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태양의 뜨거운 구애, 반얀트리 랑코

2026.05.15

태양의 뜨거운 구애, 반얀트리 랑코

오직 당신만을 위해 태양의 공연이 펼쳐지는 그곳, 반얀트리 랑코에서.

반얀트리 랑코.

“태양이 나를 보러 왔다.” 반얀트리 랑코(Banyan Tree Lăng Cô)에서의 첫 아침, 메모장에 이처럼 적었다. 정수리를 비추는 햇빛을 쬔 날이라면 운이 좋은 편이고, 대부분은 회사 건물에 갇혀 출근길 버스 차창 너머로 그 존재를 인지하는 일상.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도, 그의 형체를 야무지게 본 지도 몇 년이 됐는지 가물거린다. 하지만 그날 얼결에 침대에서 마주한 일출은 오직 나만을 위한 태양의 공연처럼 느껴졌다. 앙사나 랑코(Angsana Lăng Cô)에서는 버기카를 타고 5분, 해변과 테리터리를 공유하는 반얀트리 랑코에서 2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 풍경을 보며, 2박을 이미 앙사나에서 묵었기에 지역적 특색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특별한 감흥 없이 리조트에 입성한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바다를 향해 낸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총 89개에 이르는 객실이 다 풀 빌라지만, 어디서도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발휘해본 대담함이었다. 눈을 뜬 건 평소보다 이른 새벽 5시. 베트남과 한국의 2시간 시차 덕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희미하게 동틀 무렵의 하늘부터 체리처럼 달콤한 태양, 화려한 등장을 위해 붉은 윤슬로 깐 레드 카펫까지 실컷 감상하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간 빛이 몸 구석구석 어둠은 물론 게으름까지 밀어내며 이제는 일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종용했다.

그새 따끈하게 달궈진 테라스에 앉아 건성으로 스트레칭을 한 뒤 인피니티 풀에 몸을 담갔다. 평소 수영을 즐기지 않아도 들어가고 싶은 풍경이 눈앞을 메웠다. 남중국해의 수평선과 안남산맥의 울창한 열대우림을 한눈에 담은 채 하는 수영이 좋지 않을 리 있는가. 객실은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한여름이면 연꽃에 둘러싸이는 라군 풀 빌라와 수평선을 마주한 비치 풀 빌라, 바다 전망을 끼고 언덕에 층층이 올라선 시뷰(Seaview)와 오션뷰(Oceanview) 풀 빌라로 나뉜다. 나는 가장 안쪽의 시뷰 풀 빌라를 배정받았다. 킹 베드 룸 2개와 트윈 베드 룸 1개까지 총 10명이 머물 수 있는 구조로, 내가 머문 메인 룸에서 가장 먼 방은 첫날 외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반얀트리 랑코의 '스리 베드 룸 시뷰 풀 빌라'.
반얀트리 랑코의 '스리 베드 룸 시뷰 풀 빌라'의 메인 침실.
반얀트리 랑코의 '라군 풀 빌라'.

다급히 회신해야 할 메시지도 없는 평온한 토요일 아침. 방 안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궤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최적의 휴식을 위한다면, 반얀트리 웰빙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1:1 개인별 맞춤 트리트먼트 프로그램으로 식사와 수면 개선, 야간에 진행되는 휴식 리추얼을 비롯해 스파까지 진행하고 나면 몸속 깊은 곳까지 노곤해진다. 특히 요가 파빌리온의 모든 문을 활짝 연 채 자연 속에서 진행한 명상 수업은 내면 깊숙한 평안까지 도달했던 드물고도 귀한 시간이었다. 방콕에 있는 반얀트리 스파 아카데미에서 650시간의 훈련을 받은 테라피스트만 머물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앙사나 랑코 너머, 닉 팔도 경(Sir Nick Faldo)이 설계한 ‘라구나 골프 랑코(Laguna Golf Lăng Cô)’는 라운딩을 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선사한다. 산과 바다부터 논 뷰까지 다양한 경관 속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18홀로 설계되어 있는데, 물소와 새들이 풀을 뜯고 벌레를 잡아먹는 풍경 속에서 걷다 보면 운동이 아니라 치유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반얀트리 랑코 내 요가 파빌리온.
닉 팔도 경이 설계한 라구나 골프 랑코.

하루를 온전히 쉼으로 보낸 뒤, 리조트를 벗어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고도였던 후에(Huế)로 향했다. 다낭에서는 2시간, 반얀트리 랑코에서 1시간쯤 북쪽으로 이동하면, 도심 곳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응우옌(Nguyễn) 왕조의 찬란한 문화를 볼 수 있다. 가이드와 함께 카이딘 황제릉(Lăng Khải Định)에 들러 서양과 중국이 영향을 끼친 베트남 문화와 건축 이야기를 듣고,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후에성(Imperial City of Huế)도 둘러봤다. 부지런히 움직였건만, 오전 10시에 이미 하늘 꼭대기에 오른 태양빛에 백기를 든 채 마신 짭짤하고 달콤한 소금커피는 카페쓰어다(연유커피)를 능가한다고 감히 확언한다. 궁중 음식이 발달한 지역으로 육류와 해산물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는데, 모두 입을 모아 후에식 쌀국수 ‘분보후에(Bún bò Huế)’를 먹어보라 추천했다. 전주비빔밥처럼 명칭에 ‘후에’가 들어갈 정도로 도시를 대표하는 데다, 매콤한 소고기 국물이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건 물론이고 베트남 국가무형유산에 등재된 음식이다. 저녁은 반얀트리 랑코의 대표 레스토랑 사프론(Saffron)에서 태국식 파인다이닝을 즐겼다. 사프론의 매력은 애프터눈 티에서도 발휘된다. 누들로 감싼 새우튀김이나 닭꼬치, 망고밥 등의 한 입 거리 음식에 태국식 꽃차를 더해 새롭고 즐거운 미식의 순간을 완성하는 것이다. 배가 불러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던 일행 모두 그릇을 깨끗이 비운 것이 그 증거였다.

태국식 파인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반얀트리 랑코의 대표 레스토랑 사프론.
바다를 조망하는 반얀트리 랑코의 객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반얀트리 랑코.

보트 위에서 진행된 색다른 쿠킹 클래스로 베트남식 스프링 롤과 포멜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해변가에서 즐긴 바비큐 만찬도 좋았지만, 태양이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내려가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달궈진 땅이 달을 만나 부드러운 숨을 내뿜는데, 풀잎의 향긋함이 반얀트리 랑코를 가득 메우고 풀벌레며 작은 도마뱀도 활동하기 시작한다. 태양이 남긴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쿠지에 발을 담그고 별을 기다리는 순간.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어선이 작은 빛을 내며 왕복하는 모습이 먼바다로 비칠 때, 내일 다시 새로운 관객을 위해 떠오르겠다는 태양의 맹세로 반얀트리 랑코는 다시 충전된다. 자연의 엄연한 진리에 따라 나 또한 그랬다.

황혜원

황혜원

웹 에디터

<보그> 웹 에디터로 주로 패션 트렌드를 다루며, 웹사이트 전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쓰는 걸 좋아합니다. 돈이든 글이든.

더보기
포토
반얀트리 랑코 제공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