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깊이 신뢰하는 친구이자 편집자와 글쓰기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떻게 글쓰기를 지속해나갈 것인가? 어떻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가?’ 이것은 그날 이야기의 심부(深部)이자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나눠온 우정과 사랑의 핵심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며, 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할 것이다. 글과 책 앞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마음이 착잡해졌다가 금세 단순해지기도 하고, 얼마간 심각해졌다가 다시 홀가분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대화는 기복을 겪으며 다행스럽게도 다음에 쓸 글과 다음에 만들 책을 상상하는 일로 잠정적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근거 없는 희망가를 부를 생각은 없다. 터무니없는 낙관에 그치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각자의 책상 앞으로 가서 각자의 방식으로 글과 책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만나 오랫동안 글과 책에 관하여, 사는 일에 관하여 말할 것이다.
다음 날,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읽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요나스 메카스의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시간의흐름, 2023)이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감독이자 시인이며 전위적 작가인 요나스 메카스라는 이름 때문도 아니다. 수동 타자기라는 아날로그적 방식과 그 물성에 일종의 노스탤지어가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뒤표지에 발췌돼 있는 문장들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그 기세에 이끌려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럼 앉아서 써!’
‘나는 끝없이 타이핑하고 타이핑하고 타이핑한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와서 내내 생각한 것이란 바로 저 문장들이 아니었을까. ‘다른 것 없음. 그저 쓸 뿐’으로 요약되는 명쾌함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다.
요나스 메카스가 이 책을 그저 쓰게 된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1997년 3월 25일, 요나스 메카스는 책상 밑에서 먼지 덮인 컴퓨터 용지 한 롤을 발견한다. 거기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그것을 펼쳐 자신의 오래된 수동 타자기 ‘올림피아 딜럭스’에 끼운다. 그리고 타자를 쳐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한다. 그 소설은 가야 할 방향이나 구조, 전개의 전략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게 전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얼마나 길어질지, 내게 이것을 끝마칠 인내심이나 시간이나 배짱이 있을지에 대해서라면, 애당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설을 끝낼 수 있다거나 끝내야 한다면 말이지만, 전혀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결심했고, 내 결심은 이 컴퓨터 용지 한 롤을 다 쓰는 순간 소설의 마지막 문장 또한 쓰이리라는 것이었다.’(21쪽) 그것뿐이다. ‘테이블 앞에 앉았고, 타자기를 보았으며, 글을 써야만 했다. 타자기를 보는 즉시,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완전히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는 건 나도 알지만, 내 인생의 이야기는 늘 이런 식이었다. 종이와 타자기. 종이를 보면 나는 글을 쓸 생각부터 하고, 타자기를 보면, 완전 미쳐버린다.’(33쪽) 쓰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창작이었다.
그러므로 타자기 앞에서 그는 쓴다. ‘그냥 쓰는 것의 황홀함! 순수한 글쓰기, 순수한 노래 부르기, 둘 다 똑같다. 당신은 그냥 노래한다. 혹은 그냥 쓴다. 아니면, 부디 나를 용서하시길, 그냥 찍거나. 당신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냥 찍는다. 그냥 찍으면 되는데 왜 영화를 만드는가? 아, 뭔가를 하는 건 정말 끝내준다니까! 무엇이건, 전적으로 무엇이건!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삶을 기념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45쪽)
이것은 어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글도 아니다. 되레 완성은 그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완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고 싶다. ‘그렇지만, 까놓고 말해,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완성되고 싶지 않다. 인생이 이 ‘완성’된다는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완성’ 어쩌고는, 모두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지어낸 것일 뿐이다. 심지어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면, 그건 무척 진지하게, 무척 중요하게 들린다. 어쨌거나, 완성되는 건 죽는 거다, n’est pas(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를 나의 미완성 속에 내버려두시길.’(115쪽)
그리하여 이 글, 이 소설, 이 책은 요나스 메카스가 타자기를 두드리는 손가락과 그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기록이기도 하다. 또 쓰는 행위 그 자체에 관한 하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타자기로 글을 쓸 때 일어나는 일을 편집과 디자인을 통해 구현해내려는 이 책 자체의 노고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물론 요나스 메카스라는 창작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하나의 문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것은, 모든 삶은 엉망진창의 커다란 콜라주일 뿐이고 우리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으며 그것은 여전히 똑같은, 전적으로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리라, 친구들이여.’(90쪽)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도 시작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 그 가능성을 읽는다. 그러니까, 결론은, 일단, 쓰는 것. 그래, 쓰겠다, 다시, 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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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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