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
삶에서 정직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배우 문소리. 진심이지만 사실은 아닌 영화를 내놓은 문소리의 오늘에 대하여.
사진가 최랄라가 찍은 사진 속 문소리는 정물화의 일부처럼 보인다. 때로는 물병처럼 고요하고, 때로는 복숭아처럼 달보드레하고, 때로는 그릇처럼 민틋하다. 문소리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한순간을 귀하게 탈바꿈시키는 비상한 재주를 지닌 배우다. 평범한 실내 풍경과 소박한 물건으로부터 정직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정물화를 닮았다. 순임, 미숙, 호정, 현정, 미라, 성옥, 미연, 영선… <박하사탕>부터 최근작 <특별시민>까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문소리가 길어 올린 건 그녀들의 아름다운 구석이었다. 순박하거나, 섹시하거나, 얄밉거나, 하물며 잔인할 때도 문소리가 찾아낸 아름다운 구석은 우리를 그들의 삶으로 강하게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이 선사하는 놀랍도록 생생한 다른 생으로의 경험에 우리는 무수한 ‘트로피’와 ‘연기파 배우’라는 호칭으로 화답했고 문소리는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바로 그 ‘트로피’의 쓸모와 ‘연기파 배우’의 현재에 관한 영화다. 문소리는 감독, 각본 그리고 ‘문소리’ 역을 맡아 실제인지 영화인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여배우’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놀라운 건 둘이 보다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정도로 웃기고 나중에는 페이소스까지 남기는 이 영화가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며 발표한 단편 세 편을 모은 작품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배우에게 예쁘다는 말이 갖는 의미를 대사로 써먹는 능청스러운 여배우 감독을 두게 됐다. 언론 시사회 자리에서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문소리는 말했다. “녹록지 않다. 하지만 화내고 지낼 수만은 없지 않나.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여보는 게 중요하다. 여배우로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고민과 행동이다. 개봉에 용기 낸 것도 그 일환이다.” 혹시라도 이 영화로 새로운 트로피가 추가되더라도 ‘문소리는 오늘도’ 달릴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
최근에 영화를 많이 안 본 거 아닌가.(웃음)
영화에 대한 주변 여배우들 반응은 어떤가.
아직 아무도 안 봤다. VIP 시사회를 준비하다가 ‘허례허식이야!’ 하면서 접었다.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초저예산 영화에 어울리지 않더라. 내가 거의 최초로 비공개 결혼식을 한 사람이다. 주변에서 많이들 궁금해하긴 한다. 그런데 여배우라고 해도 다 사는 게 다를 거다. 나는 배우 중에서 좀 평범하게 사는 편이다. 일상에서도 배우니까 특별하다는 마음을 걷어내려고 한다. 어릴 때 이창동 감독님과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혹독하게 교육을 받았다. 옷 예쁘게 입고 가면, “그 옷 니 거 아니다,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하셨고, “밴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니 차 아니잖아” 하셨다. 배우라는 직업은 자기를 잃어버리기 쉽다고 늘 말씀하셨다. 주변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많이 하니까 그런 말이 곧 나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고, 휘둘리기 쉬운 일이라고 말이다. 나의 분명한 개성 중 하나는 평범함이다. 스물여섯 살까지 평범하게 살다가 데뷔했는데 그 베이스가 연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아주 특별하지 않은 외모인 것도 큰 영향을 미쳤고, 모두 내 안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다. 다른 여배우들이 영화를 보며 ‘저렇게 살아?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나랑 비슷하네, 나도 뒤에서는 저렇게 평범하게 사는데’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의 평범함과 여배우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화려함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프랑스어에서 ‘이해하다’와 ‘오해하다’라는 단어가 모음 하나만 다르고 거의 똑같다. 현대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오해하기 쉽다. ‘나는 이래’라고 얘기하지만 진짜 그런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왜 저런 말씀을 하시나 했는데 살다가 생각이 난다. 사실 이 영화도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였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배우로 참여할 때와는 굉장히 달랐을 것이다.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다.(웃음) 내가 뭘 하나 시작하면 그거밖에 모른다. 대학원에서 처음에는 여배우가 학교 강의실에 앉아 있으니까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나중에는 다들 “문소리 어디 있니?”.(웃음) 한번은 편집 수업 발표를 준비하며 밤새 매니저 앉혀놓고 PPT 파일 만들고 아침에 부랴부랴 나서는데 그제야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런 ‘꼬라지’로 오다니 생각이 나는 거다.(웃음) 영화는 정말 끝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창작하는 재미와 성취감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건 힘들지만 재미있다. 1막 제작비가 명품 백 가격 정도 들었는데, 쇼핑이 주는 만족감보다 단편영화 만드는 재미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웃음) 모자란 부분도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성취감이 있다. 2011년에 아이를 낳았는데 키우다 보니 힘이 들었다. 이유 없이 자존감이 떨어졌다. 임순례 감독님 조언으로 대학원에 가서 연출을 공부했고 그걸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자존감이 다져지는 것 같다. 내 안에 모자란 부분과 직접 부딪혀야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된다.
영화를 찍으며 처음으로 알게 된 감독의 심정은.
감독님들 오래 봐왔고 감독을 많이 이해하는 배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같이 사니까.(웃음) 엄마가 그런 말도 했다. 세상 누구 말도 안 들어도, 감독님 말은 듣는다고. 그런데 해보니까 내가 그 고통의 반의 반도 모르고 있었구나 싶더라. 감독은 정말 어려운 자리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3월 새 학기 되면 진짜 너무 힘들고 옆에 새로운 짝이 있으면 몸살이 났다. 그런 사람이 무슨 팔자로 배우가 됐나 싶은데, 연출을 하니까 나를 더 드러내야 하는 거다. ‘내가 은근히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했나? 왜 이러지?’ 싶고.(웃음) 그게 가장 힘들었다. 누구나 대부분 감추고 꾸미고 싶어 한다. 이 과정에서 나도 공부가 되고 서로 공감이 되고 그래서 위로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아서 ‘에잇, 나부터 까 봐!’ 이런 심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 그 과정에서 솔직해진다는 게 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감독들은 참 용감하고, 뻔뻔하고, 얼굴 두꺼우신 분들이었다.(웃음)
18년간의 연기 경험이 영화 연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대학원에서 단편영화 만들 때 조연출을 맡은 적이 있다. 배우에게는 최고의 조연출, 스태프들한테는 최고의 독종 조감독이었다. 그때 배우가 류현경 씨였는데 “내가 만난 조감독 중에 언니가 최고야”라는 칭찬을 받았다. 배우는 뭐가 궁금하고, 뭐가 필요하고, 불편한지 다 알고 있으니 감독 사이에서 조율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동안 같이 작업한 모든 감독님들의 모든 면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어느 것도 따라 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게 연출이더라. 자기 생긴 대로 찍어야 하니까.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어떤 감독이었나.
디렉션만 받는 게 아니라, 나와 연기를 해야하니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부담감을 덜기 위해 대화를 많이 했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참 좋은 친구들이 된 것 같다. 다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매니저 역할을 한 윤영균 배우도 항상 단역만했는데, 영화 <안시성>에 17회 차나 나온다고 한다. ‘우리 매니저가 이렇게 컸다’ 싶고 내 마음이 다 뿌듯하다. 전여빈 배우도 요즘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서 좋다.
영화를 찍어본 적 없는 신인 배우, 연극은 많이 해봤지만 영화는 안 해본 배우, 독립 영화 경험은 많지만 유명하지 않은 배우 등 새로운 얼굴을 발굴했다.
큰돈을 투자 받고 만든 영화가 아니잖나. 정말 초저예산 독립영화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기할 수 있는 장이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에게는 인생을 걸 만한 역할을 먹고살 만하고 유명하기도 한 사람들이 그냥 바람 쐬듯이 와서 연기하고 갈 수도 있다. 나 역시 <박하사탕> 끝나고 단편영화 7편 정도에 출연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영화 하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런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된다. 초저예산 독립영화에 맞게 신인 배우와 연극배우를 찾아다녔다. 이승연 배우는 <산다>라는 영화에서 보고 캐스팅하려고 술자리에 따라가서 새벽 4시 반까지 있었다.
감독 입장에서 배우를 찾아다녔으니 이제 배우가 그냥 배우로 안 보이겠다.
배우 캐스팅 때문에 연극배우들, 신인 배우들을 하도 많이 봐서 남편 장준환 감독이 준비 중인 영화 <1987>에 배우 자료를 많이 제공했다.(웃음) 그 영화도 워낙 캐스트가많은데, 연극배우들 등용문으로 기여하고 싶다고 해서 “피땀 흘려 모은 자료인데” 생색 내면서 드렸다.
어떤 마음으로 ‘문소리’를 연기했는지도 궁금하다.
‘연기하지 말자’였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서면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뭐든 보여주고 싶고, 기술 부려야 할 것 같고. 혹시라도 0.001초라도 내 연기에 힘이 들어갈까 봐 최대한 뒤로 빠져 있자는 마음이었다. 이창동 감독님이 처음부터 중요하게 말씀하신 게 “연기하지 마라”였다. 그때는 너무 놀라서 ‘연기하라고 뽑아놓고 연기하지 말라고 하면 뭘 해야하지?’ 했는데, 그냥 그 인물로 살면 된다고 그러셨다.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해볼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 중 하나는 유머다. 자기 비하에도 자기 연민에도 빠지지 않고 수위를 절묘하게 잘 지켰던 것 같다.
인생에서 유머가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철학만큼 중요하다. 같이 사는 사람도 유머 코드가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이 고단한 삶을 살 수 있겠나. ‘인생이 고단하지만 같이 한번 웃어보자, 그러면서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했던 영화다. 유머가 있는 영화가 깊이가 없는 영화가 아니다. 우디 앨런 영화도 웃으면서 보게 되지 않나. 웃으면서도 충분히 생각할 여지가 많은데, 한국 영화에서는 ‘웃고 끝내자’는 식으로 웃음을 사용한다.
유머는 여유와 유연함이 있어야 나올 수 있다.
만들어놓고 보니까 그래 보일 뿐 만들 때는 여유가 1도 없었다. 40대가 되면 인생이 여유로울 줄 알았다. 커피 들고 뛰어 다니지 않고, 우아하게 커피 잔 천천히 올리고 내려놓으면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0대가 더 바쁘다. 20대의 100분의 1도 안 노는데, 사는 게 여유가 없고 감당해야 할 건 많다. 친구들끼리 “40대, 너무하지 않아? 아직 앞이 깜깜해” 얘기한적이 있다. 어떤 조사에서 봤는데 40대에 행복지수가 가장 낮다고 한다. 앞으로가 걱정되는데 ‘어쩔 수 없다, 뛰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내 탓이라는 생각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정’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선택이나 결정을 한 적이 없거든. 안정적이라는 건 마음 편하고 끌리게 되어 있는 건데 늘 리스크가 크더라도 베팅을 했다.
우리 모두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승부사로 살아온 입장에서 해줄 얘기 없나.
나 역시 그런 부모님의 교육으로 사범대에 갔고, 정교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했다. 그때는 평생 학교에서 살 건데 한 번만 도전해보자고 한 게 끝없는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살아라’라고 조언을 하지 않는다. 각자 좋은 호르몬이 나오는 경우가 다 다른 것 같다. 안정감 있고 반복적인 어떤 것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다. 그래야 시스템도 안정이 되고 나라가 굴러가겠지. 나 같은 사람만 있어서는 공중분해 됐을 거다.(웃음)
천성이다, 천성.
내 안에 완전히 다른, 양립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섞여 있다. 둘이 유혈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싸운 적도 있지만 지금은 손잡고 가는 느낌이다. 여배우의 삶이 특이한 것 같지만 영화 일 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정석대로 산다. 결혼하고 애도 낳고, 명절 때 시댁, 친정 챙기고… 특이하게 사는 영화 쪽 여자들 너무 많다. 옛날 친구들 직업이 다 학교 선생, 법원 서기, 9급 공무원인데 걔네들과도 잘 논다. 옛날에는 ‘왜 내 마음은 늘 전쟁 같은가’ 했는데, 이제는 두 가지가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둘이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가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여배우’는 다양한 선입견에 둘러싸인 단어다. 그 단어를 싫어하는 배우를 본 적도 있다.
이 시대에 여성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배우이자 영화인으로서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가, 두 가지를 아우르는 제목을 고민하다가 나온 제목이다. 여배우라는 말에 대한 판타지, 선입견, 편견까지 영화에 깔려 있기 때문에 ‘여배우’라는 말을 썼다. 예전에 어느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시상하는 분이 “여배우는 영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죠. 아름다운 꽃에게 드리는 상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상을 주면 상냥하게 받아야 할 텐데 “저는 영화의 꽃이기보다 뿌리이고 줄기입니다. 차라리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영화를 계속 열심히 하고 싶다는 뜻도 있지만, 왜 여배우를 꽃으로만 표현하느냐, 반발심도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꽃 좋아하지만 뿌리도 좋아한다. 몸에 좋으니까. 여전히 그런 편견이 있는 사람들이 아쉽다. 여배우도 영화 안에서 다양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금 여배우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여배우에 대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극 중에서 “여배우니까 괜찮아” 같은 대사가 나오는데, 평소에도 ‘여배우’를 농담의 소재로 삼나.
친구들이 종종 한다. 친구들과 여행 가면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모든 스케줄을 다 짜고 늘 부엌에 있다. 나도 집안일을 많이 하진 않지만 큰 살림을 하는 엄마를 계속 봐서 그런지 배웠나 보다. 여행 가면 다 진행하니까 친구들이 ‘문 부장’이라고 부른다. “우리 여배우한테 이래도 되니” “여배우 손에 물 묻혀도 되니” 그러면서. 나는 “야! 현장 가서는 너희가 커피 타와! 나 꼼짝도 안 할 거야” 이렇게 대답하고.(웃음)
극 중 선글라스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여배우에게 선글라스란 무엇일까.
평택에 사는데 민낯으로 다니면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평택의 카페나 블록방에 문소리가 있을 거라고 아무도 예상을 안 하니까. 그런데 선글라스 끼고 가면 오히려 알아본다. 친구들이 여행 갈 때 “선글라스 좀 끼고 가자, 알아보게!”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평소에 민낯으로 다니기 때문에 가끔 무안해서 끼곤 한다. 혹은 시야가 밝은 게 싫거나 사람들 반응이 다 보이는 게 싫을 때도 낀다. 늘 필수품으로 들고 다닌다. 이 검은 막을 걷어버리고 직접 세상을 대하고 싶기도 한데 그건 또 이기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에게 판타지를 원하기도 하니까.
언론 시사회 인터뷰에서 “예술가란 아름다움을 좇아 인생을 거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떤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인가.
‘내가 추구하는 나만의 아름다움이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어렴풋이 있는 거 같기도 한데 구체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예술가로서보다 명확하게 지향점이 보이는 것 같다. 감독들과 작업을 하면 확실히 느껴지는 건 있다. 이 사람이 지향점이 있는 사람인지,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중요한 사람인지, 돈을 버는 게 중요한 사람인지 느껴진다. 그 가운데 정말 자기의 아름다움을 찾아 무언가를 거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감독님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영화뿐 아니라 춤을 추는 사람이든 음악하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런 사람들과 재미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연출 계획은 없다고 말했지만, 연출 욕심은 없어도 스토리 욕심은 있을 것 같다.
하늘 아래 정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진짜 내가 느끼는 것이 있어 같이 나누고 싶은데 그런 영화를 아무도 안 만들어준다면 또 만들겠지. 그 과정이 진짜 의미 있고 재미있어도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나 욕심은 전혀 없다. 사실 이번 영화도 오랜 친구가 저예산 영화 개봉 지원에 내는 바람에 개봉하게 된 거다. 어느 날 꿈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왔는데 막 웃으시면서 뭘 써주셨다. 꿈속에서 봐도 기분이 좋더라.(웃음) 잠에서 깨고 바로 친구로부터 저예산 영화 개봉 지원작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밀어주네, 개봉해야겠다’ 해서 일을 시작한 거다.
극 중에서 배우로서 배역에 굉장히 목말라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출연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의 성향이 바뀌었으리라 예상되는데 실제로 느낀 변화의 지점이 있나. 변화할 것이다. 내가 계속 변하니까. 아기 낳고 부랴부랴 <스파이>도, <관능의 법칙>도 찍었는데 그 뒤로 출연 제의가 유독 없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있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내가 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다시 조금 작품이 있지만, 또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당시에 대학원 다니고 영화도 만들면서 남편한테 푸념 삼아 문자를 보냈다. “작품이 없는데, 잠깐 이러려나, 계속 이러려나. 이렇게 계속 연기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남편으로부터 “게임을 던져봐요”라고 답장이 왔다. 백남준이 “게임에서 이길 수 없으면 게임의 룰을 바꿔라”라고 했다고. 그냥 좀 껴주면 되지, 뭘 만들어 하면서 징징댔는데 되게 중요한 말인 것 같다. ‘왜 난 안 되는 거지?’ 이렇게만 생각하며 살기엔 너무 어리석다. 진짜 이길 수 없는 게임이면 룰을 바꿔버리면 된다. 확.(웃음) 그 게임에서도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바꿔나가는 과정 자체가 ‘나는 이길 수 없어’ 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은 <리틀 포레스트>다. 사계절이 담기는 영화라고.
겨울, 봄, 여름 분량은 찍었고 이제 가을만 남았다. 경상북도 군위라는 곳에서 찍고 있는데 거기 가면 연기 안 하고 요리만 한다. 시금치 무치고 채 썰어 오코노미야키 만들고 크렘 브륄레 만들고… 연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보다 당근을 어떻게 예쁘게 썰지 고민한다.(웃음) 좀 새로운 영화가 나올 것 같다. 군위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 마을회관에서 메이크업하고 옷 갈아입고 있으면 할머니들이 “어, 또 왔어?” 그러시고. 할머니들 경북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우리 매니저는 전혀 못 알아들어서 내가 통역해주고 있다.(웃음) 촬영하는 집 텃밭에서 제작부가 실제로 농사를 짓고 있다. 토마토도 따다 주고 가지도 따다 준다.
실제로 평택에 살고 있는데 자연과 가깝게 지내나.
시골에 사는 불편함이 있지만 자연이 있고 북적이지 않고 조용하다. 그런 점 때문에 계속 살고 있다. 집에 과실나무, 화초, 야생화가 되게 많다. 동네 앞이 다 밭이고, 뒤는 다 산이다.
임순례 감독님이 “문소리는 전형성을 벗어난 모성을 연기하는 최적의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도 전형적인 엄마로부터 벗어나 있나. 김지훈 감독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도 엄마 역할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전형적인 엄마가 아니길 바라셨는데, 그게 최적이라고 생각하시나 보다.(웃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는 또 전형적인 모성을 원해서 정말 양쪽에서 힘들었다.(웃음) 딸아이가 일곱 살인데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긴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애가 너무 심심해 한다고 하면 “심심하면 좋은 거예요. 내버려두세요”라고 할 땐 전형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전화 안 되면 걱정되고 애타고 그런 건 전형적인 것 같다.
여배우는 오늘도 무엇을 할 예정인가.
오늘도 의상 피팅하고, 인터뷰하고, 남편 태워서 얼른 아이한테 가야 한다.(웃음)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RALA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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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서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권영은
- 메이크업 아티스트
- 홍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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