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플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꿈을 찾아 떠난 케플러의 모험은 현실이 되었다. 아홉 소녀의 태양처럼 환한 빛과 활발한 에너지는 어둠으로부터 우주를 밝힌다.
<퀸덤 2> 출연이 확정되었을 때, 케플러(Kep1er) 리더 최유진은 “떨리기보다 설렌다”고 말했다. 당시 다른 멤버들은 “서바이벌 중독이냐”며 최유진을 놀렸는데, 실제로 케플러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 케플러는 Mnet의 또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999 : 소녀대전(걸스플래닛)>을 통해 데뷔한 아홉 명의 한중일 합작 프로젝트 다국적 걸 그룹이다. 99명 가운데 9위에 들고자 고군분투하던 소녀들은 데뷔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K-팝 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프로그램 <퀸덤 2> 무대에 올랐다. 비대면이 일상이 된 시대에 데뷔해 직접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무대가 처음이지만, 전 세계의 지지를 받은 슈퍼루키의 저력을 섬광 터지듯 선보이는 중이다.
최유진은 ‘설렌다’의 의미에 대해 “사실 떨리긴 했는데 제가 떨면 멤버들도 같이 떨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정말 자신감이 생겼어요. 멤버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 실력을 더 많은 분에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렜고요”라고 말했다. <걸스플래닛>과 <퀸덤 2>는 동일한 서바이벌의 형태를 띠긴 하지만 임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졸업 사진을 찍고 교복 차림으로 <보그> 촬영장에 등장한 휴닝바히에는 둘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팀으로 임하는 지금이 확실히 덜 외롭다고 말했다. “<걸스플래닛> 때는 개인이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데뷔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면, <퀸덤 2>는 한 팀으로서 정말 후회 없는 무대를 만들자는 마음이 커요. 처음에 <퀸덤 2> 얘길 들었을 때 ‘또 경쟁이구나’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선배님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6회까지 방송된 지금, 물을 듬뿍 먹은 나무처럼 케플러는 매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최유진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인이라 어떤 컨셉이 잘 맞는지 불확실해요. 그런데 <퀸덤 2>에서 다양한 무대를 하면서 어울리는 무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3차 경연 때 소녀시대 선배님의 ‘The Boys’ 컨셉이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밝고 귀여운 느낌을 주로 해왔고 어둡고 진중한 컨셉은 어렵다고 여겼는데 많은 선배님께서 멋있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신인치고 잘한다’ 아니라 ‘케플러 잘한다’는 얘길 듣고 싶어 하던 이들의 다짐은 더 현실이 되고 있다. 3차 경연까지 마친 지금, 마시로는 조금 즐기는 단계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저희가 긴장한 게 다 보였어요. 관객과 카메라 중 어딜 봐야 할지까지 생각이 많았는데 선배님들 무대를 보면서 그냥 즐기면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퀸덤 2>에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 그리고 연대가 드러나기도 한다. MC 태연에 환호하고, 미션곡이 등장할 때마다 “와, 나 저 노래 정말 좋아했는데”라며 서로가 숨은 팬임을 드러낸다. 특히 케플러는 4세대 걸 그룹으로 일컬어지는데, K-팝을 선망하며 성장한 세대다. 마시로는 “어릴 때 씨스타 선배님 정말 좋아했거든요. 실제로 효린 선배님 무대를 보게 되다니 정말 행복해요. 팬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앨범에 사인도 해주셨어요. ‘성덕’이 됐습니다”라며 헤헤 웃었다. 경연할 때마다 선배들의 무대에 감탄하고 배우고 있다는 휴닝바히에는 효린의 긍정적인 화법에도 반해버린 상태다. 샤오팅은 비비지와 나눈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전략상 다른 팀 평가에 엄격해야 함에도 불구, 훌륭한 무대에 계산 없이 박수를 치고 신선한 기획에 열광하는 케플러 때문에 날 선 서바이벌 현장에 자꾸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다. <퀸덤 2>는 그 취지와 별개로 K-팝 역사에서 끊임없이 도약하는 걸 그룹 모두를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케플러는 한국인 다섯 명, 일본인 두 명, 중국인 한 명, 한미 혼혈 한 명 총 아홉 명 구성이다. <걸스플래닛> 김신영 PD는 케플러만의 특징으로 “다양한 면면이 있는 그룹”이라는 점을 꼽은 바 있는데 그 지점이 케플러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김다연은 “멤버들과 문화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고 음악에서는 특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자주 느껴요”라고 말했다. 멤버들과 공통점으로 마시로는 ‘강한 승부욕’을 꼽았다. “안되는 파트가 있으면 계속 그 부분만 연습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과 내 파트를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좋은 뜻으로 욕심이 많은 친구들이에요.” 서영은은 끈기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모두에게 있다고 증언했다. “저부터도 ‘일단 하고 보자’고 늘 생각해요. 무대에 설 때 모두 자신감이 엄청 넘치거든요. ‘당차다’가 케플러의 장점인 것 같아요.” 김다연은 또 다른 공통점으로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을 꼽았다. “본인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아홉 명이 뭉쳤을 때 다채로워 보여요. 어떤 매력을 부각해야 하는지도 알아서 아홉 명이 다 잘 보이는 그룹 같습니다.” 물론 일상의 문화적 차이는 존재한다. 샤오팅의 증언을 들어보자. “한국인 멤버들은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아서 밥 먹고 TV를 봐요. 중국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거든요. ‘왜 여기 앉아요? 바닥 안 추워요?’ 이러면 ‘아니에요 언니, 여기가 편해요’ 해요(웃음).” 예상과 달리 언어적 어려움은 없다. 마시로는 토픽(한국어능력시험) 6급을 취득한 재야의 고수이고, 히카루는 ‘떡볶이’ 맞춤법이 여전히 헷갈리지만 일본어 사투리와 한국어가 섞여 나오는 그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하는 멤버들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실시간으로 향상되고 있다.
데뷔가 확정된 지 3개월 만에 나온 앨범 <FIRST IMPACT>는 퍼포먼스 합이 좋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매량 20만 장을 넘어서며 ‘역대 걸 그룹 데뷔 앨범 초동 1위’ 기록을 달성했고 ‘WA DA DA’ 뮤직비디오는 현재 조회 수 1억 뷰를 넘겼다. ‘와다다 챌린지’는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에서 ‘붐’을 일으켰다. 다양한 멤버들이 케플러라는 하나 된 이름으로 묶이자 신선한 역동성이 생겼다. <걸스플래닛> 경연곡이었던 ‘Shine’ ‘Another Dream’ ‘O.O.O’ 세 곡은 앨범에 새롭게 수록되어 그들의 온전한 역사로 기록되었다. 휴닝바히에는 “처음 그 노래를 부를 땐 연습생 신분이었으니 ‘아, 추억이었다’ 싶죠(웃음). 그리고 이제 정말 ‘내 곡이 됐구나’ 해요. 팀으로서 저희의 합을 다시 보여줄 수 있었던 곡이에요.” 휴닝바히에는 ‘Shine’에서 “두근대는 이 순간” 가사가 여전히 와닿는다고 덧붙었다. 꿈만 같은 무대를 향한 그 마음 때문이다. 막내 강예서도 자기 얘기로 느껴진 ‘WA DA DA’ 가사에 대해 들려줬다. “제 파트인 ‘눈치챌 거야 지금 이 떨림, I’m going to be brave, yeah’가 케플리안(케플러 팬덤명)을 보면 떨리는 제 마음으로 느껴져서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했어요.” 히카루는 마스크를 써야 하던 시기에 절묘하게 나온 ‘MVSK’를 언급했다. “노래 자체의 시크한 매력이 케플러와 잘 어울려서 좋았고 가사가 마스크 속 표정에 대한 얘기라서 와닿았죠.” 김채현은 ‘포기하지 마, 지금 좋아, 가자!’ 이런 에너지가 보이는 가사가 멤버들을 잘 표현하고, 앞으로도 이런 메시지를 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활자는 그 감정을 진심으로 전하는 뮤지션을 만날 때 살아 있는 가사가 된다. 강예서는 자신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뮤지션 아이유의 ‘너랑 나’에 대해 덧붙였다. “어릴 때 커버를 많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요. ‘눈 깜박하면 어른이 될 거예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때는 진짜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거든요. 그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 아이유 선배님처럼 멋진 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케플러로 데뷔하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진짜 열여덟이더라고요(웃음).”
롤모델을 선망하기보다 자기 자신만의 고유함으로 세상을 설득하고자 하는 시대에 케플러는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당사자들은 에너지의 정체를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했지만 ‘가장 케플러다운 무대’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보면 ‘꿈을 향한 즐겁고 힘찬 달리기’에 가깝다. 강예서는 ‘WA DA DA’ 활동의 마지막 무대를 꼽았다. 카리스마를 내세운 원래 안무에서 마지막 무대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다. 무대를 즐기는 케플러의 본성이 드러난 무대였다. 김다연은 <퀸덤 2> 오프닝 쇼 무대를 봐주길 권했다. 1분 30초가량의 짧은 무대지만 파워풀한 퍼포먼스가 드러나면서도 분위기 반전도 일어난다. 케플러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무대라고 김다연은 힘주어 말했다.
케플러의 첫 활동곡 ‘WA DA DA’에서 아홉 명은 태양의 형태를 완벽한 동작으로 구현한다. 서영은은 태양 동작과 댄스 브레이크 구간을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진짜 안 맞았어요. 그런데 양옆의 친구들이랑 사진을 찍어서 각도를 하나하나 맞추고 ‘여기 조금 내려도 될 거 같아’ 이런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태양 모양이 되도록 열심히 연습했어요. 이제는 그 각도로 스탠바이가 될 정도로 완벽해졌어요.” 댄스 브레이크 구간도 마찬가지다. “서로 앉아서 돌아가는 부분이 제일 어려웠어요. 도미노가 확실히 보여야 하니까요. 지금은 편안할 정도로 연습한 상태입니다.” 군무는 팀워크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케플러의 퍼포먼스를 보면 멤버들 사이에 신뢰가 느껴진다. 서영은은 더 나은 무대를 향한 욕심이 팀워크를 만든다고 말했다. “저희 모두 하나의 포지션에 치우치지 않고 다 잘하거든요. 그리고 의견을 정말 활발하게 나눠요. 모두 ‘케플러 부심’도 있어요. 모니터링을 하면서 ‘아, 역시 케플러다!’ ‘진짜 잘해!’ 칭찬을 나눠요. 서로 믿음이 있으니까 저절로 나오는 말이에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걸 그룹의 퍼포먼스는 무수한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 퍼포머에게 연습은 기본값이지만 이들의 노력을 지켜보면 언제나 뭉클한 감동이 찾아온다. 노력으로 이뤄지는 성장의 본질이 순수해서다. 연습에 진심이 아닌 멤버가 없지만 히카루는 특히 연습 벌레로 손꼽힌다.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제게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는 느낌에 가까워요. 연습은 그 정도로 평범한 일이에요.” 요즘 가장 집중하는 연습은 물론 <퀸덤 2>다. 순위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다. “5년 후에 저뿐 아니라 팬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은 영상을 남기고 싶어서 계속 연습해요.” 연습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는 완벽하게 몰입한 무대다. 멤버들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긴장되지만 마치고 나면 무대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김채현은 연습을 연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래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해요. 그 과정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해보고 싶다’가 생기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또 연습이더라고요. 연습은 일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연습은 현재를 있게 한 치열한 과정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채워주는 행복이기도 하다. 마시로는 멤버들과 연습할 때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려는 모습이 멋있고 그 가운데 밝은 에너지를 받는다.
‘올라운더’는 4세대 아이돌의 기본 자질처럼 여겨지는데 케플러만큼 모두가 그 단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는 종종 ‘구멍이 없다’는 표현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걸스플래닛> 윤신혜 CP는 한 인터뷰에서 케플러의 뛰어난 실력을 언급하며 “스토리를 통한 팬덤보다 무대를 통해 만들어진 팬덤이 많다”고 말했다. 그동안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주어지지 않은 기회에 관한 서사, 변화에 대한 성장 서사에 집중함으로써 스타를 탄생 시켜왔다. 케플러는 K-팝 아티스트로 데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으며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그 실력에 집중함으로써 응원을 이끌어냈다.
청아한 목소리로 어떤 곡에서든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채현의 보컬은 정말 인상적이다. 언젠가 커버곡으로 선보인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운을 뗀 김채현은 이제 비로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여태까지 경쟁으로 무대에 임해서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컸는데,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가수가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 연구하듯 파헤치고 있어요.” 히카루는 퍼포먼스는 물론 랩에서도 강렬함을 드러낸다. 평소 대화할 땐 귀여움이 뚝뚝 흐르지만 랩을 할 때만큼은 압도적이다. “어릴 때부터 미국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R&B도 좋지만 랩을 들었을 때 특히 자신감이 생겼어요. 듣는 것만으로 뭔가 멋있는 기분이 들었고 실제로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할수록 더 재미있어요. 아직까진 한국어로 가사를 쓰기 힘들지만 언젠가 지금까지 인생, 힘들 때 나오는 감정을 담아보고 싶어요.” 힘이 있으면서도 리듬이 서린 퍼포먼스로 눈길을 사로잡는 멤버 김다연은 안무 창작 능력까지 갖췄다. <걸스플래닛>에서 아홉 명의 안무를 짜서 선보인 무대는 레전드로 꼽힌다.
춤을 전공한 김다연은 평소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듣고 춤 영상도 열심히 찾아보는데 노래를 들으며 어울리는 안무를 떠올리는 건 거의 습관에 가깝다. 독기 품은 퍼포먼스로 무대에 느낌표를 더하는 서영은은 최근 보컬에 대한 꿈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퀸덤 2> 유닛 무대에서 보컬을 선보였는데 그 자리에서 몰입해주는 팬의 모습을 보고 ‘내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깨달음이 찾아왔어요. 보컬에 걱정은 내려두고 자신감을 얻어서 되게 좋았어요.”
<걸스플래닛> 당시 선발 기준은 ‘얼마나 K-팝에 진심인가’였다. 멤버들에게는 K-팝에 반한 결정적 순간이 있다. 배우를 꿈꾸던 샤오팅은 소속사의 제안으로 K-팝 가수의 길로 들어섰지만 블랙핑크의 무대를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마시로에겐 드라마 <드림하이>가 결정적 순간을 선사했다. “어릴 때라 드라마가 실제처럼 느껴졌죠(웃음). ‘저렇게 열심히 해서 아티스트 꿈을 이루는구나,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K-팝에 관심이 생겼고 좋아하게 됐어요. 포기하지 않는 모습,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히카루는 초등학생 때 TV에서 투애니원을 보고 꿈꾸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보다 음악만 계속 했어요. 수업 끝나면 춤 학원으로 달려갔고 하루 종일 음악 생각만 하며 살았어요. 이제 그 꿈을 이뤘으니 가족이랑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줘요.”
케플러는 치열하던 서바이벌을 통과한 실력자지만, 서로의 존재만으로 웃음이 터지는 소녀들이기도 하다. 지금 캠코더로 상대를 찍어주며 즐거워하는 <보그> 촬영장처럼 그들의 숙소는 반짝거리는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케플러의 숙소는 다른 아이돌 숙소와 달리 공동 공간인 거실이 가장 붐빈다. 늘 누군가는 베이킹을 하고 누군가는 TV를 보고 있다.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으며 영화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주 재생하는 장르는 공포물인데 무서워서 못 보는 멤버는 늘 놀림의 대상이 된다. 서영은은 스케줄 후에 신기할 정도로 먹고 싶은 메뉴가 일치한다고 했다. “평소 취향이 엄청 다른데 메뉴는 의견이 딱 한곳으로 몰려요. 그럴 때마다 내심 뿌듯합니다(웃음).” 휴닝바히에에 따르면 숙소에는 음악보다 늘 연습을 하는 김채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더 자주 울려 퍼지곤 한다. 10~20대 소녀 아홉 명이 모였지만 현재 공통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채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놀러 갈 때는 챙겨 입지만 연습할 때는 편하게 입거든요. 그래도 모자 색을 맞추는 식으로 연습복을 예쁘게 연출하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김다연 역시 어느 정도 갖춰 입고 연습해야 자신감이 생긴다고 동의했다. “트레이닝복에 액세서리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연습이 더 잘됩니다(웃음).”
케플러 멤버들 얘기 중 히카루는 ‘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분명 경연 프로그램에서 만났는데 계속 함께한 사이 같다고 말이다. 카톡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매일 함께 있는 이들을 “숨길 게 없는 사이”라고 요약했다. 김다연 역시 같은 단어를 골랐다. “스케줄이 힘들어도 다 같이 모여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멤버 아홉 명 모두가 그렇게 느껴요.” 최유진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존재로 케플리안과 멤버들을 꼽았다. “무대를 하기 전에 다 같이 손을 모으고 발을 구르며 ‘파이팅하자, We are Kep1er!’ 구호를 외쳐요. 그러면 정말 힘이 나요. 그리고 춤추다가 문득 멤버들의 발소리를 느껴요. 그럴 때면 ‘멤버들이 같이 열심히 해주고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힘을 얻게 돼요.” <걸스플래닛> 당시 ‘각각 다른 행성에 사는 것 같지만 같은 꿈을 꾸는 순간 연결된다’는 내레이션이 흐르곤 했다. 공통점이라곤 없던 아홉 명의 소녀들이 걸 그룹이라는 꿈 하나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실제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김채현은 “음악 방송을 하거나 연습할 때 많이 느껴지죠. 각자 라이프스타일이 되게 다른데 연습만 들어가면 같은 눈빛이 보이고 한 번에 딱 맞았을 때 소름 돋는 순간이 있어요”라고 답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건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음악 방송 1위, 신인상 수상 등 케플러는 데뷔할 때부터 인터뷰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밝혔고 지금까지 그 목표는 빠짐없이 이루어졌다. 뮤직비디오는 1억 뷰를 돌파했고 얼마 전 샤오팅은 한국소비자포럼에서 영향력 있는 신인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최유진은 목표를 크게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열심히 하니까요(웃음). 그런데 이렇게 이룰 줄은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 더 사명감과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목표를 묻자 역시 거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음원 차트 1위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다 휩쓸어버리고 싶어요(웃음).”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통해 케플리안을 만나는건 멤버 모두가 가진 꿈이다. 가능성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음악으로 화답할 때 소녀들과 팬들의 꿈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케플러는 곧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밝힐 수 있는 건 ‘열심히 하고 있다’밖에 없지만 최유진은 ‘초심’을, 김채현은 ‘행복’을 말했다. “더 좋은 무대에 대해 고민하면서 멤버들과 늘 ‘초심을 잃지 말자’ 얘기해요. 저는 힘들 때면 <걸스플래닛>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요. 전 국민이 저희 꿈을 알아봐주셨기 때문에 더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채현이 말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이 한 가지 정도는 있으니까 그런 기분을 기억하며 지내려고 해요. 그동안 너무 바빠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알찬 하루를 보냈지만 그렇지 않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해서 그 기분을 이어가려고요. 그러다 보면 다음 앨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꿈을 잡았다는 ‘Kep’과 하나가 되어 최고가 되겠다는 1을 합성한 그룹명을 가진 케플러는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처럼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했다. 소녀들이 살고 있는 행성엔 ‘소녀들의 꿈’을 상징하는 태양과 ‘팬들의 사랑’을 뜻하는 태양이 공존한다. 김다연은 꿈을 찾아 떠난 소녀들의 모험을 소설에 비유했다. “저희 모두 힘든 일도 많이 겪었지만 프로그램 통해서 극적으로 데뷔해 행복한 결과를 얻었잖아요. 우리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채현은 그 소설 장르를 판타지로 바라봤다. “꿈속에서만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일이 요즘 정말 현실이 되고 있으니까요.” 소녀들의 진실한 꿈이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하룻밤 꿈처럼 사라지지 않을 생생한 감각이다. 소녀들의 신나는 발소리가 들린다. 이제 케플러의 시간이 시작된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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