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빛나, 최고은, 노혜리! 베니스에서 만날 가장 활기찬 조합
2026년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 주인공이 한자리에 모였다. 예술감독 최빛나와 최고은, 노혜리 작가. 지난 30년간 한국관을 대표한 이들 중 가장 젊고 활기찬 조합이다.

팀 베니스(Team Venice)! 한동안 이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지난 4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총괄할 예술감독으로 최빛나 큐레이터가 선정되었음을 공식 발표했다.
참여 작가는 1980년대생 여성 작가 최고은과 노혜리다. 세 사람이 <보그>와 만난 건 베니스로 5박 6일간의 첫 번째 ‘합숙 훈련’을 떠나기 꼭 일주일 전이었다. 비엔날레가 시작되는 내년 5월 9일까지 아직 수개월의 시간이 남은 만큼 구체적인 그림은 계속 바뀌고 있지만 이번 전시가 전에 없던 ‘국가 기념비 프로젝트’가 될 거란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특정 작가의 작업을 소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들은 국가대표 작가, 국가대표 감독의 타이틀 대신 국가를 대표하는 프로젝트의 협력자로서 함께한다. 놀랍게도 셋은 이번 프로젝트 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각자 사는 곳도 다르다. 노혜리는 뉴욕, 최고은은 서울을 주무대로 활동해왔다. 최빛나는 최근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까지 네덜란드의 공공 미술 기관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15년간 일했다. “서로의 작업을 알고 팔로업하고는 있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어요. 셋 다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알게 됐죠.” 소위 말하는 ‘알아가는 단계’지만 호흡은 척척 맞는다. 환상의 트라이앵글, 완전한 밸런스다.
이번 전시의 가제는 ‘해방 공간: 요새 / 둥지’. 해방 공간은 광복 이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의 사회 정치적 혼란기를 뜻하는 용어로, 당시 한국 미술계는 좌우익의 노선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이념의 전장으로서 여러 미술 단체가 설립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빛나는 연장선에서 오늘날의 한국과 분열된 시대를 바라본다. “이건 곧 해방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는 거예요. 동시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 아직 해방의 구호를 외치는 나라나 점령된 국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팔레스타인, 하와이가 대표적인 예죠. 한국에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를 ‘해방 시기’가 아니라 ‘해방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파빌리온 전체를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사용하는 데 적절한 타이틀이 될 것 같아요.”

한창 심사가 진행되던 올 초, 한국의 상황 또한 혼돈 그 자체였다.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성난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 7mm의 눈이 내린 어느 새벽, 한남동 관저 앞 도로에서 밤을 지새우던 은박 전사 ‘키세스단’은 지난겨울의 상징적 이미지로 남아 있다. “계엄에 관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계엄 상황에 자극을 받아 촉발된 건 맞아요. 은박 담요를 두르고 눈을 맞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반대 진영에서는 그 이미지를 전용해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책 표지로 사용했죠. 어느 정도 추상성을 갖지만 구체성이 있는 이미지를 공유할 때 벌어지는 혼돈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서로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면서도 사실 뿌리는 같다는, 서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대적이고 방어적인 ‘요새’와 보듬고 양육하는 ‘둥지’는 둘 다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상반된 이데올로기처럼 서로 다른 감각이 대치하는 곳이다. 이처럼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은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뿐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삶에 대입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30년 전 자르디니 공원의 마지막 국가관으로 문을 연 한국관은 이제 이들의 계획에 따라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연대와 화합의 기념비적 공간이 될 예정이다. 내년 5월 9일부터 11월 21일까지 비엔날레 기간 동안 최고은, 노혜리 두 작가는 각각 ‘요새’와 ‘둥지’를 구축한다. 한국 예술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한 건 1986년이지만 꽤 오랫동안 한국은 독립된 국가관을 갖지 못했다. 한국관 건립 논의가 본격화된 건 1993년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마땅한 자리를 놓고 씨름한 끝에 건축가들은 일본관과 독일관 사이의 관리 사무소와 화장실로 쓰이던 좁은 부지와 기존 벽돌 건물을 활용해 정육면체와 직육면체, 반원형의 구조와 형태를 달리한 세 곳의 전시장을 꾸렸다. 기존 지형과 수목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내부는 보통의 화이트 큐브와 달리 장애물이 많고 주위엔 큰 나무도 무성하다. 세 사람은 한국관의 특수한 환경과 구조를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하면서 한눈에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기묘한 ‘요새 / 둥지’를 완성해나갈 것이다.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이데올로기의 대치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처럼, 두 작가가 설계한 상반된 공간의 개념이 한국관 안팎을 아우르지만, 입구와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간 관람객이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건 안도 밖도,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늘 존재해왔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그 자리에 군집을 이루는 걸 상상하고 있어요. 유령 같으면서도 뭔가 공격적인 부분도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얼마만큼 개입할 수 있을지는 베니스에 가봐야 알아요. 건물을 지을 때부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충분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요새’를 쌓는 최고은은 도시의 바닥 아래, 건물 내부를 지나다니는 배관 파이프를 모티브로 일련의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공간의 이면에서 작동되는 파이프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기존 구조를 뒤집고 상이한 감각을 교환한다. 최빛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는 ‘맥(맥락) 놀이의 선수’다. 하드 머티어리얼을 뜯고 자르고 구부려 익숙한 풍경 속에 재배치하는 최고은이 가학적인 힘으로 물성을 굴복시킨다면, ‘둥지’를 만드는 노혜리는 주어진 사물의 쓸모를 발견하고 정성껏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DIY의 마술사다. “한국관은 주변 환경 때문에 건물의 블루 프린트가 결정된 측면이 있는 만큼 그런 블루 프린트를 좀 더 강조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베어링(Bearing)도 거기에서 출발한 아이디어 중 하나고요.” 베어링은 하중을 받으며 회전하거나 왕복운동을 하는 축을 일정한 위치에서 지지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는 기계 부품이다. “베어링은 기계장치기도 하지만 베어(Bear)는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아이를 낳는 걸 ‘베어 차일드(Bear Child)’라 하기도 하고, 무게를 감당하거나 견딘다는 뜻도 있죠. 그런 부분을 복합적으로 고민하는 중입니다.”

1995년 한국관이 개관한 뒤로 여러 예술가들이 이 공간의 구조적, 공간적, 장소적 특성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이며 일부를 변형했지만, 한국관의 기존 이미지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들은 이 독특하고 사연 많은 공간을 경험의 장소로 환기하며, 연결과 연대에 대한 사유와 회복력을 감각하는 기념비로 세우고자 한다. 국가 기념비 프로젝트는 국가주의에 대한 재고이기도 하다. “하와이어로 ‘알로하 아이나(Aloha ʻĀina)’는 ‘국토 사랑’이에요. 이 땅과 바다를 소중히 여기자는 건데 거기에는 내셔널리즘이 있어요. 보통은 국가주의를 경계하죠. 유럽에서는 실제로 내셔널리즘이 극우화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이기도 했던 최빛나는 1970년대부터 전개된 ‘하와이 선주민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꾸리면서 자신이 태어난 땅, 한국이라는 국가의 의미와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기념비 프로젝트는 현시대의 분열과 혼란을 역동적이고 포용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예술적 방식이다. 비엔날레 공식 개막일 다음 날인 5월 10일은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코요 쿠오(Koyo Kouoh)의 사망 1주기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였던 코요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발표를 열흘 앞두고 암으로 별세했다. 기념비에는 애도와 추모의 의미도 있는 만큼 이 공간에서 공명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사실 전 아직도 얼떨떨해요.” 노혜리는 한국관 방문이 처음이다. “아마 베니스에 다녀오고 나면 많은 부분이 바뀔 수도 있겠죠. 하지만 셋의 만남이 거듭되고 공유하는 횟수가 늘수록 프로세스를 함께하는 지금 이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편안하고 든든하다는 노혜리의 말처럼 셋은 확실히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이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혜리는 최빛나가 김성환 작가와 함께 카스코에서 진행했던 한 프로젝트에서 착안해 ‘예술 근육 강화 훈련’이라는 모임을 진행했다. 2025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인 그가 머물던 작업실은 이전에 최고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잘 맞는다’는 표현보단 지금 저에게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유연함과 지혜를 알려주는 동료들이요.” 최고은의 말을 듣던 최빛나는 “갑자기 <오즈의 마법사>가 떠오른다”며 웃는다. 처음 보는 노란 길을 따라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며 서로를 완성시키는 사자와 허수아비, 양철 로봇··· 다섯 편의 글과 여섯 편의 시, 30점의 드로잉을 모은 김성환의 책 <말 아님 노래>에서 최빛나는 ‘서두르지 않는 노력’이라는 글을 썼다. 부제는 ‘죽음의 리허설’이다. 세 사람의 만남이 어떤 씨앗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먼 길을 가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체력. 부디 건투를 빈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이미혜(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이우정
- 스타일리스트
- 송선민
- 헤어
- 오지혜
- 메이크업
- 오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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