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가 꾸민 방_1 #보그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많은 패션 브랜드가 리빙 컬렉션을 선보이며 또 다른 꿈을 내비쳤다. 오래 지켜온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클래식한 디자인부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선입견을 깬 도전까지 면면이 흥미롭다.
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의 전시장 팔라초 산 페델레(Palazzo San Fedele)를 방문했을 때 잠시 멈춰 섰다. 르 코르뷔지에의 전설적인 디자인과 보테가 베네타의 감각이 만난 거대한 설치물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까시나(Cassina) 및 르 코르뷔지에 재단(Fondation Le Corbusier)과 파트너십을 맺고 설치 작품 ‘온 더 록스(On the Rocks)’를 선보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디렉팅한 ‘온 더 록스’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르 코르뷔지에 디자인의 아이콘이자 까시나 목공방의 정수를 보여주는 LC14 타부레 카바농(LC14 Tabouret Cabanon) 스툴이 주인공이다. LC14 타부레 카바농 스툴은 르 코르뷔지에의 미니멀 라이프를 상징한다. 그는 프랑스 코트다쥐르의 로크브륀카프마르탱 마을에 3.66×3.66㎡ 규모의 오두막 ‘카바농(Cabanon)’을 짓고 살았다. 그 안에는 필수 가구만 자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근 해변에서 발견한 위스키 박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LC14 타부레 카바농이다. ‘온 더 록스’는 보테가 베네타의 2024 겨울 쇼 시팅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는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가죽 공예가 돋보이는 리미티드 에디션이 함께했다. 작품 가운데 레더 에디션 60개와 우드 에디션 100개는 구매 가능하다.
DOLCE&GABBANA
젠지(Gen Z)가 아니라 ‘젠디(Gen D)’다. 돌체앤가바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젠디’를 열었다. 이는 디자인과 가구 제작 분야의 젊은 인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에는 디자이너의 문화적 이원성을 강조했지만 올해는 젊은 디자이너의 개성과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연결에 집중했다. 디자이너들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누비며 도기, 유리 모자이크, 역사적인 장인 공방, 금속 에나멜링, 제련, 목공예를 경험했으며, 자신의 작품 구상안을 장인과 소통하며 제작해갔다. 올해 ‘젠디’에는 40세 미만의 디자이너 11명, 총 10팀이 선정됐다. 현장에서 만난 디자이너 김병섭은 장인들과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한국 전통 자개 기술을 어떻게 모노크롬 형태로 발전시켰는지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젠디’ 프로젝트는 문화적 연결을 중시한다. 전시장에는 여러 국가와 인종으로 넘쳤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비사 엠조(Thabisa Mjo)와 중국의 밍위쉬(Mingyu Xu)의 작품은 디자이너들의 모국과 이탈리아가 나누어 생산한다.
RALPH LAUREN
랄프 로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수집가다. 그의 차고에는 1938년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 쿠페, 1929년 벤틀리 블로워, 1955년 메르세데스-벤츠 300SL 걸윙 쿠페 등이 주차돼 있다. “목적을 가지고 만든 물건, 특히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랄프 로렌을 떠올리며 랄프 로렌 홈이 2024 가을 ‘모던 드라이버(Modern Driver)’ 컬렉션을 선보였다. 밀라노 도심에 자리한 랄프 로렌 팔라초에 들어서니 그가 애정한 자동차 사진을 비롯해 수집품이 곳곳에 자리했다. 물론 중심은 ‘모던 드라이버’ 컬렉션이다. 마호가니, 폴리싱 스테인리스 스틸, 카본 파이버 등의 소재가 주를 이루며, 모던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RL-CF1 체어로, 랄프 로렌이 소유한 맥라렌 F1 경주용 차에서 기인했다. 이 의자에는 포뮬러 1 경주용 차와 같은 하이테크 섬유를 썼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캔틸레버는 손으로 눌러 만든 71층의 조직 탄소로 돼 있다. 로즈우드 선반이 있는 정사각형과 원형 실루엣의 사이드 테이블 또한 탄소섬유를 활용한 제품이다. 컬렉션은 럭셔리 가구 제조업체 하워스 라이프스타일 디자인(Haworth Lifestyle Design)과 함께했는데,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 주문 제작형 가구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HERMÈS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장은 ‘대지(Ground, the Earth)’ 컨셉으로 꾸몄다. 벽돌, 석재, 슬레이트, 목재, 압착한 흙 등 대지를 구성하는 원재료를 기하학무늬로 바닥에 채워 넣었다. 무엇보다 신구가 결합된 전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라는 주제 아래 오래전 만들어진 에르메스의 클래식 제품과 현대 제품을 짝지어 놓았다. 수십 년씩 차이 나고 기능도 다르지만 서로 묘하게 닮아 있었다. 새롭게 출시된 오브제 중에서 디아파종 데르메스(Diapason d’Hermès) 라운지 체어는 망치로 두드린 알루미늄 프레임에 가죽 소재를 입혔으며, 더비(Derby) 바스켓과 버킷은 에르메스의 마구 제작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 트레사주 에퀘스트르(Tressages Equestres) 디너용 식기 세트는 27피스의 화이트 포슬린으로 어느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
LOEWE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여덟 번째 참여하는 로에베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과 인연을 맺고 있는 작가 24명이 작업한 조명을 선보였다. 팔라초 치테리오(Palazzo Citterio)에서 열린 ‘로에베 램프(Loewe Lamps)’ 전시다. 램프는 우선 소재부터 다양했다. 대나무, 자작나무, 말총, 종이, 옻, 유리, 가죽, 세라믹 등의 재료가 조합됐다. 형태는 조롱박부터 미생물까지 램프의 한계를 뛰어넘는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2019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옻칠 공예가 이시즈카 겐타(Genta Ishizuka)는 조명을 여러 겹 옻칠한 뒤 살짝 벗겨진 부분에 내부의 빛을 투과시켰다.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정다혜 작가는 주특기인 말총을 사용했다. 말총은 갓을 만들 때 쓰던 말의 갈기나 꼬리털이다. ‘시간을 엮는 작가’라 불리는 그답게 말총 하나하나를 엮어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 램프는 벽에 빗살무늬 그림자를 그렸다. 사진 속 조롱박 모양 조명은 이영순 작가가 종이를 비비고 꼬아 완성하는 지승공예 기법을 활용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자가 살짝 보이는데, 이는 한문 서적을 재활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PRADA
연간 다학제 심포지엄 ‘프라다 프레임(Prada Frames)’이 올해 3주년을 맞았다. 다학제란 인문·사회·자연과학에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넘나드는 활동을 의미한다.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는 심포지엄이 열린 장소는 밀라노의 바가티 발세키 박물관(Bagatti Valsecchi Museum). 15~16세기 오브제로 채운 19세기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박물관 곳곳에서 다양한 대화와 강연, 토론이 이어졌다. ‘Being Home’이라는 주제로, 생활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물었다. 이를테면 집이 단순히 쉬는 곳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고 서비스 인프라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토론했다. 디자인 및 연구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가 큐레이션한 심포지엄에는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가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 인공지능 연구원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 등 여러 전문가가 참여했다. 프라다가 2022년에 진행한 첫 번째 심포지엄 ‘On Forest’는 목재 산업의 자본 논리 등을 다뤘고, 홍콩과 밀라노에서 순차적으로 진행한 두 번째 심포지엄 ‘머티어리얼스 인 플럭스(Materials in Flux)’는 물질의 윤리적, 미적 함의에 초점을 맞췄다.
MIU MIU
미우미우가 밀라노 치르콜로 필로로지코(Circolo Filologico)에서 첫 번째 문학 클럽 ‘라이팅 라이프(Writing Life)’를 선보였다. 이는 예술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미우미우가 기획한 문화 체험 시리즈 중 하나다. 문학 클럽은 이탈리아 작가 올가 캄포프레다(Olga Campofreda)가 큐레이션을 맡아 유럽의 유서 깊은 문학 살롱을 구현하고자 했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논의했다. 첫 회는 페미니스트 작가 알바 데 체스페데스(Alba de Céspedes)와 시빌라 알레라모(Sibilla Aleramo)의 작품을 재조명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들 작품 <금지된 공책(Fobidden Notebook)>과 <여성(A Woman)>을 선정한 이유를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 정체성에 관한 논쟁을 다루고 있으며, 이런 명작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곳을 찾은 날은 4월 17일이었다. 배우이자 모델 티나 쿠나키(Tina Kunakey)가 1950년대에 발간한 <금지된 공책>의 주요 문구를 낭독했다. 그녀가 능숙한 무성영화 변사처럼 낭독해 흥미롭게 몰입했다. 또한 퓰리처상 수상자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이탈리아 문학상인 스트레가상 파이널리스트 클라우디아 두라스탄티(Claudia Durastanti), 영화감독 겸 작가 실라 헤티(Sheila Heti)가 함께 여성 문학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튿날 역시 낭독과 토론이 이어졌고 시 낭송과 라이브 음악 공연이 함께했다.
GUCCI
몬테 나폴레오네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탈리아 디자인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가 선보인 ‘디자인 앙코라(Design Ancora)’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 5점을 조명했다. 난다 비고(Nanda Vigo)의 ‘스토렛(Storet)’(1994), 가에 아울렌티와 피에로 카스틸리오니(Gae Aulenti and Piero Castiglioni)의 ‘파롤라(Parola)’(1980),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의 ‘레 무라(Le Mura)’(1972-리에디션 2022), 토비아 스카르파(Tobia Scarpa)의 ‘오파키(Opachi)’(1960), 니콜로 카스텔리니 발디세라(Nicolò Castellini Baldissera)의 ‘클레시드라 러그(Clessidra Rug)’(2024)가 그것이다. 이들 오브제는 모두 사바토 데 사르노가 구찌의 새로운 챕터를 기념하며 탄생시킨 로소 앙코라(Rosso Ancora) 색상이다. 이들을 둘러보는 과정은 녹색 동굴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오브제가 한 번에 펼쳐지지 않고 곡선의 녹색 벽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선물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스페인 건축가 기예르모 산토마(Guillermo Santomà)는 “모든 오브제를 한데 모았다면 하나의 거실 같겠지만, 사용 목적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일종의 림보를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디자인 거장에 대한 헌사와 완벽한 재해석, 비밀스럽게 선보이는 전시 구성까지 구찌의 다음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기대된다.
SAINT LAURENT
생 로랑 리브 드와(Saint Laurent Rive Droite)가 지오 폰티 아카이브(Gio Ponti Archives) 및 아날라 & 아르만도 플란차르트 파운데이션(Fundación Anala y Armando Planchart)과 협업했다. 그 결과물인 플레이트 컬렉션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의 지휘 아래 산 심플리치아노(San Simpliciano) 회랑에서 선보였다. 컬렉션에 얽힌 옛이야기부터 알아야 한다. 1953년 베네수엘라에서 아날라와 아르만도 플란차르트는 전설의 건축가 지오 폰티에게 카라카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아방가르드한 빌라를 의뢰했다. 지오 폰티는 ‘언덕에 앉은 나비처럼 가볍고 우아한 집’을 설계했고, 피렌체의 제조업체 지노리 1735(Ginori 1735)를 비롯해 이탈리아 장인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당시 문자 ‘A’와 태양, 초승달, 북극성 등을 담은 도자기 컬렉션을 완성했다. 생 로랑 리브 드와는 지노리 1735와 협력해 1957년 지오 폰티가 디자인한 ‘빌라 플란차르트 세그나포스토(Villa Planchart Segnaposto)’ 컬렉션의 오리지널 플레이트 12개를 재출시했다.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이 플레이트에는 지노리 1735의 장인이 그림을 손수 그려 넣었다.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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