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을 봐야 할 8가지 이유
이번 오스카 최고의 화제작 <가여운 것들>이 오는 3월 6일 국내 개봉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부활한 엠마 스톤이 백지 상태에서 세상을 탐구하는 얘기다. 섹스는 그가 배우는 세상의 일부다. 그 파격에 불편을 느끼는 관객도 있겠지만 평단의 반응은 극찬 일색이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모두가 <가여운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유.
1. 화려한 수상 내역
<가여운 것들>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시작으로 세계 영화제 39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89번 수상했다. 3월 10일 열리는 오스카에는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오스카 전초전 골든글로브에서는 이미 작품상과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인디와이어>, <롤링스톤>, <버라이어티>, <사이트 앤 사운드>, <더 할리우드 리포터> ‘2023년 최고의 영화’에도 올랐다.
참고로 올해 오스카 최다 후보작은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오펜하이머>다. 다음이 <가여운 것들>이고 <플라워 킬링 문>이 10개, <바비>가 8개 부문에 후보를 냈다. 2월 21일 국내 개봉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도 5개 부문 후보다. 한국 미디어는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피터 손의 <엘리멘탈>이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라는 점에도 주목한다.
2.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최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를 리메이크한다는 발표가 났다. 제작은 <유전>(2018), <미드소마>(2019)의 아리 에스터 감독이 맡는다. 기괴하고 환상적인 작품을 보장하는 조합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그리스에서 상점 주인과 농구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공부하다가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지만 그리스의 영화 시장은 규모가 작았다. 그는 충분한 기회를 얻을 수 없어 광고, 뮤직비디오, 댄스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다 카메라를 사서 저예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의 강렬하고 독창적인 재능은 통제광 아버지에 독재자를 빗댄 <송곳니>(2009)로 세계에 알려진다. 이후 첫 영어 작품 <더 랍스터>(2015)로 서구 문화의 정상성 집착을 날카롭게 풍자했고, 영국 궁정 여자들의 암투를 그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이하 <더 페이버릿>)로 또 한 번 평단을 강타했다. 그는 통제, 신념, 욕망, 치욕, 신경증 같은 무거운 소재를 날카롭게 꿰뚫고 자유자재로 다루며 풍자와 위트까지 곁들이는 감독이다. <더 페이버릿>에서 보여준 여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은 <가여운 것들>에도 신뢰를 더한다.
란티모스는 배우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킬링 디어>(2018)에서는 배리 키오건의 불온한 매력을 처음 알렸고, <더 페이버릿>으로는 TV용 배우라는 인상이 강한 올리비아 콜먼에게 오스카 주연상을 안겨주었다. 마크 러팔로가 <가여운 것들>을 찍으면서 “내가 적역이 아닌 것 같다”, “나 말고 오스카 아이작이 했어야 된다” 등 앓는 소리를 해놓고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오른 걸 보면, 이번에도 다른 감독이 못 본 무언가를 란티모스가 발견한 듯하다.
3. 논란의 섹스 신
<가여운 것들>은 누드, 섹스 때문에 미국에서 R(Restricted, 17세 이하는 성인 동반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일부 관객은 유아의 뇌를 가진 벨라가 섹스를 탐닉하는 장면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동의를 동의로 받아들여도 되는지가 문제다. 벨라가 파리의 매음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산수단이다”라고 주장하는 대목도 성 산업 찬반 논쟁을 자극할 여지가 있다. 비평가들은 작품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지저분하다’, ‘부끄러울 정도로 난잡하다’는 표현을 덧붙이곤 한다. 반면 <보그 프랑스>는 이 작품을 ‘숭고하면서도 기묘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평했다. 벨라는 여행, 음식, 춤, 반항, 학업 등을 닥치는 대로 섭렵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발견이 섹스의 즐거움이다. 섹스와 학업은 벨라가 남성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다. 자유는 벨라의 힘이고,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무기다.
란티모스 감독은 신중하지 못한 섹스 신이 배우를 배신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엠마 스톤이 신체 노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엠마 스톤은 “당연하죠. 그게 벨라잖아요. 우리는 필요한 일을 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엠마 스톤의 이런 태도는 원래 섹스 신과 누드 신을 좋아하지 않는 마크 러팔로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친밀감 코디네이터를 사용한 것도 배우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미투 운동 이후 할리우드 섹스 신 촬영에서 친밀감 코디네이터는 필수다. 엠마 스톤은 촬영이 끝나면 코디네이터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자기 기분을 얘기했다고. 그 결과 <가여운 것들>은 벨라의 탐구심을 과감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4. 화려한 미장센
이번 영화에서 감독과 작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간다>(1983),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1967), 멜 브룩스의 <영 프랑켄슈타인>(1974)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옛 할리우드 영화처럼 비네팅 효과가 나는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촬영 방식을 참고했다.
주인공 벨라는 창조자의 품을 벗어나 세계를 여행한다. 감독은 고전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내려고 여행 장면에도 세트를 활용했다. 런던 타운하우스, 파리 광장, 유람선, 리스본 거리 모두 세트다. 그 때문에 인공조명을 적극 활용했다. 영화의 일부는 흑백이다. 벨라가 여행을 떠나고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손으로 채색한 빅토리아 시대 엽서처럼 고혹적인 컬러가 도입된다. 이런 다양한 실험의 결과로 고딕과 스팀 펑크를 결합한 초현실적 분위기가 탄생했다. <보그> 독자들은 벨라의 의상만 봐도 흡족할 것이다. 어린 시절 벨라는 하녀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다. 헐렁하고 펑퍼짐한 실루엣이다. 하지만 섹스에 눈을 뜨고 세상의 룰과 부딪치고 스스로 옷을 골라 입게 되면서 점차 몸을 옥죄는 구조적인 드레스를 입는다.
5. 엠마 스톤
엠마 스톤은 란티모스 감독과 인연이 깊다. <더 페이버릿>을 시작으로 그리스 국립 오페라 홍보를 위한 무성 단편영화 <블리트>(2022)를 찍었고, 다음 장편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까지 함께한다. <가여운 것들>은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작자 겸 배우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엠마 스톤은 이번 작품의 거의 모든 프레임에 등장한다. 아무런 선입견 없는 유아에서 사려 깊고 비판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캐릭터이므로 발전 단계에 따라 걸음걸이, 말투, 표정을 계속 바꾸어야 했다. 그는 이 배역에 대해 “수치심이나 트라우마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아볼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다.
엠마 스톤은 <버드맨>(2015), <더 페이버릿>으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라라랜드>(2017)로 주연상을 수상했다. <가여운 것들>로는 주연상뿐 아니라 제작자가 받는 작품상 후보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6. 윌렘 대포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전복한 작품이다. 닥터 프랑켄슈타인에 해당하는 외과 의사이자 주인공의 창조자, 수호자 역할은 윌렘 대포가 맡았다. 이번엔 의사 자신도 아버지의 실험 때문에 흉터가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의미가 깊어졌다. 대포는 이 배역을 위해 새벽 3시에 분장실에 가서 4시간 동안 분장을 받곤 했다.
윌렘 대포는 실제로 외과 의사의 아들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병원에서 청소를 했기 때문에 실험실과 수술실이 친숙했다. 그 때문에 그는 <가여운 것들>에 캐스팅되었을 때 ‘내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박사와 주인공 벨라의 관계를 묘사할 때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7. 음악
<가여운 것들>은 란티모스 감독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사용한 첫 영화다. 그동안은 기존에 있던 음악을 활용했다. 작곡가 저스킨 펜드릭스에게도 이것이 첫 영화음악이다. 감독은 펜드릭스의 2020년 앨범 <Winterreise>를 들었을 때 창작 소울 메이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 술 취한 루이 암스트롱이 고장 난 악기에 맞춰 노래하는 듯한 사운드를 지나, 로큰롤과 블루스가 잠깐 튀어나오더니, 경쾌한 팝 멜로디를 불균형한 베이스와 신시사이저가 방해하다가, MRI 검사 통에서 들릴 법한 전자음이 쏟아지기도 하는 기괴한 앨범이다. 엠마 스톤 역시 이 앨범을 듣고 “머릿속 모든 것이 음악으로 폭발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저스틴 펜드릭스는 <가여운 것들>로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불안한 현악기 불협화음에서 시작한 음악은 벨라의 지적 성장과 함께 복잡하고 정교하고 풍성하게 발전한다.
8. 시나리오
<가여운 것들> 시나리오는 1992년 출간된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다. 감독은 2009년 원작자를 만나 판권을 따냈다. 작가에게 시나리오도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란트모스가 <더 랍스터>로 영어 영화에 자신감을 얻고, <더 페이보릿>으로 대작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될 때까지 프로젝트가 보류되었다. 그사이 소설가가 사망했다. 란트모스는 <더 페이보릿>과 <크루엘라>(2021) 시나리오를 쓴 맥나마라에게 각색을 맡겼다. 원작은 스코틀랜드 사회, 정치 비판이 많고 남성 화자들을 통해 전개된다. 영화는 배경의 특수성을 줄이고 벨라를 중심에 세웠다.
- 포토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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