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미지, 아니 서울에서 벌어지는 기후 이야기_#친절한 도슨트

2022.11.04

by 정윤원

    미지, 아니 서울에서 벌어지는 기후 이야기_#친절한 도슨트

    며칠 전 이런 뉴스를 접했습니다. ‘저스트 스톱 오일이라는 급진적인 기후 활동가들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반 고흐의 명화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투척했다더군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급습하기도 했다죠. 독일에서는 환경 단체라스트 제너레이션소속 활동가들이 모네의 작품에 으깬 감자를 끼얹었고요. 가히 충격요법에 가까운 이들의 메시지는 명백히 일맥상통합니다.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가 당신 눈앞에서 훼손되는 걸 보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우리 행성이 훼손될 때도 바로 이런 기분입니다.” 고흐의 작품이 귀한 줄은 알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터전인 지구가 파괴되는 사실을 왜 도외시하고 있냐고, 이들은 책망합니다. 

    문경원 & 전준호, ‘불 피우기(To Build a Fire)’, 2022, Color Video with Lighting, Sound and Kinetic Blinds Connected by DMX Program, Duration: 15min.

    예술과 삶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이분법적 질문은 일종의 시급함을 대변할 겁니다. 그러나 사실 예술가들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으로 이 두 가지를 잇기 위해 고투하는 인간들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오는 11 27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이렇게 삶, 특히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해온 작가들이 합심한 전시이니,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작금의 환경 위기를 대면하고, 자연과 지구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담은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는 현재를 직시하게 할 뿐 아니라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이 전시가 내세운 컨셉 ‘기상관측소는 이것이 단순히 몇몇의 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마침내 예술로 가능하리라는 낙관적인 실행과 예보를 전제하는 셈입니다. 

    문경원 & 전준호, ‘불 피우기(To Build a Fire)’, 2022, Color Video with Lighting, Sound and Kinetic Blinds Connected by DMX Program, Duration: 15min.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문경원 & 전준호, ‘불 피우기(To Build a Fire)’, 2022, Color Video with Lighting, Sound and Kinetic Blinds Connected by DMX Program, Duration: 15min.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문경원 & 전준호, ‘불 피우기(To Build a Fire)’, 2022, Color Video with Lighting, Sound and Kinetic Blinds Connected by DMX Program, Duration: 15 min.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문경원, 전준호의 ‘서울 웨더 스테이션’ 전시 ‘불 피우기’ 관람을 위해 관객은 가상으로 구현된 미지의 세계를 로봇 스팟의 안내에 따라 체험하게 된다.

    그간 급변하는 세상과 인류의 존재적 위기에 대한 상상적 대안을 제시해온 듀오 작가 문경원, 전준호의 영상 신작이 전시 중심에 있습니다. 잭 런던이 1902년에 쓴 단편소설에서 제목을 차용한 2022년판 ‘불 피우기’는 그러나 기후 변화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고자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예 시점을 전복해 비인간의 관점으로 무한한 시간을 가로질러 변화하는 지구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자연은 인간이 정복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오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비트는 시도지요. 사실적 기록과 허구적 상상이 경계 없이 엮인 이 영상은 공간을 뛰어다니는 로봇 스팟과 자동으로 움직이는 블라인드, 영상에 발맞춰 깜빡이는 조명 등에 힘입어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승화됩니다. 거대한 변화가 나와 당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이 작품이 의도한몰입의 효과는 성공일 겁니다. 

    문경원 & 전준호,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Mobile Agora: Seoul Weather Station)’, 2022,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문경원 & 전준호,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Mobile Agora: Seoul Weather Station)’, 2022,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사진: CJYART STUDIO(조준용))

    <서울 웨더 스테이션>전의 묘미는 문경원, 전준호 듀오뿐 아니라 이들이 협업해온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전시가 월드웨더네트워크(WW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기상관측소 연합인 월드웨더네트워크는 기후 비상사태와 생태계 붕괴라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28개국의 예술 기관이 발족했습니다이들은 날씨, 기후, 환경에 대한 예술적 연구를 진행하고 작품, 전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이 모든 과정과 자료를 동명의 디지털 플랫폼에 공유합니다. (월드웨더네트워크 디지털 플랫폼 바로 가기) 어느 시대든 예술은 당면한 위기를 목격하고, 기록하고, 연구함으로써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예견해왔습니다. 2022년을 사는 당신이 당연하게 만끽하는 이 가을날의 햇살, 바람, 하늘, 공기, 단풍 등을 지켜내고자 하는 그 최전선에 다름 아닌 현대미술가들이 있음을, 이 아담한 전시가 조용히 알립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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