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패션계는 왜 아포가토를 사랑할까?

2024.04.12

by 류가영

    패션계는 왜 아포가토를 사랑할까?

    패션계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의 로맨틱한 만남이 한동안 열렬히 회자된 이유를 돌이켜봤다. 아포가토의 부드러운 풍미를 음미하면서.

    SNS 피드가 온통 케이크, 타르트, 알맞게 구운 먹음직스러운 페이스트리로 가득한 사람이라면 단 두 가지 재료로 만드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이 디저트쯤이야 이미 익숙하게 느낄지 모르겠다. 바로, 아포가토. 이탈리아의 가장 자랑스러운 발명품 두 가지인 에스프레소와 젤라토의 결합으로 만드는 아포가토는 전통적으로 씁쓸한 에스프레소에 바닐라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한 스쿠프 띄워 완성한다. 맛의 성패는 쓴맛과 단맛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에 달려 있다.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아이스크림 생산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아포가토가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진다. 철저하게 ‘이탈리아스러운’ 이 디저트는 당연히 여름에 가장 많이 소비되며 그 시기가 되면 자갈이 깔린 이탈리아 거리 어느 곳에서나 맛볼 수 있다. 물론 아포가토는 어느새 이탈리아 밖에서도 친숙한 디저트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태양 빛으로 가득한 이탈리아 해변에서의 꿈같은 바캉스를 아주 일상적으로 그리워하게 된 것처럼.

    지난해 5월 에밀리오 푸치(Emilio Pucci)는 사진가 샘 유킬리스(Sam Youkilis)와 함께 2024 리조트 컬렉션을 위해 브랜드의 뿌리인 도시 피렌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인스타그램 캠페인을 진행했다. 유킬리스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피렌체의 전통과 상징적인 장소를 담은 사진을 주르르 업로드했는데 그중 특히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포스팅이 있었다. 바로 1932년부터 운영된 유서 깊은 젤라테리아 ‘비볼리(Vivoli)’의 아포가토를 클로즈업해 촬영한 영상이었다. 아포가토를 한 스푼 깊숙이 뜨는 장면에서 젤라토와 에스프레소의 부드러운 조화가 생생히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포스팅에는 17만 개의 ‘좋아요’와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아포가토는 그해 여름, 오랜만에 다시 뜨겁게 사랑받는 디저트로 등극했다. 곧바로 누군가의 댓글은 현실이 되었다. “바로 이거군. 2023년 여름에 사람들이 집에서 제일 많이 만들어 먹을 디저트.”

    비볼리의 아포가토가 지닌 특별한 매력은 정교한 커피 잔에 조심스럽게 담아낸 젤라토 한가운데 에스프레소가 들어갈 작은 우물을 파둔 점이다. 유킬리스의 사진이 업로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연출은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번졌다. 트렌디한 공예가나 디자이너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재치 넘치는 테이블웨어를 선보이는 고하 월드(Gohar World) 역시 이 유행에 그 브랜드만의 방식으로 편승했다. 얄팍한 접시에 가지런히 올린 4개의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컵 한가운데를 고하 월드의 순은 티스푼으로 한 스쿠프 떠낸 뒤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붓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것이다.

    고하 월드의 공동 창립자 나디아 고하(Nadia Gohar)가 이야기했다. “보통 스튜디오 직원끼리 다 함께 점심을 먹곤 하는데 여름엔 근처 식품점에서 사온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나눠 먹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팀원 중 한 명이 아포가토를 먹자고 제안했어요. 나른한 식후에 리프레시로 제격이었죠. 고하 월드에서 판매하는 ‘빈 티스푼’과 ‘빈 아이스티 스푼’이 1인용 사이즈 디저트에 딱 좋은 식기가 돼줬어요. 순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온도도 차갑게 잘 유지됐고요.”

    패션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들 역시 바삐 움직였다. 그해 여름, 아포가토를 메인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일상을 낭만화하는 포스팅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그다음으로 레시피 영상도 바이럴됐다. “아포가토 사진을 보는 순간, 곧바로 피렌체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가만히 보니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패션 인플루언서 소피아 몰렌(Sophia Molen)이 에밀리오 푸치의 아포가토 사진을 언급하며 자신의 스타일리시한 리스본 아파트에서 비볼리 스타일의 아포가토를 만들어보는 틱톡 영상에서 한 말이다.

    패션 브랜드 역시 이런 먹음직스러운 트렌드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매력적인 음식이 빛나는 주얼리와 액세서리 옆에 있을 때 한층 황홀한 광경이 탄생하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앞세운 스타일로 지난해 특히 뜨겁게 사랑받은 브랜드 샌디 리앙(Sandy Liang)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센타(Centá)와 함께 새로운 주얼리와 액세서리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그 결과 말린 콩, 얇게 썬 스쿼시 호박, 조롱박 사이에 은 귀고리와 새틴 스크런치를 듬성듬성 흩뿌린 독특한 비주얼 작업이 탄생하게 됐다.

    사실 음식에 대한 패션계의 애정은 꾸준했다. 2017년 돌체앤가바나는 디 마르티노(Di Martino) 파스타와 협업해 파스타 컬렉션을 선보였고, 프라다는 2014년 밀라노의 전설적인 페이스트리 숍 마르케시(Marchesi)를 인수한 뒤 2019년 런던에 지점을 열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버버리 또한 지난해 런던의 유서 깊은 그리지 스푼 카페(Greasy Spoon Café)를 인수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며 다니엘 리의 단골 식당인 노먼(Norman’s)까지 끌고 들어왔다. 당시 팝업 카페의 공식 이름이었던 ‘노먼스앳버버리’로 태그된 게시물에는 코티지 파이와 피시 앤 칩스, 잉글리시 트리플 등 영국적인 메뉴가 줄줄이 등장했다. ‘픽앤믹스(Pick-and-Mix)’라는 과일 젤리를 제작한 더 로우처럼 식품 제작에 직접 나서는 패션 브랜드도 더러 있었다. 이들의 행보는 이제 음식도 럭셔리의 일종이라는 선언이었다. 매일매일 맛볼 수 있는 럭셔리 말이다.

    단순하지만 창의적인 조합을 앞세운 아포가토의 영향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후 자신만의 디저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레시피 개발자이자 스튜디오 아 라 카르테(Studio A La Cart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이애나 옌(Diana Yen)은 최근 전통적인 에스프레소 대신 말차를 활용한 아포가토를 선보였다. 비록 비볼리나 고하 월드와 엇비슷한 테크닉을 사용하긴 했지만 맛의 조화 측면에서는 더 낫다는 것이 옌의 주장이다. “제 아포가토에서는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빨리 녹지 않아요. 비주얼도 그렇고 맛도 평범한 아포가토보다 훨씬 훌륭하죠. 사실 에스프레소를 아이스크림에 부으면 그건 그냥 우유가 들어간 커피일 뿐이잖아요.” 옌의 팁을 하나 공유하자면 가운데를 부드럽게 파낸 아이스크림을 접시에 담은 상태로 얼린 뒤 먹기 바로 직전에 뜨거운 음료를 부어 음미하라는 것. 물론 옌은 자신이 말차 아포가토를 만들게 된 데는 에밀리오 푸치의 아포가토 사진이 미친 영향이 없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 캠페인 사진 이후 한때 제가 알던 모든 사람이 다 이탈리아에 가 있던 시절이 있었어요. 죄다 그라니타 아니면 아포가토를 찍어 올렸죠. 방문하는 카페마다 아는 사람과 끝없이 마주치는 여행을 계획하느니 차라리 쾌적한 집에서 나만의 아포가토를 만들어보는 쪽에 더 구미가 당기더라고요.”

    지난여름 유럽 대륙을 휩쓴 아포가토의 높은 인기는 이것이 만들기 아주 간편한 디저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옌이 덧붙였다. “그 유행에 힘입어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아포가토 레시피에 도전했죠.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엄청난 노고와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지극히 쿨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여름을 즐긴 거라 생각해요. 이탈리아와 관련된 모든 것은 패셔너블한 구석이 있지 않나요? 특히 여름엔 더 ‘핫’해지죠. 이탈리아 사람들은 늘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알고 있어요.” 한동안 아포가토의 세계적인 인기는 잠잠하게나마 계속됐다. 디너 파티의 디저트로 우아한 쿠프 글라스에 담겨 나오든, 해피 아워에 일상의 재빠른 활력소로 즐기는 것이든, 아포가토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이번 여름은 과연 어떨까? 여전히 아포가토일까? 아니면 생각도 못한 또 다른 디저트가 그 위상을 새롭게 차지할까? (VL)

      ANNACHIARA BARRETTO-GRIGNOLI
      일러스트
      SARAH MAFFÉÏ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