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예술가 – 숲에서 생긴 기이한 이야기

현재를 사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동시대를 기록하는 수만 가지 언어와 방식이 있다. 그중 박찬경과 함경아가 삶을 통틀어 제안하는 예술적 화두에 공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날이 명백해진다.

숲에서 생긴 기이한 이야기

박찬경이 사람들과 귀신들을 숲으로 한데 불러 모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에 피해자 혹은 가해자였던 이들은 그의 숲에서 모두 ‘시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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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민의 숲(Citizen’s Forest)’에 귀신, 간첩, 할머니가 모두 나와요.(웃음)” 타이베이 파인아트뮤지엄의 카페에서 만난 박찬경이 말했다. 우리는 2년 전 그가 예술감독을 맡은 미디어 시티서울 비엔날레의 인상적인 개막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테마의 그해 비엔날레는 이상순 만신의 서울새남굿이 열었다. “여기가 원래 재판소 자리라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이 많아. 오늘 다 극락 가는 거야. 세월호에 죽은 사람들 원혼도 달래야 해…” 박찬경은 연신 조아렸고 외국 작가들은 만신이 건네주는 제주를 음복했다.

Citizen’s Forest’, 2016, Video(b&w), directional sound 27 minutes, Installation view at Taipei Biennial 2016, TFAM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and the Taipei Biennial 2016,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Citizen’s Forest’, 2016, Video(b&w), directional sound 27 minutes, Installation view at Taipei Biennial 2016, TFAM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and the Taipei Biennial 2016,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영화 <만신>의 주인공인 김금화 만신은 쪽 찐 머리로 객석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이날의 풍경은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강렬하게 인식되어 있다. 이 망자천도굿은 세월호라는 사건 직후 균열된 2014년의 현재와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으로서의 과거, 이를 관통하는 근현대사와 험준한 시대를 살아낸 모두를 위한 의식이었다. 목적의식으로 구조화된 미술관 혹은 첨단의 미디어로 점철된 비엔날레가 기꺼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영매(미디엄) 노릇을 한 그 순간은 ‘한국(혹은 아시아)’의 ‘현대미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문의 현답이 되기도 했다. 지나친 운명론일 수도 있겠지만, ‘시민의 숲’은 그 때 이미 그곳에 존재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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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zen’s Forest’, 2016, Video(b&w), directional sound 27 minutes, Installation view at Taipei Biennial 2016, TFAM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and the Taipei Biennial 2016,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두 가지에서 출발했어요. 오윤 화가의 그림 ‘원귀도’와 김수영 시인의 시 ‘거대한 뿌리’. 그리고 영화를 한 편 만들려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른바 예술영화다 보니 투자가 잘 안 되어서…(웃음) 영화는 포기하고 대사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미지 중심으로 가보자고 만든 거예요. 이 세 가지 소스가 결합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보여주게 되었죠.” 과연 ‘시민의 숲’에는 내러티브가 아닌 이미지가 나열된다. 그 이미지마저도 뒤섞이기 때문에 자칫 이 ‘진실의 숲’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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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zen’s Forest’, 2016, Video(b&w), directional sound 27 minutes, Installation view at Taipei Biennial 2016, TFAM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and the Taipei Biennial 2016,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동학, 광주, 전쟁, 세월호… ‘시민의 숲’에는 에피소드가 아주 구체적이지도, 아주 추상적이지도 않게 존재해요. 루머에 가까운 이미지랄까요. 세월호 사건이 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후로 언론, 정치, 행정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이 드러났잖아요.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문에 의지했죠. 그래서 어떤 사건, 사실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미지 자체를 소문처럼 보이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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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트라우마를 상징해요. 하지만 여기 귀신들은 사람들이 이미 자기네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다 아는 것처럼 굴어요.(웃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죠. 걸어 다니고, 막걸리나 마시고, 과일이나 깎아 먹고, 할머니가 엉덩이를 때리고, 누군가가 훔쳐보고, 김치도 찢어 먹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기도 하면서 역사적인 걸 연상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