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들이 정착한 단 하나의 향수

“잠옷은 필요 없어요. ‘넘버 파이브’면 충분하죠.”
섹시 심벌 마릴린 먼로의 샤넬 향수 사랑은 이토록 각별했다.
예쁜 병 속에 든 값비싼 소모품을 뛰어넘어 ‘제2의 피부’로 불리는 향수.
누구보다 세련된 취향을 지닌 국내외 셀럽들이 정착한 단 하나의 향수는 뭘까?

에스닉 패턴 드레스는 에트로, 귀걸이와 팔찌는 모두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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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기 전에 당신만의 향수를 신중히 선택하세요. 앞으로의 30년을 함께할 동반자가 될 테니까요.” 칼 라거펠트의 뮤즈인 모델 캐롤린 드 메그레가 집필한 패션 서적 <어디서든 파리지엥처럼 사는 법>을 읽고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나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포장해줄 향수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내가 누군가에게 특정한 향으로 기억되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인 순간은 또 없을 거란 설렘이 공존했달까? 그제야 먼지가 소복이 쌓인 서른여 개의 향수 중 정작 손이 가는 제품은 많아야 두세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캐롤린의 말대로라면 서른이 조금 넘은 지각생이지만 적어도 ‘어떤 향수 쓰세요?”란 질문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오랜 망설임은 사라졌다. 사람마다 향수를 선택하는 기준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20대 때의 향수는 ‘달콤함’을 빼면 시체였고,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조숙한 머스크 향수로 친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올해로 서른둘에 접어든 나의 화장대엔 조말론 런던 ‘넥타 블러썸 앤 허니’, 샤넬 ‘샹스’, 바이레도 ‘플라워 헤드’가 올라와 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세련된 취향을 지닌 슈퍼스타들은 과연 어떤 향기에 심취해 있을까?

먼저 <보그>가 사랑하는 여배우 송혜교는 펜할리곤스를 편애한다. 펜할리곤스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렌지 블러썸’을 애용하던 그녀는 석 달 전 갤러리아 펜할리곤스 매장에 들러 ‘아르테미지아’를 구입해 갔다. 이서진 역시 송혜교 못지않은 펜할리곤스 단골 손님이다. 그의 취향은? 흑설탕, 블랙 체리, 베티버, 앰버 잔향이 끝내주는 ‘쥬니퍼 슬링’! 프레데릭 말을 사랑하는 셀럽 리스트도 상당하다. 버락 오바마의 선택, ‘베티버 엑스트라오디네르’에는 현존하는 향수 중 가장 높은 함유량의 베티버가 들어 있다니 다른 베티버 향수론 대체 불가할 수밖에. 데이비드 베컴의 선택은 ‘제라늄 뿌르 무슈’. 이 향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동일한 향의 보디 젤을 발 마사지할 때도 사용할 정도란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분명한 배우 유아인 또한 프레데릭 말의 팬. 매장을 직접 방문해 한 번에 100만원 상당의 ‘제라늄 뿌르 무슈’를 사갔다니 여자인 나조차도 그 향이 궁금해진다. 머스크 향수 중 최고의 세련미를 지닌 ‘뮤스크 라바줴’는 까다로운 지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럭키 퍼퓸’. 일본 팬미팅 중 개인 소장품으로 공개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내에 들어온 수량이 모두 ‘완판’된 해프닝의 주인공이다. 가수 겸 배우 서인국은 세르주 루텐 ‘로(L’eau)’의 빅 팬. 주름 없이 빳빳하게 다려진 화이트 셔츠와 어울리는 상쾌한 잔향이 끝내준다.

이와 비슷한 평을 받고 있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아쿠아 유니버셜’은 모델 지현정의 애장품이다. 전도연은 시슬리 ‘오 드 깡빠뉴’와 ‘오 뒤 스와르’의 오랜 추종자다. 향수 라인에서 나오는 보디 크림과 레이어링해서 쓸 만큼 시슬리 향수 사랑이 각별하다고. 톰 포드 향수 ‘벨벳 오키드’는 현지에서 ‘기네스 퍼퓸’으로 불릴 만큼 기네스 팰트로의 무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배우 정려원 또한 국내 매장 오픈 전부터 ‘벨벳 오키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바이레도는 여배우들이 사랑하는 퍼퓸 하우스다. <인터스텔라>의 헤로인 앤 해서웨이는 거친 장미 향이 매력적인 ‘로즈 느와’만을 편애하며, 케이트 보스워스제니퍼 가너, 그리고 맨디 무어는 ‘집시워터’ 없인 외출도 하지 않는단다. 누구보다 까다로운 심미안을 지닌 칼 라거펠트의 선택은? 재스민 향수의 ‘끝판왕’, ‘발 다프리크’! 뉴욕에서 탄생한 니치 향수 브랜드 르 라보 매장에도 여배우들의 발길이 잦다. 문근영, 서인영, 최정윤은 ‘라다넘18’의 열혈 팬이며 임수향은 두 달 사이 ‘플뢰르 도랑제’를 세 병이나 구입해 갔다고. 배우 이보영이 즐겨 쓰는 향수는 이세이 미야케 ‘로디세이’. 작약과 백합 꽃향이 여성스러운 그녀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조향사들은 향수를 일컬어 ‘제2의 피부’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30대에 나를 대표하는 향수를 찾았다는 건 남은 인생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것과 다름없다. 한 가지 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질문이 따라올 테니. “실례지만, 오늘 뭐 뿌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