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정상에 선 아델의 노래
옥스퍼드셔의 겨울 아침. 애니 레보비츠가 라파엘전파의 처녀로 분한 아델을 찍기 위해 성 안의 동굴 같은 방으로 들어섰다. “벌써 6년이 되었네요”라고 아델이 소리쳤다. 레보비츠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은 건 2009년 <보그>를 위해서였다. 당시 데뷔 앨범를 발표한 직후였던 그녀는 “LA의 지저분한 호텔 방에서 남자 친구 팬티를 입고 뒹굴고 있었죠”라고 말했다. 스무 살 나이에 런던의 궁핍한 주택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재능이 전혀 가공되지 않은 여자였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완전 엉터리였어요. 전혀 격려해주지 않았죠.” 그러나 열네 살에 그녀는 공연 예술 학교 브릿 스쿨(Brit School)의 오디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스티비 원더의 ‘Free’를 불렀고, 클라리넷으로 ‘Tumbledown Blues’를 연주했다. 당시 음악과 과장이던 토니 카스트로는 제자들에게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Hometown Glory’와 ‘Daydreamer’ 같은 곡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제 생각에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일을 그만둔다면 선생님을 할 거예요.”
당시 아델의 어휘는 비속어로 가득했고 쉴 새 없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 현명해졌고 사려 깊어졌다. 익살스러운 농담과 ‘더러운 입’은 여전히 그녀의 페르소나지만 아델은 부쩍 성숙했다. 2009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그녀는 거의 무시당했다. 한번은 포토그래퍼들이 케이트 베킨세일을 찍기 위해 그녀에게 비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대에서 가슴을 후벼 파는 ‘Chasing Pavements’ 공연으로 관객을 압도했고, 최우수 여성 팝 보컬 상을 수상했으며, 조나스 브라더스를 누르고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상을 가져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는 벗어놓은 마놀로 블라닉을 챙기지 못한 채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입고 있던 드레스 벨트는 풀린 상태였고, 입안에는 껌이 가득했다. 물론 다 지난 일이다. 시간은 금새 흐르는 법이다. 2년 후 발표한 은 3,000만 장이나 팔렸고, 그래미상 여섯 개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그녀는 윌리엄스버그의 힙스터 사이먼 코네키를 만나고 있었다. 그는 전 세계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드롭4드롭(Drop4Drop)의 CEO다. 열다섯 살 때부터 노래를 불러온 아델은 목 출혈로 고생하고 있었고, 수술을 하고 재활에 들어갔다. 코네키가 큰 도움이 됐다.
아델은 “사이먼을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았어요”라고 회상한다. 세계 정상급 루저들이 휩쓸고 지나간 후 아델은 마침내 스스로 승자라는 걸 깨달았다. “지난번 제가 커버를 장식한 <보그>가 나온 날 아들 앤젤로가 태어났어요”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새로운 두 남자는 아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제 더 이상 머릿속에 걱정할 어떤 쓰레기도 없어요. 앤젤로 덕에 제 자신이 아주 자랑스럽고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예전에 없던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델은 세 번째 앨범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새로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엄마 역할이에요. 다음이 저고, 그다음이 일입니다.” 팬들이 그녀만큼 공감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때 아델은 앤젤로에 대한 노래를 많이 제외시켰다. 그녀는 코네키와의 관계 역시 음악으로 표현하기에 너무 사적이라 생각했다. ‘Water Under the Bridge’는 그에 관한 곡이다. 돌파구는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뒤돌아보면서 찾아왔다. 아델은 이번 앨범에서 권위 있는 히트 메이커를 비롯,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그녀는 온라인에서 토비아스 제소 주니어(Tobias Jesso Jr.)를 발견했고, 두 사람은 ‘When We Were Young’을 함께 작업했다. 아델은 이 곡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묘사했다. “재회에 관한 곡이에요. 서로에게 무조건적이 될 수 있는 시간은 없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1년 동안 제 눈은 아주 어두웠어요. 제 자신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죠.”
테일러 스위프트의 ‘I Knew You Were Trouble’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막스 마틴과의 협업은 전염성 강하고 생기 넘치는 ‘Send My Love(to Your New Lover)’를 탄생시켰다. “이곳은 다른 수많은 팝송보다 더 팝적이에요. 그리고 이번 앨범엔 브루노 마스와 함께 쓴 곡도 있다. “저는 브루노의 엄청난 팬이에요.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드럼이나 베이스를 연주한 뒤 미친 듯이 퍼커션을 두드리며 최고의 보컬을 들려주거든요.” 아델의 용의주도한 센스는 시아와의 콜라보레이션에서도 빛을 발했다. 두 사람의 곡이 아델의 앨범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Alive’는 시아의 엄청난 히트곡이 됐다. 아델은 지금도 노트에 가사를 쓴다. 그녀가 처음 하는 일은 펜으로 맨 앞 장에 자신의 나이를 쓰는 것이다. 그 페이지에 25라고 쓰게 되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멈췄다. “제가 스물 다섯살이란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어느 때보다 제 자신이 좋습니다. 편안함을 느껴요.” 아델은 자신의 외모를 엉덩이같이 두툼한 턱, 강렬한 이마, 감자 같은 손가락이라 표현하며 농담을 한다. 그러나 아델은 과거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그녀는 탄산과 담배를 포기했고, 술도 끊었다. “투어를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살을 약간 뺐죠.”
그녀는 지금도 오랜 스타일리스트 가엘 폴(GAelle Paul)과 맞춤 드레스를 의논한다. 아르마니, 발렌티노, 음악에 조예가 깊은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 등이 포함된 디자이너들의 맞춤 드레스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조셉과 끌로에 같은 곳에서도 쇼핑을 한다. 사실 그녀는 끌로에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엄청난 팬이다. 그래서 그녀를 티타임에 초대했고 그들은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2013년 그녀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대영제국의 훈작사(MBE)를 받았다. 그녀는 버킹엄 궁에 어울리는 잉크색 브로케이드 스텔라 맥카트니 드레스와 필립 트레이시의 네트 두건, 손톱에 미니어처 왕관을 장식했다. 쇼핑하는 날 아델은 런던 공영주택단지의 유니폼을 입었다. 레깅스, 스니커즈, 커다란 금색 링 귀고리. 그러나 그녀의 발렌시아가 백, 양면 시어링 코트 그리고 아델의 얼굴은 디바의 광채를 더해주었다. “오늘은 당신을 위해 노력한 거예요. 저는 이런 모습으로 외출하지 않아요. 꼭 꾀죄죄한 엄마 같은 차림을 하죠. 여느 사람과 똑같아 보여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레깅스와 점퍼와 컨버스 차림이에요. 왜냐하면 지저분한 작은 손이 옷에 이런저런 자국을 남기니까요.”
우리의 쇼핑 여정은 아르고스(Argos)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셀러브리티 집합소와는 거리가 멀다. 물건은 회사의 전형적인 카탈로그 대신 컴퓨터로 주문한다. “저는 세균 혐오자예요”라고 아델은 움찍 놀라며 말했다.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목이 아프면 노래를 전혀 할 수 없어요. 스크린을 만지는 건 제게 최악의 악몽이에요.” 가전제품과 아이들 장난감과 함께 그곳에는 유모나 ‘세계 최고의 엄마’ 같은 글귀가 새겨진 참 목걸이가 가득한 진열장이 있었다. “저는 이곳에서 주얼리를 사곤 했어요. 엄마 목걸이를 정말 갖고 싶었어요.” 아르고스를 떠난 후 우리는 고급스러운 포트넘앤메이슨(Fortnum&Mason)에 있는 화려하게 진열된 식품 매장에 들렀다. “이곳은 <나 홀로 집에>를 떠올리게 해요”라고 매주 보는 다섯 편 이상의 영화를 백과사전처럼 외우고 있는 영화 애호가 아델은 말한다. 스물여섯 살의 자비에 돌란 감독이 만든 ‘Hello’ 뮤직비디오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한 후 그녀는 ‘When We Were Young’에서 다른 영화감독과 작업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토드 헤인즈의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영화 <캐롤>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영상과 그 안에 담긴 어색한 침묵이 좋았습니다. 뮤직비디오에도 어색한 침묵을 담고 싶어요.” 출입구 쪽에서 그녀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보디가드가 순찰하는 동안 쇼핑객들은 아델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몰래 찍었다.
“이 발매되기 직전에 엄마가 몇 달 동안 이태리에 가셨어요. 그래서 스스로 살림을 꾸려야 했습니다. 테이크아웃 음식에 질려서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Jamie’s 30-Minute Meals>부터 시작했어요.” 그녀는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요리가 전문이다. “하지만 이젠 지겨워요. 그냥 팬에 튀긴 농어와 시금치거든요. 우리는 쇼핑에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소호에 있는 작은 지하 레스토랑에서 딤섬을 먹었다. 2주 전 영국으로 돌아온 후 아델은 아직도 맨해튼에서 보낸 시간에 들떠 있다.
그녀는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그건 진정한 귀향이었어요”라며, 를 홍보하기 위해 2008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한 것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미국에서 그녀의 커리어가 시작된 계기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그립진 않았어요. 하지만 저의 그런 면이 그리웠습니다. 저는 한동안 거친 흥분에 푹 빠져 행복했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봐 약간 두려웠어요. 을 따라가려면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Hello’가 발표되고 나서 저는 증명할 게 없다고 느꼈어요. 저는 제가 원하기 때문에 노래할 겁니다. 제가 원하기 때문에 음반을 만들 거고요,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눈을 이상하게 반짝이며 덧붙였다. “그들이 강요한다면 해고할 거예요”
몇 달 전부터 그녀는 매일 보컬 연습을 시작했다. 덕분에 그녀의 일상에 리듬이 생기고 공연 전 불안함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9개월간 투어를 진행했다. 이 투어는 지난 2월 벨파스트에서 시작해서 11월 멕시코시티에서 마무리됐다. “저는 제 인생을 바꿔놓은 팬들을 만나기 위해 투어를 하는 것뿐입니다. 투어를 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만족스럽게 잘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하고 걱정됩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세 살 때 엄마 코트에 싸인 채 큐어(The Cure)와 뷰티풀 사우스(The Beautiful South)의 콘서트에 처음 몰래 숨어 들어가고, 여덟 살에 글래스톤베리에서 프로디지 무대를 본 팬으로서 자신의 우상을 직접 보고 라이브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한다. “사람들은 늘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아요. 하지만 제가 일곱 살 때 스파이스 걸스는 폭발적이었어요. 그때가 걸 파워가 일어난 제 인생의 엄청난 순간이었어요.”
<보그> 촬영 세트장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실린 ‘Crazy in Love’의 리믹스곡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나중에 라나 델 레이의 ‘Salvatore’가 흘러나왔다.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어”라고 아델이 말했다. “그녀의 가사는 강렬해요. 이 노래의 코러스는 마치 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요.” 아델은 자신의 음악을 듣자는 의견을 비웃었다. “뭐라고요? ‘우, 분위기 좀 내자고요?’”라고 그녀가 진짜 질겁하며 물었다. “안돼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절대로요.” 집에서 앤젤로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부른다. 최근 를 들었을 때 그녀는 어떻게 열아홉 살이 그런 목소리를 냈는지 놀랐다. 그녀는 자기 세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현대적인 플랫폼에 저항해왔다. “지난 3년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하지만 제게 그것은 눈에 띄기 위해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혀를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녀는 자신이 아주 존경하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교훈은 마음 깊이 새긴 듯하다. 아델은 장대한 위엄에 작은 장소의 친밀함을 부여했다. 영국의 마지막 시즌에 그녀가 공연을 했기 때문에 그곳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곳이다. 영국판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시청률이 두 배는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쇼는 아델의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늘 저의 한 주의 정점이었어요. 저는 친구들과 를 봤습니다. 제 첫 키스도 파티장에서 를 보면서 했어요.” 1934년 엠파이어 풀로 지어지고 1948년 올림픽에 사용된 그 장소는 그녀에게도 의미가 있다.
아델이 키우는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의 작은 닥스훈트가 발밑에서 잽싸게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공연 룩을 ”경계 선상에 있는 여장 남자“라고 불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장난스럽게 그것을 더스티 스프링필드와 레이디 버니를 반반 섞어놓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스티가 밖으로 나왔다. “화장품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보이나요?”라고 그녀는 뺨에 블러셔를 바르기 위해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 “그건 기본적으로 검은 턱의 보이 조지예요!”라고 그녀는 그의 유명한 1980년대 얼굴 윤곽 트릭을 언급하며 덧붙였다. 아델은 몇 번 깜빡 졸았다. “1시간 정도는 즐거워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다음 엉덩이가 마비되지요. 그리고 등이 아프기 시작해요!” 인조 속눈썹은 여전히 그녀 룩의 일부이다. 그녀는 거울로 마지막 상태를 점검했다. “윤곽을 더 살릴까요? 속눈썹을 더 붙일까요? 농담이에요!”
그녀는 오늘 밤 프롬프터를 요구했다. “저는 늘 가사를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그리고 아델이 무대 위로 올라가기 45분 전 때맞춰 그 전설적인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그녀의 분장실을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보컬 연습으로 밖의 복도가 울렸다. 무대 위에서 그녀의 가사는 정확했다. 그리고 그녀는 프롬프터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 주변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울림을 의식했다. 마치 센서라운드 사운드로 ‘Hello’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1만7,000명의 관객들이 그녀의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글
- 해미시 보울스(Hamish Bowles)
- 포토그래퍼
- ANNIE LEIBOV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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