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이에게
오늘도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는 나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괜찮은 것 같아? 표현이 너무 거칠지는 않고?” 1시간 동안 힘들게 작성한 이메일 내용을 확인받고자 남편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는 두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남편은 미소와 함께 답하면서 업무용 이메일 하나로 세상이 끝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재차 나를 안심시켜야 했다. 마침내 ‘보내기’ 버튼까지 누르고 나니 정신없이 1마일을 뛰고 격한 숨을 고르는 사람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무수한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나열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적극적인 이메일 내용 때문에 고객이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내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 친구가 고의적으로 잠수를 탄 것은 아닐까, 새로운 프로젝트가 느닷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까 등등. 2005년 아직은 싱그러운 에너지 가득하던 대학생 시절 갑작스러운 사고로 친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내 안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마저 강하게 자리 잡고 말았다. 내가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어떤 일이 닥쳐도 허를 찔리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여기면서.
그런데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닥쳤고,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과 슬픔과 불안정한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렸다. 나는 한밤중에도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 동안 집 안을 서성이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가 새벽 3시쯤 되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시나리오에 또 디테일을 붙여나가다 끝내 지쳐 잠들곤 했다. 록다운 기간 내내 업무와 건강관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직면했다는 사실이 나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월요일마다 공황 발작 직전까지 이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나는 올 초 아침마다 내 모든 근심 걱정에 대해 일기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생각을 매일 글로 적는 것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수많은 기사를 접하고 나서였다. 행동에 옮긴 첫날, 나는 모든 걱정거리를 리스트로 작성하다 절망에 빠질 거라고 당연하게 예측했다. 그런데 마냥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 그것들을 활자로 적는 것이 얼음물로 샤워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나니 막상 글로 적어둔 걱정거리 중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머릿속에서 너무도 실재적이었던 두려움은 오히려 나를 현실로부터 점점 분리시키는 벽과 같았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 대부분이 실체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나니 태도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 쓰기’에 한 가지 단계를 추가했다. 아침에는 걱정거리를 쭉 적어두고,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중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최종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놀랍게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하던 일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2단계로 구성한 나의 글쓰기 방법은 과학적으로도 뒷받침된다. 지난해 <행동 치료(Behavior Therapy)>라는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걱정거리에 객관적인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불안 증세를 덜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UCLA 정신의학과 임상 조교수 제니 타이츠(Jenny Taitz)는 “불안하면 가능성과 개연성을 혼동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보다는 두려움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설명하며 감정이 격렬해질수록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있는 파일이나 메일을 자동으로 선별하는 ‘스팸 필터’처럼, 마음속 잡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관찰하고 걸러내는 연습은 하루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을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쉽게 말해 수많은 걱정이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인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긍정적인 사고에 기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종종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게 된 후부터는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임상심리학자 조엘 민든(Joel Minden)은 조언한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무조건 순조롭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러면서 조금 더 나은 상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힘겨운 생각과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스스로 질문해보는 거죠.”
두 손이 땀에 젖도록 작성한 이메일은 우려처럼 엉망진창도 아니었고, 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친구도 잠수를 타지 않았으며, 프로젝트 역시 무사히 실행할 수 있었다. 수많은 걱정거리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일기 쓰기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 소소한 행동이 이토록 전율을 가져다줄 줄이야! 대부분의 사건이 사실은 크게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닐 거라는 믿음은 스스로 좀 더 희망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 이제는 현재에 집중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스스로 이렇게 메모했다. “괜찮지 않다고 해서 내가 멈춘 적이 있었나?”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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