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남자들

2023.12.12

by 이주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남자들

풍성한 모발과 독창적인 향. 각자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두 남자와 <보그>가 긴밀히 나눈 대화.

필립 비의 창립자 필립 버코비츠.

PHILIP BERKOVITZ

매사추세츠 태생의 필립 버코비츠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변신시키는 방식에 몰두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영감의 원천이 되는 다양한 룩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거든요. 뷰티는 주변 어디에나 있어요. 자연에서도, 예술 작품 전시회에서도,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곤 해요.” 그는 브랜드 ‘필립 비’의 성공을 전략보다는 자신의 직관 덕분이라고 말한다. “제조하는 모든 제품은 지향점이 분명한 최상급 식물성 원료를 바탕으로 하기에 효과가 즉각적이며 매우 고급스러워야 해요.” 필립 비를 시작하겠다는 구상은 머천다이징에 대한 그의 라이프스타일적 접근법에서 비롯됐다. 셀러브리티 헤어 스타일리스트에서 손상된 모발과 두피를 치유하는 ‘헤어 닥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필립 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이 일을 하기까지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1990년대 초반 여러 최정상급 배우들의 머리를 만지고 색을 입히는 컬러리스트였습니다. 잦은 열 스타일링과 염색으로 이들의 머리카락은 메마르고 손상되어 끊어지기 일쑤였죠. 세상을 잃은 듯 절망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아름다운 모발은 철저한 자기 관리의 일부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을 찾아나섰습니다.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 곳곳을 수소문했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샴푸는 비누, 물, 향수의 지극히 평범한 조합이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로라하는 럭셔리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었죠. 컨디셔너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모발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왁스를 바른 듯 무겁고 축축 처질 뿐이었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필립 비의 근간인 식물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점이로군요.

밤낮으로 식물의 치유력을 탐구하고자 의학과 자연요법 연구에 몰두했고, 이름난 의사와 화학자, 치료사를 만났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엌 한쪽에서 최상급 식물과 꽃 추출물로 저만의 헤어케어 레시피를 창조했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듯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미국 <보그>는 “필립 비의 탁월한 제품력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는 찬사를 보냈죠.

디탱글링 토닝 미스트

첫 라인으로 네 가지 제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제품이었나요?

시작은 건조하고 손상된 모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4단계 트리트먼트였어요. 이 리추얼은 네 가지 제품으로 구성되며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도록 설계했죠. ‘리쥬브네이팅 오일’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 ‘라이트웨이트 딥 컨디셔너’ ‘디탱글링 토닝 미스트’가 그 주인공이죠. 참고로 ‘라이트웨이트 딥 컨디셔너’는 곧 한국에서 출시하니 기대해주세요.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는 1991년 출시 이래 줄곧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제품이 지속적으로 인기가 높은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품은 임상적 활성 수준이 매우 높은 순수 멘톨레이티드 페퍼민트 오일(의약 등급 2.3%)과 16가지 치유 식물 추출물로 이루어집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이 조합은 두피에 활력을 불어넣죠. 풍성한 거품이 무거운 두피 유분, 각질, 제품 잔여물을 제거해 모발과 두피를 영양분 손실 없이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모근에 리프팅과 볼륨 효과를 선사합니다. 모든 모발 유형에 이상적인 이 샴푸는 모발 순환을 촉진하고 트러블 두피에 상쾌함을 제공하는데요, 고농도 민트는 두피의 오일 생성을 정상화하는 천연 아스트린젠트 역할뿐 아니라 가려움과 비듬의 원인인 곰팡이 과다 증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름다운 향기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어떤 인공 향료도 천연 추출물의 고유한 향을 대신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노르웨이 가문비나무, 발삼 전나무, 백송, 삼나무, 장뇌로 제조한 ‘노르딕 우드 헤어+바디 샴푸’와 화이트 트러플 오일, 홉, 쐐기풀, 백리향, 라벤더를 함유한 ‘화이트 트러플 샴푸’의 절묘한 향기는 향수 이상의 후각적 즐거움을 내포하죠.

패키지 디자인에 관여하나요? 가장 신경 쓰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폰트부터 라벨에 적힌 메시지까지 제 손을 거칩니다. 패키지를 통해 고급스럽고 우아한 필립 비만의 이미지를 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니까요.

리쥬브네이팅 오일

니콜 키드먼, 빌리 아일리시, 레이디 가가, 브래들리 쿠퍼 등 톱스타들에게 인정을 받았죠. 이들의 ‘최애’ 제품은 무엇인가요?

니콜은 ‘리쥬브네이팅 오일’ ‘포에버 샤인 샴푸’ ‘디탱글링 토닝 미스트’를 즐겨 써요. 빌리의 경우 ‘리쥬브네이팅 오일’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 ‘라이트웨이트 딥 컨디셔너’를 애용하죠. 레이디 가가는 ‘포에버 샤인 샴푸 & 컨디셔너’의 빅 팬이며, 브래들리는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 ‘노르딕 우드 헤어+바디 샴푸’를 좋아합니다.

너무 어렵거나 복잡해 베테랑인 당신을 난감하게 한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은?

저는 강심장이라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습니다(웃음). 건조한 모발, 부서지는 모발, 과도한 시술로 손상된 모발, 건선, 지성 두피에 이르기까지 헤어에 관한 모든 고민은 곧 새로운 창조의 발판으로 여기죠.

문득 궁금해졌는데요, 남성과 여성의 헤어케어 과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의외로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모발은 각질화된 단백질로 구성되고, 이것이 공통분모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머리카락의 다공성 균일화가 핵심이죠. 대부분 머리끝이 건조하고 모근이 기름지기 때문에 식물성 오일 트리트먼트가 완벽한 모발과 함께 두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비법이랍니다.

모두가 기다린 질문입니다. 가방에 늘 들고 다니는 필수품은 무엇인가요?

저의 분신과 같은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와 ‘리쥬브네이팅 오일’, 여러 종류의 필립 비 컨디셔너, ‘디탱글링 토닝 미스트’, 헤어 브러시 그리고 제가 제작한 브러시 전용 청소 빗. 뭐가 좀 많죠?(웃음)

스타일링을 더 쉽게 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 제품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디탱글링 토닝 미스트’. 주원료인 사과식초는 샤워 후 모발의 pH 균형을 맞춰주죠. 젖은 모발에 가볍게 뿌리면 탄력 있고, 윤기 나며, 부드러운 촉감의 모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패들 헤어 브러시는 스타일링에 제격이에요. 마호가니를 사용해 스페인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일종의 ‘마스터피스’죠. 멧돼지 털과 나일론 강모를 촘촘하게 섞어 머리카락을 부드럽고 윤기 나게 정리합니다.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

당신이 편애하는 단 하나의 제품은 무엇인가요?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를 가장 사랑하지만 ‘러시안 앰버 임페리얼 샴푸’도 못지않아요(웃음).

매일 반복하는 특별한 헤어케어 루틴이 있나요?

매일 샴푸 전 머리카락과 두피를 천연 멧돼지 강모 브러시로 빗어줍니다. 머리카락의 질감과 스타일링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작지만 큰 ‘트릭’이죠. 나일론 강모와 달리 멧돼지 강모는 두피의 천연 오일을 흡수해 필요한 모간 아래로 옮길 수 있습니다. 동시에 브러시 작업은 막힌 모낭을 열어주고 두피 혈류를 자극하는 데 도움을 주죠. 매일 아침 ‘스칼프 부스터 프리-워시’를 사용한 다음, ‘스칼프 부스터 샴푸’나 ‘페퍼민트 아보카도 샴푸’를 사용하고 ‘스칼프 부스터 샴푸 리브인 컨디셔너’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제 두피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매일 ‘짐(Gym)’에 가는 것과 동일한 패턴이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향후 30년, 필립 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요?

늘 그래왔듯 순수하고 깨끗하며 자연적인, 최상의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할 겁니다. 필립 비 전 제품은 포뮬러에 투자를 아끼지 않기에 제조 비용이 상당한데요, 고객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에는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과 우리의 모발은 그 정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두 원하고 바랐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적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의약품 수준의 최상급 활성 추출물만 고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힐리의 창립자 제임스 힐리.

JAMES HEELEY

2006년 파리의 럭셔리 향수 힐리(Heeley)는 민트를 대담하고 세련된 향기로 재해석한 초기작 ‘멍뜨 프레슈(Menthe Fraîche)’ 탄생과 함께 주목받았다. 향을 대하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은 철학과 미학, 법학, 디자인까지 섭렵한 창립자 제임스 힐리의 다양하고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된다.

향에 언제 처음 심취했나요?

돌이켜보면 소년 시절부터 줄곧 향에 매료돼 있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자연스럽게 향유하듯 단순한 흥미로 시작해 더 깊이 빠져들고 탐구하게 됐죠. 영국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방학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나가곤 했습니다. 향수가 흔치 않던 때라 백화점에서만 여러 향기를 접할 수 있어 언젠가부턴 아버지만 기다렸죠. 남성용과 여성용 향수가 엄격히 구분돼 있던 1980년대에 처음으로 직접 구매한 여성용 라벤더 향기였습니다. 당시에도 향을 성별로 구분하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며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런던의 건축학교에 다닌 뒤에는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향에 관한 접근법이 어떻게 남다른가요?

스물셋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정해진 길을 이탈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두려워졌습니다. 삶은 더 다채로워야 하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지금보다 많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철학을 공부하며 인생의 모든 가능성에 열린 시각과 사고를 갖게 됐고, 건축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법을 배웠어요. 무모하지만 가슴 뛰는 일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뒤로했고, 드넓은 세상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향수라는 보물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작곡가가 되기 위해선 음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쌓아야 하죠. 조향도 비슷해요. 각각의 원료를 이해하고,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창작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 정말 매력적이죠. 매번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분이에요.

일상에서 즐기는 향은 뭔가요?

향수의 본질은 ‘향기를 입는 사람과 그 주변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풍경처럼 어떤 순간에는 환하게, 특정 순간에는 익살스럽게 삶에 다양한 즐거움을 줘야 하죠. 도심에서 많은 사람과 어우러져 살다 보니 지나치게 강한 향보다는 산뜻하고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묻어나는 향기를 선호합니다. ‘웰빙’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르는 모든 향을요.

힐리 엑스트레 드 퍼퓸 아가우드.

‘멍뜨 프레슈’는 향수 월드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죠.

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향을 창조합니다. 업계에서 종종 괴짜라고 여길 정도로요. 민트를 메인 노트에 사용한 건 최초이자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꽤 날카롭고 거친 특성을 가진 원료라 일반적으로 다른 향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 노트로 사용되니까요. 하지만 까다로운 원료를 웨어러블하게 해석하는 것이 조향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프레시하고 활력이 가득한 동시에 우아한 향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방금 으깬 민트잎 위에 베르가모트, 녹차와 화이트 시더가 어우러져 청량하면서도 깔끔한 향기의 ‘멍뜨 프레슈’가 탄생했죠.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메종 키츠네와 협업으로 탄생한 ‘노트 드 유주(Note de Yuzu)’를 꼽을 수 있겠군요. 창립자 쿠로키 마사야, 질다스 로엑은 제 오랜 지인들이에요. 어느 날 그들이 메종 키츠네만을 위한 신선하고 즐거운 향수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의해왔죠. 젊고, 다채롭고, 생기 넘치는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는 원료를 고심하다 유자를 떠올렸습니다. 오래전부터 동서양에 익숙한 열매이자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해주는 가볍고 산뜻한 향을 지녔죠. 여기에 아쿠아틱한 마린 노트를 가미해 상쾌한 이미지를 강조했고요.

그렇다면 한국을 향으로 묘사해줄래요?

생강 향. 신선하고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단정한 인상이죠.

신작 ‘아가우드(Agarwood)’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더 깊이 있고 강렬한 향기를 위해 향료를 고농축한 ‘엑스트레 드 퍼퓸’ 라인에서 공개하는 향입니다. 불가리안 로즈와 앰버, 벤조인의 조합으로 가장 진귀한 원료인 ‘오우드(Oud)’의 향을 완성했죠. 장미의 첫 향 위로 점차 인센스 노트의 농도가 진해지는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 더없이 어울리는 향수예요.

마지막으로, <보그>를 대변하는 향을 추천해주세요.

<보그>는 표면적으로도 세련되고 아름답지만, 그를 넘어서 내밀한 영역의 아름다움까지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중독적이기까지 한 재스민 향기가 적절할 것 같군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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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PHILIP B, HEELEY PARF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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