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크루즈가 말하는 샤넬, 영화 그리고 브래드 피트
패션쇼에서 박수 소리가 들린다는 건 이제 쇼가 끝나간다는 뜻입니다. 피날레를 보며 박수를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어제 있었던 샤넬의 2024 F/W 컬렉션은 달랐습니다. 첫 번째 룩이 등장하기 전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거든요.
베뉴 정중앙의 대형 스크린에 단편영화가 재생됐기 때문입니다. 주연배우는 페넬로페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였고, 샤넬 11.12 핸드백이 카메오(!)로 출연했죠. 오스카상을 수상한 두 대배우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촬영을 담당한 이네즈와 비누드는 이 단편영화를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의 대표작,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표현했습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원작은 각각 과부와 홀아비인 아누크 에메(Anouk Aimée)와 장 루이 트린티냥(Jean-Louis Trintignant)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고 있죠.
1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상 중, 페넬로페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는 도빌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 역은 리앤 반 롬페이가 담당했고요. 원작과 똑같이 테이블 위에 샤넬 백을 올려놓았습니다. <남과 여>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을 디테일까지 그대로 재연한 거죠.
마지막 장면은 “호텔에 남는 방이 있나요?”라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도발적인 질문으로 끝납니다. 원작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였죠. 처음 문을 연 1910년부터 지금까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본보기를 보여준 샤넬다운 각색이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버지니 비아르의 2024 F/W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밴드 에어의 곡 ‘Sexy Boy’가 베뉴를 가득 메웠고요. 쇼가 끝난 후 비아르는 샤넬 11.12 백을 ‘욕망의 대상이자 꿈을 꾸게 만드는 아이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쉽게도 브래드 피트는 프런트 로에서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샤넬과 관계를 이어온 페넬로페 크루즈는 쇼를 마무리한 버지니 비아르와 포옹을 나눴습니다. <보그>가 샤넬 2024 F/W 컬렉션에 대해 페넬로페 크루즈와 함께 나눈 짤막한 대화를 공개합니다.
브래드 피트와 함께한 영상이 처음 공개됐어요. 반응이 아주 뜨거웠죠?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이미 영상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봤지만, 수백 명과 함께 앉아서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전부 이네즈와 비누드 덕분입니다. <남과 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고, 클로드 를루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패션 아이콘 아누크 에메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 오마주 영상에 제가 기여했다는 사실이 기쁠 뿐입니다.
영상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 뒤, 모델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에는 브레드와 당신이 함께 해변을 걷는 모습이 재생됐고요. 무드가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정확해요! 베뉴에 드리운 모델들의 그림자, 그리고 저 멀리 화면에 보이는 브래드와 제 모습까지!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에 함께 출연하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와 함께 촬영한 건 처음이죠?
첫 만남은 아니에요. <카운슬러> 촬영을 준비할 때도 그렇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마주친 적은 있죠. 오래전에 남편과 함께 셋이 식사한 적도 있지만, 촬영장에서 함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영상을 촬영하는 이틀 동안 브래드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그가 함께할 수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지금 브래드는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과 함께 새로운 영화를 촬영하고 있거든요!
클로드 를루슈가 촬영장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라이더 재킷을 입고, 멋진 차에서 내리더군요. 극 중 트린티냥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클로드의 작품, 특히 <남과 여>가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전부 이야기했죠.
<남과 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빌 호텔 레스토랑에서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증폭되고, 테이블 위에는 백이 놓여 있고…
신기한 장면입니다. 백이 테이블 위에 버젓이 놓인 모습이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거든요. 오히려 두 인물의 관계에 약간 섹시함을 더하며 대화에 빠져들게 만들죠. 어릴 때 영화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런 백을 갖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꿈을 이뤘군요. 샤넬 하우스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9년 샤넬 쇼에 처음 참석했죠. 그때 PR 담당자 엘사 에이즈만(Elsa Heizmann)과 칼은 물론 샤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중 여럿은 지금까지도 샤넬에서 일하고 있죠. 모두 저를 가족처럼 대해줍니다. 상냥한 데다 서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죠. 쇼 전날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걸 좋아합니다. 시간이 늦더라도 시계를 들여다보며 ‘집에 언제 갈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하우스에서 30~40년 가까이 일한 베테랑 재봉사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스튜디오에 머물죠. 그런 분들에게 샤넬은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Le19M 빌딩 역시 흥미롭습니다. 샤넬의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거든요. 장인들은 꾸뛰르뿐 아니라 기성복 한 벌을 만들 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샤넬처럼 모든 것에 공을 들이는 하우스는 찾아보기 힘들죠.
영화 제작과 옷 만드는 일, 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둘 다 정교함이 필요한 일이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예로 들어볼까요? 수많은 아이디어가 겹겹이 쌓여 있고, 사소한 디테일에도 온 힘을 쏟죠. 모든 요소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버지니도 그렇지만 칼과 가브리엘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내보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재능이 한데 모여 옷이라는 결과물이 되는 거죠. 저 역시 샤넬의 일원입니다. 모두의 헌신을 보고 있으면 뭐라도 돕고 싶고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이번에는 페넬로페 크루즈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샤넬 하우스에 기여했군요.
짧은 영상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상징적인 캐릭터에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 실제 역사를 반영하기도 하죠. 영상이 컬렉션과 잘 어우러진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번 쇼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모자가 등장했죠. 가브리엘 샤넬 역시 모자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샤넬의 첫 부티크 역시 도빌에 있었고요. 1910년대에 편안함을 우아함만큼 강조한 디자이너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샤넬의 자매들은 가브리엘이 만든 모자와 블라우스를 입고 도빌의 해변과 거리를 걸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그 해변과 거리를요.
수많은 브랜드의 앰배서더와 프렌즈를 만나왔지만, 이렇게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에요.
샤넬 직원들도 같은 이야기를 해요.(웃음) “유래를 잘 모르면, 페넬로페에게 물어보자!”며 놀리는 식이죠. 2019년 스페인 <보그>과 함께 칼에게 헌정하는 커버를 촬영한 적 있습니다. 포토그래퍼는 피터 린드버그였고, 저는 객원 에디터이자 커버 모델이었죠. 엄청난 규모의 촬영이었습니다. 샤넬의 아카이브를 싣고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는 트럭이 여러 대였죠. 촬영장은 온통 칼에 대한 얘기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아픈지 잘 몰랐고, 바로 그날 밤 칼은 생을 마감했죠. 칼은 모두의 사랑을 받은 디자이너입니다. 저 역시 그와 많은 추억을 나눴고요.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부터 칼의 발자취를 이어갈 인물은 버지니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지금 하는 일을 보세요. 샤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죠.
- 글
- Luke Leitch
- 사진
-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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