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라 버튼이 만드는 밤새도록 입고 싶은 옷

2025.07.31

사라 버튼이 만드는 밤새도록 입고 싶은 옷

패션계에 유망한 임명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패션 순간을 만들어온 사라 버튼은 지방시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려 하면, 그건 진짜가 아닙니다.” 지방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울 앞으로 잠깐 와줄래요?” 사라 버튼(Sarah Burton)이 지방시 파리 본사의 웅장한 스튜디오에 서 있다. 요즘 그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보이는 첫 번째 봄 컬렉션 피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흰색 오간자 드레이핑의 캘리코 드레스를 입은 모델 하나 그리젤리(Hana Grizelj)가 버튼에게 다가간다. 브래지어 컵 위로 각각 왼쪽, 오른쪽이라는 프랑스어 표기가 파란색 연필로 쓰여 있다. 바로 옆에는 뼈대가 드러나는 연한 색 드레스와 구조적인 검정 재킷이 유령이 입은 듯한 모습으로 옷걸이에 걸려 있다. 버튼이 ‘유니폼’이라고 부르는 차림이다. 청바지에 흰색 컨버스 스니커즈와 칼라가 없는 흰색 코튼 셔츠 조합. 이 셔츠는 그녀와 23년간 함께 일한 재단사 주디 할릴(Judy Halil)이 버튼을 위해 직접 만든 여러 벌 중 하나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몇 장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과 달리, 버튼은 모델에게 입혀보며 옷을 구성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빠르게 다각도로 움직이며 원단을 자르고, 핀을 꽂고, 소재를 고르고, 그 시즌의 어깨 형태를 결정한다(“스탠드에 걸어놓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이 입으면 완전히 다르거든요.” 버튼이 설명했다). 지방시에서 버튼의 동료들은 방문객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절대 옷걸이에 코트를 올려두지 마세요. 잘려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안감은 크레이프 드 신(Crepe de Chine)이 좋겠어요, 부드럽게.” 버튼이 스튜디오 직원에게 말한다. 모델 하나 옆에 선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코르셋이 이렇게 길어야 할까요?” 코르셋이 2.5인치 짧아진다. “더 짧아야 할 것 같은데.” 그녀는 간결하고 빠른 동작으로 등 쪽에서 드레이핑 오간자 천을 한 움큼 잘라낸 다음, 손목에 핀쿠션을 낀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위로 과감하게 밑단을 자른다. “하나, 계속 돌아볼까요.” 버튼의 목소리는 차분하며, 그녀의 세심함은 외과 의사를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는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 마테오 루소(Matteo Russo), 파리 아틀리에의 수장 타티아나 옹데(Tatiana Ondet), 그리고 런던에서 버튼과 함께 초기 드레이핑 작업을 한 제임스 놀란(James Nolan)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참여한다. 지방시의 새 동료들과 버튼이 1996년부터 2023년까지 일했던 알렉산더 맥퀸 출신의 충성스러운 팀원들이 혼합된 크루다. 이들은 수술에 참여하는 간호사처럼 그녀가 메스나 클램프를 달라고 외치길 기다리고 있다. 런던에 거주하는 버튼은 지난주에만 파리에 두 번, 로스앤젤레스에 한 번 다녀왔다. 진행 중인 컬렉션과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위한 의상 작업 외에도, 뉴욕에서 열리는 멧 갈라가 6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아틀리에 아래층에서는 재봉사들이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가 입을 놀라운 드레스에 보석 장식을 수놓고 있다. 그럼에도 버튼에게서 수면 부족의 기미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를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 같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한번 걸어볼래요?” 그녀가 바닥에서 하나를 올려다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끊임없이 주목받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가득한 패션계에서, 올해 쉰이 된 사라 버튼은 타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천성적으로 겸손하고, 평소 알고 지낸 사이처럼 다가가는 그녀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신뢰와 헌신을 불러왔다. “‘친절하라’는 말은 이제 티셔츠 슬로건 같지만, 사라처럼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은 상대방의 가장 좋은 면을 이끌어냅니다. 나는 그녀가 천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고 봐요.” 케이트 블란쳇이 말했다.

버튼은 패션 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리 알렉산더 맥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14년 동안 그와 긴밀하게 일해왔다. 그리고 멘토이자 친구의 이름 아래 헌신적이고 품위 있게 작업을 이어오며, 자신의 패션관을 조용하고 명확하게 구축했다. 2023년 맥퀸을 떠나 지난해 지방시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의 작업을 늘 주시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죠. 수트와 이브닝 드레스를 만드는 방식에서 기술적으로 매우 정교합니다. 거의 오뜨 꾸뛰르 수준이에요.” 버튼의 영입에 핵심 역할을 한 디올 회장 겸 CEO이자 LVMH 디렉터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는 이렇게 말한다. 버튼은 내년에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옷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길 원했습니다.” 버튼을 처음 맥퀸에 채용한 후 절친이 된 트리노 베르카데(Trino Verkade)는 리가 옷의 착용감을 살피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라는 밤새도록 그 옷을 입을 수 있길 바라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입기 편한 의상은 수많은 셀러브리티가 극적인 이벤트에 참석할 때 버튼을 찾게 만들었다. 올해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입은 레몬색 가죽 수트, 멧 갈라에서 신시아 에리보가 입은 드라마틱한 트레인이 달린 주얼 장식 토르소, 칸영화제에서 루니 마라가 입은 헵번 스타일 미니 드레스 등이 있다. 더 공식적인 행사를 위한 의상도 제작한다.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은 버튼의 오랜 고객이다. 2011년 웨딩드레스,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때 입은 코트 드레스, 이어진 찰스 3세 대관식에서의 삼색 드레스와 케이프 모두 버튼의 작품이다.

런던 도심에 있는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버튼이 “우리끼리 이야기지만(Off the record)”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자주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둘 외에 아무도 없을 때조차 말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하기 꺼리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특히 맥퀸의 죽음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는 영국 언론이 얼마나 화젯거리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버튼의 화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녀가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고 비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옷을 입히는 건 매우 사적이고 친밀한 행위입니다. 내게는 진정한 특권이죠. 사생활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궁극적인 사치 중 하나고요.” 이렇듯 상대방의 신뢰를 지키려 애쓰는 태도에서 나는 그동안 그녀가 맥퀸에서 쌓아 올린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요새와도 같이 단단한 인간관계였다. 그리고 버튼은 이것을 지방시에 가져왔다. 친밀함의 요새는 지방시의 패션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을 넘어, 오랜 세월 그녀를 얽매던 감정적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처럼 보인다.

버튼은 런던 북부의 자택에서 남편 데이비드(David), 열두 살 된 쌍둥이 딸 세실리아(Cecilia)와 엘리자베스(Elizabeth), 아홉 살 난 막내딸 로밀리(Romilly)와 함께 산다. 그녀는 홀베인 그린 컬러 벨벳으로 벽을 장식한 위층 거실로 안내했다. 소파 위에는 네덜란드 사진가 헨드릭 케르스턴스(Hendrik Kerstens)의 작품이 담긴 커다란 금색 액자가 걸려 있고, 위쪽 선반에는 투명 아크릴 박스에 든 신발 한 켤레가 전시되어 있다. 맥퀸의 마지막 컬렉션 ‘Plato’s Atlantis’에서 선보인 아르마딜로 슈즈다. 우리는 해가 드는 자리에 앉아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이 우선이었죠.” 그녀가 회상했다. 결혼 전 이름은 사라 제인 허드(Sarah Jane Heard)였으며,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맨체스터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구불구불한 언덕과 거친 황야 사이였는데, 그녀는 언제나 거친 황야 쪽에 더 끌렸다. 아버지는 회계사였고, 음악과 영어를 가르치던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갔다. 집에는 책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늘 사람들, 자연, 드레스 같은 그림을 그렸다. 허드 가족이 모두 함께 어딘가를 갈 때면 친구들을 대동한 채 흰색 밴을 타고 이동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걸 보고 ‘고아원’이라고 부르곤 했다.

버튼은 여덟 살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맨체스터에서 기초 과정을 마친 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했다. “사라는 다른 학생과 달랐습니다.” 당시 그녀를 가르친 사이먼 언글레스(Simon Ungless)가 설명했다. “누군가가 멋진 청바지를 입고 들어오는 게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죠. 어설프게 멋 부린다고 속옷을 머리에 쓰고 오는 애들도 있었으니까요.” 자신의 오랜 친구 리 맥퀸에게 그녀를 소개한 것도 언글레스였다. “모두가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어요.” 버튼이 당시를 떠올렸다. “쇼나 백스테이지에 들어가려고 애썼죠.” 버튼이 맥퀸과 처음 일하게 된 것은 그가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3년 뒤 1995년에 발표한 쇼 ‘Highland Rape’ 백스테이지에서 의상 도우미로 참여했을 때다. 쇼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모델의 신발을 차례로 벗기고 신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1년 뒤 맥퀸은 그녀를 채용했다. “사라는 우리가 고용한 유일한 직원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작은 회사를 운영했던 베르카데가 고백했다. 버튼은 자신이 ‘천재’라고 표현하는 맥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카테고리를 구축하고 니트웨어와 가죽 제품을 제작하는 등 운영의 전반적인 영역을 맡기 시작했고, 마침내 여성복 헤드 디자이너가 되었다. “사라는 늘 맥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우리가 잘 알죠.” 베르카데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버튼은 거실에서 맥퀸 초창기의 스케치북을 몇 권 꺼냈다. 사진 자료와 원단 견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콜라주였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시 그녀의 드로잉이 매우 구조적이었다는 점이다. 재킷 칼라, 드레스 솔기, 케이프 단추에 이르기까지 매우 정밀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버튼의 드로잉은 한결 느슨해졌다. 재단사와 손발이 워낙 잘 맞아, 그녀는 디자인을 제안만 해도 충분하다. 액자에 넣은 또 다른 스케치를 꺼내 들었다. 리가 디자인한 그녀의 웨딩드레스다. 빈티지 레이스로 만든 늘씬한 실루엣의 ‘오이스터’ 드레스였다. 그녀는 킹스크로스에 있는 한 펍에서 친구 소개로 사진가 데이비드 버튼을 만났다. “솔직한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 직설적인 사람이죠. 그리고 나를 웃게 만들어요.” 두 사람은 2004년 결혼했다.

6년 후 맥퀸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무너졌습니다.” 버튼은 그의 마지막 컬렉션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역할을 맡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버튼 본인은 그 시기에 대해 신중하게 말을 아끼지만, 베르카데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라는 팀 내에서 감정적으로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팀을 위해 그 자리를 수락한 거예요. 그들을 진심으로 아꼈거든요.” 리가 남긴 미완성 컬렉션의 화려한 고요함을 기점으로, 버튼은 2011년 맥퀸의 시그니처인 뾰족한 어깨선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어깨선은 분해되었다가 해진 재봉선에서 다시 살짝 이어지거나,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자른 벨벳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그녀는 그것을 허물고 다시 쌓아 올리고 있었다.

이후 몇 년 동안 버튼의 쇼는 과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정교한 기술이 돋보이는 드레스로 절정을 이뤘다. 잡초가 무성한 오필리아의 무덤은 황금 브로케이드와 그림자로 염색한 듯한 실크 꽃잎의 풍성한 레이어링, 시들어가는 붉은 태피터 장미, 폭발한 오간자 같은 복잡한 형태로 재탄생했다. 그녀는 판매를 위해 세련되고 강렬한 룩도 함께 제시했다. 넓은 가죽 벨트로 허리를 조인 민소매 드레스, 밀리터리풍 바지, 검정과 금색 트리밍을 더한 클래식한 흰색 블라우스처럼 말이다. 그녀의 아카이브를 훑어보는 것은 상상력이 무한한 동시에 집요하게 현실적인 디자이너가 일해온 흔적을 엿보는 것이다.

베르카데의 설명에 따르면, 가족이 늘면서 아이들은 그녀가 ‘돌봐야 하는 대상’의 일부가 되었다. “왜 비로 만든 드레스는 없어요?” 아이들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면, 버튼은 시퀸 작업을 시작한다. 옆방 책상에는 의자가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다. 버튼이 일할 때 가끔 딸아이 중 한 명이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그녀는 아이들의 공책에서 모눈종이를 몰래 뜯어 스케치를 하곤 한다.

2년 전 버튼의 아버지가 작고한 일은 그녀가 맥퀸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문득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퀸을 떠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리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떠난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었는지, 그 일이 있고 세월이 빨리 흘러 누구도 그 감정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에 북받쳤습니다.” 1년 동안 그녀는 런던 서쪽에 작은 스튜디오를 얻었다. 어시스턴트 메그 테미스토클레우스(Meg Themistocleous)만 그녀 곁에 있었다. “드레이핑을 하고, 스케치를 하며,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었죠.” 그녀가 말했다. 이 시기의 창조적 생산성은 지속적인 힘이 되었다. 일하지 않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버튼은 주로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최근에는 영국 도예가 겸 작가 에드먼드 드 발(Edmund de Waal)의 회고록 <호박 눈의 산토끼>를 읽고 있다). 학창 시절 좋아하던 판화 작업을 다시 해보는 것도 고려 중이다.

맥퀸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중 최소 12명이 버튼을 따라 지방시에 합류했다. “사라에게 이번 이동은 일종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 중 최고예요.”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한 최고 제품 책임자 카렌 멩거스(Karen Mengers)가 말했다.

계속되는 비교를 피하려 애쓰지만, 버튼은 지금도 가끔 리와 자신의 차이점을 돌아본다. 그를 넓은 붓질을 구사하는 화가라고 여기는 반면, 자신은 언제나 “회화보다 드로잉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문자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드로잉은 버튼의 본능적인 표현 방식으로, 즉각적인 디자인을 구현하며 소규모 작업의 친밀감을 담고 있다. 그녀는 원단을 인체에 드레이핑하는 것을 ‘3D 스케치’라고 부른다. 피부에 가장 가까운 것에 흥미를 느낀다. “옷 안쪽이 바깥쪽만큼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그녀가 묻는다. “나는 늘 그게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녀는 쇠락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실크로 만든 장미에 시든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몇 주를 보내기도 한다. 2021년에는 앞면에 붉은 물이 스며든 듯한 프린트를 넣은 흰색 드레스를 디자인했는데, 식물 같기도 하고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버튼이 ‘꽃의 해부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이야기할 때면, 재킷이 꽃봉오리처럼 열리거나 드레스 뒷면이 껍질처럼 벗겨지는 인상을 원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자연 세계의 부패가 피처럼 번지며 원단을 장식하는 개념에도 끌린다는 의미다.

“불완전함은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버튼이 말을 잇는다. “여자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모습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여성이란 관점에서 관능성과 성적 매력을 이해한다는 관념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창작 작업을 하는 여성에게 끌린다. 디자인할 때면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카이아 거버, 나오미 캠벨 등을 떠올린다. “모두 인생의 여러 순간에 있는 여자들이죠.” 쇼 캐스팅에서도 다양한 연령대와 체형의 모델을 선택하고, 각자가 의상에서 느끼는 감각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많은 사람이 버튼의 옷을 ‘공감적’이라고 묘사한다. “옷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몸에 와닿습니다.” 스타일리스트 카밀라 니커슨(Camilla Nickerson)은 자신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고 했다. 런웨이 스타일링에 참여했을 때 모델이 변하는 모습을 봤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감정적 반응이에요. 키가 더 커진 것처럼 보였죠.” 블란쳇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보호받는 기분이 들어요. 입는 순간 감탄이 나오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데, 뭔가 운명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창립자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의 아틀리에를 리노베이션하던 중 건축업자들이 벽 안에 숨겨져 있던 갈색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1952년 지방시가 선보인 첫 꾸뛰르 컬렉션의 패턴이 들어 있었다. 버튼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기 위해 하우스의 기원이 부활한 것만 같았다. “그때 결심했어요. 좋아, 실루엣부터 시작해보자!” 버튼이 기억을 떠올렸다. “지방시의 실루엣이 아니라 나의 실루엣으로 말이죠.”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 쿠페(Fil Coupé) 원단의 패턴 모양처럼 직접적인 레퍼런스를 연구하다가, 곧 그것을 버리고 자기만의 실루엣을 구축하는 쪽을 택했다. 지방시 데뷔 쇼의 오프닝 룩은 1950년대풍 언더웨어 위로 겹쳐 입은 검정 망사 보디수트였고, 가슴에는 흰색 자수로 ‘Givenchy Paris 1952’라고 쓰여 있었다. 버튼은 창립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봐, 이것이 여성의 몸이야. 우리는 그 위로 하나씩 조심스럽게 입힐 거야.”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델핀 아르노가 쇼에 참석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방시 하우스의 살롱에서 쇼를 열었어요. 장인 정신과 색, 질감의 모든 디테일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죠.”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꼬인 솔기를 지닌 검정 재킷이 이어졌고 짧은 튤 치맛자락의 뷔스티에 드레스와 곡선 형태의 트렌치 코트, 와이드 칼라의 피코트, 모래시계 실루엣의 라이더 재킷과 앞뒤를 뒤집어 네크라인을 깊이 판 수트가 등장했다. “여자들이 정말로 입고 싶은 옷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버튼이 설명했다. “쇼에서 간과되기 쉬운 질문이죠. 불꽃놀이처럼 화려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장식은 거의 없었다. “뭔가를 장식하는 건 아주 쉬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드는 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기본으로 돌아간 버튼의 방식은 급진적인 행위였다. 위베르 드 지방시의 작업 혹은 리 맥퀸이 지방시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 후반 작품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만의 빈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것을 채워갈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녀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르노도 동의한다. “지방시의 새 장이 열렸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죠. 쇼도 정말 좋았지만, 그녀에게도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그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니까요.”

파리에서 버튼은 지방시 스튜디오의 내벽 철거에 대해 건축가들과 의논하고 있다. “모든 공간이 너무 분할되어 있어요.” 그녀가 설명을 이었다. “그렇게 일할 수는 없어요. 모두가 모든 것을 보고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버튼은 신시아 에리보의 멧 갈라 드레스 진행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마네킹 위에서 루비색 보석을 장식한 소매 같은 의상 조각이 하나씩 조립되는 장면은 전투를 앞둔 기사에게 갑옷을 입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결과물은 갑옷이라기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옷을 입은 채로 반쯤 찢어놓은 드레스에 가깝지만 말이다. 아홉 겹의 튤과 태피터로 만든 스커트는 앞쪽이 벌어져 있었고, 코르셋 칼라는 등 쪽에서 갈라져 있다. 이 같은 조합은 버튼의 시그니처다. “약간 파괴적이고, 전부 해체되어 있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느낌이죠.” 에리보는 이 의상을 어떻게 입을까? “우리가 끈으로 조일 거예요.” 버튼이 고개를 끄덕인다. 버튼 자신이 멧 갈라에서 무엇을 입을지에 대한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회피하던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방 건너편에 고정된다. 거기에는 위쪽을 예쁘게 하나로 묶어서 옷걸이 위를 덮은 크림색 모슬린이 있었다. “저 옷 커버를 입을 수도 있겠군요.” 그녀가 웃으며 제안한다.

긴 하루를 지방시 아틀리에에서 보낸 후, 우리는 볼테르(Voltaire) 부두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진토닉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버튼은 칼라에 주얼 장식을 더한 빳빳한 흰색 면 셔츠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일하면서 얻었어요.” 그녀는 청소 도구를 보관하는 벽장에서 발견한 것 같은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에게 유산에 대해 물었다. 질문하는 순간 그녀에게는 지나치게 거창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대답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것. 어릴 적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세상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패션계처럼 창의적인 분야에 얼마나 다양한 역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옷을 만들고 피팅을 하러 오는 모든 사람의 일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녀는 뭔가를 만드는 것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 과정의 모든 면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강조한다.

옷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지 묻자, 그녀는 개인적 관점에서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에게 유의미한 옷에 대해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자녀들을 떠올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에게 물건은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꿈꾸게 만들고, 유대감을 느끼고, 옷장에 보관했다가 20년 뒤에도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보물이죠. 아름답게 재단되고, 세심하게 만들고, 애정이 담겼으며, 여성의 몸을 위해 만든 것들이요.” 버튼은 결론지었다. “자신을 근사하게 느끼게 해줄 뭔가가 필요한 겁니다.” VK

    Gaby Wood
    사진
    David Burton, Courtesy of Givenchy
    백스테이지 사진
    Ruby Pluhar, Sam Hell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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