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esire for Better Life

요즘 같은 시국에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 싶은 사람들에게 아이작 줄리언이 말한다. “당신이 사는 세상은 더 나은 삶을 향해 가고 있나요?” 이를 위해 그가 꺼내는 건 다름 아닌 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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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걸 첫 번째 질문으로 선택했다. 당신은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믿나?
굳게 믿는다. 내 부모님의 삶, 세인트 루시아의 작은 섬에서부터 영국 런던에 이르는 그 여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들의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의 결과물인 셈이다. 내 작품을, 비평가들은 대체로 좋아하고 관객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혹자는 “당신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에 비해 작품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이를테면 이민자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만이 더 나은 삶을 말하는 방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신념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주류가 아닌, 특별한 감성이 필요하다. 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라는 노래가 있다. 비극을 재즈, 블루스, 가사로 풀어내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처럼, 내 작업 역시 ‘더 나은 삶’을 향해 있다.

《Eclipse(Playtime)》, Endura Ultra Photograph, 160x240cm, 2013

《Eclipse(Playtime)》, Endura Ultra Photograph, 160x240cm, 2013

서울에서 머문 지난 며칠 역시 당신에게 ‘더 나은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무엇을 했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서 ‘오늘의 작가상’ 전시를 봤고, 소격동에 있는 국제갤러리 등 몇몇 갤러리에 갔다. 아직 쇼핑은 못했다. 아, 자하 하디드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DDP에는 꼭 가야 했다. 10년 전, 나는 그녀와 함께 어느 자선단체의 이사로 활동했다. 물론 자하 하디드를 아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존경한다.

이번에는 어떤 점이 가장 기대되나?
<플레이타임>을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건 매우 신나고 특별한 일이다. 런던과 폴란드에 이어 세 번째인데, 이번에야 이 작품들을 최고로 보여주는 방식을 찾은 것 같다. 동시에 이번 전시는 이 전시를 위한 가장 환상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런던과 서울 사이의 실험이기도 하다.

세 작품은 각각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다른 이야기인 듯 보이나, 결국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작가가 제1의 큐레이터라고들 하는데, 이 작품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난민을 다룬 <레오파드>를 2007년에 제작했으니, 난민, 이민자들이 세상의 관심을 받기 전이었다. 지금은? 브렉시트가 발동됐고, 트럼프는 이를 정치에 이용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무슨 일을 벌일지, 폴란드나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당신이 난민이나 이민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더 나은 삶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무 일상적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문제들을, 지루하지 않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그 수많은 이들이 왜 빛을 찾고 싶었는지, 찾아야만 했는지 그 질문을 강조하고 싶다. 혹자는 이런 심각한 이야기가 좀 별나다고 하지만 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2채널 고해상도 영상 설치, 스테레오 사운드, 31분 16초, 2013

<자본론 Kapital>, 2채널 고해상도 영상 설치, 스테레오 사운드, 31분 16초, 2013

<캐피탈>에 데이비드 하비와의 대담을 진행하는 당신의 모습이 직접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뜨거운 이슈를 예술의 세계로 가져오는 게 예술가의 엄연한 책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맞다. 예술가로서의 내 역할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보자. <플레이타임>은 엄청나게 고해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이미지는 그림이 아니라 픽셀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엄밀하게 이미지가 아닌 픽셀을 보면서 이미지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어떤 자본이 우리 삶이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닐까 했다. 자본의 방식을 거울로 보듯 투영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예술이 침범할 수 없는 곳은 없어야만 하고, 예술은 최대한으로 가능한 모든 각도를 담아야 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사람들은 칼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거시적인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예술가로서의 나의 역할이다.

예술 시장에서 돈을 말하는 방식이 바로 돈을 둘러싼 세상의 이중적인 잣대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거대 자본으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인 당신에게 자본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실 당신의 영상에서는 매우 절제된 호화로움이 느껴지지 않나?(웃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플레이타임>은 자본의 움직임, 그에 따른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움직임뿐 아니라 예술계 내에서의 나의 개인적인 움직임까지 아우르는 이야기다. 회화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예술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한다. 따라서 예술 세계의 어떤 사람들은 영상에 대해 냉소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좋아한다. 예술, 자본 그리고 나는 모두 연루되어 있기에, 내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변명하진 않겠다. 하지만 더불어 이로써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 언급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을 것이다. 대체 예술계의 돈은 다 어디서 오는 거야? 당신은 언젠가 당신을 위해 예술품을 구매하고, 행복을 느낄 것이고, 그건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내 역할은 그런 당신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이 19세기 자본에 대한 궤변적인 시를 처음 썼을 때에도 그는 예술을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의 지속된 형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은 우리 인생을 지배하는 알고리즘 같은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를 풀어낼 질문이 필요하다.

, Endura Ultra Photograph, 160x240cm, 2013

《Emerald City / Capital(Playtime)》, Endura Ultra Photograph, 160x240cm, 2013

<플레임타임> 자료를 찾다가 몇몇 유명 비평가들이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중에서 초기작인 <젊은 영혼의 반란(Young Soul Rebels)> 이후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다”라고 평한 걸 봤다. 이에 동의하나?
비교해 보자면 <베터 라이프>는 매우 시적인 작품이었다.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장만옥이 연기한 마주(중국 설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의 관점으로 풀었다. 나의 관점을 벗어난 그녀의 여정, 그녀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작품이었다. 반면 <플레이타임>은 <젊은 영혼의 반란>만큼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대화도 많다. 상업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하고 있기도 하다. 진지한 감정을 쉽게 보여주는 것도,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가정부, 작가, 경매사, 아트 딜러, 헤지펀드 매니저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드라마도 의도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다른 야심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세 작품 모두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을 뒤섞어놓는다는 것도 예술적 야심으로 보였다. 실제 이름난 경매사인 시몬 드 퓨리와 장만옥이 서로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편집한다던가, 제임스 프랭코에게 예술계의 논리를 읊게 만든 것도 흥미로웠다. 할리우드 배우의 이미지가 작품을 방해할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모두 ‘아이작 줄리언의 배우’에 충실했던 것 같다.
제임스 프랭코는 매우 영리하고 재능 있는 배우다. 1시간 만에 본인의 분량을 완벽하게 찍었다. 사실 이 작품을 찍기 7년 전부터 대화를 나누었던 터라, 제임스 프랭코 자신이 예술이 될 수 있었고 이 작품 안에서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 같다. 매기 청(장만옥)과의 작업은 <베터 라이프> 이후 두 번째다. 처음엔 틸다 스윈튼이 그녀를 추천했다. 나는 장만옥을 보자마자 바다의 여신인 마주를 연기해주길 바랐다. 마주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신화적 인물이라면, 장만옥은 영화계의 산증인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도 했다.

, Duratrans image in lightbox, 120x120 cm, 2007

<웨스턴 유니온 : 작은 배 (레오파드) Western Union Series No. 7 (The Leopard)>, Duratrans image in lightbox, 120×120 cm, 2007

특히 돈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에피소드는 언젠가 말한 대로 “작업 과정은 일종의 아름다운 보상 행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보상의 심리학’이 흑인과 동성애에 몰두한 이후에도 여전히 작품에 적용되고 있나?
매우 그렇다. <플레이타임>의 가정부 에피소드는 나를 위해 일하던 분의 실제 이야기다. 아이슬란드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도 내 친구의 이야기다. 나는 실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저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자본 때문에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주류 미디어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제공한다. 중요하게는, 이들이 어떤 작품이나 이야기의 주제로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고정화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늘 다뤄지는 주제인데, 왜 예술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건가? 마찬가지로 영상학과 사진학은 백인들을 통해 발명되었고, 흑인들에게는 동등하게 주어지지 못한 기술이다. 내 작업의 과정은 누군가를 대변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멀티스크린은 전시장 자체를 세트장으로, 나를 일종의 관객이자 주인공으로 변모시킨다. 일곱 개나 되는 스크린을 모두 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멀티스크린은 본다는 의미를 바꾸는 실험적인 영상 조각 언어다. 멀티스크린 사용법과 철학이 있다면?
내게는 작품이 다름 아닌 갤러리에 걸려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응시’의 개념을 연구했다. 요즘은 누구나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쓴다. 미술관에서도 휴대폰 창을 통해 작품을 본다. ‘시선의 분산’에 관심이 많은 건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멀티스크린 조각가가 되어 여러 개의 스크린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이를 통해 새롭게 보는 방식을 언어로 개발하고, 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관중과의 관계를 만들어냈다. <베터 라이프>도 한자리에서 모든 이미지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휴대폰을 보고, 메시지를 읽고, 사진을 찍는 관객들에게 방해를 받는다. 멀티스크린 작품은 내가 ‘방해받는 관객’이라 부르는 이들의 거울이며,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른 채 다른 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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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본주의, 불평등 같은 전 세계가 당면한 정치적 문제를 매우 시적으로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뉴스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 웰메이드하고, 스펙터클한 시가 되어 흐른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작품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건가? 덕분에 오해와 공격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나는 매번 아름다움이라는 질문에 다가갈 일조차 없는 한 사람으로서 작품을 만듬해, 마돈나가 흑인 무용수들의 몸짓과 춤을 표현한 ‘Vogue’ 비디오 영상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히트 쳤다. 그때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마돈나 영상 봤어? 너의 <랭스턴을 찾아서>를 따라 한 것 아니야?” 이것이 내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이란 질문에 다가가는 것은 내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디 출신인지, 가족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성적 정체성이나 에너지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작품 속에서 정체성과 연결되는 에너지를 찾는 것, 그것이 내가 첫 번째 필름을 만든 이유였다. 나는 내가 볼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확장시켜 나를 보아야만 했다.

이미 유명한 당신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틸다 스윈튼의 핸드백’ 같은 대답도 좋다.
(웃음) 만약 내가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면, 한 치의 의심 없이, 뮤지션이 되고 싶다. 내 작품에서도 사운드의 비중은 매우 크다. 사운드는 또 하나의 이미지다. <플레이 타임>에서도 사운드에 포용된 듯한 느낌을 주고, 이로써 흑인들의 문화에 연결되는 것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어쩌면 먼 미래 언젠가는 음악을 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매기 청도 내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녀도 지금 연기 대신 음악을 하고 있지 않나. <플레이타임〉이후 절대로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녀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감격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나이대라 그런 건가. 사실 나는 그녀의 나이를 아직도 모른다.(웃음) 내 나이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