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이 시크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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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이 시크하다는 착각

2022-12-26T11:38:16+00:00 2022.12.23|

연말 파티를 준비하는 당신께 새로운 액세서리인 ‘웃음’을 추천합니다.

얼마 전 패션 브랜드가 주최하는 칵테일 파티에 참석했다. 요즘 브랜드 행사가 으레 그렇듯 인플루언서로 보이는 참석자가 많았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파티가 아니라 장례식에 참석한 것처럼 보였다. 오는 길에 접촉 사고라도 당했거나. 블랙 일색의 패션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한 해 2,600명이 과로사 하는 나라니까 사무실과 파티와 장례식에 모두 어울리는 검정 의상을 항시 착용하는 건 여기선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표정이다. 표정은 말하자면 같은 의상을 파티용으로도, 장례식용으로 바꿔줄 수 있는 최고의 액세서리다. 그런데 잘 차려입고 연신 셀피를 찍는 사람들은 대개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꼰대 상사의 아재 개그를 3시간째 듣고 있는 신입 사원처럼 졸려 죽겠다는 표정도 자주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런 표정이 낯설지 않다. 요즘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전 세계 어느 장소를 가도 이런 표정의 셀피족이 널렸다. 메이크업은 K-팝 스타일부터 킴 카다시안 스타일까지 다양할지언정 표정은 한결같다. 그들이 무슨 캐릭터를 연기하는지는 알겠으나 결과는 그저 맹하고 뾰로통해 보일 뿐이다. 패셔니스타 워너비들의 이 어설픈 표정 연기에는 <보그>도 책임이 있다.

Getty Images

K-팝 아이콘 보아는 2008년 <보그 코리아> 화보를 찍으면서 에디터의 연출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고 간결하게 요약했다. 이 구절은 패션 잡지가 추구하는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를 반영하는 밈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즈음 나는 갓 스타덤에 오른 배우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청소년 잡지만 찍다가 ‘언니 잡지’ 화보를 찍으니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고 했다. 14년이 지났지만 고급 패션 화보가 추구하는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열린 ‘2022 SBS 연예대상’ 레드 카펫에서는 코미디언 장도연이 모델 이현이와 함께 하이패션 화보를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정자세에서 함박웃음을 짓던 장도연은 포즈에 들어가자 무표정으로 돌변했다. 샤를리즈 테론은 저 유명한 쟈도르 광고를 찍을 때 ‘머더(살인)’라는 단어를 몰입의 트리거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장도연은 아마 <보그>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퍼포먼스는 대중이 생각하는 패션 화보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유쾌하게 풍자한 것이었다.

무심크 신드롬의 근원이 잡지는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 모델, 사진작가와 잡지가 긴밀히 공조했다는 편이 맞겠다. ‘왜 패션모델이나 셀럽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10년 이상 꾸준히 제3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어왔다. 당장 구글링만 해보아도 이에 대한 문답을 잔뜩 찾아볼 수 있다. 간단한 역사부터 시작하자면 이렇다. 1980~1990년대 초반만 해도 슈퍼모델들이 런웨이나 광고에서 웃음 짓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 모스를 위시한 헤로인 시크가 유행하면서 분위기가 한 번 바뀌었고, 세계 경제 성장과 더불어 럭셔리 패션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도도함’을 표현하는 것이 패션 화보의 사명이 되었다. 그러면서 모델의 밝은 표정은 상품으로 향하는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결과론적 해석이 업계에 자리 잡았다. 모델이 웃으면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1990년대 어느 모델의 발언 때문에 한국 대중이 오랫동안 ‘예쁜 사람은 옷으로 가는 관심을 빼앗기 때문에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오해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슈퍼모델들이 샤넬 런웨이에서 웃으며 걸어 나오던 1990년대에는 샤넬이 시크하지 않았고 옷이 안 보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백만 불짜리 미소’라는 클리셰가 패션계에 통용되던 1990년대. 1994 S/S RTW 샤넬. Getty Images

1992 Haute Couture 샤넬. Getty Images

오늘날 패션계 사람들에게 ‘웃음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 표현은 시크하지 않다, 고로 고급스럽지 않다’는 통념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문제는 무표정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의외로 고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연기에 재능이 있거나 잘 훈련된 모델이 아닌 이상 연출된 무표정으로 멋져 보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예컨대 한국 아이돌의 잡지 화보를 보면 난처할 때가 많다. 도전적이고 당당해 보여야 할 순간 치기뿐인 애송이가 튀어나오고, 의도는 자연스러운 응시나 고혹이었겠으나 결괏값은 느끼하기 짝이 없는 클로즈업이 보는 이를 민망하게 하고, 도도한 나른함은 텅 비고 졸린 눈빛으로 열화된다. 그 어색한 표정이 그나마 전문가의 손길을 벗어나면 저 맹하고 뾰로통한 패셔니스타 워너비들의 셀피 기본값이 되어버린다. 나는 패션 잡지 종사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건의해보았다. 눈빛에 깊이라고는 없는 인물들이 시크해 보이려고 짓는 어색한 표정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모델에 따라 밝은 것도 시도해보면 안 되겠나.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건 패션계에서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건 우리 매체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무심크는 아직 여기에 있다. 아, 오해는 마시라. 무심크 밈의 창시자 보아는 당연히 시크하다. 무표정하든지 웃든지 상관없다. 그건 그냥 그가 시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3 F/W RTW 비비안 웨스트우드

럭셔리 브랜드가 합심해서 탈착형 치아 장식물이라도 유행시키면 모를까, 패션계가 웃음을 되찾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독자로서, SNS 사용자로서, 인플루언서들의 인플루언스를 받으며 사는 현대인으로서, 나는 도처에서 발견되는 맹하고 뾰로통한 표정이 지긋지긋하다. 그건 전혀 멋지지도 스타일리시하지도 않다. 시크하기에는 너무 어설프고, 흔하고, 뻔하다. 그러니 도도한 무표정은 전문 모델과 연기자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저 아름다운 인플루언서들이 다가오는 연말 파티에서는 셀피용 철갑 가면 대신 웃음이라는 액세서리를 사용해보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용 이미지에 정신이 팔리는 대신 청룡영화상 시상식의 고경표처럼 현장을 즐겼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소설 <장미의 이름>의 수도원처럼 웃음을 잃어버린 패션계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건강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당신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굉장하고, 돌고 도는 유행 속에 아직 안 돌아온 무언가를 끄집어내 전파하는 건 당신들이 가장 잘하는 게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