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SM부터 수녀복까지, ‘듄: 파트 2’ 의상 디자이너가 구현한 세계
영화 <듄> 1편에서 의상 디자이너 재클린 웨스트(Jacqueline West)는 공상 과학 세계를 패션으로 빚어냈습니다. 레이디 제시카(Lady Jessica, 레베카 퍼거슨)가 칼라단 행성에서 착용한 거즈 베일, 아라키스 행성에 사는 프레멘족의 수트를 떠올려보세요. (국내 기준) 2월 28일 개봉한 <듄: 파트 2>를 위해 그녀는 스케일이 더 큰 작업을 강행했습니다. 그녀는 <보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듄: 파트 2>에서는 모든 세계가 훨씬 더 확장되었어요. 손이 모자랄 정도였죠”라고 밝혔습니다.
<듄: 파트 2>는 드니 빌뇌브(Denis Villneuve) 감독이 그려낸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메시아적 인물, 폴 아트레이데스(Paul Atreides, 티모시 샬라메)와 그의 프레멘족 연인 챠니(Chani, 젠데이아 콜먼)가 폴의 아버지 레토 공작(Duke Leto, 오스카 아이삭)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예지몽으로 마주한 끔찍한 미래를 막는 여정을 담았죠. 하코넨 가문(Harkonnens)이 입은 부다페스트 갑옷을 공수하는 것부터 레이디 제시카의 프레멘족 예복을 장식하기 위해 런던의 인쇄공과 보석을 찾아 중동 전역의 시장을 누비는 일까지. 재클린 웨스트는 전 세계적인 팀워크를 발휘해 점점 커져가는 듄 세계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속편에서 재클린 웨스트가 많은 신경을 쏟은 캐릭터는 뜨거운 ‘우정’으로 뭉친 베네 게세리트(Bene Gesserit)들이었습니다. 1편에서는 레이디 제시카와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Gaius Helen Mohiam, 샬롯 램플링)이 어딘가 신비스러운 이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죠. 파트 2에서는 새로운 베네 게세리트 그룹이 등장합니다. 이룰란 공주(Princess Irulan, 플로렌스 퓨)와 레이디 마고트 펜링(Margot, Lady Fenring, 레아 세이두)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재클린 웨스트는 오리지널 캐릭터에서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행성에 흩어진 두 자매를 의상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죠.
베네 게세리트 의상 작업 시 웨스트는 타로 카드, 특히 ‘검의 여왕(Queen of Swords)’ 카드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타로 카드 그림 전반에 성스럽고 신성한 기운을 자아내는 독특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경건한 분위기를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중세 그림과 성모마리아의 성스러움에 비유했죠. 웨스트가 찾아낸 공통점은 모두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톨릭 학교에 다녔던 재클린 웨스트는 수녀복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녀는 “수녀님들이 함께 복도를 걸어 다니던 모습, 그리고 수녀복이 바람에 흩날리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 이미지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듄: 파트2>에서 그 실루엣을 재현하려 애썼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베네 게세리트는 일종의 종교 단체입니다. 하지만 웨스트가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만 모티브를 얻은 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종교를 융합하는 수준에 가까웠죠.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1만1,000년 후라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살아남은 생명체의 거대한 집합체에 가깝다고 할까요”라고 말합니다.
베네 게세리트의 구성원은 모두 비슷한 실루엣으로 소속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드레스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기도 하죠. 레이디 제시카는 레토 공작의 첩으로 시작해 아라키스의 대모가 되기까지, 두 작품의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신하는 인물입니다. 1편에서 프레멘족과 함께하던 그녀의 의상은 비즈로 화려하게 장식한 시어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에치에 머물게 되면서 조금 더 수수한 모습으로 변해가죠. 그녀는 “레이디 제시카의 당당한 분위기는 유지하되, 1편에서의 화려한 원단 대신 좀 더 소박한 소재로 차이를 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디 제시카의 의상은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웨스트가 의상 제작자 매트 리츠마(Matt Reitsma)에게 레이디 제시카의 의상에 프레멘족의 알파벳을 수작업으로 새겨달라고 주문했거든요.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한 레이디 제시카는 레이디 마고트 펜링과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레아 세이두는 벨벳 소재로 제작한, 종교복 느낌의 의상을 입고 등장합니다. “두 인물 모두 수녀 같은 실루엣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레이디 펜링이 훨씬 더 ‘숙녀’ 같은 동시에 고급스러워 보이죠”라고 말했습니다. “레이디 펜링의 의상은 제가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옷 중 하나예요. 간결하거든요. 굉장히 부유해 보이지만 수녀의 모습을 하고 있죠. 영감은 발렌시아가의 옛 아카이브에서 얻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의 이목을 끈 건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이룰란 공주였습니다. 재클린 웨스트는 이 인물을 ‘이성의 목소리(Voice of Reason)’라고 일컫죠. 웨스트는 공주의 뿌리가 베네 게세리트에 있음을 좀 더 은근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커다란 헤드피스를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대신 이룰란 공주는 비교적 작은 메탈릭 헤드피스를 쓰고 등장합니다. 그녀는 이를 갑옷에 비유했어요. 그녀는 “이룰란 공주는 <듄: 파트 2>의 도덕적 길잡이나 다름없어요. 베네 게세리트는 미래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이를 꿰뚫어 보고 장기전을 펼칠 준비를 하죠. 그래서 기존 베네 게세리트의 모습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룰란 공주에게도 여전히 수녀의 실루엣이 엿보이긴 합니다. 웨스트는 “어린 시절 보았던 수녀복을 잘 기억해둔 덕분입니다. 그 옷이 수녀님들의 얼굴을 어떤 식으로 두르고 감쌌는지도요. 성모마리아가 두르는 망토 같은 모양은 배제하되, 베네 게세리트의 특징은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했어요. 헤드피스가 이를 잘 표현해낼 거라 생각한 거죠”라고 덧붙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하코넨 가문의 세계관도 확장되었는데요.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남작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조카, 페이드 로타 하코넨(Feyd-Rautha Harkonnen, 오스틴 버틀러)입니다. 웨스트는 “페이드 로타의 경우 록 스타 같은 느낌을 내는 게 중요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아마 새로운 악당 캐릭터를 만들고자 한 감독의 의도였을 수도, 단순히 이전에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로 완벽 변신했던 오스틴 버틀러에게서 영감을 받아서일 수도 있겠죠.
하코넨 가문의 의상에는 블랙 컬러, 가죽, 스판덱스가 주로 쓰였습니다. 웨스트는 “상당히 사악한 기운이 감돌죠. 뱀파이어처럼요. H. R 기거(H. R Geiger)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아주 고딕적이었어요. 캄캄한 밤과 어두운 갑옷, 가죽 등 암울한 중세의 이미지를 그려냈죠”라고 말합니다.
전문 미술사학자이기도 한 재클린 웨스트는 어마어마한 세계관을 의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원작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는 항상 미래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전 듄이 세계적 종말 이후 다시 시작된 세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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