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까르띠에 코리아 김쎄라
사회적 기대와 편견에 잠식당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 선배와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변화의 주체는 나 그리고 여성이라 믿기에.

열정과 도전 의식 그리고 자기 돌봄
첫 출근일이 잊히지 않는다. 싸이월드에서 글 좀 쓴다고 생각했는데, 빨간 펜으로 가득한 원고(‘딸기밭’이라 부른다)를 받아 들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지만, 경력이 쌓여도 다른 고민이 이어졌다. 이루고 싶은 직업적 꿈이 있었는데, 이제는 매달 마감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아득해진다. 자기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도 비슷했다. 여성에게 들이대는 사회적 기대와 성 편견에 잠식당해 스스로 목표를 낮춰 이 자리에 머물지 않나 자책했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 CWI)를 접하고 나와 친구에게도 이런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CWI는 까르띠에의 대표적인 글로벌 사회 공헌 프로젝트로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2006년 여성 창업가의 잠재력을 지원하고자 설립했고, 여성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비즈니스를 선의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치를 지향한다. ‘펠로우’로 선정된 여성 창업가에게는 상금과 교육 프로그램, 자체 커뮤니티를 통한 인적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펠로우들은 여성 리더, 멘토들이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만족도가 높다. 그만큼 우리에겐 조언을 구할 언니와 힘을 나눌 동료가 필요하다. 까르띠에 코리아의 김쎄라 대표이사도 공감했다. 패션계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까르띠에 코리아 최초 현지 여성 사장으로 취임한 그녀는 CWI의 펠로우들에게 힘과 영감을 받는다고 말한다. CWI를 비롯해 여성 창업가들, 그리고 업계에서 오래 일한 ‘쎄라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2006년 까르띠에는 변화를 주도하는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고자 CWI를 설립했습니다. 지원 대상이 왜 ‘여성 창업가’인가요? 여성이란 존재 자체가 까르띠에에 특별하고, 창의성과 영감의 원천입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CWI는 여성이 창업을 통해 잠재력과 추진력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CWI의 합격자, 그러니까 펠로우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비즈니스를 우선시하는 듯한데요. CWI 자체가 도전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러다 보니 국가, 산업, 분야를 제한하지 않아요. CWI는 단순한 공모가 아니고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를 발굴, 지원하는 데 의미를 둡니다. 신청부터 선정까지 매우 세심하게 이뤄지는데, 중요한 첫째 조건은 UN의 지속 가능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 최소 하나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수익을 창출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어야 합니다. 셋째는 창업한 지 1~6년 정도 된 초기 기업이어야 합니다. 창업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만 특히 여성 창업가는 성 편견, 사회적 기대, 롤모델의 부재, 자금 지원과 연관 네트워크 부족으로 여러 어려움을 마주하죠. 이런 현실에서 여성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지원하고 있어요.
독소 없는 피임약, 유방암 환자를 위한 브래지어, 언어장애 아동을 위한 온라인 치료와 재활 서비스 등의 비즈니스가 선정됐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창업은 무엇이었나요? 창업 동기 자체가 CWI와 부합하는 한국 펠로우를 언급하고 싶군요.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2023년 선정)는 전문의 시절 정신 건강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시기를 놓치는 환자를 목격했죠. 3시간씩 기차로 오가며 상담을 받는 환자였는데, 두세 달이 지나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를 들어요. 그것이 문우리 대표에게 강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고, 해결책을 찾고자 온라인 멘탈 케어 ‘마인들링’을 만듭니다. 박지원 대표(2024년 선정)는 한국 사회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성 건강을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 ‘세이브앤코’를 설립해요. 딸 가진 엄마로서 중요한 부분임을 공감합니다. 두 분 모두 개인의 경험에서 문제를 감지하고, 무엇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솔루션을 실행했어요. 그 점이 의미가 커요.
문제 인식에서 멈추지 않는 실행력이 중요하군요. 그렇죠. 창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사무실, 주변의 여성 직원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믿어요. 까르띠에 직원들만 봐도 단기적 퍼포먼스보다는 장기적인 호흡과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의 메종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왔죠.
수상자들은 3만~10만 달러의 상금 외에도 CWI 커뮤니티를 매력으로 꼽곤 합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여성 창업가와 멘토들이 인사이트를 나누며 서로 연대하는 것이죠. 조직에 대한 고민, 시행착오 등을 의논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귀한 공간이죠. 2020년 CWI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1년간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심층적인 비즈니스 코칭, 경영진 리더십 개발까지 폭넓게 제공해왔어요. 이후 CWI 펠로우들은 단순한 수상자를 넘어 리더로 진화하고, 우리가 마련한 강력한 연대 커뮤니티 또한 활용하고 있죠. 이 부분이 CWI가 20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CWI 창립 20주년을 맞이했군요. 가장 큰 성과는 뭘까요? 지난 20년간 CWI는 66개국의 기업가 330여 명을 지원해왔어요. 재정적 지원은 1,410만 달러에 달하고, 하나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죠. 이들을 묶는 공통점은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 대담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는 거예요. 팬데믹 기간에도 여성 창업가들은 정말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줬고, CWI는 그들이 서로 연대하는 장이 되었어요.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성장하는 거죠. 오는 4월에 30명의 2026년 펠로우와 비즈니스가 발표되고, 6월 태국 방콕에서 이를 기념하는 어워드 세리머니가 열리는데, 그곳에서도 유의미한 메시지가 나올 거예요. 2027년 에디션은 4월 16일부터 6월 16일까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공식 웹사이트(www.cartierwomensinitiative.com)에서 지원할 수 있어요.
2006년 까르띠에 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뒤 2009년엔 까르띠에 코리아 최초 현지 여성 사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오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직접 말하기 부끄럽군요.(웃음) 2006년 입사를 제안받고 3개월간 매일 꿈을 꿀 만큼 무척 긴장했어요. 저를 지탱해준 중요한 두 가지 가치를 재차 인지했죠. 열정과 도전 의식. 열정은 의욕을 넘어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힘이에요. 다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상대에게는 여유와 인내를 가지고 대해야 해요. 도전 의식이란 진화에 대한 의지를 가지면서, 지금 사회의 콘텍스트(Context)에서 내가 가진 부분을 인지하고, 주변을 함께 독려할 수 있어야 하죠. 글로벌 콘텍스트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기에 새로운 모멘텀을 향해 비즈니스를 계속 진화시켜야 해요. 리더라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거예요. 또한 회복 탄력성은 꼭 가져가야 하는 성장 전략이죠. 내가 속한 이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 우리 조직의 모양새,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모두 끊임없이 조정하고 진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이것들이 저를 아직까지 살아남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 의식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죠. 혼자 해내기는 쉽지 않죠. 다행히 저는 이 부분을 지지해주는 회사에서 일해왔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찾아오는 고비를 동료들과 함께 하나씩 헤쳐나갔어요. 한번 이뤄내면 다음 단계는 전보다 능숙하게 일굴 수 있어요.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이 만들어지듯이 말이죠.
지속적으로 패션계에서 커리어를 쌓아왔어요. 도나 카란과 DKNY 뉴욕 본사에서 바이어이자 머천다이저로 한국 리테일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인터내셔널 컴퍼니 보텍에서 랑방을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를 총괄하며 랑방의 한국 론칭을 담당했죠. 펜디 코리아 세일즈 및 브랜드 매니저를 역임하고 지금 까르띠에까지, 일부 커리어만 얘기했는데도 풍성하군요.(웃음) 패션 분야에 커리어를 쌓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시간이 빠르구나 ‘현타’가 오고 숙연해집니다.(웃음) 직장에서 인재를 보는 기준은 뭘까요? 다 각자의 재능과 장점이 있지만, 결국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핵심이에요. 배우고 싶은 선배, 팀에 영입하고 싶은 후배, 분위기 메이커로서 필요한 친구처럼 같이 일하고픈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오늘 촬영만 해도 에디터,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의상 스타일리스트, 사진가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하잖아요? 창의성과 감각을 요구하는 거대한 패션 산업에서도 수많은 이가 동시에 움직이고 협력하죠. 그렇기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능력도 능력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갖춰야 하는군요. 감히 하나 더 조언한다면, 규칙적인 루틴이 필요해요. 저는 잠깐이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요.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오전 7시, 15분간 스트레칭을 하죠. 또 회사 일이 바쁘더라도 자신을 위한 공부를 했으면 해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에 관한 책을 매일 20분씩 읽으면, 10년 뒤에 큰 차이를 만들어낼 거예요. 카카오톡을 하거나 휴대폰 보는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는 거죠. 저는 거시 경제와 여러 산업 분야에 관한 인사이트를 길러왔어요. 20주년을 맞이한 CWI처럼 꾸준히 해나가는 힘이 분명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보그 리더’는 올해도 여성 명사들과의 강연 및 대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시대에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여성의 영향력을 더 키운다는 의미기도 하죠. 필요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싶은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출발해야 해요. 동시에 나의 내면만큼 외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요.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로 인해 주변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이해하고 균형을 이뤄야 하죠. 또한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김수진
- 헤어
- 권영은
- 메이크업
- 김지현
추천기사
-
뷰티 아이템
디올 뷰티가 제안하는 프리미엄 기프트, 디올 프레스티지 컬렉션
2026.02.09by 최보경
-
뷰티 아이템
디올이 사랑을 전하는 방법, 크리스챤 디올 뷰티의 발렌타인데이 기프트 셀렉션
2026.02.06by 최보경
-
여행
눈꽃 피는 낭만의 겨울 여행, 중국 지린성
2026.02.06by 엄지희
-
푸드
엘리아 박이 뉴욕에서 만드는 패셔너블한 한식 문화
2026.01.09by 류가영
-
라이프
‘2/3 법칙’으로 스타일 균형 잡기
2026.01.07by 오기쁨
-
라이프
결혼 생각이 없다며 이별을 고한 전 남친, 왜 바로 다음 여자와는 결혼했을까요?
2026.01.06by 김현유, Jenna Ryu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