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이코닉한 겨울 패션 영화 #1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열차에 창녀 ‘상하이 릴리(마를렌 디트리히)’가 탑승한다. 릴리는 옛 연인 하비(클리브 브룩)를 만나지만 열차 강도가 하비를 인질로 잡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진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이 작품에서 신비로운 관능미를 한껏 발산하면서 명실상부 슈퍼스타로 등극한다.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은 디트리히의 출세작 <블루 엔젤>(1930)을 비롯해 그녀의 대표작 7편을 연출했다. 디트리히를 불멸의 패션 아이콘으로 만든 <모로코>(1930)의 턱시도 의상도 스턴버그의 아이디어였다. <상하이 익스프레스>는 그들이 함께 만든 네 번째 작품이다. 감독은 디트리히를 멋지게 촬영하는 데 도가 튼 상태였다. 독일 표현주의 스타일 명암 대비를 통해 디트리히의 윤곽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머리카락을 살짝 투과하는 백라이트로 후광 효과를 냈다. 이 조명술은 훗날 필름 누아르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 영화 의상계의 양대 산맥이라면 MGM의 에이드리언 아돌프 그린버그와 파라마운트의 트래비스 밴턴을 꼽는데, <상하이 익스프레스>는 그중 ‘파라마운트 폴리시’라는 말까지 낳은 트래비스 밴턴의 화려한 스타일을 감상하기 좋은 영화다. 디트리히는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한 바이어스 컷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칼라가 달린 모피 코트나 벨벳 가운, 깃털 장식으로 얼굴을 강조했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한 착장이 획기적이었다. 의상 팀은 전 세계에서 온갖 새들의 깃털을 공수했고, 그중 멕시코 싸움닭의 윤기 나는 암녹색 꼬리털을 선택했다. 그 깃털로 모자를 만들고 드레스를 감쌌는데, 모자에는 베일을 붙였다. 거기에 에르메스 장갑과 그에 어울리는 아르데코 지갑, 크리스털 비즈 목걸이로 마무리했다. 디트리히가 모피 코트를 입고 옛 연인의 군용 모자를 가져다 쓰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모로코>의 턱시도 신에 이어 또 한번 그의 중성적인 스타일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샤레이드(1963)
주인공 레지나(오드리 헵번)는 남편이 자기 몰래 거액을 들고 도망가다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때 노신사 피터(캐리 그랜트)가 레지나를 돕겠다고 나선다. 거금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연쇄살인, 국제 첩보전, 그리고 로맨스가 뒤섞인 영화다.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1954)부터 위베르 드 지방시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었다. <샤레이드>에서는 지방시의 1960년대 가을, 겨울 의상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단추를 목까지 채워 원피스처럼 입을 수 있는 얇은 모직 코트는 헵번 특유의 단아함을 잘 살려준다. 주황에 가까운 빨간색, 겨자색 등 밝은 색감과 부드러운 어깨선이 여성미를 더해준다. 극 중 헵번은 대부분의 외출복에 검정 키튼 힐 펌프스, 진주 스터드 귀걸이, 납작한 검정 핸드백, 흰색이나 검은색 장갑을 착용한다. 그리고 단색이나 호피 무늬 모자가 룩에 완벽한 포인트가 되어준다. 하지만 <샤레이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룩은 따로 있다. 헵번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입고 있는 클래식 스키 룩이다. 친구들과 알프스 스키장으로 휴가를 간 주인공 레지나는 남편의 거짓말에 지쳤다며 이혼 계획을 발표한다. 그러고는 즉각 피터와 플러팅을 시작한다. 이때 헵번은 갈색 울 니트 후드와 같은 소재의 장갑을 끼고, 검정 스웨터와 비니를 레이어드했다. 이 사랑스러운 착장은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로 재치 있게 마무리된다.
닥터 지바고(1965)
베이비 부머에게는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 지바고(오마 샤리프)와 라라(줄리 크리스티)의 가슴 아픈 사랑이 오랫동안 겨울 영화의 원형이었다. 주인공들에게는 혹한기 생존 수단이었을 두툼한 털모자마저 이국의 관객들에게는 낭만이었다. 러시아의 겨울을 담은 또 다른 걸작은 <안나 카레니나>다.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등 여러 배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했는데, 매번 털모자를 쓰고 나왔다. 이제 모피는 불쾌감을 주는 소재가 되었지만 형태와 질감만은 영원한 클래식으로 남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1970)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개봉 후 수십 년간 겨울 영화의 대명사로 군림한 작품이다. 명문 부호의 아들 올리버(라이언 오닐)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딸 제니(앨리 맥그로우)는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제니가 불치병에 걸린다. 단조롭고 뻔한 줄거리의 통속 멜로다. 하지만 아름다운 미장센, 주인공들의 풋풋한 매력, 그들이 눈밭을 구르며 연애할 때 울려 퍼지는 OST 등 모든 요소가 마법같이 어우러져 영화에 깊은 생명력을 부여했다. 앨리 맥그로우의 1970년대 미국 음대생 스타일도 마법의 일부였다. 연갈색 피코트가 특히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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