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고 대립하는 부쉐론의 신세계
클레어 슈완은 미지의 자연으로 내면의 여행을 떠났다. 상상 속 여행지는 천연 재료와 전통 주얼리 소재, 공존과 대립으로 구현되었다.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은 ‘아이외르(Ailleurs)’ 컬렉션을 처음 스케치하던 때를 떠올렸다. “2020년 초였어요. 첫 번째 봉쇄령이 내려졌고, 집에 갇혀 있어야 했죠.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가장 극복하기 힘든 건 여행을 하면서 주위를 관찰하고, 자연을 경험하며 영감을 얻는 게 불가능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완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른 방식의 여행 말이다. “상상을 통한 내면의 여행이었습니다.”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과 부쉐론 스튜디오는 지난 7월 파리 오뜨 꾸뛰르 패션 위크에 2022 S/S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아이외르를 선보였다. 상상 속 원시의 자연 세계를 테마로 한 컬렉션의 한 피스는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프랑스 모델 누르 아리다(Nour Arida)가 레드 카펫에서 착용한 ‘로떵’이라는 아이템으로, 아이외르 컬렉션 중 사막에서 영감을 얻은 ‘샌드 우먼(Sand Woman)’의 네크리스다. 다이아몬드 세팅의 화이트 골드 프레임에 등나무를 엮은 독특한 형태는 방돔 광장의 어떤 주얼리 하우스에서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이다. 슈완은 부쉐론에 입성한 이래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을 추구해왔으며, 늘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외딴곳을 의미하는 아이외르 컬렉션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시이자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담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귀중한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꼭 값비쌀 필요는 없죠. 그런 귀중한 것을 보통 자연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슈완은 아이외르 컬렉션을 사막과 열대우림, 산, 바다, 화산의 다섯 가지 자연 세계로 구성했다. 그녀는 각각의 세계를 어떻게 정의할지, 그곳의 날씨와 환경은 어떨지, 거기서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컬렉션을 구축했다.
샌드 우먼은 햇빛이 내리쬐는 밝은 사막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여인에 대한 것이다. 가젤과 까마귀의 머리를 형상화한 반지는 메마른 사막에 사는 신비로운 생명체를 떠올리며, 천연 조개껍데기에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입구를 재현한 ‘코끼아쥬 디아망’ 이어링은 그곳이 오래전 바다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코끼아쥬 디아망 이어링의 신선하면서 충격적인 매력은 로떵 네크리스 못지않다. “미적 가치를 고려해 선택한 천연 소재입니다. 다이아몬드나 골드 같은 전통적인 주얼리 소재와 결합했을 때 만들어내는 대립과 공존이 흥미로웠죠.” 슈완은 웃으며 덧붙였다.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귀고리를 완성하려면 완벽하게 동일한 조개껍데기 한 쌍을 찾아야 했거든요. 형태, 무늬, 색깔, 심지어 내부까지 동일한 걸로요!”
리프 우먼(Leaf Woman)은 열대우림의 세계를 형상화한다. 그곳은 푸른 유리 호랑나비와 화려한 초록 뱀, 커다란 부리의 투칸이 사는 곳이다. 그린, 오렌지 등 다채롭고 선명한 색상의 열대 동식물 모티브는 자연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중에서도 37.97캐럿의 그린 투르말린을 세팅한 ‘푀이아주 디아망’ 커프의 브레이드 패턴은 바나나잎으로 엮은 듯 생생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결코 시들거나 색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잎맥까지 살아 있는 브레이드 패턴은 알루미늄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것이기 때문.
슈완은 산에서 영감을 받은 어스 우먼(Earth Woman)에 대해 은밀한 인상을 떠올렸다. “그녀는 땅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어요. 그렇다고 굴속이나 지하에 숨어 있는 건 아니죠. 고요하고 평온하지만 매우 강합니다.” 어스 우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브와 디아망’ 브로치로, 슈완이 디자인 초기부터 염두에 둔 피스이기도 하다. 나무 꽃잎이라는 접근은 자연의 진화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원시 시대에 실존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산토스 로즈우드로 만든 꽃잎은 균일한 색감을 드러내면서 꽃잎의 주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했다. 한 순간을 포착한 듯 나부끼는 꽃잎은 스캔해 제작한 오픈워크 골드 프레임에 고정돼 있다. 어스 우먼을 정의하는 묵직하고 따뜻한 오크 톤은 청자고둥 껍데기로 만든 ‘라지 잭 코끼아쥬’ 브로치,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육면체 결정체를 쌓아 그래픽적으로 완성한 스모키 쿼츠 소재 ‘크리스또’ 이어링으로 이어진다.
페블 우먼(Pebble Woman)은 자갈이 깔린 해변과 파도치는 바다, 그 위에 달빛이 비치는 세계다. 그중 대표적인 피스는 ‘갈레 디아망’ 네크리스다. “조약돌로 목걸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자갈을 구해 가장 아름다운 돌의 화학 구조를 조사했죠. 그리스의 특정 섬에서 온 거였어요.” 그렇게 수집한 자갈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내부를 비워야 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놀라운 걸 발견했습니다. 하얀 조약돌의 속을 긁어내자 그 돌이 반짝이기 시작하더군요. 달걀 껍데기처럼 투명해져서 안팎의 세세한 디테일이 전부 드러났어요.” 각각의 컬렉션에 사용한 원재료를 보여주며 슈완은 설명을 이어갔다. 때마침 트레이에 담아온 얇게 가공된 하얀 조약돌은 잘 연마된 조개껍데기 같았다.
마지막은 깊고 뜨거운 화산의 볼케이노 맨(Volcano Man)이다. 아직까지는 주얼리를 착용하는 남성이 많지 않지만, 남성 소비자의 비율이 높아지는 아시아 지역을 부쉐론은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보고 있다. “탄화목을 좋아해요. 일본 구라시키시를 방문했을 때 탄화목으로 지은 집을 처음 봤습니다. 온통 검은색에 절제되고 순수해 보였죠.” 탄화목, 즉 야키스기는 삼나무를 검게 그을린 목재다. 슈완은 3000년 된 참나무에 그 기법을 적용하고 다이아몬드 구조를 연결한 초커 스타일의 ‘브와 브륄레’ 네크리스를 탄생시켰다. 달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의 머리를 실감 나게 표현한 ‘루프’ 링은 다양한 그레이 톤의 원석을 세팅해 털의 결을 생생하게 살려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아이외르의 다섯 가지 다른 세계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각각의 세계가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이 상호작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욕구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기에 다양한 선택항을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세계를 창조한 것입니다.” 슈완은 아이외르 컬렉션의 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다섯 가지 세계가 결국 아이외르라는 하나의 컬렉션에 속하듯, 다양한 감정의 뿌리는 자유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제시한 여행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지리적으로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어떤 제약에도 자유롭다. 그리고 제약이 풀려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아이외르의 상상 속 여행지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그 장소가 미지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 단 하나의 창의적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제 사명이에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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