 두려워하지도 않죠. 저는 남자를 두려워하는 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를 무서워해본 적 없어요. 남자와 논쟁하는 것도 좋아하죠. 늘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여자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아주 강하고 훌륭한 롤모델을 보고 자랐죠. 특히 무서운 가모장이셨던 외할머니를 아주 좋아했어요. 할머니는 그 누구의 헛소리도 봐주시지 않았죠. 친할머니는 아주 온순하고 다정한 분이셨지만 어머니 또한 아주 인상적인 여성이시죠. 언니들은 제 가장 친한 친구들이에요. 중학교 때는 늘 함께 다니는 여자 친구 무리가 있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제가 가운데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늘 여자애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서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삼켜진 것만 같았죠. 지금은 아주 작지만 단단한, 거의 여자들로 이루어진 지지자 그룹이 있지요. 정말 친한 친구들, 사촌들, 언니들, 게이도 몇 명 있는데 이 친구들도 포함시켜도 되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정말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를 지탱하는 것은 이런 여성들의 응원이에요. 늘 제 곁에 있어주고, 제가 세상 사람들한테 꺼지라고 말해야 할 때 그렇게 말하도록 도와주니까요. 제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여자들이 있기에 우울할 때는 여자들에게 도움을 청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도 여자들이 여자들을 좀더 지지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문화권에서건 여자들은 다른 여자를 협력할 수 있는 대상보다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교육받는 것 같아요. 이 점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이 되라고 배우면서 자라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여자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해야 해요. 저는 그런 가르침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그 가르침을 일부러 무시하기 시작했어요. 남자애들은 다른 남자애들을 평가하고 다니지 않지만 여자애들은 항상 다른 여자애들을 평가해요. 저는 그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똑같은 운명에 의해 고통받을 거라면 서로 힘을 합쳐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긍지 높은 나이지리아인이지만 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9월에 마흔두 살이 돼요. 열아홉 살 때 처음 집을 떠나서 4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다가 그 후로는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죠.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에요. 미국은 고향 비슷한 곳이 됐죠. 그래서 저는 둘 다 제 나라로 여겨요. 미국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고, 때로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은 저를 슬프게 만드는 곳이에요. 우파가 정상인 곳이 되어가고 있어서죠. 어릴 때는 미국이 미국이기에 동경했어요.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미국에서는 절대 이러지 않을 텐데”라고 말하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인 면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바보 같은 일이 미국에서도 일어나게 됐어요.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광채를 좀 잃었다고 할 수 있죠. 미국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국은 제가 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을 준 곳이기도 해요. 나이지리아에는 가족이 있고, 인맥이 있고, 보는 눈이 있어서 자다 일어나서 잠옷 바람으로 차에 올라탈 수 없어요. 거울을 보고 내 외모가 이상하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하죠. 밖에 나갔다가 부모님의 지인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미친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미국에는 일가친척이 없으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저에게 그런 자유를 줬다는 점에서 미국에 감사해요.
이보어와 영어의 이중 언어자로서 작품을 집필할 때 아이디어는 어느 언어로 떠올리나요.
영어로요. 제가 영어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대부분 영어로 떠올라요. 80% 정도 영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이보어로 떠오를 때는 어떤 것은 번역이 잘 안 돼요. 번역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들 하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 이보어 표현이 있는데 영어로도 똑같은 말이 있지만 이보어로 말해야 이상하고 웃기고 독특한 거예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의미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뭔가를 관찰하다가 어떤 이보어 표현이 머리에 딱 떠오를 때가 있죠. 그런데 거기에 해당하는 영어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어떤 이야기의 단초가 될 수는 있는데 그다음에 실제 이야기는 영어로 떠오르게 돼요. 제 글은 영어니까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영어로 해야 하거든요. 이보어는 제게 웃음, 가족, 사랑의 언어예요. 농담을 하는 언어이기도 하죠.
한 번도 나이지리아에 가본 적은 없지만 당신 책을 읽었을 때 나이지리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고 선명했기 때문이죠. 이런 장면을 쓸 때 노하우가 있을까요.
네, 특별한 음료수가 있어요. 그걸 마시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팔 예정이에요(웃음). 아뇨,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진실을 말하고 싶다는 거예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쓸 때는 향수병에 걸려서 고향을 떠올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세한 묘사가 중요했죠. 모든 것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었어요. 첫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밖에 나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 어릴 때 아주 좋아했던 흙냄새를 책에 넣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두 가지 같아요. 일단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라. 그리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가져라.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하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끄집어내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독자도 생생하게 느끼는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식에 대한 묘사도 그렇게 생생했군요(웃음).
저는 먹는 걸 아주 좋아해요. 사실은 지금도 먹을 것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오늘은 뭘 먹게 될까?’ 하고요. 맛있는 음식을 정말 먹고 싶거든요. 샌드위치는 먹고 싶지 않아요(웃음).
자세히 들어가면 서로 굉장히 다르지만 <숨통>,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메리카나>는 모두 성장 소설입니다. 성장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또 세 작품 모두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어느 작품도 마지막 장면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의도한 바일 수 있지만 해피 엔드와 새드 엔드 중 선호하는 결말은 무엇인가요.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가 막 성인이 됐을 때 그런 작품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사람들이 성장기를 거칠 때 겪는 경험이 제 흥미를 끌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저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우리가 되는지,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도 그런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그리고 작품의 결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말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저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실 거예요. 정말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그러지 좀 마요!”라고 말하죠(웃음). 그리고 제가 해피 엔드를 좋아하냐, 새드 엔드를 좋아하냐는 그때 뭘 읽고 있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하지만 독자로서는 대체로 슬픈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우울한 책이 마음에 와닿아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를 울게 만드는 책을 좋아해요(웃음). 저한테 문제가 있나 봐요.
당신이 엄마가 되기 전에,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던 친구를 위해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썼습니다. 엄마가 된 이후 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또 작가로서 인생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요.
엄마가 되면서 제 인생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 찾아왔어요.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종류의 사랑을 느꼈지요. 하지만 더 이상 저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됐어요. 그게 아이를 낳은 후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얼 하건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항상 아이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시간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게 됐죠.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은 어떻습니까.
엄마가 된 후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어요. 제 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어떤 것은 전보다 더 개인적인 문제가 됐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전보다 더 화를 많이 내게 됐죠. 작년에 아이를 데리고 쇼핑하러 간 적이 있어요. 딸은 아직 만 네 살도 안 된 완전 꼬맹이예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요즘은 아동복도, 여자아이들을 위한 옷도 굉장히 성적 대상화되어 있다는 생각이요. 저는 제 딸이 그냥 어린애처럼 보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실제로 파는 아동복은 그냥 제 옷처럼 생겼는데 사이즈만 작은 옷이죠. 성인 여성을 위한 옷처럼 노출도 하고요. 그런 옷이 너무 성적 대상화됐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화가 났어요. 아이들은 아이답게 살도록 내버려둬야 해요. 이런 것은 제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알아채지 못하던 것들이에요. 이런 것도 있어요. 딸아이는 미국에서도 유치원에 다니고 나이지리아에서도 유치원에 다녀요. 그런데 유치원에서 여자애들은 이래야 하고 남자애들은 이래야 한다고 가르쳐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이가 스스로 관심 가는 것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어요. 다행히 제 딸은 자기주장이 아주 강한 아이예요.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가족사진이에요. 제 딸은 제 평생의 사랑이죠.
TED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주제로 강연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습니다. 그때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많은 진전이 있었어요. 7년 전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늘었습니다. 또 7년 전과는 달리 페미니즘이 세계인의 대화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가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강력한 백래시에도 불구하고 미투운동은 계속 사회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으며 여성들 간의 공고한 연대는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계 정복이죠.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는 겁니다(웃음)! 그건 이상적인 다음 단계겠죠. 하지만 현실적이고, 보다 실용적인 다음 단계도 얘기해야겠죠. 미투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을 사람들이 당연히 믿어주리라 기대하고, 백래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투운동에는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로서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인가요.
없는 것 같아요. 영감을 준 사람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만 정립하는 데 영향을 준 사람을 묻는다면 모르겠어요. 사람한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들은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제 증조할머니 얘기예요. 저는 어릴 때 증조할머니가 골칫덩어리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요. 저는 ‘골칫덩어리 여자’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할머니는 왜 골칫덩어리라는 소리를 들었을까요? 증조할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증조할머니는 혼자 힘으로 할아버지를 키우셨어요. 그런데 당시에 여자는 재산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가에서 증조할머니의 땅을 뺏으려 했지만 할머니가 거부했죠. 그래서 할머니는 마을에서도 골칫덩어리였어요. 어린 나이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페미니스트로서 제게 최고의 우상은 증조할머니예요.
세계를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로 격찬을 받고 있지만 페미니즘 에세이를 통해서도 굉장히 유명해졌습니다. 작가로서 픽션과 논픽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나요.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르는 어느 쪽인가요.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픽션이에요. 픽션은 저의 첫사랑이자 진정한 사랑이죠. 픽션은 제 열정이자 소명이에요. 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를 제외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소설을 쓸 때예요. 그리고 에세이보다 더 쓰기 어렵기도 하죠. 에세이를 쓸 때 저는 어떤 주장을 하려고 해요. 독자에게 뭔가를 납득시키려고 하죠. 하지만 소설을 쓸 때는 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상의 세계에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세계에 닿길 바라지요.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냐’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이 또한 픽션이라고 하겠어요. 저는 에세이를 쓸 때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해요. 이야기는 여전히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론에 대한 강의를 하면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잖아요? 그래서 픽션이라고 대답하겠어요. 제 인생을 가장 많이 바꾼 것도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대상에 대해 가진 생각을 가장 많이 바꾼 것도 이야기였어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갑자기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야기는 저를 변화시켰어요. 문학이, 소설이 그랬죠. 저는 한국인 위안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 아마 역사책에서 읽은 것 같지만, 거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 계기는 소설이었어요.
작가를 꿈꾸기 시작한 계기,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글쓰기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나요.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조상님들이 저에게 이 재능을 주셨다, 정말로 그렇게 믿어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글을 쓰고 싶었던 계기는 없어요. 저는 작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수학자니까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어요. 늘 글을 쓰고 싶었죠. 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는 먹고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의사가 되어 밤에 글을 쓸 작정이었죠.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싶었어요. 남편의 부양을 받기 위해 결혼해야만 하는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계획을 다 짜놨는데 운이 좋았던 거예요. 첫 소설은 그럭저럭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소설인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때는 인세를 수표로 받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집세도 벌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패션을 사랑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상치되지는 않는다는 당신의 말은 고무적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굉장히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패션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저는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게 문제인 이유는 제가 다음 작품의 집필을 끝내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웃음). 농담이에요. 그게 어째서 문제가 되겠어요. 저에게 패션은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는 의미예요. 저는 무엇이 남들 눈에 멋있어 보이는지, 무엇이 지금 유행인지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면 입어요. 그리고 패션은 제가 세상과 맞서는 데 필요한 갑옷을 입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제가 옷을 잘 입었을 때, 제가 입은 옷이 마음에 들 때, 대체로 기분이 더 좋고, 자신감이 생기고, 밖에 나가서 일할 의지가 솟아나거든요.
웨어 나이지리안 프로젝트(나이지리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공식 석상에서 나이지리아 브랜드 의상을 착용하고 인스타그램에 브랜드 정보와 해시태그#madeinnigeria를 올린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나이지리아 옷이고 사진 촬영할 때 입은 파란 옷도 나이지리아 옷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 가장 즐기는 것은 제가 옷을 살 때 온라인에서 주문해서 디자이너가 그게 저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제가 그들의 옷을 입고 나타나면 정말 깜짝 놀란다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즐거워요. 어떤 디자이너가 제가 자기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정말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가끔 전해 듣곤 하는데 그 사람이 젊은 신진 디자이너일 때 저도 정말 기분이 좋아요. 제가 어떤 옷을 입을 때마다 그들이 받는 주문이 늘어나니까 더더욱 그렇죠. 나이지리아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옷을 선물 받는 것보다 제가 직접 사는 것을 좋아해요. 우리가 스스로에게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이지리아에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많기 때문에 옷을 고르는 것은 저에게도 즐거운 일이죠.
한국 이름에는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이보어 이름도 그럴 것 같은데요. 당신의 이름 ‘치마만다’는 이보어로 무슨 뜻인가요.
치마만다는 “나의 신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치’는 나의 신, 나 개인을 수호하는 영 같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파괴되지 않을 거라는 의미죠.
- 포토그래퍼
- 김보성
- 에디터
- 조소현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이소민(Sub)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지현
- 세트 스타일리스트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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