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과 눈이 마주치는 빌라
모델 김원경과 사진가 주용균은 오래된 빌라를 루프톱 가든이 공존하는 안식처로 가꿨다. 이들의 집 거실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과 눈이 마주친다.
이동과 친밀함의 자유를 앗아간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모델 김원경과 사진가 주용균이 논현동 골목 한복판 오래된 빌라를 리모델링하겠다는 엄청난 결심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키즈로 자랐고 누구보다 바쁘게 커리어에 집중해야 했기에 집을 고르는 조건의 우선순위는 편리성인 이들이었다. 하지만 삶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아기가 생겼고 책임져야 할 작은 생명체에게 하늘과 나무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계절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만은 않았다.
“우리에겐 정말 도전이었어요. 빌라를 개조했지만 단독주택이나 다름없어요. 쓰레기 분리수거를 비롯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해야 하니까요. 옥상 하나 보고 결심했어요. 동네 자체가 상업 시설도 많고 복잡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논현동 같지 않아요. 계단 한 층만 올라가면 하늘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죠.” 7개월 된 아들 서진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등장한 김원경이 말했다. 실제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으면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바깥세상의 분주함이 사라진다. 건축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는 한국에서 신축이 아닌 빌라나 주택을 리모델링하면 흥미로운 구조로 재탄생하곤 한다. 이들의 집 역시 그렇다. 거실과 다이닝 룸, 침실과 아이방, 손님방 그리고 루프톱 가든이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층은 계단으로 이어지고 층마다 한옥 문살을 형상화한 듯한 미닫이문을 달았다. 이 문은 공간을 아늑하게 구분해줌과 동시에 열고 들어갈 때 입장하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예술품이 걸린 벽과 아트북과 소품을 둔 계단참의 수납공간 덕분에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거실이자 다이닝 룸은 김원경이 아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된 생활공간이다. 그럼에도 가구나 물건이 많진 않다. 모듈형인 까사 알렉시스의 맨샤 소파 그리고 프리츠 한센의 타원형 테이블과 의자 여섯 개가 전부다. 정돈된 차분함에서 편안함이 찾아온다. 비결은 엄청난 수납을 고려한 다이닝 룸 디자인에 있다. “인테리어 테마를 굳이 꼽자면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무엇이든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전시해놓고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할 바에는 안 보이도록 수납장을 짜 넣는 방식이 저와 맞다고 여겼어요. 불필요한 물건을 두지 않아요. 가전제품도 꼭 필요한 것만 두고자 해요.” 그릇,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물건은 대단히 효율적으로 수납되어 있다. (침실 옆 드레스 룸도 마찬가지. 밖으로 나와 있는 의상과 액세서리가 없었다.) 거실에는 오직 ‘보비 트롤리’만 돌아다닌다. “마스크, 물티슈, 전기 코드, 휴지 등 수시로 사용하는 것들을 넣어놓아요.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한편에 치워놓기도 용이하죠.”
루이스 폴센의 조명, 프리츠 한센의 로 라운지체어 등 가구와 소품은 깔끔하고 기능에 충실한 것이 대부분인데 ‘집은 편해야 한다’는 김원경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가구에 얽힌 스토리보다는 구조나 자재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더 많다. “사실 인테리어의 처음과 끝은 자재 아닌가요. 벽이랑 바닥에 신경을 가장 많이 썼어요. 부엌의 경우 원하는 색깔을 들고 가서 맡겼고, 페인트는 성분에 가장 주목했어요. 원목 나무 바닥이나 타일 모두 직접 다 밟아보고 골랐어요. 아기가 제일 편한 공간을 만들자 싶어서 아기 생각을 제일 많이 했고요.” 그런 이유로 이 집에는 곡선이 도드라진다. 두 팔을 뻗어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굵은 기둥에서 시작해 복도도, 천장도 곡선으로 둥글게 이어진다. 층고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한 천장도 특별하다. 이는 공간에 입체감을 주고 간접조명은 아늑함을 더한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거실 천장을 뚫어서 만든 창이다. 소파에 누우면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볼 수 있다. 김원경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빗소리가 듣기 좋아요. 햇빛이 드는 날에는 나뭇잎 그림자가 집 안으로 떨어지는데 그것도 보기 좋고요. 뚫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나무 그림자가 비치는 건 루프톱 가든의 나무와 화단이 창 근처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도 하늘과 나무를 함께 보고 싶었던 주용균의 아이디어였다.
마지막 계단을 따라 올라가 노란색 문을 열면 드디어 루프톱 가든이 펼쳐진다. 중앙에는 사각형 화단이 있고 군데군데 어른 키만 한 에메랄드 그린 나무 화분을 놓았다. 옥상 전체에 두른 나무 울타리는 현시대가 요구하는 ‘사적 외부 공간’의 조건을 충족한다. “조경은 처음이라 무조건 튼튼하고 관리가 쉬운 종으로 골랐어요. 사계절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봄꽃 중 비교적 일찍 피는 일본 목련과 노르웨이 단풍나무를 심었고요. 색이 좀 빠지긴 하지만 겨울에도 푸르다고 해서 모닝 라이트를 심었는데 저렇게 무성하게 자랄 줄 몰랐어요(웃음).” 주용균의 말이다. 여닫을 수 있는 파고라를 설치하고 야외용 소파와 테이블을 두었다. 어느 각도에 멈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질감의 빛을 드리운다.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갔다”던 헤르만 헤세처럼 우리 모두에겐 위로를 주는 정원이 필요하다. “정말 수시로 올라가요(웃음). 고기 구워 먹기도 하고, 아기 재워 좋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하러 올라가기도 해요. 탁 트여 있으면서도 프라이빗한 나만의 공간이라는 점이 좋아요. 정원은 정말 보고 있기만 해도 너무 편안해요.” 물론 그 대가는 초보 정원사들에게 다소 고되다.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1시간씩 물을 줘야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바닥 청소도 해야 하고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집에서 경쾌한 리듬을 선사하는 건 집 안 곳곳에 걸린 예술 작품이다. 모두 주용균이 수집한 것들이다. 거실 벽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두 점이 걸려 있고 옆으로 그의 대표작을 총망라한 대형 화집 <A Bigger Book>이 받침대와 함께 놓여 있는데, 그 자체로 조형물 같은 인상을 준다.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테이블에 놓인 과일, 재떨이 같은 건 호크니가 만날 보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화가가 매일 시선을 두는 것을 우리 집에 둔다면 어떤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까 상상하며 골랐어요. <A Bigger Book>은 액자 그림 사이즈와 거의 비슷해요. 사실 그림은 만질 수 없는데 이 책은 마음껏 만질 수 있잖아요. 크고 두꺼운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경험이 좋아요.” 그 외에도 노은님, 전혁림 등 어딘가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침실 복도에 걸린 김참새의 붉은 꽃 드로잉에는 로맨틱한 사연이 있다. “언젠가부터 꽃을 받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좀 쑥스러운 얘기인데, 원경에게 시들지 않는 꽃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보그> 촬영으로 알게 된 김참새 작가님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본 후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사실 작가님이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 작품인데 계속 설득해서 구입했어요. 저 그림을 걸고 난 후 아기가 생겼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촬영하고 표현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일으킨 화학작용은 단순히 그것들을 좇는 게 아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에도 가능한 한 아름다움을 들이는 것이다. 김원경이 말했다. “직업상 집에서 잠만 자는 그런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게 집은 정말 중요해요. 생활의 전부고요. 우리 가족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마을처럼 확장될 수도 있어요.” 물리적인 집보단 우리 삶의 정의 같은 얘기를 주용균도 들려줬다. “다들 밖에 있으면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제게 집은 그보단 좀 더 정서적이에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져요.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곳.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곳입니다.” “우앙.” 아래층에서 서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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