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스키아파렐리의 비범한 여정은 계속된다

2023.12.07

by VOGUE

    스키아파렐리의 비범한 여정은 계속된다

    초현실주의에 뿌리를 둔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는 꾸뛰르계 유명 인사다. 댈러스 교외에서 방돔 광장까지, 그의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따라가봤다.

    다니엘 로즈베리와 스키아파렐리 새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배우 겸 작가 미카엘라 코엘.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2023 가을/겨울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이는 여름이 오기 훨씬 전부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늘 해오던 일로, 그 작업은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언론에 실릴 컬렉션 평론을 상상하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텍사스에서 자란 로즈베리는 2019년 스키아파렐리를 새로운 성장기로 이끌기 위해 파리로 향했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자신의 다양한 창작 활동을 위한 서사의 질서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평론의 명료함과 판단을 좋아해서,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영화도 직접 보기보다 그 평론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이 구축하는 패션 세계에 대한 비평가들의 접근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크고 폭넓은 감정을 감지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마음속으로 파악하고 예상할 수 있다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평론을 실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거죠.”

    몇 달 후, 단정한 적갈색 머리의 모델이 로즈베리 앞에서 워킹을 하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고깔 형태의 옷깃이 달린 갈색 펠트 코트를 검토하는 중이다. 이곳은 7월 초 파리, 그가 봄 내내 준비한 꾸뛰르 컬렉션이 이틀 후면 런웨이에 오른다. 지금은 20여 벌의 의상과 4개 테이블에 가득한 액세서리를 각각의 모델과 매치해,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실패하면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인 런웨이가 되고, 성공한다면 컬렉션은 그 자체의 대담한 필연성을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해 막연하기만 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중 몇 개는 괜찮을 것 같아요.” 로즈베리가 금과 원석으로 된 뼈처럼 생긴 귀고리를 집어 들며 말한다. “양쪽을 다르게 착용하나요?” 모델 중 한 명이 묻는다. “여긴 하나, 여긴 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귀를 가리킨다.

    모델들에게 정해진 주얼리를 착용하게 하고 로즈베리는 은빛 수염 한쪽에 손을 얹고 수정한 모습을 살펴본다. 중간 정도 키와 체격을 지닌 37세의 로즈베리는 보통 칼하트 워크 팬츠를 벨트 없이 입고, 운동화에 두꺼운 스포츠 양말을 높이 당겨 신는다. 흥분한 학생을 진정시키려는 고등학교 상담 선생님처럼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를 구사하며, 때로는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이질적인 모습을 스스로 먼저 웃음거리로 삼으며 즐거워한다. “제 작업은 텍사스 플레이노(Plano)와 방돔 광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가 구세계에 대화를 건네고, 구세계가 이에 응답할 때 스키아파렐리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작동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구세계의 목소리가 특히 강하다. 로즈베리의 팀은 높은 천장과 이중문이 있는 아름다운 18세기 프랑스풍 살롱에서 모델 피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은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가 수십 년 동안 꾸뛰르 사업을 운영했던 방돔 광장의 타운하우스 호텔 드 퐁트페르튀(Hôtel de Fontpertuis)였다. 꿀빛 헤링본 바닥, 기성복이 전시된 3층 몰딩 위 으스스한 주름진 석고 등을 개조해 하우스의 정신적 중심지로 복원했다.

    재키 블루(Jacky Blue)로 알려진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재키 마샬(Jacky Marshall)이 그린 스키아파렐리 2023 가을/겨울 꾸뛰르 컬렉션 의상.

    1890년 이탈리아의 부유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평생 마르셀 뒤 샹(Marcel Duchamp), 만 레이(Man Ray), 프랑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와 교류했다. 트롱프뢰유 기법을 적용한 니트웨어로 패션계에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그녀는 1930년대 방돔 광장에 자리 잡으며 초현실주의를 꾸뛰르에 접목했다. 하이힐 모양의 모자,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랍스터를 프린트한 실크 오간자 드레스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스키아파렐리는 파리 헤리티지 하우스 중 가장 작으나 독보적인 브랜드의 하나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를 상징하는 왕관의 호화로운 보석과도 같은 존재지만, 동시에 가장 기묘하며 오싹한 마법에 사로잡힌 꾸뛰르 하우스다.

    10년 동안 톰 브라운에서 일하며 디자인 디렉터 자리까지 오른 로즈베리는 2019년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자마자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21세기 후계자로 불렸다. 미국 팝의 명성과 환상에 집중해 창립자의 신비로운 도상법을 재해석하며, 하우스의 초현실주의적 감성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이어갈 수 있는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로즈베리의 옷을 자주 입는 틸다 스윈튼은 그를 “하우스 자체의 감성은 물론 엘사 스키아파렐리라는 인물과 주변 동료들의 감성을 전달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불안정하게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스키아파렐리의 디테일한 세계관을 표현하는 즐거움, 자기 재량으로 이런 언어를 해석 하는 대담함이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이죠.” 그녀가 덧붙인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서 레이디 가가가 미국 국가를 부를 때 입었던 드레스(풍성한 진홍색 스커트가 달린 몸에 꼭 맞는 짙은 네이비 상의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금색 브로치를 더했다)를 만든 사람이 바로 로즈베리다. 지난봄에 열린 멧 갈라에서 공동 주최자 미카엘라 코엘(Michaela Coel)이 입은 드레스 역시 그의 작품. 진주와 천체 모양 장식, 13만 개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정교한 자수 드레스는 거의 4,000시간에 걸쳐 완성됐다. 당시 로즈베리의 옷을 처음 입어본 코엘은 단 두 번의 피팅으로 끝난 그의 능숙한 작업 과정과 매너에 놀랐다. “멧 갈라 당일, 드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서로의 삶과 인간적 결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거든요. 다니엘에게 제 모든 결점을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그 솔직함을 겁내지 않았어요. ‘아, 그게 어떤 건지 알겠어요’가 다니엘의 반응이었죠.” 코엘이 말했다.

    다시 방돔 광장, 새로운 모델이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1만2,000개 이상의 은은하게 반짝이는 직사각 가죽 조각으로 만든 투피스가 커다란 이불처럼 그녀 의 몸을 감싸고 있다. 로즈베리의 새로운 쇼에 등장하는 많은 의상은 시각예술가와 장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 정교한 작품 중 하나인 이 의상은 가구 디자이너 장 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의 상감세공에서 출발한 것이다.

    모델이 워킹을 시작하더니 갑자기 멈춘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앉혀야 해요.” 누군가 소리치자 직원들이 모델 곁으로 달려가 의자를 건넨다. 모델은 한낮 더위에 지친 풀잎처럼 의자에 주저앉는다. 재단사들이 그녀의 어깨와 다리에 무겁게 얹혀 있던 옷을 벗겨내고, 누군가 물을 가져온다. 잠시 후 의자에 기대 있던 모델은 무릎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그리고 괜찮아진 듯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한다. “미안해요. 재킷이 좀 무거워서요.” 몸을 추스른 그녀가 로즈베리의 눈을 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린 시절 텍사스에 살던 로즈베리는 예술가인 어머니 프랜(Fran)에게 그림을 배웠다. 어머니가 일찍부터 가르친 것 중 하나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그림과 일치하지 않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완벽하던 룩은 이제 덥고 무겁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은 15분 정도 입고 있었지만, 쇼에서는 1시간 동안 이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녀나 다른 누군가가 말이죠.”

    그는 푹신한 옷을 들고 실시간으로 그림을 수정하듯 천천히, 옷에 시원한 바람이 더 잘 통하도록 드레이핑을 손보기 시작한다. 재단사가 손목에 건 쿠션에서 핀을 뽑아 새 디자인을 고정하기 시작한다. 1시간 뒤, 모델이 다시 옷을 입고 빠른 속도로 방 안을 돌며 워킹한다. “무겁지만 균형을 잡으면 괜찮겠어요.” 그녀는 무게를 가늠하며 기쁘게 말한다.

    로즈베리의 아버지 데이비드(David)는 성공회 신부다. 그와 프랜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학교에서 만나 교회 설립을 돕기 위해 플레이노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네 자녀를 키웠다. 로즈베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 신앙은 구원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평생 만족하기 위해 꼬리만 쫓다가 항상 실패하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충만할 수 있도록 구세주를 보내셨기 때문이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을 신뢰하고 삶을 내주는 것뿐입니다. 그 내줌의 결과는 평화입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동성애자 주교 인정 문제로 주류 집단과 대립하는 교회의 보수 적인 세계관이 엄격하거나 더 나빠 보인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에게 종교는 확고함과 관대함을 의미했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결혼 생활 내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당신들 자녀 한 명 한 명과 서로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함께 명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두 분은 그저 두 사람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계신 겁니다.”

    로즈베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삶이 스스로를 외면보다는 내면으로 이끈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 기억 대부분은 그림을 그리는 모습입니다.” 그는 조용하지만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아이였다고 설명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했죠.” 당시 꿈은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니엘이 매우 재능 있고, 매우 열정적이며,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가 회상한다. 그들 삶의 리듬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면 도움과 인도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 어느 날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방문한 데이비드와 프랜은 영성체를 위해 제단으로 다가갈 때 일곱 살이었던 로즈베리를 자신들 사이에 두고 함께 걸었다. “우리는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내주는 순간이라고 느끼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들이 스스로 내주었다고 느낀 것은 아들에 대한 부모의 권리였고, 아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감정이었다. “우리는 아들을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 후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텍사스로 돌아오자마자 데이비드와 프랜은 로즈베리와 그 밑 딸아이를 예술에 좀 더 중 점을 둔 학교에 입학시켰다. 로즈베리는 열세 살 때 러벅에서 열린 형의 결혼식에 참석 했다. 신부는 현지 재봉사가 만든 캐롤리나 헤레라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었다. “충격적이었어요. 차를 타고 댈러스로 돌아가면서 제가 본 드레스를 그리기 시작했죠.” 로즈베리는 자신과 같은 교외 출신이던 마이클 코어스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를 본 뒤,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뉴욕으로 건너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야망은 그의 교회 교리 안에서 불편한 것이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는 심지어 가족에게도 ‘비밀을 숨기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10대 시절 패션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면서 그 비밀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성과 성행위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세 살 때 <다이 하드>는 볼 수 있었지만, 성에 관한 것이 나올 때는 ‘채널을 돌려’라는 식이었죠.” 로즈베리가 말한다. 그의 부모님은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돌봤다. “아들이 게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두려워하셨고, 저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로즈베리는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의 도움으로 서서히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러나 해방은 불안한 일이었다. 열여섯 살 때 찍은 사진에는 밝은 빨간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자른 소년의 모습이 담겼지만, 사춘기가 끝날 무렵에는 머리를 탈색한 모습이다. “제가 어땠냐고요? 엉망진창이었죠. 무성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탐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주변의 사회적 역학 관계에 압도당했어요.” 한동안 그는 패밀리 레스토랑 칠리스(Chili’s)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문을 기억할 수가 없었거든요.” 웨이터는 골드, 실버, 브론즈로 등급이 나뉘는데 그는 브론즈 등급이었다. “브론즈 등급을 받은 유일한 사람은 팔이 부러져 혼자 음식을 나르지 못하는 여직원이었습니다. 저는 정중하게 해고당했죠.”

    열아홉 살에 주립 대학에 입학한 그는 교회 선교를 떠나 신학교에 진학해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선교 활동으로 하와이에 갔다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2005년 카슈미르 지진 이후 난민에게 구호품을 나눠주며 ‘매우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회의 극명한 극단주의는 로즈베리와 그의 친구들에게 방언을 강요했고, 그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과거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교회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신학교가 아니라 뉴욕에 있는 패션 공과대학(FIT)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업을 마칠 무렵 부모님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신념을 거스르는 아들의 비밀에 놀랐다.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우리는 아들을 하느님께 드렸죠. 그 후 일어난 모든 일은 아들이 걷는 길의 일부입니다.” 데이비드가 설명한다.

    파리 시립 미술관 쁘띠 팔레에서 스키아파렐리 꾸뛰르 쇼가 열리는 아침, 사진가들이 건물 앞 웅장한 계단 밑에 줄지어 서서 유명 게스트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모델들은 밝은 조명이 있는 아치형 방에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받고, 로즈베리는 칼라가 닳아 있는 색 바랜 데님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에디터들에게 의상을 보여줄 무대 쪽에서 다가온다. “백스테이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백스테이지 준비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톰 브라운에서 수년간 일한 그가 말한다. 모델들이 준비 중인 방 입구에 있는 커튼을 젖혀 들여다보고는 다시 닫는다. “보여줄 수 없어요.” 그가 미안한 듯 웃으며 말한다. “좋아요, 모델분들! 옷을 다 입었으면 자기 자리를 찾아 줄을 서세요!” 다른 직원이 앞장서며 외친다.

    로즈베리는 경력을 쌓기 위해 FIT를 중퇴하고 톰 브라운에서 인턴십을 시작했다. “제가 본 것은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라운은 로즈베리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2011년 브라운이 첫 여성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을 공개했을 때 로즈베리는 바로 곁에 있었고, 브라운이 점점 젠더 규범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로즈베리의 역량도 더 중요해졌다. “다니엘은 더 여성적인 관점에서, 저는 남성적인 관점에서 패션에 접근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정말 잘 보완했습니다.”

    로즈베리는 이때를 외연이 넓어진 자유분방한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동시에 혼돈의 시기이기도 했다. 8년 동안 애더럴(Adderall)이라는 약물에 ‘심각한 중독’ 상태였기 때문이다. “매일 약을 복용했습니다. 제 인생에 일어난 최악의 일 중 하나였죠.” 매년 여름휴가 때면 친구들과 함께 메인주에 가서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을 채취하곤 했다. 다니엘은 30대 문턱에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스스로를 책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능성과 야망, 희망으로 가득 찬 소년이요. 그러자 애더럴, 담배, 신체 학대 같은 어둡고 그늘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는 빠른 리듬으로 손가락을 튕긴다. “톰 브라운을 떠날 때 그런 것들을 인생의 다음 장으로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닥치든 말이죠.” 서른이 된 로즈베리는 파트너와 헤어졌고, 담배와 애더럴도 끊었다.

    2019년 스키아파렐리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로즈베리는 자유와 통제의 균형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작지만 전망 있는 하우스임을 알아보았다.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대량 판매 방식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하우스는 수년 동안 폐업 상태였죠. 덕분에 순수했고, 손상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력적인 DNA가 유지되었어요. 소규모로 물건을 만드는 것의 장점은 모든 것이 정말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성이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무언가를 제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용감하거나, 더 화려하거나, 더 파격적인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페르소나 같은 거죠.” 소설가이며 <T> 매거진 편집장으로 로즈베리의 절친한 친구인 한야 야나기하라(Hanya Yanagihara)는 이렇게 말한다. “축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션 디자이너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박물관에 많이 가거나 여행을 많이 다니며 외부 세계에서 영감을 얻는 유형이에요. 두 번째는 어릴 때부터 살아온 내부 풍경에서 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들은 내면으로 들어가죠. 다니엘은 두 번째 범주에 속해요.”

    백스테이지에서 로즈베리는 모델들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의상을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는 풍성한 흰색 모헤어 코트를 입은 모델 어깨에 걸린 나무 목걸이를 조절한다. 그 목걸이는 아카이브 깊은 곳에서 발견한 오버사이즈 주얼리 중 하나로,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가장 좋아하는 마네킹 파스칼(Pascal)과 파스칼린(Pascaline)의 손을 본떠 만든 두 개의 손이 교차되어 있다. 그가 금박을 입힌 나무 조각으로 만든 투피스 차림의 모델을 보고 감탄한다. 재킷 위로 실내용 화초를 본떠 만든 나뭇가지 모양 브로치가 장식되어 있고, 재킷 사이로 노출된 몸은 이브 클랭(Yves Klein)의 블루 컬러로 반쯤 칠해져 있다.

    2023 봄/여름 꾸뛰르 쇼를 앞둔 지난해, 로즈베리는 시즌마다 변화하는 패션계에 들떠 도전적인 대형 프로젝트에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패션도 자신이 동경하는 다른 예술의 규모와 야망대로 작동하게 하는 사업을 꿈꿨다. 꾸뛰르가 그 실험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곳이 그런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로즈베리는 단테(Dante)의 <신곡(Divine Comedy)>을 다시 읽으며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해 생각했다. “책을 통해 30대 중반의 단테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유명한 오프닝에 대해 말한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을 모두 파악했다고 여기며, 자신이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사람이죠. 그러나 당신은 그의 삶이 어땠는지 현실을 보고, 그가 단지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당시 단테는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때였습니다.” 로즈베리는 단테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악마를 상대하고 어려움을 해결해가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초반에는 엄격하고, 축소되고, 통제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2부에는 해방되고, 관능적이고, 활기 있는 무언가로 나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난겨울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은 클래식한 이브닝 웨어에 대한 스키아파렐리식 변형에 과격하고 보호물 같은 형태를 결합했다. 긴장과 통제다. 레진으로 만든 뱀이 장식된 네크라인, 조개껍데기 같은 상감 장식, 사실적인 표범과 사자 머리 장식 등 다양한 동물 모티브는 그의 어머니로 하여금 아들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양이 그리는 것이 세상 전부였던, 디즈니를 좋아하던 소년 말이다.

    그러나 일부 온라인 시청자들은 박제된 머리가 트로피 사냥(오락 목적의 사냥)을 미화한다고 우려했다. 또 일부 유럽인들은 단테에 대한 해석을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인데, 이탈리아 언론은 <신곡>을 성경 다음으로 신성한 텍스트로 간주하더군요.” 로즈베리가 설명한다. 그는 3부작의 다른 쇼에서 D로 시작하는 단어(단테, 신곡)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수긍했지만, 단테의 구성은 여전히 기본 틀로 남아 있다.

    새로운 컬렉션의 이름은 ‘연옥’이 아닌 ‘그리고 예술가들(And The Artists)’로 불리게 될 것이며, 비대칭적 볼륨감과 함께 첫 컬렉션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할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즉흥적인 방식인 ‘손의 환희’로 만들어질 컬렉션이다. 초대장에는 주물로 만든 에덴동산의 사과 모형이 함께 왔다.

    모델들이 런웨이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하자, 무대 매니저가 그들 중 한 명과 무대 배치도를 살펴보며 동선을 설명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파리의 한여름 초록빛과 어우러진 위층 아치형 룸의 관객들은 카펫이 깔린 런웨이 양쪽에 놓인 금빛 의자에 앉아 있다.

    볼 가운 개념을 재해석한 물결 모양 스커트, 사람 윤곽을 트롱프뢰유로 표현한 흰색 하이칼라 코트 등 컬렉션은 시작부터 기이한 장식과 액세서리를 레이어드해 정교한 룩을 완성한다. 이브 클랭 블루 컬러로 칠한 모델은 비즈와 깃털, 생화를 주렁주렁 달고 눈과 손 모양을 형상화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기도 한다. 고리 모양의 검정 코일이 여러 개 달린 미니스커트는 모델이 걸을 때마다 엉덩이 부분에 후광 효과를 만든다.

    사운드트랙이 속삭이는 듯한 타악기 소리로 전환되며 쇼타임을 알리자, 프랑크(Frank) 룩을 입은 새로운 모델이 런웨이에 등장한다. 정적으로 감싸인 홀에는 음악만 흐르고 경이로운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천천히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다가오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겹겹이 붙인 색칠한 가죽이 부드럽게 튕겨 오른다. 관객은 꿈을 꾸는 듯한 눈빛이다.

    쇼가 끝나자 로즈베리는 백스테이지로 돌아온다. 그를 환호하는 팬들로 가득하다. 반짝이는 깃털로 황홀하게 감싼 검은색 스키아파렐리 모래시계 드레스를 입은 카디 비(Cardi B)는 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한다.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상사들도 기뻐한다. “이곳은 엘사라는 여왕의 코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대한 실험실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환상적인 왕자님이죠.” 스키아파렐리의 오너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가 이렇게 말하며 관중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다니엘의 부모 데이비드와 프랜은 군중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깔끔한 블랙 스키아파렐리 의상을, 아버지는 핀스트라이프 체크무늬 여름 정장을 입고 있다. “오늘 제가 보고 읽은 많은 것들로 인해 제가 작은 사람처럼 느껴져요. 왜냐하면 힘든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다니엘의 사명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되찾아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느낍니다.” 데이비드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날 저녁 손님들은 핸드백과 주얼리, 아름다운 블랙·화이트·레드 의상을 입은 마네킹이 전시된 방돔 광장 3층으로 초대받는다. 이곳에서는 칵테일 파티가 열리고 있다. 올 초 로즈베리는 스키아파렐리의 첫 번째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 컬렉션은 스키아파렐리 성장 계획의 핵심이자 여전히 미진한 첫 번째 리테일 확장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때 브랜드 CEO 델핀 벨리니(Delphine Bellini)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손녀인 배우 마리사 베렌슨(Marisa Berenson)을 어느 방으로 안내한다. 연구를 위해 새로운 마네킹에 옷을 입혀보는 방이다. “다니엘은 몽상가예요.” 벨리니는 아름다운 검은 깃털로 장식된 의상 옆에 서서 상냥하게 말한다. “그가 스키아파렐리에 대해 가진 비전을 보았을 때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었죠.”

    로즈베리는 다음 날 아침 녹음이 우거진 파리 7구의 아파트에서 조용히 사색에 잠겼다. 선선하고 온화한 날이라 이중창은 부드러운 바람을 맞기 위해 열려 있다. 제임스 볼드윈과 리처드 파워스, 다니엘 카네만, 모네의 풍경화 작품집 등 여러 권의 책 근처에 있는 다이닝 테이블 위에는 해바라기꽃이 꽂힌 커다란 유리 화병이 놓여 있다. 로즈베리는 평상시에는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음악을 켠다. 플릿 폭시스(Fleet Foxes)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다. “저에게는 뻔뻔함과 같은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그는 아침 시간을 어린 시절의 세계와 연결하고, 언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어릴 때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는 창밖으로 높이 솟은 고딕 양식의 교회를 바라본다.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거죠.”

    오전 9시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한다. 트레이너를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직접 요리한 ‘아주 간단한 저녁 식사’ 후 TV를 시청한다. “최근에는 켄 번즈(Ken Burns) 다큐멘터리 같은, 그러니까 공격적인 미국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있어요.”

    로즈베리는 파리에 대한 양가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파리 생활에 깊은 불만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제가 일에 너무 열중하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는 보이는 것처럼 그런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커뮤니티가 없어요.”

    여름 패션쇼를 준비하던 중 저녁 파티에 갔다가 막연히 우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다음 날 아침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체 이탈 체험’을 하며 잠에서 깼다. 그는 옆방으로 가서 유체 이탈이 진행되는 동안 메모한 두꺼운 종이를 들고 돌아왔다. 로즈베리는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여전히 자신이 더 높은 곳의 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하늘을 향해 손짓하며 말한다. “마음속으로 묻고 있어요. ‘이곳에는 어떤 교훈이 있나요?’라고 말이에요.”

    그는 성인이 된 후 그의 삶이 네 시기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시기는 20대다. 텍사스에서 뉴욕으로, 우정, 톰 브라운, 야망, 악마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다. “젊음의 환상, 평범한 시각에 숨어 있는 상상력, 미국의 뿌리로 대변할 수 있어요.” 그다음은 30대. “파리로 이주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시기예요. 압박감과 시행착오가 넘쳐나던 때였죠.”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파리에서의 삶은 친목이 기반이 되는 삶이 아니에요. 제 일을 구체화한 시기죠.” 그는 남자 친구도 있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하고 있지만, 가장 밝게 빛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40대에는 한 단계 뛰어넘는 아주 뛰어난 창의력이 발현되는 시기라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올해 그는 예술가 에이전시 CAA와 계약했다. “단순한 의상 제작자만이 아니라 패션을 훨씬 뛰어넘는 다른 창의적인 분야에서도 일하고 싶어요.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가 될 수 있죠.” 그 시기를 넘어, 그의 메모에 있는 네 번째 시기는 50~60대다. ‘다시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숙달의 시기’로 본다. 천국, 결국 도달하는 그의 낙원으로 묘사할 수 있는 시기다.

    그 전까지는 고난과 불확실성, 외로움, 예술 작품을 만들며 느끼는 잠깐의 행복이 존재한다. 꾸뛰르 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로즈베리에게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기분을 물었다. “끔찍해.”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마법처럼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몇 달 동안 고군분투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완성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절대 충분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찬사를 받은 후, 자신을 위해 쓴 평론과 섬뜩할 정도로 비슷한 감탄스러운 첫 번째 평론이 나온 후, 로즈베리는 헬스장에 갔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러닝 머신 위를 달렸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다음 시즌이었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VK)

    모델 모나 투가드(Mona Tougaard)가 착용했던 스키아파렐리 2023 가을/겨울 꾸뛰르 컬렉션의 오프닝 의상이 재키 마샬 특유의 직관적인 색과 선을 통해 대담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재탄생했다.
      사진
      Annie Leibovitz, Getty Images
      Nathan H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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