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 도예의 전복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현대 공예의 방점이다. 올해 수상자는 도예가 박종진으로, 가마 소성 이후 변형 불가한 도예의 고집을 꺾고 창의성을 더했다.

“굿모닝.” 로에베 재단 공예상 2026(Loewe Foundation Craft Prize 2026) 시상식 날 아침, 싱가포르에서 만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맥콜로(Jack McCollough)와 라자로 에르난데스(Lazaro Hernandez)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각각 푸른색과 검은색 셔츠를 가볍게 걸친 차림이었다. “이번에 한국인이 여섯 명이나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들은 스몰 토크 내내 스페인의 태양처럼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파리, 뉴욕, 멕시코시티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연이은 출장에도 말이다.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 심사위원으로 처음 참석한 둘은 조금 들떠 보였다. 그들에게 심사 기준부터 물었다.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를 장인 정신으로 융합하고, 고유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지 유심히 봤어요.” 수상자 힌트라도 달라고 하자 잭은 대답 대신 크게 웃었다. 리액션의 의미는 그날 저녁 시상식이 열리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에서 밝혀졌다. 도예 작품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를 출품한 한국 작가 박종진이 수상한 것이다. 국가문화유산인 옛 시청과 대법원 건물에 자리한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은 동남아시아 근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한다. 이곳에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 30인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관람 중 박종진 작가에게 출품작 ‘착시의 층위’의 설명을 들을 때부터 수상을 예견하긴 했다. 잭과 라자로가 언급한 과거와 현대를 잇는 시도와 ‘도예의 전복’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갖췄으니까. 무엇보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기물이었다. 도예가 박종진은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세라믹 석사, 국민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활동해왔고, 디자인 마이애미 전시에 참여하던 중 동료 작가의 권유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준비했다. 그 여정은 키친타월에서 시작한다.
작품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제 정체성은 도예가입니다. 하지만 세라믹이 가진 한계를 고민했어요. 왜 가마에서 굽고 나면 더 이상 변형할 수 없는지, 금이 간 것은 왜 실패한 건지 의문이었죠. 재료적 관점에서 이 세라믹 프로세스를 뒤집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그 실험에 가장 흔하고 저렴한 종이를 선택했죠. 한 달 정도 고군분투했는데, 뭔가를 해보려 애쓴 시간이 ‘압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압축된 형태가 주는 에너지가 컸고, 그걸 도자기로 구현하면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기록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키친타월에 도자기 슬립(흙을 갠 물)을 키친타월에 발라 겹겹이 쌓고 구웠습니다. 종이(키친타월)가 다 타는 희생 후에 단단한 물성의 기물이 남죠. 12년간 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겹겹이 쌓인 단면적 레이어를 보여줬다면 지금은 크기와 형태를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어요.
‘착시의 층위’의 무너진 듯한 형태는 의도한 건가요?
처음엔 사각 형태로 만들어 가마에 넣고 구웠어요. 그런데 큰 사이즈 때문에 가마 안에서 깨지고 눌렸죠. 기대와 달랐어요. 가마에서는 좋은 현상이나 좋지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젠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다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그다음에 어떻게 가공할지 결정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정이죠. 목수가 나무를 가져와 관찰한 뒤 어떻게 깎을지 정하는 목공예와 비슷해요. 저 역시 가마에서 나온 결과물을 관찰한 뒤 전동공구를 이용해 가공합니다. 종이가 타고 남은 자리를 깎다 보면 예상치 못한 패턴을 발견하기도 하죠. 일종의 우연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그 우연 덕분에 상을 받았군요.(웃음)
본래 도예는 가마 소성 이후 변형이 금지되는데, 이를 전복했군요.
도자기 작업은 철저히 통제돼야 한다는 점이 언제부턴가 힘들었어요. 이건 가마에서 나온 후부터 형태가 시작되는 작업이라 흥미로워요.
색 배합도 조화롭습니다.
여러 곳에서 색에 대한 영감을 받아요. 축구 유니폼의 색 조합을 기록해두기도 하죠. 작품을 만들 때는 여러 색을 직관적으로 조합해요.
이 작품은 석 달간 매일 4시간씩 작업했죠. 반복과 기다림이 이어지는 공예 작업은 수행처럼 보이곤 해요.
허리는 좀 아프지만(웃음) 만들기 시작하면 시간이 무척 빨리 가요. 자연스럽게 사유도 하죠. 예를 들어 바둑 기사처럼 각 조각을 어디에 놓을까 신경을 많이 쓰는데, 내가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 나중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요.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상치 못했기에 조금 막막합니다. 앞으로 뭔가 더 보여드려야겠죠?(웃음) 그저 이 자리가 공예를 조명하고, 전 세계 작가들과 소통하는 장이라는 것에 감사해요.
Korean Finalist
1 이소명, ‘물질의 연대기’ ‘물질의 연대기 001’ ‘물질의 연대기 002’

작가는 오크나무를 얇게 켜고 수증기로 유연하게 만든 뒤 구부리고 엮어낸 벤치와 스툴을 선보였다. “새들이 둥지를 짓는 방식에서 착안했어요. 나뭇가지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지만 뭉쳤을 때 힘을 가져요. 그렇기에 만들면서 에너지를 얻었어요. 사람들의 연대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작품에는 소용돌이무늬의 디테일이 새겨져 있다. “새들은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하죠. 자연의 순환 법칙을 소용돌이 형태로 표현했어요.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2 성코코, ‘그림자 꼭두’, ‘옵탁(Optak)’ ‘리베로(Liebero)’ ‘퍼필러브(Pupillove)’ ‘봉자(Bongja)’ ‘펍시(Pupsi)’로 구성.

점토로 만든 꼭두 형상에 스와로브스키 스톤이 반짝이는 브로치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다. 착용자를 보호하는 존재이자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나라 전통 꼭두와 그림자를 연결한 작업이에요. 둘이 비슷하게 다가왔거든요. 그림자는 우리 곁에 늘 존재하며 지켜주는 것 같고, 꼭두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호위하면서 오히려 삶을 이야기하는 듯해요.”
3 박지은, ‘순환의 씨앗’

“코로나19 팬데믹 무렵에 내게 작업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했어요. 매일 7시간씩 앉아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작품을 꿰매고 이어갔죠. 그 과정은 명상이자 수행이었고, 작업을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이후 작가가 ‘자연의 순환’을 탐구하면서 나온 작품이 ‘순환의 씨앗’이다. 착색된 은에 구멍을 뚫고 하나하나 엮으면서 씨앗이 자라 땅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4 이종인, ‘배흘림’

호두나무로 만든 1인용 벤치는 한눈에도 한국적 실루엣이 돋보인다. 작가는 기능성을 넘어 조형적으로 극대화하고자 했다. “구조적으로 시각적인 불안감을 줄 수 있기에, 이를 해소하고자 상부는 지면과 평행한 결을 쓰고 하부는 수직적인 결을 썼어요. 덕분에 하부가 상부를 지탱하는 느낌을 주죠. 둘을 주먹장이음으로 결합한 후 그라인더와 대패로 다듬었습니다. 기둥 중간은 배흘림에서 영감을 받아 약간 부풀어 있죠.”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는 세 번째 도전한다. “작가를 존중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공모전이에요. 이를 준비하면서 저의 작품 세계도 더 나아졌길 바랍니다.”
5 조수현, ‘재구성된 시선 그릇 3C1L’

작가는 금속 주조 기법을 기반으로 제작해왔다. 먼저 주조 과정에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몰드(Mold, 거푸집)가 필요한데, 하나의 몰드 세트에서 다양한 형태가 파생되도록 몰드를 모듈화한 ‘모듈레이티드 몰드 캐스팅(Modulated Mold Casting)’ 기법을 작업에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몰드는 동일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복제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이 방식에서는 각 모듈의 조합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가 생성된다. “이번 작품은 하나의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재구성되는지 기물 형태로 시각화했어요. 제작 과정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기물 형태를 디자인하고, 각각을 캐스팅할 수 있도록 몰드를 모듈 단위로 분할해 설계했죠. 이후 두 기물 중 개념을 더 잘 드러내는 형태를 기반으로, 다른 기물의 몰드 모듈 일부를 혼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어요. 이러한 제작 방식은 외부의 경험과 시간이 개입되며 인식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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