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비탈레가 이끄는 ‘뉴 베르사체’

다리오 비탈레가 처음으로 직접 모나리자를 감상한 것은 그가 열 살 때였다. 비탈레는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그를 가능한 한 많은 박물관에 데려가기 위해 노력했다며, 수십 년 전 파리로 떠났던 가족 여행을 추억했다. 꼬마였던 비탈레는 자그마한 키와 인파 탓에 모나리자의 상징과도 같은 옅은 미소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당시의 기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그 작품을 봤다는 것보다 제가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죠.”
분명 흥미로운 일화지만, 우리가 마흔한 살에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다리오 비탈레에게 궁금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패션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하우스를 책임지게 된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베르사체를 이끌어갈 것인가? 미우미우의 ‘비밀 병기’였던 그가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재능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나텔라 베르사체와의 관계는 또 어떨까?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하는,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는 어떤 모습일까?

<보그>와 인터뷰 중 다리오 비탈레가 ‘뉴 베르사체’의 예고편을 살짝 공개했다.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 모여 완성된 프로젝트, ‘베르사체의 구현(Versace Embodied)’을 소개하며, 하우스를 둘러싼 관념과 이미지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앞서 얘기했던 모나리자의 사례와도 맞닿아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때처럼 베르사체를 직접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빌렸습니다.” 스티븐 마이젤과 카밀 비비에(Camille Vivier) 같은 사진가는 물론, 시인 아일린 마일스(Eileen Myles)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베르사체를 구현하다’가 흥미로운 이유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필수인 ‘제품’이 완전히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그 어떤 신제품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베르사체를 표현한 여러 장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그림이 존재할 뿐이다. 하우스의 쇼룸 안, 그리고 쇼룸이 위치한 제수(Gesù) 거리 근처에서 촬영한 정물 사진. ‘베르사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드 모델들의 스케치. 그리고 그 스케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또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톱 모델의 사진. LA에서 펼쳐진, 퀴어 댄서들의 라인 댄스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모두 친근하게 다가오는 동시에 시적 감수성이 느껴진다.

아직 데뷔 컬렉션을 선보이지도 않은 다리오 비탈레는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 마케팅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패션 브랜드는 더 이상 갖고 싶은 옷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들이 단순한 ‘패션 브랜드’ 이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하우스들은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생 로랑 프로덕션을 떠올려보라) 예술가를 후원한다(샤넬과 로에베, 보테가 베네타처럼). 예술가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베르사체를 표현해달라’고 의뢰한 이번 프로젝트 역시 자신들의 문화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지금 패션계가 ‘커뮤니티’라는 단어에 열광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베르사체의 이번 캠페인은 공동체가 힘을 합쳐 완성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도리어 각기 다른 예술가들이 주어진 주제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결과물을 모아놓은, 일종의 ‘큐레이션’처럼 다가온다. 다리오 비탈레는 이번 프로젝트가 ‘디너파티’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금빛 프린팅과 메두사의 머리 장식으로 가득한 이 디너파티의 주제는, 당연히 ‘베르사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다.
비탈레는 이런 즉각적이고 인간적인 반응이 하우스의 DNA와 일맥상통한다고 믿는다. “베르사체가 상징하는 가치는 저에게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베르사체가 우아한 태도로 규칙을 깨는 사람들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베르사체는 수년간 가족적인 가치를 지켜왔죠. 친밀함, 관대함, 솔직함처럼 긍정적인 것은 물론 전복이나 대립, 분노처럼 부정적인 가치까지 말이에요.”
그는 대화 중 맥시멀리즘, 신화, 그리고 섹스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비탈레는 특히 섹스가 자신의 창작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이야기했다. “신체적 행위나 외설적으로 표현한 섹스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 행위가 선사하는 촉각적 감각, 그리고 감정에 더 관심이 있죠.” 교복을 연상시키는 크롭트 톱과 플레어 미니스커트를 선보이며, 미우미우 특유의 여성적이면서도 모순적인 미학을 빚어낸 주인공이 바로 다리오 비탈레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비탈레는 패션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섹스와 관련된 코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몸과 성 정체성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하죠.” 그는 공공장소에서는 덕을 쌓고 사적인 곳에서는 죄를 지으라는 격언을 언급하며, 베르사체가 이 오래된 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무척 대담했죠. 그는 공공장소, 사적인 장소와 같은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고 여겼을 테죠. 지아니는 좋은 의미로 겸손함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르사체를 구현하다’는 이런 가치들을 포용하는 프로젝트다. 미국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아일린 마일스가 쓴 두 편의 시는 불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친밀하게 다가온다. 비탈레는 마일스가 오랜 시간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해왔고, 작업물에서 생동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포토그래퍼 스테프 미첼(Stef Mitchell)은 베르사체 속옷을 입은 채 오토바이에 올라탄 빙크스 월턴(Binx Walton)의 모습을 담으며 베르사체의 호색적인 에너지를 표현했고, 콜리어 쇼르(Collier Schorr)는 포트레이트를 그려 비탈레에게 선물했다. 비탈레는 이 그림이 친숙하고 은밀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손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손과 몸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립니다. 쇼르는 사진가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콕 짚어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죠.”
카밀 비비에는 팔라초 베르사체의 대문에 장식된 메두사 메달리온을 포착했다. 이는 하우스가 최초로 메두사의 머리 형상을 활용한 사례로, 자연스레 베르사체가 써 내려간 ‘패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븐 마이젤이 1997년 촬영한 이스탄테 바이 베르사체(지아니 베르사체가 1990년대 초반 론칭한 디퓨전 라인이다) 최초의 룩북 역시 마찬가지다. 비탈레는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지아니 베르사체와 스티븐 마이젤의 관계를 언급하며, 하우스의 뿌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뿌리는 이미 견고합니다. 이제 꽃을 피우는 건 저의 몫이죠.”

하우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과 영상물도 있다. 안드레아 모디카(Andrea Modica)는 이탈리아 남부 여행 중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인물을 흑백사진으로 촬영했다. ‘포니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 엘리트(Olly Elyte)는 자신이 연출을 맡은 라인 댄스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런 작업물은 ‘프로젝트가 너무 진지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리아체(Riace) 청동상 앞에 서 있는 관람객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들은 스탕달 신드롬을 겪기라도 하는 듯, 넋을 놓고 신성한 전사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경의, 충격, 호기심, 흥분… 그들의 표정에는 이 모든 감정이 섞여 있다. “리아체 청동상은 정말 웅장합니다. 조각상들이 고고 댄서라도 되는 듯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표정에 늘 흥미를 느꼈죠.” 비탈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사진이 ‘베르사체 그 자체’라고 생각해왔다고 고백했다.

“이 사진은 전복적인 동시에 은밀합니다. 몇몇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수치심을 읽을 수 있죠.” 비탈레는 이 사진을 보며 관음주의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긴장감은 민주적 관점에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바라본 지아니 베르사체를 떠올리게 한다. “지아니는 마릴린 먼로를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에 비유했죠. 둘 다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아니는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그 정신은 지금도 베르사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죠.”
‘베르사체를 구현하다’는 하우스에도 무척 새로운 시도다. 비비에, 쇼르, 그리고 마일스는 ‘베르사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진가는 아니다. 도나텔라의 지휘하에 베르사체와 동의어처럼 여겨지던 ‘글래머’와 ‘초호화 캐스팅’ 역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제 세상과 베르사체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죠.” 마일스는 베르사체와 자신 사이의 연결 고리가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걸 시인하면서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는 바로크 양식을 좋아하는데, 저에게 베르사체는 언제나 ‘부유한’ 브랜드였죠. 쿨하고 페미닌한 메두사 로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탈레 역시 마일스의 말에 공감했다. “하우스를 맡은 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베르사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르사체를 한 번도 사보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겁니다.” 그의 말처럼 꼭 소비자가 아니더라도 팝 문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베르사체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결국 베르사체의 정수, 그리고 하우스가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는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계획을 간단하게 설명해준 것이 전부였죠. 제가 바랐던 것은 오직 그 계획에 대한 진실한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늘 자극을 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마일스는 비탈레의 계획에 대해 ‘장난스럽고 사나우며, 결말이 없다’라고 표현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이미지들을 본 다리오 비탈레의 ‘즉각적 반응’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가 수개월간 다듬은 비전과 철학이 처음으로 외부 검증을 받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자, 비탈레는 웃으며 답했다. “제 반응이요? 리아체 청동상을 구경하는 관람객들과 비슷했죠! 콜리어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아일린의 시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등 수많은 궁금증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비탈레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 태도가 바로 ‘뉴 베르사체’의 핵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베르사체는 언제나 답 대신 질문을 찾아 나섰죠.” 이는 그가 도나텔라에게 배운 것이기도 하다. “그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도나텔라는 지적이고 관대한 인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호기심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베르사체를 구현하다’는 서막에 불과하다. 그는 약 일주일 뒤, 2026 봄/여름 밀라노 패션 위크 중 소규모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데뷔 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 베르사체 하우스를 깊이 있게 탐구했을 아일린 마일스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많은 것이 바뀔 예정이죠. 우선 지금은 ‘부유하다’라는 단어가 반드시 금전적 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만 말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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