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주얼리가 같은 곳을 본다면
자연과 하이 주얼리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나눈 의미 있는 대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요즘처럼 변덕이 심한 날씨에 듣기 제격이다. 격정적으로 몰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깊고 서정적으로 변하는 선율은 폭우 직전의 공기와 닮았다. 라흐마니노프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클레르퐁텐앙이블린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계절이 변화하는 가운데 작곡에 대한 감각을 회복했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다시 예술로 돌아가게 만든 감각의 원천이었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언어였다. 음악은 자연의 리듬에서 출발했고, 인간은 자연이 가진 질서와 아름다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한국의 미 역시 유사하다. 단청의 색에는 계절의 변화가 스며 있고, 백자의 곡선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균형이 담긴다. 봉황과 나비, 매화와 국화 같은 전통 장신구의 상징 또한 단순한 장식을 넘어 장수와 길상의 의미를 품어왔다.
주얼리야말로 자연과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다. 원석은 본질적으로 자연이 만든 가장 희귀한 산물이며 하이 주얼리는 그 경이로움을 인간의 손끝으로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다. 꽃의 유기적인 곡선과 동물의 움직임, 빛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색감은 많은 주얼러에게 영감이 되어왔다. 그중 250년 가까이 자연주의 미학을 이어온 보석 명문가로서 우리는 쇼메(Chaumet)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780년 창립자 마리 에티엔 니토(Marie Étienne Nitot)는 자칭 ‘내추럴리스트 주얼러’였고, 이후 쇼메는 자연이 가진 생명력을 가장 섬세한 방식으로 포착해왔다. 지난 5월 서울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하이 주얼리 컬렉션 ‘주얼스 바이 네이처(Jewels by Nature)’ 이벤트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공간에 진입하자마자 자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듯 전시 안으로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메종의 헤리티지 티아라와 현대적 티아라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가 하면 그 흐름은 조세핀 컬렉션을 지나 ‘주얼스 바이 네이처’ 하이 주얼리 컬렉션으로 이어진다. 주얼리는 모두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보였다. 꽃잎이 막 펼쳐지는 순간의 곡선, 식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 빛을 머금은 잎사귀의 결 같은 요소가 컬러 스톤과 세공에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있었다. 어떤 피스는 한 송이 꽃이 피는 찰나를 붙잡아둔 듯했고, 또 다른 피스는 생명체가 가진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쇼메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단순히 형태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살아 있는 순간의 감각과 시간을 함께 담아내는 데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 아티스트 심미소와의 협업이었다.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그는 한국 고유의 미감에 동시대적 감각을 더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민화 속 호랑이와 새, 꽃과 나무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동감을 얻는데, 작가는 이러한 감각을 디지털 기반의 시각언어로 표현했다. 이번 협업에서도 쇼메의 역사적 티아라에서 영감을 받아 장인 정신과 한국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했고, 전통적인 소재는 낯설지 않은 동시대적 감각으로 이어졌다.
‘주얼스 바이 네이처’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시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쇼메의 철학과 한국적 미감이 억지스럽게 결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보고 그것을 하우스만의 방식으로 다듬어온 감각에 대해 <보그>가 쇼메 CEO 찰스 룽(Charles Leung)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2024년 쇼메 최고 경영자로서 만난 후 <보그>와 다시 대면했다. 브랜드를 이끌며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뭔지 궁금하다. 브랜드의 ‘내러티브’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쇼메는 1780년대부터 ‘자연’에 집중해왔고, 250년 가까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주얼리 메종의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200년 전의 자연과 현재의 자연은 같을 수 없다. 많은 식물이 사라지고 우리는 다양한 재해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쇼메는 계속 하이 주얼리를 통해 자연을 논한다. 자연이 보존되어야 하듯 하이 주얼리 역시 지켜져야 할 가치니까. 자연이 변화하는 만큼 쇼메의 이야기 방식에도 변화는 있다. 하지만 결국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 ‘비 마이 러브(Bee My Love)’ 컬렉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기 위해 ‘비 드 쇼메(Bee de Chaumet)’로 새롭게 전개했다. 컬렉션을 바라보는 방식과 접근을 재정의한 것이다. 또 다양성을 확장하며 남자에게도 쇼메 주얼리를 적극 제안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작은 변화다. 하지만 쇼메의 본질은 그대로다.
당신 말대로 많은 레드 카펫과 여러 남성 셀러브리티의 주얼리 착용이 늘었다. 젠더리스 주얼리에 대한 관심 역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남자 고객의 변화를 체감하나? 강하게 느낀다. 예전에는 아내나 딸을 위해 매장에 들르는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매장 한쪽에서 함께 온 여성 고객이 주얼리를 고르는 동안 기다리는 모습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남자 스포츠 스타와 배우가 자연스럽게 주얼리를 착용하는 시대다. 덕분에 남성 고객 역시 직접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얼리를 찾고 착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쇼메가 매우 반기는 변화다. 특히 남성 하이 주얼리에서는 브로치와 반지가 인기다.
2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쇼메는 원석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장인 정신, 우아함이라는 가치로 정의된다. 2026년 ‘주얼스 바이 네이처’에서는 이 같은 정신이 어떻게 반영되고 재해석됐나? 쇼메는 오랜 시간 아름답고 희귀한 원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크기보다 원석 자체의 품질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그 원석을 어떻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구현해내느냐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 올 초부터 한동안 거의 사라졌던 ‘그랑 푀 에나멜(Grand Feu Enamel)’ 기술을 복원해 작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에나멜 기법을 활용하면 매우 다채로운 색감을 구현할 수 있다. 이처럼 쇼메는 최신 기술뿐 아니라 과거의 장인 기술까지 함께 활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하이 주얼리를 만드는 중이다.
이번 하이 주얼리 이벤트에서는 아카이브 티아라부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그니처 피스까지 함께 선보인다. 티아라는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다. 더 이상 특정한 순간이나 특권층만을 위한 장신구가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과 삶의 방식에서 각자가 의미를 가지며 착용하는 주얼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고객마다 원하는 티아라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활용성을 중요히 여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징성과 의미에 더 집중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팬지 티아라’는 꽃 장식을 분리해 브로치로도 활용된다. 또 팬지의 꽃말은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의미를 지녀 결혼기념일이나 사랑을 기념하는 순간에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기만의 이야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만의 티아라’를 발견할 수 있기를!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국적 미감을 담은 민화 스타일의 디지털 아트가 눈에 띄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의 미학과 쇼메 주얼리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바로 자연이다.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쇼메는 초기 컬렉션부터 대나무 같은 식물을 그려왔고, 특정 지역이나 문화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한국과 유럽 역시 사계절이 뚜렷하다. 특히 한국 미술은 매우 섬세하고 디테일이 풍부한데, 그런 점에서 쇼메의 미학과 밀접하다. 심미소 작가와의 협업으로 탄생된 드로잉과 디지털 아트는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럭셔리 주얼리 마켓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쇼메의 하이엔드 피스를 한국에 꾸준히 선보이고자 한다. 한국 고객은 희귀하고 독창적인 작품에 관심이 지대하다. 한국 앰배서더에 대한 애정도 깊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그들과 함께 쇼메의 새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부티크 네트워크 역시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다. 고객이 쇼메를 기대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최고급 원석을 다루는 메종으로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메종 설립 초기부터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왔다. 윤리적인 원석 발굴을 위해 관련 협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우리가 쓰는 모든 원석은 반드시 추적 가능하고 윤리적 출처를 통해 수급한다. 또 스위스 재단과 함께 금광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과 광부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의 가족이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도록 지원에도 힘쓴다. 아름다운 작품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완성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쇼메가 하이 주얼리 메종으로서 어떤 위치에 있기를 기대하나? 250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온 만큼, 앞으로의 250년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가길 바란다. 최근 주얼리와 하이 주얼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계속 커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다들 더 많은 주얼리를 수집하고, 또 자기 방식으로 즐기고 싶을 것이다. 다만 예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원석의 희소성이다. 그래서 쇼메는 꾸준히 자연의 미학을 담는 원석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양으로 경쟁하기보다 장인 정신을 수호하고 차세대 장인을 교육하며 자동화 시스템보다는 인간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가치를 계승하고자 한다.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쇼메의 철학은 앞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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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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