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마음을 드려요

2023.01.28

by 정지혜

    마음을 드려요

    그림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정작 나이를 먹고 나서다. 필요한 말만 정확히 골라 전하는 깨끗한 글,
    문자 아닌 그림으로 마주하는 감각의 세계가 전하는 뭉근한 위로가 있다. 많은 그림책이 아동 도서로 분류돼
    있다 보니 분주하거나 게으른 성인은 쉬이 그 가치와 만나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좋은 책 앞에서 아이와
    어른이 따로 있을까. 보물찾기 하듯 기대감을 안고 그림책 코너를 둘러보는 게 서점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됐다.

    책을 선물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이유도, 때도, 설명도, 계산도 필요 없이 그저 고맙고 반갑고 그립고
    보고 싶고 기꺼운 마음만 전하고 싶을 때면 그림책에 손이 간다. 돌이켜보니 <마음의 집>(2010, 창비)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전한 그때의 내 마음이었다.

    <마음의 집>은 2011년 볼로냐 라가치 대상 수상작으로 한국의 작가 김희경이 글을 쓰고 폴란드의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렸다. ‘우리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글과 그림은 서로 기대어
    이 물음표를 따라가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려본다.

    김희경 저자(글)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만화, ‘마음의 집'(2010, 창비)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어./그런데 마음은 잘 알 수가 없어./내 마음 나도 모르지./
    도대체 마음은 무엇일까?/마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같아./마음의 집은 모양도 크기도 다 달라./
    네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스러져 갈 때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걱정하지 마./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언제나 너를 도와줄 거야.”

    ‘마음의 집’을 형상화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온기가 느껴지고 촉각적 심상마저 떠오른다. 푸른빛이 도는 배경
    종이는 한지의 질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림체로 인간의 얼굴, 손발,
    주름을 그렸고, 그와 대조적으로 다른 한편에는 추상적이고 구조적인 조형 이미지가 있다. 그것들은
    상충하기보다는 색다르게 공존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그림은 책을 어느 정도로 펼치느냐에 따라 평면과
    입체를 오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책 서두에 적어뒀듯, “책장을 펼치고 넘길 때 일어나는 효과를 이용해
    그림이 살아 움직이도록” 그렸다. 양쪽 페이지가 180도가 되게끔 펼쳤을 때, 90도가 됐을 때, 심지어 양쪽을
    완전히 포갰을 때, 그림은 평면에서 입체로, 나아가 양쪽 페이지가 서로의 거울 쌍과 접촉면으로 변화하며
    전혀 다른 이미지, 의미, 해석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집>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우리에게 선물 같은 순간을 안긴다. 마음에 관해
    탐색하던 책 스스로 제 ‘마음’을 보이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을 당신의
    마음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결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마음의 집>이 당신에게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때 보게 될 마음은 한없이 투명해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조금은 불투명한 채로 어렴풋하게 비칠 마음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얼마간 아리송하고 희뿌옇고,
    그래서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마음은 그런 것이니까.

    <마음의 집>의 마음과 처음 마주했을 때 너무도 벅차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흘러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마음의 집>을 펼쳤다. 마음이 보일 만큼, 나만의 각도로. 여전히 책의 마음을 받는 건 벅찬 기쁨이고,
    여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알듯 모를 듯한 일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정지혜(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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