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앤코가 역사로 현대를 읽는 법
티파니앤코는 하우스의 유산과 현대적 감각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아이코닉한 것을 연구하고 그 정서적 힘을 이해하며,
새로운 디자인에 반영하는 정신은 2026 블루 북 컬렉션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전통이 강할수록 변화가 느리지만, 티파니앤코(Tiffany&Co.)는 그 반대로 움직인다. 시대감각을 빠르게 흡수하고, 그것을 하이 주얼리라는 느린 영역에 반영한다. 그리고 이 속도의 차이가 곧 정체성의 차이가 된다. 뉴욕에서 시작된 티파니앤코는 여전히 도시의 빛을 닮았지만, 이제 그 빛은 더 깊고, 더 개인적이며, 무엇보다 더 희귀해졌다. 올해 하이 주얼리 ‘블루 북’ 이벤트는 그 방향을 분명히 한다. 보석의 찬란한 눈부심만큼 기억에 남는 것은 구조와 균형,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밀도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브랜드에 큰 영감을 주는 전설적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 2026 티파니앤코 하우스는 쟌 슐럼버제의 유산을 다시 호출했다. 자연에서 비롯된 유기적 곡선, 예상치 못한 색 조합, 그리고 장식이 아닌 ‘조형’으로서의 주얼리. 그의 작업은 단순히 과거의 아이콘이 아니라, 지금도 티파니앤코가 하이 주얼리를 해석하는 문법이 된다.
티파니앤코는 오랫동안 ‘접근 가능한 럭셔리’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유명한 블루 박스는 꿈의 상자지만 동시에 일상에 존재하는 브랜드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 주얼리 라인에 들어서는 순간, 그 서사는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 티파니앤코는 더 이상 친근한 브랜드가 아니다. 오히려 까르띠에나 반클리프 아펠 같은 전통 하이 주얼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적 미학으로 재정의된 권위를 제시한다. 유럽 왕실의 역사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현대적 여성성과 독립성, 그리고 도시적 감각이다!

이번 컬렉션은 컷과 세팅의 정교함, 무엇보다 ‘보이는 방식’에 대한 집착과 쟌 슐럼버제가 남긴 유산이 핵심이었다. 이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착용자의 움직임과 감정까지 고려한 오브제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이 시대에 하이 주얼리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일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확실한 가치’로 회귀한다. 예술품처럼 유일하고,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퇴색하지 않으며,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을 가장 정교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 또한 패션이 점점 더 빠르고 가벼워질수록, 그 반대편에서 무게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오브제가 더 강한 존재감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하이 주얼리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또 하나 재밌는 건 요즘 주얼리 하우스가 하이 주얼리 라인 확장에 그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진귀한 로 스톤(Raw Stone)을 하이 주얼리 이벤트에서 고객에게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투자가치나 나만의 스타일을 원하는 고객의 구매가 점차 늘고 있다.
파크 애비뉴 아머리(Park Avenue Armory, 역사적인 무기고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개조했다)에서 열린 갈라 디너 전 프레젠테이션은 맨해튼 5번가의 랜드마크에서 진행됐다. 알록달록한 야생화와 들풀로 가득 채운 도심 속 정원은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슐럼버제의 유산이 모티브가 된 이번 컬렉션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컨셉. 물론 슐럼버제의 작업은 언제나 자연에서 출발했지만, 결코 자연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꽃을 꽃으로 만들지 않았고, 조개를 조개로 남겨두지 않았다. 대신 그것들을 낯설고도 정교한 구조로 재구성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바로 이 ‘변환의 감각’이다.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사유하고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시선. 그리고 2026년의 티파니앤코 역시 이 유산을 단순히 계승하지 않았다. 주얼리 및 예술 감독 나탈리 베르데유(Nathalie Verdeille)는 오히려 좀 더 밀도 높은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스톤 선택에서부터 세팅의 긴장감, 완성된 주얼리가 몸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등. 과거가 레퍼런스라면, 지금은 구조와 형태가 메시지가 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티파니앤코의 정체성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유럽 하이 주얼러 대부분이 역사와 왕실의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면, 슐럼버제의 유산은 개인의 감각과 현대적 미학을 중심에 둔다.
하지만 티파니앤코의 뉴 하이 주얼리는 단순히 과거만 재현하는 컬렉션이 아니다. 슐럼버제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지금이라는 시대를 다시 정의하는 시도에 가깝다. 형태는 바뀌어도, 그 안에 담긴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야말로 티파니앤코를 여전히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나탈리 베르데유가 완성한 주얼리를 만나기 전 나는 먼저 쟌 슐럼버제의 아름다운 아카이브 컬렉션을 충분히 감상했다. 그런데 티파니앤코의 이번 하이 주얼리를 이해하려면, 쟌 슐럼버제라는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완성시킨 또 하나의 존재, 레이첼 램버트 ‘버니’ 멜론(Rachel Lambert ‘Bunny’ Mellon, 버니 멜론)을 함께 봐야 한다. 디자이너와 뮤즈라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 이 둘은 하나의 미학적 세계를 공동으로 구축한 동반자에 가까웠다.
미국 버지니아주 어퍼빌에서 슐럼버제의 뮤즈 버니 멜론이 직접 가꾸던, 소박하지만 섬세한 ‘오크 스프링(Oak Spring)’ 농장을 되살린 공간에서 형용할 수 없는 광채를 뿜어내던 버니 멜론의 아카이브는 슐럼버제가 그녀를 위해 완성한 보석들. 버니 멜론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다. 슐럼버제의 가장 뛰어난 디자인을 대부분 소장할 정도로 티파니앤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백악관 장미 정원을 디자인할 정도로 뛰어난 미학을 지녔던 그녀. 그런 그녀는 취향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취향을 ‘선별하고 정제하는’ 인물이었다. 자연에 대한 집요할 만큼 섬세한 감각, 과시보다 절제를 선택하는 태도, 그리고 눈에 띄지 않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
버니 멜론의 이 모든 것이 슐럼버제의 작업에 영감을 주었고, 이번 블루 북 컬렉션 ‘히든 가든(Hidden Garden)’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슐럼버제의 보석은 자연이라는 모티브 속에서 더 빛을 발하곤 했다. 꽃은 더 단단해졌고, 해양 생물은 더 낯설어졌으며, 색은 더 과감해졌다. 버니 멜론이 사랑한 정원처럼 그의 주얼리 역시 ‘계획된 자연’이었다. 화려하지만 결코 소란스럽지 않은 구성. 이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영향의 방향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슐럼버제가 형태를 만들었다면, 버니 멜론은 그 형태가 머물러야 할 ‘세계’를 제공했다. 그녀의 라이프스타일, 공간, 그리고 자연을 다루는 방식은 주얼리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하나의 태도로 읽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특정 아이콘이 아니라 티파니앤코 하이 주얼리의 근간을 이루는 하나의 감각이 탄생한 것. 이 모든 것은 지금까지도 티파니앤코의 하이 주얼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축으로 남아 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담은 히든 가든은 버니 멜론과 슐럼버제의 예술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연을 조형적인 실루엣으로 풀어낸 컬렉션. 먼저 자연의 순환이 서사의 흐름을 이끄는 가운데 골드와 플래티넘에 진귀한 유색 스톤을 활용하고 정제된 기하학 구조를 통해 유기적 성장과 생동감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컬렉션을 완성한 아홉 가지 테마는 ‘버터플라이(Butterfly)’ ‘모나크(Monarch)’ ‘버드 온 어 락(Bird on a Rock)’ ‘파라다이스 버드(Paradise Bird)’ ‘패럿(Parrot)’ ‘비(Bee)’ ‘자스민(Jasmine)’ ‘마거리트(Maguerite)’ ‘블룸(Bloom)’으로 전개되는 ‘플로럴’ ‘트윈 버드(Twin Bud)’ 그리고 ‘팜(Palm)’.

먼저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는 추상적인 나비의 형상을 구현하고, 오벌 컷 화이트 다이아몬드는 나비의 가벼움을 표현했다. 변형과 재생이 컬렉션의 핵심인 만큼 일부 펜던트는 브로치로 변형해 착용 가능하며, 하우스가 오랜 시간 이어온 변형 가능한 디자인의 전통을 보여준다. 두 번째 모나크는 ‘모나크 버터플라이(Monarch Butterfly)’가 세팅된 슐럼버제의 유서 깊은 목걸이에서 영감을 받았다. 뒤엉킨 덩굴과 조형적인 잎사귀는 수작업으로 완성된 플래티넘과 18K 옐로 골드, 파베 다이아몬드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했다. 하우스의 가장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다시 한번 생동감 있게 재현한 버드 온 어 락 목걸이는 산타 마리아 컬러의 쿠션 컷 아쿠아마린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으로 커스텀 컷 크리소프레이즈 비즈의 풍성한 초록빛이 아쿠아마린의 깊고 선명한 블루를 한층 더 강조한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극락조 모티브의 파라다이스 버드 브로치. 수많은 꽃 속에서도 한눈에 시선을 끈 건, 태곳적 느낌을 그대로 살린 오팔의 형태와 오묘한 컬러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컬렉션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 가장 먼저 팔린 아이템도 바로 이 브로치였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진귀한 멕시코산 오팔 브로치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상상하는 사이 숨바꼭질하듯 꽃 속에 파묻힌 브로치를 찾아가는 여정은 하우스가 줄곧 내세우는 ‘새’의 서사를 다이내믹하게 이어가기에 충분했다. 다섯 번째 패럿은 1960년대 선보인 앵무새 브로치에서 착안했다. 블루 퍼플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회화적 팔레트로 표현된 파요네 에나멜과 조화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벌 역시 슐럼버제의 아이코닉한 ‘투 비즈 링’을 재해석했다.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정원 공간과 가장 잘 매치된 주제는 역시 플로럴 모티브의 자스민과 마거리트, 블룸. 역시 1960년 초 발표된 슐럼버제 디자인을 정교한 플래티넘 브레이딩과 격자 모티브로 구현하는가 하면 핑크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로 꽃의 형태를 대담하게 표현한 마거리트와 꽃이 피기 직전 순간을 포착한 블룸도 특별한 매력을 뽐냈다. 또 두 개의 에메랄드 꽃봉오리를 정교하게 움직이는 플래티넘 덩굴로 재해석한 트윈 버드 귀고리는 잠비아산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져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지막 팜은 모잠비크산 오벌형 루비를 통해 봄 컬렉션의 대미를 장식했다.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햇빛을 머금은 잎사귀의 움직임과 광채가 압권. 1987년부터 티파니앤코와 함께해온 부사장 겸 수석 보석학자 빅토리아 워스 레이놀즈(Victoria Wirth Reynolds)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착용도 해보며 새로운 하이 주얼리를 즐긴 시간은 매우 유익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보석 중 하나인 루비가 한 세트밖에 없어 아쉬웠지만 레이놀즈와 마찬가지로 2.67캐럿의 루비가 세팅된 팜 반지는 오팔 브로치 다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보석이다.
19세기 중반 스테이셔너리에서 출발한 티파니앤코의 시작은 오히려 이 브랜드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종이와 펜, 즉 기록과 선택의 도구에서 시작된 이 하우스는 처음부터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감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주얼리라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다. 티파니앤코는 처음부터 유럽식 권위에 기대지 않았다. 대신 전혀 다른 전략을 택했다. 귀족의 역사 대신 도시의 감각, 혈통 대신 취향, 그리고 전통 대신 선택의 자유. 티파니앤코가 만든 것은 주얼리라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기준’이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쇼윈도, 가격의 투명성, 누구나 동일한 조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방식이었다. 럭셔리를 소수의 특권에서 ‘열려 있는 욕망’으로 바꾼 순간이었다.
이후 티파니앤코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에 머물지 않았다. 결혼과 약혼이라는 개인의 가장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에 깊이 개입하며, 감정의 구조를 디자인했다.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증표가 되었고, 블루 박스는 그 감정을 담는 의식이 됐다. 이는 물건을 넘어 ‘경험’을 소유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던 셈. 20세기에 들어서며 티파니앤코는 더 강력한 문화적 상징을 획득한다. 영화와 예술,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더 이상 주얼리 하우스가 아니라 ‘미국적 우아함’의 표상이 된 것이다. 자유롭지만 세련되고,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미학. 이 지점에서 쟌 슐럼버제 같은 디자이너의 등장은 결정적이었다. 그의 작업은 티파니앤코에 예술적 깊이를 부여하며, 브랜드를 단순한 상업적 성공에서 하이 주얼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버니 멜론, 재클린 케네디, 엘사 퍼레티 같은 뮤즈가 보여준 라이프스타일은 그 주얼리가 놓일 세계를 구체화했다. 결국 티파니앤코가 미국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가 된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가장 미국적인 방식으로 럭셔리를 재정의했기 때문. 과거를 계승하는 대신 현재를 설계하고, 권위를 답습하는 대신 취향을 창조하며, 소유를 넘어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한 것. 티파니앤코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VK
- 패션 디렉터
- 손은영
- 포토
- COURTESY OF TIFFAN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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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FFAN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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