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타투의 세계
헤나 염색이나 스티커는 잊어라. 서서히 지워지는 휘발성 타투 ‘에페메랄’이라는 신세계.
고백건대, 나는 타투를 좋게 생각한 적이 없다. 고통에 취약한 허약 체질에,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은 물론이고 딱히 새기고 싶은 디자인도 없기에 타투라는 건 늘 남의 일이었다. 스무 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속눈썹 사이사이 채워 넣은 반영구 아이라인 문신을 제거하면서 반감은 더 심해졌다. 지난 6개월간 총 세 번에 걸쳐 감행한 레이저 시술은 출산의 고통 못지않았기에 남은 평생 내 몸에 잉크를 주입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타투를 향한 마음의 빗장이 살포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간 시큰둥했던 타투 시술에 갑자기 웬 관심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하겠다. 헤일리 비버가 한몫했다. 필라테스로 다져진 탄탄한 몸과 드레스 업·다운을 아울러 한결같이 세련된 취향을 지닌 그녀의 몸 구석구석 자리한 앙큼한 미니 타투를 내 몸 어딘가에도 새기고 싶었다. 잠깐, 피눈물 흘리던 제거 시술의 고통을 잊었느냐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 아닌가. 그리고 에페메랄 타투(Ephemeral Tattoo). 브루클린에 있는 이 타투 스튜디오는 타투로 후회할 일이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365일간 서서히 증발하는 타투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에페메랄 타투는 진짜 타투 아티스트들이 해주는 리얼 타투예요. 크기도 제한이 없죠. 오래가는 타투 스티커라 여기면 안 돼요.” 에페메랄 타투 창업자 조시 사카이(Josh Sakhai)가 말했다. 기존 타투와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지속성. 사카이는 다른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이 중 둘은 화학 엔지니어 출신이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50여 개 잉크 조합을 시도했다. 그들이 새긴 에페메랄 타투만 해도 100여 개. 이들은 오랜 실험을 통해 9~15개월이면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안전하게 몸에 흡수되는 의료용 수준의 생분해성 잉크를 개발해냈다(현재는 검은색만 선택 가능하다). 이렇듯 자체 개발한 혁신적인 잉크로 시술하기 때문에 1년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실제로 몸에 에페메랄 타투를 11개나 새긴 사카이는 기존 타투에 대해 우리와 비슷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종교적인 신념과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된 반감이었다. 물론 기존 타투도 제거할 순 있지만 여러 문제가 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제거술도 숱하게 받아야 하며 피부에 영구적 손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카이와 그 외 공동 창업자들은 그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또 사람들에게 어떠한 제약도 없이 스스로를 표현할 자유를 부여하는 것. 이들이 에페메랄을 창립한 이유다.
금방 지워지는 헤나 염색이나 스티커와 달리 에페메랄 타투 시술은 평생 가는 일반적인 타투와 동일하게 바늘을 이용해 피부에 잉크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명 ‘사라지는 잉크’로, 단백질이 주 연구 분야인 화학공학자 브레날 피에르(Brennal Pierre)와 밴던 샤(Vandan Shah)가 발명했다. 이 둘은 뉴욕대에서 피에르가 겸임 교수, 샤가 박사 과정 학생일 때 만났다. 둘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2014년 피에르의 학생이자 샤의 연구 조교가 비싸고 고통스러운 레이저 타투 제거술을 받고 온 것이었다. 그 학생은 효소로 타투를 제거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피에르와 샤는 이 질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7년에 걸쳐 인체에서 자연 분해되는 잉크를 개발했다. 에페메랄은 지난해 3월 브루클린에 닻을 내렸다. 초여름 무렵 이미 8개월 치 예약이 끝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손님들도 있어요.” 에페메랄의 또 다른 CEO 제프 리우(Jeff Liu)가 말했다. 테슬라와 매트리스 전문업체 캐스퍼에서 경력을 쌓은 리우는 2015년 에페메랄에 입사한 이후 2,6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달성했으며, 지난해 10월엔 로스앤젤레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세 번째 스튜디오를 오픈했다(곧 애틀랜타에 4호점을 오픈할 예정!). 영구적인 타투는 표피 아래에 있는 진피에 바늘이 침투하는 기술을 이용한다. 잉크가 주입되면 잉크 주변으로 면역 작용을 일으켜 잉크가 이동하거나 증발하지 않는 막이 생기고 면역 세포가 잉크를 감싸 잉크가 그대로 머물게 되는 원리다.
영구적인 타투를 몸에 새길 경우 대부분의 잉크는 주입한 모양대로 남게 된다. 하지만 에페메랄의 잉크는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분해되는 성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진다. 인체에 이식하는 스텐트(Stent)나 상처를 꿰맬 때 사용하는 봉합사가 생분해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스텐트나 봉합사와 마찬가지로 에페메랄 잉크도 체내 산소와 수분에 의해 자연스럽게 분해된다. 이들은 특허 관련 이유로 잉크의 정확한 배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봉합하는 실이 체내에서 생분해되는 것과 같은 원리임을 거듭 강조했다. 봉합사가 체내의 산소와 수분에 의해 자연스럽게 분해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에페메랄의 특허를 보면 잉크는 폴리머라는 고분자와 하이드로겔 등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또 피에르와 샤는 화장품이나 의료 기기와 같이 FDA의 승인을 받은 성분으로만 잉크를 제조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잉크를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인체의 원리와 체내에서 잉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해야 했어요. 잉크가 체내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도 알아야 했죠.” 샤가 말했다. 4년간 이들은 여러 잉크로 단순한 선과 원을 자신들의 몸에 직접 새겨보았다. 잉크가 완성되어갈 때쯤 친구 네 명과 타투 아티스트 한 명을 불러 시험 삼아 타투 시술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화학공학자와 피부과 전문의로 이루어진 자문위원회의 감독과 승인을 받아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들은 잉크의 안전성을 확신하기 전에 잉크의 성분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잉크의 성분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전성에 대한 의견을 내기는 어려워요. 제 환자들에게도 데이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안전성에 대한 확답을 줄 수 없고요. 일반 타투 시술은 꽤 오랫동안 이뤄졌으니 정보가 많죠. 하지만 에페메랄은 비교적 새로운 타투니까요.” 피에르와 샤는 더 나은 잉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한다. 또 스튜디오에서는 아직 임상 시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부위인 손발, 얼굴은 아쉽지만 ‘불허’.
타투는 ‘호불호’가 명확한 시술이다. ‘아예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평생 몸에 남는다는 점이 맘에 들어요. 제 일부가 되는 셈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두는 거죠. 그리고 제 모든 순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좋아요.” ‘호’의 타투 예찬에 ‘불호’는 늘 찬물을 끼얹는다. “영원한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제 피부에 뭔가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더라고요.”
에페메랄은 고객 중 절반 이상이 타투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로 추정된다. 에페메랄의 인스타그램에 ‘후회하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을 보면 한 번쯤 부딪혀보고 싶은 패기가 생긴다. 에페메랄 유경험자들은 “새 치마나 새로운 옷을 입어보는 것처럼 재밌다”는 평이다. 서서히 사라지는 휘발성도 매력적이다.
타투를 새길 때의 무모한 자신감과 허세는 어느새 평생의 후회로 바뀌곤 한다. 기술자의 스킬이 서툴러서, 당시 고심해서 고른 디자인 혹은 레터링이 이제는 촌스러워져서… 이처럼 맘에 들지 않는 타투는 곧 흉터와 다름없다. 멋모를 때 내린 잘못된 선택을 되새기게 하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이보다 심플한 대안은 없다. 올여름 해외여행이라는 자유가 허락된다면 행선지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중 하나다. 비용은 디자인과 사이즈에 따라 약 195~450달러. 시술 후 회복 기간은 평균 4~6주. 기존 타투 시술보다 조금 더디긴 하지만, 함께 하실 분?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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