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의 여왕

엄지원이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에서 김수현 작가의 페르소나로 분했다. 생애 처음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소원>에선 슬픔을 삭히는 엄마로, 드라마에선 들꽃 같은 장악력으로 다이얼로그를 빛내는, 이 클래식한 여배우를 만나보자.

블랙 테일러드 칼라 재킷은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스팽글 장식 튜브 롱 드레스는 블루마린(Blumarine), 상아색 옥스퍼드 슈즈는 랑방(Lanvin).


뽀글거리는 비숑 프리제 스타일의 파마머리에 흰 눈발을 소복이 얹고 엄지원이 들어왔다. 영화 스태프처럼 발목까지 오는 오리털 파카를 벗자, 니랭스 니트 원피스 아래로 무용수처럼 탄탄하고 균형 잡힌 맨다리에 슬리퍼가 드러났다. “저 좀 변태 같지 않아요? 하하.” 그녀가 소프라노 톤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매사에 타인을 먼저 무장해제시키는 센스와 위트의 소유자. <보그> 스태프들은 그녀가 오기 전부터 김수현 작가가 아이콘화시킨 그 ‘뽀글이’ 파마머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 회의를 했다. 그래서 이 털이 바짝 오른 고양이 같은 혈기 왕성한 여인은 20년대 스윙 재즈 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 여배우로 고품격 변신을 시작했다.

올겨울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영화 <소원>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엄지원은 지금 한창 연기에 물이 올라 있다. 데뷔작 <똥개>에서 앳되고 당찼던 경상도 가시내가 영화 <소원>에서는 성폭력 당한 어린 딸 ‘소원’이를 보듬어 안는 씩씩한 경상도 엄마로 성장했다. 그동안 그녀는 몇 차례 <보그>의 인터뷰 페이지에 등장했고, 다행히도 카메라 앞에서 점점 더 근사한 모델이 되어갔다. 경륜과 지혜가 늘어갈수록 여배우는 패션모델처럼 인위적인 포즈를 취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데 환멸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스튜디오 밖에는 눈보라가 소용 돌이치고 있었고, 안에는 샹송 비슷한 음악이 바닥부터 낮게 깔렸다. 그리고 엄지원은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에서 김수현 작가의 페르소나로 명랑하게 작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좌중을 웃겼다. ‘브릴리언트’라는 단어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원하는 ‘예쁘다’라는 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엄지원에게는 꼭 들어맞는 형용사다. 영화와 드라마의 기 센 작가들과 작업하면서, 항상 그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는 엄지원에게 그보다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20년대 스타일의 화이트 플리츠 드레스, 크리스털 길게 늘어진 귀고리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하운드투스 체크 패턴의 펌프스는 디올(Dior), 진주 장식 뱅글은 샤넬(Chanel).

오늘은 무슨 독설을 던지고 왔나요?

“너한테도 모정이라는 게 있었구나.” 동생 오은수(이지아)와 티격태격 피 터지게 싸우다 왔죠.

지난번 김수현 작가의 작품 <무자식 상팔자> 때는 이기적인 미혼모로 온 가족을 난감하게 하더니, 이제는 재혼한 동생에, 조카에, 사돈까지 가 족 문제 해결사로 바쁘시더군요.

사방팔방 밥 떠먹이다 보니,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네요. 하하.

김수현 작가가 한때는 김희애 씨를 예뻐하더니, 이제는 엄지원 씨에게 애정을 주네요. 대작가의 안전장치로 사랑을 받는 기분이 어떤가요?

<무자식 상팔자> 때도 <세 번 결혼한 여자> 때도 저를 가장 먼저 캐스팅해주셨어요. 그건 제게 무한한 영광인 동시에,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딜레마도 있습니다. 어떤 스토리인지, 어떤 배역인지,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죠. ‘김수현’ 선생님이니까 가능한 일이에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죠?

아무렴요. <무자식 상팔자> 때 김해숙, 유동근, 이순재 선생님들의 연기를 한 발짝 뒤에서 볼 수 있었어요. 앙상블을 이루면서도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존엄한 싸움은 장관이었어요. 데뷔하면서부터 전 가족이 없었어요.

가족이 없었다니요?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부모가 없었죠.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잘나가는 세 여자의 앙상블이었고, <싸인>에서는 검사였죠. 영화 <불량남녀>나 <페스티발>도 남녀의 티격태격이지요. 부모 없이 작업하다 어른들을 만나니 삶의 깊이가 보이더군요.

김수현 작가는 왜 부모 세대와 젊은 세대를 잇는 연기자로 당신이 필요했을까요?

얼굴에 ‘知’가 있는 배우를 찾았는데, 제 얼굴에서 보셨다는군요. 호호. 김수현 선생님은 정확하고 명쾌한 걸 좋아하시죠.

엄지원 씨의 발성은 노희경 작가보다는 김수현 작가 쪽이죠?

과연 그럴까요? 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요.(웃음) 두 분 다 좋잖아요. 글이.

일단,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의 내레이터 역할을 부탁합니다.

저는 보기엔 사고뭉치지만 사고를 해결하는 여자, 겉으론 독설을 던지지만 속은 따뜻한 여자예요. 극 중 여동생인 이지아에게는 자매애의 감성을 전해주고, 파트너인 조한선은 책임지고 빛나게 해주려고 애를 쓰지요. 친구인 서영희는 그녀가 가진 진한 뉘앙스가 김수현 선생님의 시크한 글과 클릭되길 기도하고 있어요.

수십 년간 ‘건재한 현역 작가’ 김수현과 그 완벽한 대본에서 개성을 제한당할 수도 있는 배우들의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분의 대본을 보면 징그러울 만큼 이가 맞아요. 1부에 나온 언어와 15부에 나온 언어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을 때 소름이 끼칠 정도죠. 요즘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추측하지만, 김수현 드라마의 메인 플롯은 ‘다이얼로그’의 정면 승부입니다. 익숙지 않은 대중들에겐 모두 다 ‘따다다다’로 들리겠지만, 그 언어의 행간엔 머리를 명징하게 깨는 화법이 있어요.

배우들에게 필요한 재능이 암기력뿐만은 아닐 텐데요?

수십 년간 다른 제안을 할 수 없을 만큼, 완성도 높은 대본을 손에 쥔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그 대사의 파괴력을 몇 %까지 끌어올릴 수 있느냐죠. 오로지 그분의 말을 몸으로 소화해내기 위한 투쟁입니다. 그 능력에 따라 시청자 입장에선 ‘따다거리네’가 될 수도 있고, 캐릭터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죠. 그래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감정을 많이 주면 안 돼요. 연기를 하면 안 되죠. 반면 다분히 연극적인 면도 수용해야 합니다. 제 대본엔 비숑 프리제(애완견)가 미용이 필요한 것 같다, 는 메모까지 있답니다. 호호.



20년대 스타일의 화이트 플리츠 드레스, 크리스털 길게 늘어진 귀고리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하운드투스 체크 패턴의 펌프스는 디올(Dior), 진주 장식 뱅글은 샤넬(Chanel).

역시나 똑 부러지네요! 얼마 전 영평상에서 <소원>으로 여우주연상 받을 땐 왜 그렇게 울었나요?

영평상은 영화계 선배님들 말로는 가장 가치 있는 상이라고들 해요. 트로피를 들고 섰는데 제 앞에 이정재, 송강호 선배님, 봉준호 감독님 등이 ‘그래, 너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눈빛으로 자애롭게 웃으시는데… 그만 눈물이 주르륵.

성폭력 피해 아동과 그 가족의 치유를 담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은 의외의 선택, 의외의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송윤아 씨가 전화했을 때 감이 왔어요. “경구 오빠에게 온 대본이 너에게도 갈 테니, 잘해보렴.” 처음엔 이야기가 너무 셌고, 그걸 여자로서 표현하기 싫었고, 엄마로서 그 슬픔을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준익, 설경구가 동료가 된다면, 나와 인연이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회에 저질러진 참담한 비극을 영화가 끌어안는 그 방식, 내일의 끈을 놓지 않는 그 가족애에 나를 보탠 게 정말 행복했답니다.

지금, 감격하고 있는 거죠?

그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소원이 엄마! 불편한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보듬어줘서 고마워요.

하하. 상업적인 대중 예술을 하면서 그렇게 좋은 도구로 사용된다는 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축복인 거죠. 그 영화로 상도 받았지만, 가치 있는 이야기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제게는 잊지 못할 선물이에요.

가만,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던가요?

한 번도요! 메이저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된 적도 없었죠. 상도 안 받았는데, 상 받은 배우처럼 뻔뻔하게 살아왔답니다. 하하.

정말 뻔뻔하시군요!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하면서 영화계에서 큰 찬사를 받았지만(물론 관객 입장에서도 보석 같은 발견이었고), 그로 인해 본인의 필모그래피 맥락이 좀 꼬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홍상수 감독과는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애정의 관계만은 아니었군요? 하긴 <극장전>의 베드신도 현장에 와서 말씀하셨다면서요?

능구렁이 같은 천재 예술가들의 장기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잘 알지도 못하고’ 당했죠.(웃음) 영화제 코디네이터 ‘공현희’ 역할을 했는데, 마지막 촬영에서야 제가 스토리적으로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마지막 장면도 화려한 오픈카였다가, 비가 와서 춘천 호반이었다가 놀이공원에 오디오는 다 물리고, 해가 져서 연기는 쫓기고 술 마시다가 토하기까지 했는데, 결국은 강간당한 걸로 뒤통수를 맞았다니까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갈 정도네요.

하하.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연기한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한 것과는 달라요. 소화할 자세도 안 된 상태에서 난데없이 앞뒤 맥락으로 볼 때 강간 피해자가 되고 나니, 몸까지 아팠지요. 감정적 후유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즉석 대본의 천재 감독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말은 아니겠죠?

시간이 지나면 회복돼야 할 관계가 있죠. 한동안 피해 다녔지만, 잠시 멀어졌다 해도 홍 감독님에 대한 사랑은 돌아오게 되어 있더라고요.

고소영이나 심은하처럼 신비로운 여배우가 될 뻔했는데, 너무나 비범한 당신이 친근하고 실용적인 여배우로 머물고 있다는 식의 자기 연민은 없나요?

천추의 한이죠. 하하. 첫 단추를 <똥개>로 잘못 끼운 거죠. 여배우로서 인생의 강이 그렇게 흘러갔으니 그렇게 계속 흘러야죠.

엄지원 씨, 진정 토로인가요?

농담입니다. 어릴 땐 내가 가져야 할 기회가 덜 오지 않았나 싶었어요. 작품을 많이 했지만, 중요한 무언가는 과녁의 중앙을 늘 비껴갔어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실력보다 중요한 게 운이에요. 나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들에게 오지 않은 기회가 내게로 온 것일 수도 있겠구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군요.

나의 100%를 쏟아부을 무언가를요.

어떻게 평화를 찾고 있나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크리스천 공동체의 리더를 맡고 있어요.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다가도 큰 보람이 돼요. 연예인으로서 나한테 쏠리는 중심을 남한테로 옮기는 훈련이라고나 할까요.

탱크톱은 올세인츠(All Saints), 도트 패턴의 튤 스커트는 클로에(Chloé), 진주 목걸이와 옥스퍼드 슈즈는 샤넬(Chanel).


엄지원은 깊고 명료하고 오지랖이 넓은 여자다. 그녀를 한번 만나본 사람은 엄지원 특유의 명쾌한 어휘와 개그감이 뒤섞인 사랑스러운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라고 그녀가 눈을 맞추고 다정한 친구 같은 말투로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질문을 하고,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가식 없이 얘기하고, 상처받았다는 것도 솔직하게 내보이고, 콤플렉스는 외면하고, 슬럼프는 신앙으로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

언론이 모든 사생활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는 스타는 아니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위트 넘치는 연기는 늘 화제가 된다. 그녀는 여러 갈래의 비극이 미로처럼 얽힌 스릴러풍의 멜로 영화 <가을로>와 <주홍글씨>에서 비운의 주인공 역을 맡은 것 말고는 관객이 이미지 자체에 넋을 빼놓는 캐릭터를 연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욕구불만의 까탈스러운 여자(<페스티발>, 아주 신비로운 여배우(<극장전>), 당신을 상냥하게 염장지르는 신용카드사의 사원(<불량남녀>) 등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그녀는 촌스러움과 지성, 상냥함과 신경질적인 지점 사이를 아주 쉽게 오간다.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 팬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제 그만 뚝!” 하고 상큼하게 호통치는 영화 <극장전>에서 엄지원은 영화의 철없음에 일종의 품위를 더해준다.

여배우가 아닌 인간 엄지원은 사방에서 상당히 열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녀의 솔직함과 모든 방면에 아카데믹한 자세로 접근하는 집요한 노력 덕분에, 엄지원은 어디서나 예술가들(사진가, 건축가, 작가, 감독, 디자이너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다.

블랙 테일러드 칼라 재킷은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스팽글 장식 튜브 롱 드레스는 블루마린(Blumarine).


배우로서 자존감이 높아질 때는 언제인가요?

설경구 선배와 함께 일할 때 정말 행복했어요. 함께 일하고 싶은 상대 배우가 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드라마에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돕고 있습니다.

‘엄지원다움’이란 뭘까요?

뒤끝 없고 직설적인 성격이죠.

현재 김수현 작가의 페르소나답군요.

제 ‘뽀글이’ 파마 사연 좀 들어보실래요? 처음엔 베이비펌에 미소년 컨셉으로 박시한 티셔츠에 진을 입고 대본 리딩에 갔답니다. 리딩이 끝나고 선생님이 “그래, 지원이 머리는 어떻게 할 거니?” 물으셔서 “선생님, 저 이거 한 건데요.” “뽂는 게 어떠니?” “이거 뽂은 건데요.” “미친년처럼 뽂는 게 어떠니?” “선생님, 저는 기존의 강한 여자보다는 다르게…” “넌 변화를 두려워하는구나.” “저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식상한 걸 피하고 싶은…” “호정이도 그랬고, 희선이도 그랬고, 뽀글이는 내 아이콘이야. 너는 뽂는 게 싫으니?” “아뇨. 뽂아야죠.” 그래서 미용실에 가서 큰 소리쳤답니다. “난 아이콘이래. 그러니까 완전히 뽂아줘.”

배역은 맘에 드나요?

열심히 뽂았으니, 맘껏 풀어주시겠죠. 하하.

3개 국어를 할 만큼 대단한 엘리트시죠. 배우가 검사, 애견용품 디자이너 등 어떤 특정 직업을 연기한다는 건 힌트인가요, 족쇄인가요?

저한테 익숙한 요소를 제거하고 불편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려고 하는 현재의 제 연기 방식에 비춰볼 때, 힌트가 돼요. 옷 입는 방식, 말투, 친구들, 사는 동네…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직업 환경이 결정적인 힌트죠.

애견용품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떤가요?

강아지를 부여잡고 감정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만 빼곤 만족해요. 김수현 선생님은 “걔네들은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한다니?” 칭찬하시며, 자꾸 신을 넣으시는데, 제 입장에 선 돌아버릴 지경이죠. 하하.


숄 칼라 화이트 크롭트 재킷은 클로에(Cholé), 얇은 스카프 칼라 블랙 실크 블라우스는 산드로(Sandro), 화이트 와이드 팬츠는 준지(Juun.J), 블랙 스트랩 펌프스는 디올(Dior).


이 모든 생활이 벅찬가요? 황홀한가요?

평범할 뿐입니다. 화려한 삶이 아닌 건 확실해요. 혼자 사는 아파트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원목 식탁이 있고, 커다란 천 소파가 있고, 정리되지 않은 옷이 널려 있죠. 아침에 일어날 때 기도하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불꽃처럼 다시 일어난 때는 언제였나요?

한 번도 불꽃이 꺼진 적이 없었지요. 언제나 목이 말랐어요.

김수현이라는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적어도 팔다리가 묶여 있지는 않은 정도죠.(웃음)

어떤 배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나요?

산드라 블록이요. <그래비티>를 보고 크게 감동받아 눈물이 났어요. 우주의 장관보다 그녀의 몸이 더 장관이었죠. 케이트 블란쳇이나 메릴 스트립이 아니잖아요. 연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는데도, 쉰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아 왔다는 게 놀라웠어요. 오랜 시간을 버티고 마침내 혼자서 오롯이 극을 끌어가는 진정한 주인공이 된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 당신에겐 뭐가 필요한가요?

사랑, 희망, 열정, 그리고 잠이죠.

컴퓨터 모니터 속의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던 엄지원은 강아지처럼 애교를 가득 담은 스킨십으로 감사를 표했다. 항상 자신은 ‘통로’가 되는 삶이라고 징징대지만, 그녀는 배우도 결국 다른 영혼의 통로가 되어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여자다. 흐르는 강물처럼,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여울목을 돌 때마다 햇빛처럼 찬란한 독설을 뿜어내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엄지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