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류승완의 가장 새로운 시도는 조인성의 낭만
*이 글에는 <밀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혜수와 염정아,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밀수>는 류승완 감독의 두 번째 여성 투톱 영화다. 첫 번째 사례는 20여 년 전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피도 눈물도 없이>다. <밀수>를 보면서 여러 부분이 <피도 눈물도 없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캐릭터가 그랬다. 피곤에 절어 있는 전직 금고 털이 경선(이혜영)과 라운드 걸 출신의 웃음 많은 여자 수진(전도연)의 모습을 <밀수> 속 엄진숙과 조춘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이들이 일확천금의 한탕을 노린다는 것도 그렇다).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본다면 <밀수>에서 <짝패>를 떠올릴 수도 있다. 외부인 때문에 과거 모습을 잃어가는 고향, 그 속에서 새롭게 살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로 인한 원한과 복수. <밀수>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장도리는 분명 <짝패>에서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고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라는 명대사를 남긴 장필호(이범수)에게서 온 것이다. 그처럼 <밀수>는 류승완 감독이 지난 20여 년 동안 보여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류승완 감독의 전작에서 기원을 찾기 어렵다. 배우 조인성이 연기하는 권 상사란 캐릭터다.
조인성이 연기하는 권 상사가 <밀수>에서 하는 역할은 한마디로 ‘낭만’이다. 여자를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남자의 낭만. 이렇게만 보면 <군함도>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인 말년(이정현)을 지키려고 한 종로 깡패 칠성(소지섭)이나 <베를린>의 표종성(하정우) 같은 남성 캐릭터가 떠오르지만, 권 상사는 그들과도 다르다. 그들처럼 비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은 그를 면도칼로 여성을 위협하는 질 나쁜 인간으로 설정하면서도 그를 통해 영화에서 가장 멋있는 액션 신을 구성한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건 조인성의 긴 팔다리뿐 아니라 조춘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장도리 일당이 권 상사를 치기 위해 호텔로 난입하기 전까지, 권 상사와 조춘자 사이에 미묘한 눈빛이 오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 정도의 관계로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류승완 감독은 춘자를 바라보는 권 상사의 표정을 여러 번에 걸쳐서, 그것도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는 감정의 개연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가 보여준 것과 상관없이 이 장면에서는 멋진 액션과 조인성의 얼굴이 필요하다. 역시 ‘낭만’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쿠키 영상을 본 후 권 상사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적 세계에서나 배우 조인성의 필모그래피에서나 상당히 의미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비장하지 않은 경쾌하고 멋진 낭만이라니. 류승완 감독은 이미 <베테랑>을 통해 영화적 대중성의 최대치를 구현했지만, <베테랑>에도 ‘멋짐’ 그 자체의 낭만은 없었다. 조인성의 과거를 돌이켜봐도 권 상사는 도드라진다. 커리어 초기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이었고, TV 드라마에서 상처를 간직한 연약한 남성으로 주목받은 그는 <비열한 거리> 이후 비장한 남성을 주로 연기했다. 분명 권 상사는 류승완 감독과 처음 만난 <모가디슈>의 강대진 참사관에서 시작된 캐릭터일 것이다. 어설픈 영어를 쓰면서도 무술 실력을 자랑하던 강대진은 분명 멋진 캐릭터지만, 권 상사 같은 판타지는 없는 인물이었다. <밀수>에 와서 류승완 감독은 조인성의 외모를 딱 필요할 때 최대치로 뽑아 쓴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관객을 매료하는 멋진 낭만적 시퀀스를 위해서다.
<밀수>의 오락성은 <베테랑>보다 더 나아간다. <밀수>는 과장되어 보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개연성까지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아간 <밀수>를 볼 때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인 <베테랑2>의 오락성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게 된다. 동시에 조인성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밀수>를 보면 조인성은 최소 20년 전부터 권 상사와 같은 모습으로 더 많이 쓰여야 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경쾌한 남성 캐릭터를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 중 상당수는 그런 멋짐과 낭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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