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오프화이트 블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컬러

2023.06.04

오프화이트 블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컬러

이브라힘 카마라의 비전이 담긴 2023 S/S 오프화이트 컬렉션.

버질 아블로의 찬란한 유산 위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이브라힘 카마라의 오프화이트.

오프화이트 2023 S/S 컬렉션은 아트 & 이미지 디렉터로서 이브라힘 카마라(Ibrahim Kamara)가 이끈 첫 쇼였다.
오프화이트 창립자이자 나의 영웅인 버질 아블로의 유산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가 남긴 아카이브를 오마주하며 그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버질은 커뮤니케이션의 귀재였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던 방식을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당신의 오프화이트 컬렉션은 패션쇼 이상이었다. 컬렉션에 등장한 댄서, 비디오 클립, 음악 등 모든 것에서 패션 브랜드의 공식을 가뿐히 뛰어넘은 듯 보였다.
단순히 옷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귀중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어릴 때 알렉산더 맥퀸이나 지방시 쇼를 보며 느꼈던 벅찬 감정처럼 나의 쇼를 보러 온 관객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오프화이트는 패션 브랜드이기에 당연히 패션을 중심에 두는 게 맞지만, 아트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음악, 참여하는 모든 이를 폭넓게 아우르는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다. 버질의 목소리를 다각도로 전달하고 싶기도 했다. ‘오프화이트 블루’를 메인 컬러로 활용했는데, 이 부분이 나와 버질 아블로의 연결 고리가 됐다.

오프화이트 블루를 컬렉션과 쇼 전반에 인상적으로 사용했다.
오프화이트의 태생적 DNA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2023 S/S 컬렉션은 버질 아블로의 유산을 기념하는 것이 바탕이었지만, 기존 오프화이트를 붕괴하고 새로운 오프화이트를 정의하는 과정도 어느 정도 필요했다. 탐험 정신과 스토리텔링에서 오프화이트의 여정이 시작됐으니까. 오프화이트는 늘 나에게 경이로움과 혁신이 교차하는 브랜드였다. 다양한 문화와 인물, 음악과의 교류를 통해 오프화이트의 외연을 풍성하게 넓히고 싶었다.

곳곳에서 해부학적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체를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했다. 다른 마음을 지녔지만 모두 공통으로 갖춘 것은 인체다. 인체에 대한 관점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인체의 신비로움을 스티치와 프린트, 염색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버질을 기념하는 것을 주제로 40~50벌을 완성했다. 첨단 섬유 기술을 활용했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인체의 형태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었다. 니트웨어를 많이 선보였는데, 길고 얇게 늘어진 니트 소재가 인체의 유약함을 잘 드러낸다고 여겼다.

버질 아블로도 그랬고, 당신 역시 ‘시각적 어휘’에 민감하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나의 성장 배경이다. 시각을 매개로 소통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 역시 개인의 문화적 배경이다. 나는 여러 현상과 개념을 접하고 그걸 엮어 새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이런 나를 ‘몽상가’라고 여긴다(웃음). 지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곳일지 상상하곤 한다. 이번 컬렉션 역시 전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새로운 쇼를 창출하려는 의도로 완성했다. 특히 하위문화에서 파생된 또 다른 문화와 낯선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내가 자란 시에라리온에는 여러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 간의 교류에서 탄생한 다채로운 하위문화가 존재했다. 수많은 하위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화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아온 것이 지금의 내가 여러 문화와 개념을 접하고 소통하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당신은 에디터 겸 스타일리스트, 아트 & 이미지 디렉터, 디자이너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역할을 사랑한다. 나의 창의성은 동일한 하나의 뿌리를 가졌지만 이것을 다른 형식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작은 모두 같다. 최대한 나의 본능에 맡기는 것. 스타일리스트일 때는 스타일링에 집중하고, 디자이너일 때는 원단이나 질감 등을 확인하는 등 세부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맡은 수많은 역할이 지녀야 할 정체성은 다르지만 결국 모든 역할은 ‘나’라는 하나의 우주에서 기원한다. 이렇게 많은 역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시간과 재능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은?
첫째는 무슨 역할을 하든 100% 몰입하는 ‘완벽주의’. 두 번째는 ‘호기심’. 주위의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들의 역량과 관점을 늘 흡수하려고 한다. 나에게 호기심은 내가 해보지 않은 역할에 관해 고민하고 학습하는 태도다. 세 번째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하게 지키는 나만의 ‘데일리 루틴’.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선 스스로 엄격하게 채찍질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당신의 하루가 궁금하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러닝을 한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오전 7시 전까지 2시간 정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파악한다.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세상의 모든 일에서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2시간 동안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다시 세상에 돌려준다(웃음). 매일 지키는 루틴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건 물론 수많은 역할을 지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다.

오프화이트는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지속적인 협업을 이뤘다.
오프화이트는 굉장히 젊고 포용적이다. 이 DNA를 갖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싶다. 또 세계를 여행하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와 장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그들을 연결하고 프로젝트를 확장하는 것도 염두에 둔다. 우리가 발굴한 재능 있는 인물들과 함께 협업하는 것이 늘 기대된다. 그들을 한데 모아 교류하는 자리도 마련할 것이다. 세상과 촘촘하게 연결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다.

패션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시에라리온 출신으로서, 그곳엔 아주 많은 종족이 살며 다양한 축제와 화합의 장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각기 다른 부족이 가진 전통 패브릭이나 텍스타일을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을 접하며 자랐다. 이후에는 유럽 잡지를 콜라주하고 스케치하면서 패션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그 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다. 결국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텍스타일과 아트, 크래프트를 공부했고, 그걸 바탕으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 후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광범위한 예술을 공부하며 창의성을 맘껏 펼쳤다. 의상 디자인부터 가구 디자인, 음악을 배우고 표현하면서 지금의 내가 완성됐다. 그리고 나의 멘토인 스타일리스트 배리 카멘(Barry Kamen)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와 함께 일하며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패션 경력의 시작도 궁금하다.
2016년 서머싯 하우스에서 진행한 <2026> 전시를 통해 시작됐다. 남아프리카에 가서 3개월간 지내며 향후 10년 뒤 아프리카 남자들의 패션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실험적인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과 결과를 <2026>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2026> 프로젝트는 3개월 동안 친구들과 함께 집 한 채를 빌려서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고, 어떤 레퍼런스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뭔가 오리고 붙이며 새 옷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였다. 상당히 행복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통해 나의 정체성도 어느 정도 완성됐다. 처음엔 헷갈린 부분도 있었지만, <2026> 전시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이 ‘쿨’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였고, 내 선택이 옳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영감의 근원이 알고 싶다.
영화를 함께 보기에 나는 나쁜 친구 같다(웃음). 영화를 보며 새 이미지가 나올 때마다 계속 멈췄다가 틀기를 반복하니까. 나에게 영감이란 구체적이고 분명한 하나의 존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에서 다양하게 찾아온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부터 버스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영감이 된다. 그래서 늘 주위의 일에 촉각을 세운다. 전형적인 패션 피플처럼 말하고 싶지 않지만(웃음),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문장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 <셉템버 이슈>에 등장한 “늘 주변을 많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마주하는 모든 것의 컬러와 텍스처, 디테일 하나하나가 다 영감이 된다. <2026> 프로젝트를 위해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도, 유럽에서 버려져 남아프리카로 넘어온 옷이 무더기로 쌓인 것을 보고 새로운 옷을 완성했다. 호기심을 갖고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서 받은 영감은 때에 따라 스타일링으로 발현되거나, 필름이나 디자인으로도 표현된다.

오프화이트의 아트 & 이미지 디렉터 이브라힘 카마라.
오프화이트 블루 컬러를 컬렉션 곳곳에 채용한 2023 S/S 컬렉션. 버질 아블로가 남긴 유산을 기념하는 가운데 그와의 연결 고리를 공고히 했다.
해부학적 모티브를 통해 인체의 신비로움과 유약함을 드러낸다.
해부학적 모티브를 통해 인체의 신비로움과 유약함을 드러낸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오프화이트(Off-White).

다양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다양성은 강력하다.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부터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타인의 관점을 주의 깊게 살피도록 하는 것까지. 다양성을 통해 패션이 진일보하는 것은 물론 창의력도 증폭될 수 있다. 다양성이 없다면 패션 생태계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세상을 채우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다채로운 의견과 창의성을 흡수하고 보여주는 과정이 재미있다. 영화 혹은 음악, 패션 등 어떤 형식을 통해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관점과 취향으로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예술적 다양성의 고양에 크게 기여했다.

당신에게 소셜 미디어가 미친 영향은?
<2026> 프로젝트 역시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던 인물과 협업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소셜 미디어는 문화를 공유하기에 좋은 장치다. 인종이나 성별 등 이분법적 틀에 갇히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드니까. 내가 만든 창조물을 불특정 다수가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도 훌륭하다. 그들에게 조언을 받을 수도 있는 이 장치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전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현실적 제한이나 장애, 우리를 막았던 한계를 가뿐히 극복할 수 있는 촉진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가 간의 장벽은 흐릿해지고, 모두가 이어지는 하이퍼 커넥트 사회가 됐다. 그로 인해 가장 크게 주목받은 곳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K-팝 스타들의 위상이 드높아지는 것 역시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다. 오프화이트도 한국과 함께할 계획이 있나.
당연하다. 내가 한국을 무척 좋아하기에, 단순히 한국 셀러브리티와의 작업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오프화이트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거다. 분명한 건, 앞으로 한국에서 나를 볼 일이 많을 거라는 거다(웃음).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성장 배경에 대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본인의 헤리티지가 곧 타인과 자신을 구분한다. 나 역시 시에라리온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에서도 고향에 대한 레퍼런스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부디 자신의 뿌리, 본인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기원에 자부심을 갖고, 엄격한 루틴으로 열심히 일하며, 본인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힘쓸 것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주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친구들의 건설적인 비판과 격려를 통해 크게 성장했다.

다음 세대에 기대하는 것은 뭔가?
그들을 통해 계속 배울 수 있기를! 그들은 분명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대가 될 것이기에 기대가 크다.

당신과 오프화이트는 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나?
재능 있는 미래 세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그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여러 관점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것.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패션 브랜드 이상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오프화이트의 과제다. 특히 나는 에디터로도 일하며 미래 세대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늘 고민한다. 레거시 미디어는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나 역시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학습하며 기회를 많이 얻었고 삶이 많이 바뀌었다. 현시대의 레거시 미디어 역시 미래 세대의 삶을 변화시킬 강력한 역량과 플랫폼을 갖췄기에 배경보다 재능을 우선으로 훌륭한 미래 세대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VK)

    에디터
    신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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