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보그’에 제 이름이 나오게 할 거예요”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
패션 스쿨을 중퇴한 35세의 디자이너 자크뮈스는 입소문 난 디자인, 데스티네이션 런웨이 쇼, 명성과 호평 덕분에 지중해에서 영감을 받은 인디 레이블을 프랑스 패션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키워가고 있다.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가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참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초 이탈리아 카프리섬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빌라에서 몇몇 기자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자크뮈스’의 런웨이 쇼를 여는 것이다. 밖에서는 강렬한 태양이 런웨이를 달구고, 이는 한편으로 현대 지중해 스타일을 품은 브랜드 자크뮈스와 아주 닮아 있었다. 한쪽에서는 모델들이 머리를 손질하며 밝고 여유로운 룩으로 차려입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인터넷을 열광시킬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었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누설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징적인 유명인들이라 들먹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감상적인 프랑스 남부 억양으로 “기네스가 참석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거의 ‘귀네트’에 가깝게 발음했지만,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알려주었다. “기네스가 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요.”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른 티레니아해가 창 너머로 보였다. 저 바다 어딘가에 휴가철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보여주는 기네스 팰트로를 패션쇼 앞줄로 데려다줄 스피드보트가 있을 것이다. 한 기자가 놀랐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럭셔리 패션계가 유명 인사 카메오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고의 셀럽을 패션쇼에 초청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용 제트기를 보내고, 10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고, 심지어 수익성 좋은 후원 계약을 체결한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그의 패션쇼, 심지어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열리는 행사인데도, 셀럽에게 돈을 따로 주지 않는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정말 엄청난 성과를 달성했다. 영화 <리플리>를 통한 문화적 부흥과 널리 알려진 구프(Goop, 기네스가 설립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니아의 정점에 있는 기네스 팰트로가 그의 매력적인 인디 레이블의 화려한 데스티네이션 패션쇼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마르세유 부근에서 성장한 포르트 자크뮈스는 2009년 19세에 이 브랜드를 설립했다. 패션 스쿨을 그만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자크뮈스는 결혼 전 어머니의 성이다. 그는 꾸뛰르와 드레스메이킹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포르트 자크뮈스는 디자이너 못지않게 이미지 메이커이며, 소셜 미디어 광고를 활용함으로써 마케팅 예산을 과감하게 쏟아붓는 패션 하우스를 제쳤다. 애초에 이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제품은 포르트 자크뮈스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인스타그램에 아낌없이 게시했고, 지금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그는 태양에 키스하는 셀카로 초창기에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이 플랫폼에서 우연히 초창기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가 될 뻔했다. 자크뮈스 공식 계정 팔로워는 현재 650만 명이며, 그들 중 일부는 이 설립자가 더 이상 예전처럼 충분한 사진을 게시하지 않는다고 늘 불평을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사적인 것을 보고 싶어 하죠.” 그가 말했다. “우리 팀은 사람들이 ‘그 사람이 그리워요’라고 글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움찔도 안 해요”라고 라미아 라가(Lamia Lagha)가 말을 건넸다. 그는 자크뮈스 설립 초기부터 일하고 있으며, 자크뮈스가 파리 백화점에서 일할 때 만난 절친이다. “자신을 믿어요. 오만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되겠지’라고 여기는 거죠.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잃을 게 없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를 너무 소란스럽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판단됐죠. 그러면 그는 ‘난 상관 안 해’라고 했죠.” 자크뮈스의 포인트는 요란한 잡음이다. 이 브랜드에 대한 내 첫 기억은 2019년경 카일리 제너가 자크뮈스의 커다란 햇빛 차단용 밀짚모자를 두고 머리에 착륙한 비행접시 같다고 놀리던 때다. 곧바로 모자는 입소문이 났고, 이는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그 입소문을 오히려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20년 이 디자이너는 이와 동일한 직설적 원칙을 적용해 거의 쓸모없을 정도로 작은 지갑을 탄생시켰고, 다시 대히트를 쳤다. 이것은 뛰어남과 부조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소셜 미디어 시대의 인상적인 찬반양론을 일으키는 제품으로 등극했다.
‘Style Not Com’의 베카 그비시아니(Beka Gvishiani)는 포르트 자크뮈스가 누리는 소셜 미디어의 인기에 대해 “진지하고 지적이며 계산적인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너무 많은 패션계에서 그는 기쁨과 재미, 편안함을 선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크뮈스는 럭셔리 브랜드의 순위를 매기는 리스트(Lyst) 인덱스에서 구찌, 몽클레르, 발렌시아가, 루이 비통 같은 대형 브랜드를 제치고 이 글을 쓰는 시점 7위로 올라섰다.
카프리에서 열리는 패션쇼가 어느 정도 정돈되자, 나는 포르트 자크뮈스에게 셀럽 군단을 확보한 방법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로 유명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뿐 아니라 인터넷에 나오는 사진을 제때 터뜨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기네스가 패션쇼에 많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 패션쇼에만 오죠!” 포르트 자크뮈스가 웃으며 응수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녀가 제 브랜드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러더니 사실은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터놓았다. “셀럽들은 재미있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양산을 쓰고 패션쇼를 기다리는 기네스 팰트로에게 참석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포르트 자크뮈스는 가깝긴 해도 아주 친하진 않다고 밝혔다. “아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완전히 빠져 있죠.” 팰트로의 말이다. “자크뮈스 패션쇼에 초대받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엄마, 꼭 가셔야 해요’라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알았어!’라고 답했죠.” 패션쇼 후 희색이 만면한 포르트 자크뮈스는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는 가운데 평생 친구처럼 그녀를 포옹했다.
한때 셀카로 유명해진 디자이너라는 조롱을 받던 포르트 자크뮈스는 요즘 다시 환영받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포르트 자크뮈스는 자신의 브랜드가 파리에서 가장 큰 독립 패션 브랜드가 되었다고 얘기했다. 2023년에는 2억8,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로스앤젤레스와 마이애미를 필두로 뉴욕과 런던의 주요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 공격적인 리테일 출시에 한창이다. “모든 일이 제가 그리던 대로 진행되는 것 같아요.” 그가 부연했다. “늘 야망으로 넘쳤고, 열다섯 살 때부터 이런 모습을 상상해왔습니다.”
자크뮈스의 미학은 쾌활하며, 밝고 부드럽다. 거만한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가 수영장에 강제로 밀려 들어간 듯 말이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브랜드의 분위기를 ‘환영’으로 표현하며, 자크뮈스 버튼 업 셔츠를 해변 데이트 필수품으로 여기는 트래비스 켈시(Travis Kelce)는 그의 옷을 친근하고 재미있게 여긴다. 하지만 그 옷은 배드 버니(Bad Bunny) 같은 부류를 위한 패션과도 충분히 가깝다. 그의 옷은 영리하고 현대적인 다양성을 가진다. 자크뮈스는 패셔너블하지만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자크뮈스 여성복은 그의 어머니, 즉 햇볕에 바랜 브라운 헤어의 아름다운 여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자크뮈스 남성복은 누구를 바탕으로 할까? 내가 물었다. “제가 근간인 것 같아요.” 그가 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매일 멋지고 재미있고 상큼한 누군가가 되는 거죠. 활짝 웃는 세련된 사람 말이에요.”

지난해 9월 초 맨해튼의 평일 아침, 포르트 자크뮈스는 소호 어느 거리의 모퉁이에 서 있었다. 뒤쪽으로 그의 첫 번째 미국 매장이 보였다. 그는 생트로페에서 전용기를 타고 방금 그곳에 도착했고 남프랑스의 햇살처럼 건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앞을 지나던 지프 속 젊은 여성 두 명이 이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를 발견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차를 세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휴대폰을 든 채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들을 못 본 체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며, 사업도 잘되고 있다고 한다.
더 많은 팬과 마주치자 포르트 자크뮈스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10월에 오픈한 이 매장은 철근과 철망이 얽혀 있어 쇼핑 가능한 해변 방갈로와 비슷해 보였다. 그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매장 외관에 긴밀히 관여하는 편이다. “더 이상 패션 제품을 사지 않습니다. 예술에 더 집착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그는 화분에 심은 레몬나무, 피에르 드 부르고뉴(Pierre de Bourgogne) 스톤 타일, 집에서 가져온 가구로 가득 찬 스프링 스트리트의 새 매장에 자신의 취향을 담아냈다. “이 매장의 목표는 다른 매장과 조금 차별화하고, 집 같은 편안함을 더 풍기는 겁니다. 모든 것이 가방 판매를 위해 디자인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포르트 자크뮈스는 자신을 요령 넘치는 스토리텔러로 자부하며, 특히 자신의 서사에 정통하다. 그는 새 매장이 상업적인 것을 초월하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여기 머무는 5분간, 사람들이 ‘세상에, 빨리 오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저는 가도 오도 못했죠. 단순한 오픈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을 따르고 있는 거죠.”
나는 ‘아마도 미국이 그 프랑스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가 자수성가한 미국적인 이야기를 대표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네, 바로 랄프 로렌이 그런 케이스죠.” 그러면서 그는 “저도 열여덟 살에 파리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완전 똑같죠”라고 덧붙였다(로렌은 초창기에 블루밍데일스에서 넥타이를 판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판매원이 자기가 설립한 회사의 사장이 된 겁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얘기를 매우 흥미롭게 여기죠.”
다소 억지스러운 비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랄프 로렌이 그 시대의 진수를 구현한 것처럼 포르트 자크뮈스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우리 시대에 대한 무언가를 구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럭비 선수 같은 팔다리와 모공 하나 없는 주인공의 얼굴이다. 사진을 잘 받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게 보여서 화면에서 튀어나와 직접 압도할 정도다. 스타일리스트 겸 에디터 멜 오텐버그(Mel Ottenberg)는 이 브랜드의 첫 쇼가 열릴 즈음 파리의 한 쇼룸에서 포르트 자크뮈스에게 자신을 소개하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잖아요. 정말 나중에 유명해지고 성공할 거예요’라고 말한 게 생각나요. 그는 허세와 매력, 게다가 멋진 외모까지 갖추고 있었고, 옷에 대한 표현력도 겸비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이어가고 있죠.” 이 브랜드와 자주 일하는 한 모델이 카프리에서 내게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모델로 참석하면 잊어버리기 쉽지만, 시몽은 섹시해서 그렇지 않죠.”
오늘 포르트 자크뮈스는 눈이 멀 만큼 흰 티셔츠와 빛바랜 그린 청바지에 흰색 탑사이더를 신고, 어두운 레이밴 웨이페어러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블레이저와 넥타이를 착용한 나는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러 온 감독관 같아 보였고, 그는 ‘Le Club 55’에서 점심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보다 더 괴짜인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도 많지만, 그가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은 거의 종교적이다. 어느 순간 그는 하늘을 향해 얼굴을 돌렸고, 이른 가을 햇살이 8월의 햇살에 그을린 피부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저는 꿈을 꾸고 있어요.” 그는 명상 앱 내레이터처럼 속삭였다. 지난해 4월, 그와 그의 남편 마르코 마에스트리(Marco Maestri)는 미아(Mia), 짐작할 수 있듯 선(Sun)이라 이름 지은 쌍둥이 아기들을 입양했다.
나는 그의 여름에 대해 물었다. 보트와 해변, 줄무늬 타월과 수영복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럭셔리’를 향한 브랜드의 열망이 구현된 삶, 즉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로 둘러싸인 심플하면서도 섹시한 삶만 떠올랐다. 놀랍게도 포르트 자크뮈스는 ‘나뭇잎이 변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에 더없이 흥분했다. “여름이 꽤 길었어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이 신중하게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1년 내내 휴가를 보내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몹시 화를 냈다. “일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꽤 지루했어요. 긴 휴가보다 긴 주말이 더 좋아요.” 이것은 분명 그의 친구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그들은 자크뮈스 부부와 쌍둥이가 함께 지내는 프랑스 남부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손님이 19명이나 온 적도 있었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 포르트 자크뮈스가 그날 떠날 사람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그리고 말을 더듬거리며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던 그 프랑스인들을 흉내 냈다. “저는 ‘제발, 여러분을 위해 오이 샐러드를 준비하기가 벅차요’라고 투정을 부렸죠.” 사람들이 자크뮈스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시 밖으로 나간 우리는 길 건너편에 새 단장한 샤넬 매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매장 앞에 샤넬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가장 아름다운 패션 하우스니까요.” 그가 말했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오랫동안 새로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더 큰 기업을 인수할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10년 전 소호 거리 모퉁이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발렌시아가에서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최근에는 지방시를 구하기 위해 투입될 거라는 소식도 들렸다. 이런 추측에 비평가들은 크게 분노했지만,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격려가 됐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파리의 럭셔리 아틀리에와는 무관하게, 프랑스 리비에라 부근의 작은 마을 말레모(Mallemort)에서 자랐다. 대가족이 모두 농촌공동체처럼 살았다. 단순하고 즐거운 삶이었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라고 애틋하게 그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완전히 시골이었어요. 너무 지루한 나머지, 제 안에서 창의성이 발휘된 거예요”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의 가족은 어린 시몽에게 패션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늘 멋진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패션에 집착했어요.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죠.” 그가 게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도 어머니는 그가 스타이기 때문에 질투해서 괴롭힌다고 믿게 했다. 그녀는 그가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부추겼다. “엄마는 ‘너는 최고, 진정한 최고가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죠.”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였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맨날 시골 소년 같은 모습이었지만, 노래하고 시를 썼던 ‘마을의 스타’, 여장 펑크 밴드의 멤버였죠”라고 말했다.
시몽은 빠르게 스타로 도약했다. 파리 에스모드에 입학한 그는 레페토 슈즈, 슬림 블랙 진, 대담한 선글라스 등 에디 슬리먼 스타일 모델처럼 차려입었다. 그는 10대 시절 다른 학교로 전학한 후 멋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던 때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고의 시간이었죠”라고 포르트 자크뮈스는 그때를 돌이켰다.
그는 2009년 9월 야망을 품고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에 집착하는 학생에게 대학의 커리큘럼은 너무 구식처럼 보였다. 그래서 10월에 자퇴했다. 한 달 후,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5일간 애도의 시간을 보낸 후,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할머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파리행 기차를 탔다. “할머니에게 ‘<보그>에 제 이름이 나오게 할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죠.” 포르트 자크뮈스가 회상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귀엽기도 하고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에너지가 넘쳤죠.” 예전에는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넘쳤다면, 그런 집요함 때문에 특이점이 생겨버렸다. 자신이 ‘기계적인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파리 패션계는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 출신의 대학 중퇴자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패션 하우스밖에 없었죠.” 라미아 라가가 상기했다. “우리는 그런 브랜드를 ‘끼리끼리’라 불렀습니다. 인맥 없이 갑자기 패션계에 진출하긴 너무 어려웠죠.” 하지만 오래 이어온 고루한 행태를 오히려 이용할 수 있었다. 파리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고, 포르트 자크뮈스의 유쾌한 비전은 당시 패션을 관통하는 어둡고 개념적인 흐름에 정면으로 맞섰다. 자원은 별로 없지만 아이디어가 넘치던 그는 요란을 떨기 시작했고, 간단하고 시크한 초창기에 선보인 ‘단순한 구조의 저렴한 의상’을 만들고, 모델들 대신 잔느 다마스 같은 파리의 멋진 차세대 소녀들에게 옷을 입혔다. 포르트 자크뮈스와 그의 친구들은 기존 언론을 활용하기보다 재치 있는 짧은 영상과 룩북을 제작해 각종 SNS에 게재했다. 그곳에서 이 참신하고 현실적인 패션이 꾸준히 입소문이 났다.
그는 공연에 대한 소질도 발견했다. 지방시 로트와일러 티셔츠가 큰 인기를 끌 무렵인 2011년, 포르트 자크뮈스는 대대적으로 주목받는 일이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다. 그래서 그와 친구들은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우울하고 배타적인 상황에 반기를 드는 시위대처럼 구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했으며, 화려한 몽테뉴 거리에서 열린 ‘보그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언론을 비롯한 군중이 그들과 합류했고, 그는 자신감이 더 충만해졌다. 몇 년 후 파리 쇼룸에서 자신의 제품 라인을 선보이기 시작한 그에게 방문객이 “옷이 멋져요”라고 말하자 “저도 알아요”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2018년 남성복을 출시하면서 게릴라 본능을 다시 드러냈다. “첫 패션쇼 같은 방식으로 결정했죠. 그때 할머니께 전화해 3주 후에 쇼를 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그런데 너는 돈이 없잖니!’라고 하시더군요.” 몇 년 후 그는 초창기와 똑같은 열정을 바탕으로 카고 반바지 몇 벌, 근육을 감싸는 니트 스웨터, 꽃무늬 셔츠를 제작했고, 그 옷을 입은 근육질의 남자 모델들이 마르세유 외곽 해변에서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의 요점을 잘 파악한 <보그>는 이 솔직하고 가벼운 데뷔를 “성공적이다. 포르트 자크뮈스가 이미 설득력 넘치는 개인적 관점을 찾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관점이 자연스럽게 배어든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그때부터 패션계 일정에 상관없이 파리 외곽에서 열리는 그의 패션쇼가 주 관심 대상으로 바뀌었다.
남성복 사업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로, 그는 1월에 열리는 파리 패션 위크로 되돌아왔다. 남성복은 그의 브랜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카테고리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남성 컬렉션에는 꽤 신선한 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유명 팬들 상당수가 여자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소개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 브랜드를 언급하는 랩이 10곡 정도나 돼요!” 그가 외쳤다.
우리가 뉴욕에서 함께 있는 동안, 포르트 자크뮈스는 한때 가장 군침 도는 패션계 루머의 중심이었다. 디지털 뉴스 사이트 퍽(Puck)은 포르트 자크뮈스가 패션계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손에 넣으려고 런던으로 향했다고 얼마 전 보도했다. 2023년 200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이 럭셔리계 대기업은 지난해 6월 칼 라거펠트의 후임자 버지니 비아르가 갑작스럽게 사임한 후 새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고, 손에 꼽히는 예상 후임자 명단, 그것도 상위권에 포르트 자크뮈스의 이름이 올랐다. 포르트 자크뮈스가 더 높은 자리를 노린다는 보도를 듣고, 그는 “대형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어서 이 일에 종사하진 않는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초 지방시에 영입된다는 소문이 돌던 때 내게 한 말과 같았다. “제게는 자크뮈스 자체가 대형 패션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외부에 철저히 닫힌 샤넬이라는 높은 창’을 보며, 그 루머가 진실인지 묻자 그는 정중히 내 말을 일축했다. “저 여기 있잖아요. 저에 관한 소문은 늘 돌아요. 그래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소문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제 브랜드와 경력에도 좋은 징조입니다.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결국 지난 12월, 샤넬은 보테가 베네타의 프랑스계 벨기에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포르트 자크뮈스가 후보였다는 소문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대화 도중 그가 ‘한 가지 관찰 내용’을 털어놓았다. 그도 이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가 좋은 자리로 갈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때마다 직책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
가을의 끝, 파리 8구에 있는 포르트 자크뮈스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패션 위크가 한창인 가운데 처량한 회색빛 이슬비가 파리를 뒤덮고 있었지만, 사무실을 장식한 모래벽과 붉은 점토 파케이 타일, 화분에 심은 올리브나무는 고급스러운 여행지의 스파를 연상시켰다. 오늘 그는 할 일이 많았다. 뉴욕 매장 오픈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고, 아픈 보모를 대신해 쌍둥이를 직접 돌봐야 한다. 또한 바스티앙 다구잔(Bastien Daguzan)이 2023년 12월에 떠난 후 공석인 브랜드 CEO 직책도 맡고 있으며, 다가오는 컬렉션 디자인도 한창이다. “매일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도 있죠. 하지만 저는 매일 출근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먼저 도착하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죠.”
뉴욕 여행 후 포르트 자크뮈스와 그를 보좌하는 직원 몇몇은 애플 본사에서 열린 아이폰 16 기조연설에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그 후 팀 쿡을 만났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무심한 포르트 자크뮈스가 웃고 있는 애플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봤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 놓인 앤티크 의자에 앉으며 그 만남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애플 본사를 방문하다니 꿈만 같았어요. 거의 비현실적이었죠. 그곳에 가다니.” 근처에 조용히 앉아 있던 홍보 담당자가 애플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고 살짝 말을 보탰다. 포르트 자크뮈스는 그 외에 초청받은 브랜드로는 에르메스가 유일하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포르트 자크뮈스와 그의 팀은 애플의 우주정거장 같은 쿠퍼티노 본사 한가운데 있는 사과 과수원을 거닐었고, 그는 쿡에게 아이폰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 옷을 입은 모델들과 제 삶을 촬영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이 제 여정을 따라올 수 있었죠’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물론 저 말고 다른 사람도 그랬죠. 하지만 이처럼 요긴하게 사용하고 인기를 얻은 브랜드는 제가 처음이라고 봐요.” 요즘 포르트 자크뮈스는 예술적인 패션 사진가를 고용할 수 있지만, 아이폰을 이용해 캠페인을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더 친근하게 느낍니다.” 그가 말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그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애플의 유토피아 같은 정원 한가운데서 열리는 선정적인 자크뮈스 데스티네이션 패션쇼가 그려진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다음 그렇게 웃은 것에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거 좋죠! 그 정원은 우리를 위해 만든 거예요!” 나는 그에게 현재 진행 중인 애플 프로젝트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애간장을 녹이는 힌트 몇 가지를 투척했다. “솔직히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지금 진행 중이에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 마음에 들겠죠. 그리고 그들이 제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어쨌든 아직 논의 중이에요.”
비 내리는 거리로 다시 나가기 전, 샤넬에 대한 다른 소식은 없는지 그에게 물었다. 홍보 담당자가 인터뷰가 끝났다고 장난스럽게 소리치자 포르트 자크뮈스는 과장되게 짜증 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니요, 할 말이 없어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실제로 그는 그런 질문을 꺼리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일이니까. “말씀드렸듯이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은 늘 좋은 신호이며, 많은 사람이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더 좋아요. 그것은 패션 위크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 시나리오를 정말 믿더라고요.” 나는 그를 다시 떠보았다. “알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믿죠. 그런데 당신도 그것을 믿나요?” 그가 이번에는 과장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시선을 돌리며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진 않았다. 굳이 답할 필요는 없다. 자크뮈스라는 이 남자는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넘치니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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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다혜
- 글
- Samuel Hine
- 사진
- Fanny Latour-Lambert
- 백스테이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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