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보게 세련된, 2000년대 스타일의 귀환
2024 F/W 런웨이는 자기주장이 참 강했습니다.
‘남은 한 해를 지배할 트렌드는 이겁니다!’라고 꼭 집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각자의 색깔이 뚜렷했죠. 조용한 럭셔리를 지나 1990년대 미니멀 패션에 당도한 지금, 단정하고 엄격한 옷차림이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보헤미안 시크(보호 시크)로 눈을 돌릴 차례입니다.
보호 시크는 셰미나 카말리의 손을 타고 끌로에 무대에서 부활했습니다. 로맨틱하고 에스닉한 무드로 설명되곤 하는 이 스타일, 맥이 끊긴 적은 없지만 전성기는 1970년대와 2000년대였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는 시에나 밀러와 올슨 자매, 니콜 리치 같은 스타들 덕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요. 화려한 패턴과 러플로 장식된 드레스, 두꺼운 벨트와 스터드 부츠, 히피풍 액세서리 등에 현혹되던 시절입니다.
난도가 낮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해서 스타일링까지 자유로웠다간 그저 산만하고 남루한 옷차림이 되기 일쑤였거든요. 나름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스타일이었지요.
패션계는 지금 하루걸러 다른 과거를 소환 중입니다. 이 현상이 매번 반가운 이유는 그저 ‘재현’에 그치지 않아서죠. 동시대라는 필터를 거쳐 재탄생한 스타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멋과 새로운 멋을 동시에 뿜어냅니다.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죠. 끌로에의 2024년식 보호 시크도 그렇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흐드러진 실루엣, 우리가 알던 보호 시크의 로맨틱함은 그대로였지만 ‘시크’의 역할이 특히 도드라졌어요. 우선 알록달록한 색깔과 화려한 패턴은 아꼈습니다. 대신 레이스와 모슬린, 시폰 등 보디라인이 아스라이 비치는 가벼운 소재가 그 자리를 채웠죠. 컬러도 욕심부리지 않았어요. 네이키드 트렌드를 떠올리는 살색을 비롯한 뉴트럴 컬러, 따스한 파스텔 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도톰한 싸이하이 부츠와 간결한 로고 빅 벨트, 웨지 힐 등 볼드한 액세서리를 동원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였고요.
2024년식 멋은 무대 아래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에나 밀러는 레이스 스커트에 웨지 힐과 가죽 재킷을 짝지었군요. 아마 20년 전이었다면 여기에 프린지 재킷이나 장식이 잔뜩 달린 부츠를 신었을 겁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와 조이 크라비츠는 각각 각 잡힌 트위드 재킷과 캐주얼한 티셔츠로 무드를 합쳤고요.
가장 완벽한 예는 생 로랑 쇼에 참석한 로제의 맥시 드레스 룩입니다. 그윽한 브라운 빛깔의 시폰 소재가 발끝까지 물결치듯 흐르는 모습은 자유로운 동시에 시크했죠. 자, 이제 윤곽이 잡히지 않나요? 2024년식 보호 시크는 화려함보다는 우아함을, 대담함보다는 신중함을 추구합니다. 차분한 컬러감과 과하지 않은 구성이면 되지요.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와 풍성한 장식이 바람 따라 휘날릴 수만 있다면요.
- 포토
- Splash News, GoRunway, Instagram,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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