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마르탱 “옷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고 싶어요”
‘마르지엘라 키즈’라 자칭하는 글렌 마르탱이 꾸뛰리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패션 이야기가 버거킹에서 시작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 1월 말, 글렌 마르탱(Glenn Martens)이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순간, 그는 버거킹에 있었다. 늘 그렇듯 글렌은 함박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줬다. “노르망디 시골에 집을 한 채 샀습니다. 거기서 나흘을 지냈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고 난방도 안 됐죠. 벽난로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지냈지만, 샤워는 한 번도 못했어요. 월요일 밤, 그을음에 뒤덮이고 잔뜩 눌린 머리엔 까치집까지 지은 채 파리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습니다. 저녁 8시에 변호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금 당장 멈추세요!’ 우리는 근처 버거킹에서 만나 마르지엘라 계약서에 서명했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0시, 스튜디오에 도착해 소리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파리 시간으로 7월 9일 저녁 7시 30분, 글렌은 1988년에 설립된 하우스를 위한 첫 아티저널(Artisanal) 컬렉션을 선보인다. 1989년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도입한 수작업과 아틀리에 제작 중심의 컬렉션으로, 2006년부터 파리 오뜨 꾸뛰르 캘린더에 포함되었다. “꽤 요란할 겁니다.” 쇼를 앞둔 글렌이 예고했다. “아티저널은 언제나 마르지엘라의 본질적인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첫 컬렉션은 내 목소리를 확립하고, 나만의 해석을 통해 마르지엘라의 창립 이념과 다시 연결되는 중요한 순간이죠.”
티저와 스포일러는 한 끗 차이다. 아틀리에에서 글렌이 보여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폭발적인 컬렉션이 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다양한 소재와 미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배치된 덕분이다. 원시성과 풍부함, 브루탈리즘과 화려함, 절제와 과장, 우울한 어두움과 엄청난 즐거움이 강력한 실루엣이라는 통제된 환경 속에 공존한다. “처음 구상한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게 과정이죠. 드로잉보다 더 나아졌으니까요.” 글렌이 고백했다. 이번 컬렉션은 상상력을 통해 일상적인 물건을 재탄생시킨다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작업 철학뿐 아니라 마르지엘라와 글렌이 공유하는 벨기에 감성과도 분명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마스크도 등장한다.
“오늘은 마스크를 피팅하고 있습니다.” 글렌이 한 무더기의 마스크를 가리켰다. “이 작업이 끝나면 자동차 정비공에게 보내 납땜으로 이을 거예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첫 번째 쇼인 1989 봄/여름 컬렉션에는 마스크를 쓴 의상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후 수많은 컬렉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델보다 옷에 몰두하게 하려는 장치였으며, 마르지엘라가 철저히 은둔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을 반영했다.
이는 글렌이 현재 이끌고 있는 하우스의 핵심 가치와 이어진다. “모든 것은 옷의 진정성에서 시작됩니다. 옷 그 자체로 말해야 하죠. 그래서 마르지엘라가 모델에게 마스크를 씌운 겁니다. 지금은 아이러니하고 흥미로울 수 있어요. 부분적이지만, 2025년 런웨이의 성공은 소셜 미디어로 마주하는 모델과 상관있을 때도 많으니까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옷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상이 우선이죠. 바람이 있다면, 옷 자체로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를 받고 싶군요.”
또한 새로운 꾸뛰르 고객층의 욕망에 부합하길 기도하고 있다. 그는 2022년 장 폴 고티에 꾸뛰르 컬렉션의 게스트 디자이너를 맡으면서 그들의 존재를 처음 인식했다. “꾸뛰르 고객의 니즈와 결핍을 이해할 수 있었던 정말 강력한 워크숍이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부를 과시하는 식의 희소성은 마르지엘라 언어와 맞지 않죠. 우리는 손으로 직접 수놓은 7만5,000달러짜리 드레스를 만들진 않을 거예요. 이 하우스에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형태의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발견할 것이고, 좀 더 장난기 있는 누군가가 그걸 즐길 겁니다.”
글렌과 그의 동료들은 일종의 고객 유형을 설정하기 위해 자신들이 디자인하는 여성의 정보를 수집했다. “그녀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가 하우스의 여성상을 묘사했다. “아름다운 시폰 드레스나 가죽 코트를 입고 있으면서도, 저녁 식사를 하러 오랜 시간 택시를 기다리는 대신 비를 맞으며 걸어갑니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와인을 마시며 미술 전시에 가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죠. 담배도 직접 말아서 피우고요. 아름다움과 섹시함은 확실히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마르지엘라 세대의 아이 태도 외에도 메종 마르지엘라를 위한 옷을 형성할 코드의 범위와 기능을 파악하는 일은 글렌에게 주어진 복잡한 방정식이었다. 그 첫 단계이자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창업자의 작업과 관련이 있다. “하우스의 성공 배경에는 창립 가치와 고유한 코드가 있습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그것을 존중해야 해요. 그것들을 전부 흡수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진짜 멋진 일입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구체적인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창립자의 사고방식이 패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것이다. “나 역시 ‘마르지엘라 키즈’였어요. 그는 디자이너 그 이상입니다. 많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꾼 학교나 다름없죠. 전에 몇몇 일본 디자이너가 있긴 했지만, 유럽에서는 마르지엘라가 그런 변화를 일으켰어요. 옷이 반드시 고전적인 구조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발상이었죠. 아름다움과 구조, 그리고 패션 전반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그 후 많은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이 되었어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말이죠. 나는 그걸 아주 명확하게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독창성, 소유권,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렌은 마르지엘라 세계로 깊이 빠져들면서 겪은 창의적인 혼란을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웃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스타일리스트에게 마르지엘라의 아카이브 작품을 모두 꺼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늘 책으로만 봤지, 실물을 본 적은 없었거든요. 마침내 진짜 옷을 보고 나서 저 자신에게 실망했어요. ‘맙소사, 와이/프로젝트에서 만든 건 그냥 전부 베낀 거였네!’”
글렌이 파리 독립 레이블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3년간 작업한 결과물이 무의식중에 마르지엘라의 영향으로 가득했다면, 그가 이어갈 하우스의 창조적 정통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훨씬 더 계획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르지엘라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근원이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영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였죠.” 글렌이 말을 이었다. “이 하우스가 지닌 DNA를 사랑하지만, 그 DNA의 많은 부분은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말 그대로 ‘약탈당한’ 거예요. 가장 정확한 표현이죠. 그 요소를 우아하게 되찾아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작업 방식을 찾고 싶습니다.”
글렌이 마주한 또 다른 고려 대상은 존 갈리아노의 막대한 공헌이다. 그는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그가 마르지엘라에서 한 모든 일을 사랑해요. 존은 꾸뛰르의 천재입니다. 그는 자기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창조했고, 디자인은 그 세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어요. 나는 결코 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이야기꾼은 아니거든요.” 갈리아노는 디올에서 15년의 임기를 마치고, 3년 뒤 마르지엘라에 합류해 패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서사적인 꾸뛰르 쇼를 선보였다. 프랑스 럭셔리의 정점에 있는 하우스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표현했고, 그것은 마르지엘라 작업에도 반영되었다.
갈리아노의 방식은 글렌이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데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마르지엘라 시절에는 이 세계가 훨씬 더 좁았습니다. 당시 럭셔리는 독립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특권에 더 가까웠죠. 오늘날은 장인 정신과 테일러링에 관한 것입니다. 존이 그것을 도입했고, 우리는 계속 구축해야 해요. 하우스 성장 과정의 일부니까요.” 글렌은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거리에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 일상적인 거리의 현실은 마르지엘라의 출발점이죠. 그것이 내가 다시 연결하고 싶은 것이고요.”
공유된 뿌리 그 연결점을 찾는 열쇠 중 하나는 글렌과 창립자 모두 벨기에 출신이라는 영적 유대감이다. “진정으로 벨기에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벨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아니에요. 비가 아주 많이 내리고, 너무 산업적이고, 자연이 거의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예상치 못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죠. 그게 벨기에인이 하는 일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드리스 반 노튼이 가장 끔찍한 색을 나란히 배치하다 갑자기 멋진 조합을 발견하거나, 마르지엘라가 비닐봉지를 고급스럽게 만든다면, 그건 벨기에적인 태도입니다. 나는 그것을 이 하우스에 다시 가져오고 싶어요.”
글렌은 마르지엘라에 처음 출근한 1월 28일에 이미 꾸뛰르 컬렉션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그날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모든 색상과 무드보드, 디테일까지 전부요. 그들은 그것을 구현하면 되는 식이었죠.” 그는 자신의 성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언제나 반에서 1등을 해야 했어요.” 게다가 이미 2020년부터 OTB 그룹 산하의 디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글렌은 렌초 로소(Renzo Rosso)가 원하는 것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렌초가 이런 컬렉션을 기다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준비된 상태로 오고 싶었어요.”
이것이 글렌이 갈리아노의 후임이 될 것인지 아직 완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시작한 이유다. 그 운명적인 버거킹 정차 순간 말이다. 크리스마스 전 주말, 베니스에 간 글렌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약간 취한 상태로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많은 책을 가져갔어요.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덜 활용된 기본 요소를 파악했죠.” 크리스마스가 있던 2주 동안에는 글렌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브루게에 있는 형의 집에 머물면서 컬렉션을 상상하고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것은 벨기에 국왕 필리프로부터 100번째 생일 축하 편지를 받고 자랑스러워하던 할아버지가 막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글렌은 벨기에에 대해 혹독한 비평가였지만, 브루게는 유럽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그의 고향 마을에는 글렌이 마르지엘라 하우스를 묘사하는 방식과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면이 있다. “마르지엘라의 역사는 매우 우울하면서도 시적입니다. 물론 불경함도 늘 섞여 있죠. 나는 그것이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그림자 속에 잠기는 것처럼 느껴져요.”
높은 기대와 비밀 병기 새로운 인물이 상사로 합류하면 첫 몇 주는 본인과 자신이 이끌게 된 기존 직원 모두에게 잠재적인 긴장감을 줄 수 있다. 글렌은 디자인을 끝낸 꾸뛰르 컬렉션을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종 마르지엘라 아틀리에에 ‘비밀 병기’를 들였다. 아주 귀엽고 개성 넘치는 보더테리어 머피(Murphy)다. 두 번째 인터뷰를 위한 영상통화 중 머피가 화면 안으로 들어와 메종 마르지엘라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코를 핥았다. “모두가 곧바로 머피와 사랑에 빠졌죠. 이곳에 온 지 한 달쯤 지나 입양했는데, 거의 모든 곳을 나와 함께 다닙니다. 인기가 대단해요.”
디젤 미팅 때 밀라노에서, 와이/프로젝트 시절 파리 만남에서도 종종 그랬듯 우리는 창가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을 유지하고 있는 디젤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밀라노 기반 데님 브랜드와 새롭게 맡은 파리의 반직관적 럭셔리 하우스 사이에서 자신의 시간과 정신을 효과적으로 안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 보였다.
“디젤은 디젤입니다. Z세대, 스트리트, 레이브, 팝··· 지금 나는 그 세계에 있지 않아요. 강아지와 함께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죠. 하지만 디젤의 가치를 사랑합니다. 내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다시 내 것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죠. 그렇다고 해서 꼭 나 자신과 일치할 필요는 없어요. 괜찮습니다. 사실, 그게 바로 자기 이름이 붙지 않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이죠.” 글렌이 디젤에서 보낸 첫 3년 동안 훌륭한 와이/프로젝트 쇼를 동시에 선보였다는 사실은, 그가 두 브랜드의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증거다.
하지만 현재 그는 메종 마르지엘라에 집중하고 있다. 하우스의 상징적인 블루즈 블랑슈(Blouse Blanche, 작업용 흰 가운)를 입고 창가에 기대 햇살이 비치는 에타쥐니(États-Unis)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꿈의 장소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꿈같은 장소죠. 물론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이 일을 망치고 싶지도 않고, 기대가 크기 때문이에요.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두고 보세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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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Luke Leitch
- 사진
- Courtesy of Maison Margi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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