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무도회

신비주의, 베일 뒤의 인물, 얼굴 없는 미녀, 익명성…. 인터넷과 CCTV, 몰래카메라 등으로 인해 모든 것이 쉽게 노출되는 시대에 더 주목받는 태도다. 가리고 숨겨서 더 폼 나는 마스크 스타일!

지드래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표정일지 모른다. 천하에 둘도 없는 패션 뮤지션이 ‘니가 뭔데’와 ‘블랙’ 등을 수록한 두 번째 솔로 정규 앨범을 냈다. 이를 위해 미리 선보인 티저 광고 포스터에 각인된 영어 단어가 ‘쿠데타’다. 도발적이고 저돌적이며 급진적인 낱말만큼 충격인 건, 역시 지드래곤 그 자체. 입을 가린 마스크를 쓰거나 눈만 드러낸 채 붉은 두건으로 머리를 휘감은 건 물론, 검은 비니는 눈 부위만 거칠게 뚫은 뒤 옷핀으로 고정해 뒤집어썼다. 카니에 웨스트가 최신 앨범 홍보 사진으로 붉은 비니를 쓴 것과 비교해도 될 만큼, 요즘 10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쩐다’. 지디와 카니에의 니트 복면은 얼마 전 반 푸틴 시위를 일으킨 러시아의 여성 펑크록 인디밴드인 ‘푸시 라이엇’을 언뜻 연상시킨다. 원색의 니트 복면으로 무장한 채 정치적 퍼포먼스를 감행하는 5명의 아가씨 말이다. 푸시 라이엇에서 착안한 디자이너까지 출현할 만큼 복면이 패션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지난봄 뉴욕 패션 위크 때 푸시 라이엇처럼 분장한 모델들이 ‘겔랑 진스(Gerlan Jeans)’ 쇼의 피날레에 나왔다).

시즌 트렌드에 영향을 끼치는 하이패션 상표가 아닌, ‘겔랑 진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고도 패션은 가면 뒤에 숨거나 감춘 신비로움을 탐닉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엿보기를 했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디자인 팀 체제로 운영되는 요즘뿐 아니라, 마르지엘라 자신이 브랜드를 이끌던 90년대부터 틈만 나면 모델에게 옷감을 뒤집어씌웠다. 요새는 그들의 꾸뛰르 컬렉션을 위해 보석이나 정교한 장식의 옷감으로 보따리 싸듯 머리 전체를 포장한다. 복면이나 가면은 이 신비로운 메종의 정체성 중 하나다. 마르지엘라 역시 패션쇼 마지막에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 그는 옷을 보여줄 때 슈퍼모델들의 고유한 인상에서 크게 도움을 얻진 않았다(물론 벨기에풍의 음울한 이미지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감을 활용해 전위적인 룩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복면은 재킷이나 팬츠만큼 중요한 도구다. 반인반수처럼 자신의 절반이 패션 디자이너인 카니에 웨스트의 경우, 이미 마르지엘라 꾸뛰르의 보석 가면을 쓰고 몇 달 전 파리 공연을 마쳤다.

당대 패션이 눈독 들이는 마스크 맨을 꼽자면, 카니에 웨스트나 지드래곤이 아니다. 다프트 펑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다. 두 남자는 약간의 키 차이로 구별할 수 있을 뿐, 웬만해선 누가 누군지 가늠하기 힘들다. 로봇 헬멧을 쓰고 있어서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 의상을 모조리 디자인하는 에디 슬리먼이라면 단박에 구별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테크노 꾸뛰르는 전기 충격처럼 패션의 눈에 쏙 들어와 박혔다. 당연히 에디 슬리먼에 의해 생로랑 광고 모델로 발탁됐음은 물론이다. 또 <워모 보그>와 <데이즈드앤컨퓨즈드> 표지와 특집 화보는 물론, 카린 로이펠트의 패션 북 <CR>에서는 밀라 요보비치와 야릇한 장면도 연출했다. 또 슈퍼모델 칼리 클로스와 함께 맨해튼을 누비며 패션 화보까지 촬영했다. 뉴욕 한복판에서 촬영했기에 잡지에 실리기 전부터 SNS를 통해 헬멧을 쓴 두 남자와 칼리의 데이트가 디지털 세상 곳곳에서 발견됐다.

꼼데가르쏭, 준야 와타나베, 언더커버 등 일본파들은 닌자 문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성스러운 캣워크 위에서 얼굴 없는 모델들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2006년엔 일본 열도에서 파리로 날아온 3인조 패션 닌자가 일제히 모델들의 얼굴을 가려 어딘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같은 시기에 빅터앤롤프는 펜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그물 마스크를 모델들에게 씌웠다. 카린 로이펠트가 파리 <보그> 편집장 재임 시절 맞은 90주년 기념호 주제는 ‘모드’나 ‘포르노’가 아닌 ‘마스크’였다. 아울러 90주년 기념 파티 소품으로 이보다 더 멋진 물건이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때론 야하고 은밀한 상상을 하면서 파티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돌체앤가바나가 꾸뛰르 컬렉션인 올가을 알타 모다 의상을 발표하기 위해 전 세계 기자와 VIP들을 베니스로 초대했을 때도 가면무도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쇼에서도 호사스러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슈퍼모델들이 등장했다(베니스에서 어떻게 가면을 뺄 수 있나!). 그것은 캐주얼웨어의 남발로 인해 어딘지 경솔해진 요즘 패션 신이 예술적인 모자 하나로 인해 우아함이 되살아난 순간처럼 고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니 고급 보석상이나 꾸뛰리에들이 가면을 새로운 장신구로 떠받들지 모르겠다.

알렉산더 맥퀸의 후예 사라 버튼 역시 최근 몇 시즌 내내 모델들의 어여쁜 얼굴에 신비주의를 곁들이는 중이다. 캣워크 위에 등장한 모델이 누군지 살피려면, 고개를 삐죽 내민 채 실눈을 뜨고 바라봐야 칼리 클로스가 누군지, 박지혜는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사라 버튼이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에 발표한 것들은 가면이나 복면이라고 하기엔 노출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주를 달고 엮은 레이스가 아가씨들의 얼굴을 가로지르자 오묘한 멋으로 충만했다. 최근에는 남성복 디자이너들, 특히 엄격한 재단으로 이름난 무대에서도 남자 모델들이 가면을 쓰고 나와 신랄하게 코믹한 이미지를 전하거나 시각적 충격을 주곤 한다. 톰 브라운, 우밋 베넌, 엠포리오 아르마니, 에트로, KTZ 등의 지난 봄과 올가을 캣워크에서 이런 현상이 빈번히 발생했다.

저스틴 비버, 카니에 웨스트, 푸시 라이엇, 다프트 펑크 등 뮤지션은 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얼마 전 베니스에서 희한한 용접용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만약 누군가가 공항 같은 장소에서 손수건을 접어 복면처럼 썼다면 그 행위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위에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거나, 주위로부터 시선을 끌고 싶거나! 전자가 머리를 감지 않아 모자를 쓰는 것과 흡사하다면, 그들은 미처 세수를 못했거나 시술을 받아 얼굴이 부었던 걸까? 후자가 화생방 훈련도 아니고 누군가 독가스를 살포한 것도 아닌데 도심에서 방독면을 쓰고 나타났다고 치면, 눈에 띄기로 작정하고 밖으로 나온 건 아닐지. 며칠 전 도쿄 긴자에서 열린 루이 비통 행사에 초대된 케이트 모스는 무도회용 오페라 가면으로 두 눈을 가린 채 대중 앞에 섰다. 세상이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를 더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의도다. ‘셉템버 이슈’를 낸 뒤 미국 <보그>는 인스타그램(그들은 ‘보그스타그램’으로 지칭한다)을 통해 깨알 같은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대판 <보그>의 상징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제니퍼 로렌스 얼굴을 클로즈업한 표지를 펼쳐 얼굴을 가린 사진 한 장이 발원지였다. 누가 봐도 안나 윈투어지만, 그녀는 뱅 헤어의 앞머리와 검은색 샤넬 선글라스만 빼고 9월호를 펼쳐 얼굴을 숨겼다. 익명성의 또 다른 형태, 그러니까 만천하에 공개된 ‘아이러니한 익명성’이 9월호를 위한 홍보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자 수많은 보그스타그램 팔로워들은 물론, 패션계 유명 인사들이 윈투어 패러디 사진을 찍어 올리느라 바빴다. 철저하게 까발려진 익명성, 노출증을 지닌 신비주의는 이렇듯 희한한 현상을 만들었다.

마스크를 활용한 익명성은 인터넷과 CCTV, 혹은 알 권리 차원에서 많은 것이 쉽게 노출된 지금, 패션에서 몸값을 높이거나 존재감을 과시할 새 수단이 됐다. 이런 흐름을 타고 오스트리아에서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Faceless’ 전시가 파트1과 파트2로 열리고 있다. 부르카, 훌리건, 페티시, 돌연변이, 미디어 조작, 아이콘 등의 주제로 나뉜 채전 세계 비주얼 미디어에서 얼굴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집중 탐구하는 전시다. 아티스트 보고미르 도링거(Bogomir Doringer)는 “정체불명의 이미지야말로 매혹적이고, 성적으로 긴장감을 갖게 하며, 정치적인 데다 어딘지 무서울 때도 있고, 신비롭다가도 무시무시하다”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소셜 네트워크는 자기 발전을 위해 말할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에, 사생활을 계속 방해하는 쪽으로 발전한다고 지적하고있다. “결국 현대의 마스크는 디지털 마스크다!” 아울러 마르탱 마르지엘라나 레이 카와쿠보 등의 ‘페이스리스’에 대해 통쾌한 해석을 덧붙였다. “마르지엘라가 모델들의 얼굴을 가린 건 슈퍼모델들과 가속화되던 천박함, 그리고 동시대 ‘셀러브리티’들을 향해 반발하는 일종의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