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원주에 불시착한 우고 론디노네

2024.04.19

by 류가영

    원주에 불시착한 우고 론디노네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대표작인 알록달록한 수도승이 뮤지엄 산에 낙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 원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봄꽃이 서울보다 다소 느릿느릿 피고 있는 그곳에 생각을 읽어낼 수 없는 론디노네의 조각 ‘수녀와 수도승(nuns+monks)’ 연작이 다채로운 광휘를 뽐내며 돌바닥 위에 우뚝 서 있었다(나는 그들이 갤러리가 아니라 산이 이루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매일 자연을 볼 수 있고, 도시의 소음이 없는 뮤지엄 산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아주 이상적이었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지난 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우고 론디노네는 말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전시하기에 과연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었다.

    야외 스톤가든에서 바라본 우고 론디노네 <BURN TO SHINE> 설치 전경. 사진 안천호 ©뮤지엄 산

    지금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BURN TO SHINE>에는 그의 작품 약 40점이 전시장 안팎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한 결과를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조형하는 작가인 만큼 적절한 공간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작품이 배치되어 전시장 곳곳을 배회할 때마다 기대감이 증폭됐다.

    1964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우고 론디노네는 파리 퐁피두 센터와 팔레 드 도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로마 현대미술관과 프랑크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 뉴욕 스톰 킹 아트 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2007년에는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 국가관을 채우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꾸준히 중시해온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이번 전시에서도 작품과 주변 환경, 작품과 나, 예술과 삶을 연결 지을 때 감상의 깊이가 더해졌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알록달록한 창문 연작과 거대한 유리 시계는 전시장 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빛에 따라 다른 색채와 온도로 빛나며 흥미를 부추겼다. 이어지는 또 다른 전시장. 론디노네가 팬데믹 시기에 목격한 서로 다른 하늘과 푸른색 유리로 바다를 형상화한 11마리의 말 조각이 묘한 풍경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 사이를 오가는 관객을 바라보니 삶과 예술은 정말 한 끗 차이였다. 이 외에도 3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 1,000여 명과 협업해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해와 달의 풍경으로 수놓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sun)’(2013-현재)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moon)’(2020-현재) 역시 관계를 통해 창조된 예술이었다.

    우고 론디노네,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 2021, painted bronze, 400×213×140.8cm. 사진 안천호 ©뮤지엄 산

    론디노네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다는 백남준관에는 높이가 4m에 이르는 작품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red monk)’이 들어섰다. 작가의 말처럼 노란 파주석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둥근 창으로 내리쬐는 자연광이 론디노네의 조각 작품과 어우러지며 엄숙한 위용을 뽐냈다. 작품을 360도로 감상하며 공간을 빙빙 배회하고 보니 조각을 통해 “바깥세상과 내면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아주 사적이고 명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유도하고자 했다”는 론디노네의 이야기가 피부로 와닿았다.

    론디노네의 새로운 흥미를 엿볼 수 있는 영상 작품 ‘번 투 샤인(burn to shine)’도 만날 수 있었다. 팬데믹 시기에 프랑스계 모로코인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와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비트가 시작되고, 12명의 타악기 연주자와 18명의 남녀 무용가가 함께 신명 나게 벌이는 한판의 춤은 변화와 부활, 새 생명의 기운을 전하며 삶을 긍정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명 ‘burn to shine’은 불교 경전으로부터 탄생했다. ‘밝게 빛나기 위해 타오르다’라는 사상을 중심으로 론디노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순환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표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를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그의 작품으로부터 쉽게 감명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자연 한가운데 놓인 그의 수도승을 보고 왠지 모를 경건함을 느끼고, 그가 원주의 아이들과 함께 그린 그림을 보며 밝은 미래를 예감하고, 그의 영상 작품이 재생되는 암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추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작품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 산에서 9월 18일까지 펼쳐지는 우고 론디노네의 개인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열려 있다.

      사진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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