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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곧 방향성, 김연아 & 신현지

2024.04.01

by 황혜원

    내 마음이 곧 방향성, 김연아 & 신현지

    ‘보그 리더: 2024 우먼 나우’ 행사가 열린 휘겸재.
    ‘토크 나우’의 연사로 참여한 모델 신현지.

    <보그 코리아>는 ‘보그 리더: 2024 우먼 나우’의 일환으로 3월 28일부터 사흘간 북촌에 위치한 한옥 ‘휘겸재’의 봄마당에서 여성 리더 6인을 만났습니다.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와 샤넬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모델 신현지,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박세리와 수많은 불합격 끝에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배우 김민하, 자신을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 우리나라 대표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까지, 커리어와 성취, 고민과 발견, 가치와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던 3일간의 토크 세션, ‘토크 나우’. 이금희 아나운서의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한 그녀들의 길을 잠시나마 따라가보세요.

    포토월 앞에 선 김연아. 뒤편으로 김연아를 모델로 한 ‘보그’ 3월호 표지가 보인다.

    봄비가 촉촉이 내린 3월 28일, 첫 연사로 김연아와 신현지가 나섰습니다.

    김연아는 이날 거듭해서 자신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에 대해 “’저 사람도 똑같지’라는 메시지가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저도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아요”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타인의 삶을 SNS 하나로 관찰할 수 있는 요즘,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해줄 한 문장이었죠.

    올림픽에서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모습이나 무엇이든 “그냥 한다”는 답변 때문에 강심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보이는 것보다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고 털어놓은 것도 일맥상통합니다. ‘없는 미래를 만들어 걱정하거나 주변 상황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담대하다는 평을 받는 그녀지만, 당연히 걱정하고 긴장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거였죠.

    ‘토크 나우’의 연사로 참여한 김연아.
    김연아가 웃으며 대답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 관해 잘 인지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 이야기했습니다. “도전이나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안정적이고 잔잔한 삶을 추구하며, MBTI ‘J형’으로 계획이 흐트러지는 걸 싫어하는 완벽주의자로서 마음 편한 걸 최고로 꼽습니다”라고 자신을 설명했죠. 누군가에게는 재미없어 보이는 삶일지라도 김연아 자신에게는 딱 맞는다고도 덧붙였고요. 김연아는 “제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대로, 뚝심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미래를 모두 예측할 수 없지만, 제가 그리는 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라고 삶의 철학을 이야기했죠.

    그녀의 이야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자신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는 사람이란 점이었습니다. 안정 추구형이든 도전가형이든 자신의 삶을 걸어가는 것이라고요.

    김연아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 봄비가 오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예약한 인원 모두 빠짐없이 참석했다.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일이 잘될 때와 안 될 때의 기복이 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나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있어요. 그 순간에 자신만의 원점을 찾는 방법이 궁금합니다”라고 물었을 때도 비슷한 답변을 했죠. 김연아는 “저도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감정을 겪었어요”라며 “그래도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을 알고 있지 않나요? 저도 다음 올림픽까지 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을 못 잡은 거였어요. 흔들려도 그 길을 가게 될 나 자신을 더 잘 알아서 괴로운 것도 있었던 듯해요. 그래서 흔들려도 되돌아오는 길이 그냥 내 길이다 하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답했죠.

    김연아의 답변에 질문자는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그녀는 “제가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제가 무슨 인생을 안다고…”라며 멋쩍어했습니다. 완벽히 김연아 같은 순간이었죠.

    포토월 앞에 선 신현지.

    김연아의 뒤를 이어 연사로 나선 신현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습니다. 마이크로 심장 소리를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긴장했다는 말과 달리 진솔한 말솜씨로 청중을 사로잡았죠.

    그녀는 “멋있고 스타일리시한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여섯에 어머니가 권유해주셨던 모델 아카데미가 모델이라는 직업으로 이어졌습니다”라며 일명 대치동 8학군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 쪽으로 그렇게 경쟁력이 있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너무 잘했죠. 모델학과 진학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A4용지 3장 분량에 제 각오와 다짐을 적어서 편지를 썼어요”라고 학창 시절을 회상했는데요. 결정적으로 아버지의 지지를 이끌어낸 건, 열여덟에 방송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4>에서 우승하면서부터였다고 밝혔죠.

    ‘토크 나우’의 연사로 참석한 신현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관이 넓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감도 못 잡고 헤매던 고등학생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용을 쓰면서 자신이 디벨롭되는 경험을 했습니다”라고 밝혔죠.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파격적이면서도 다양한 상황에 놓이면서 가치관이 넓어지는 경험의 연속이었고요.

    물론 그녀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일이 잘되는 만큼 드리운 그림자도 길고 깊었죠. “모델 일이라는 것도 일용직이에요. 내가 아니면 다른 모델이 작업을 하게 되는 일이라 매 순간이 다른 모델과 경쟁하는 구조죠”라며 “외국에서 혼자 생활을 하며 경쟁하는 과정 속에서 내면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더라고요. 오디션 탈락으로 슬프고 힘든데도 괜찮다고 넘기면서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미숙했던 것 같아요”라고 털어놓았죠. 그 과정에서 공황장애를 겪은 그녀는 당시를 “모델 신현지가 인간 신현지를 잡아먹었죠”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 신현지 안에 모델도 있고 다른 모습도 있는 건데, 당연했어요. 그 시간을 통해서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너무 연연하지 말자고 결심했죠. 지금은 좀 더 마음 편하게 물 흐르듯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조금은 홀가분한 듯 이야기했죠.

    생애 두 번째 강연이라며 무척 긴장했다고 말하는 신현지.
    질의응답 시간, 유독 커리어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마음을 달리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모델 일을 안 할 때 도자기를 빚는다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라며 스티브 잡스의 ‘커넥팅 더 닷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경험이 점으로 찍혀 먼 훗날 연결되면서 자산이 된다는 것인데요. 쓸모없는 경험은 없기에 실패도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죠. 신현지는 “실패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고 다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나중에 이런 점들이 연결되어 신현지라는 큰 세상이 되지 않을까, 큰 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는 자신을 돌아보고, 물어보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자신의 생각을, 마음을 되돌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고요. 실패가 뼈아플지라도 나라는 그림 중 하나의 점으로 생각하기, 가벼워지는 신현지만의 방식을 따라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포토그래퍼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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